[밝은 앞날 되시기를][꿈은 이루어진다][꿈은 미래의 현실이다] 백두산 천지
[ 과거와 현재는 미래를 위해서 존재한다.] -----------------------------------------
~ 1만5천년전 - 대체로 황해에 바닷물이 빠진 상태. (황해는 평원) 1만5천년전에 급격하게 기온이 오르고 바닷물이 들이찼다가 다시 기온이 내려가서 바닷물이 빠진다.
1만2천년전 ~ 8천년전 - 차차 지금의 해안선까지 물이 들이찬다. 1만5천년전 이상 전에는 대체로 지금의 서해 , 남해의 얕은 바다가 평야지대. 사람이 가장 살기 좋은 곳이었다. 지금보다 날씨가 추웠으므로 당시 한반도 북부지방은 지금보다 추워서 사람 살기가 지금보다 더 어려웠고 위에 녹색 지역이 사람살기 제일 좋았던 곳.
지구기온 상승에 따른 고대한국 중심지의 북상 <-관련글 1만5천년 전부터 지구기온이 갑자기 올라간다. 빙하가 녹으면서 바다물도 급격히 높아진다. 그리하여 황해(+ 남해)평원(현 충청도, 전라도, 경남 앞바다)에서 살던 사람들이 이동하기 시작한다. 주로 한반도로 올라왔을 것인데 그 전까지 한반도에는 비교적 적은 수의 사람들이 살고 있었고 1만5천년전 ~ 8천년전 사이에 한반도에 사람들 수가 급격히 늘어난다. 그리고 세계로도 퍼진다. 개를 데리고. ( 1만5천년전 이상 전에도 비교적 소수의 마문명사람들이 세계로 퍼졌는데 1만5천년전 전부터는 비교적 다수의 마문명사람들이 세계로 퍼진다. 선진(앞선)문명을 가지고.) 세계학자들에 의하면 개는 동북아에서 맨 먼저 길들여졌고 1만5천년 전부터 세계로 퍼졌다. 개는 혼자 이동하지 않는다. 개는 사람을 따라서 이동한다. 사람을 따라서. 세계 개의 조상은 고대한국의 개 - 10만년전부터 기르기 시작 <- 관련글 1만5천년 전부터 바다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는데 [원조 마야인들(마문명인들)] 중 상당수가 대대적으로 세계로 퍼졌다고 본다. 많은 수는 남한지역으로 일부는 북한과 만주로 일부는 북미로 (초기 인디언) 일부는 서쪽, 남쪽으로 등등등 세계곳곳으로 퍼졌다고 본다. 그래서 일어난 것이 바로 [신석기 혁명] - 1만5천년전 이상 전에도 마문명 사람들이 세계 여러곳으로 퍼져나가기는 했지만 비교적 소수였다 본다. 서양학자들은 북미 인디언이 처음 북미로 온 것이 약 1만4천년전 이라 말한다. 그들은 최초의 북미 인디언이 시베리아에서 이동해 왔다고 하는데 그 사람들은 황해평원 마문명에서 시베리아를 거쳐서 북미로 갔다고 본다. 1만5천년전 이전에는 최소한 10만년 대체로 지구가 지금보다 추웠고 시베리아도 지금보다도 더 추웠다. 사람 살기가 어려웠다. 문명이 자생적으로 발전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원래 시베리아에 살던 사람들이 아니라 마문명에서 이동해간 사람들로 본다.
위 그림들은 한국에서 고인돌, 천손신화, 난생신화가 세계로 퍼져나가는 것을 대강 보여주고 있다. 중국대륙에도 한국에서 전해진 천손신화, 난생신화가 널리 퍼져 있었는데 후대에 말하자면 '중국의 자존심'에 의하여 사라진 것으로 본다. 한국은 [고인돌]의 원조국이고 [천손신화]와 [난생신화]가 모두 다 있는 곳. 난생신화 - 조상이 알에서 나왔다는 신화. 천손신화 - 하늘의 자손이라는 신화. 난생신화는 쌀농사와 함께 1만년 이상 전부터 동남아, 인도 등으로 퍼진 것. 1926년 영국 육군의 예비역 대령인 제임스 처치워드가 쓴 책 『잃어버린 무 대륙(The Lost Continent of Mu)』에 보면 인도 고대 사원에는 1만년 이상 된 점토판 책들이 있고 동방의 어머니 나라 [무]에서 인도로 문명이 전파되어 왔다고 되어 있다. [무대륙]이란 태평양에 무슨 대륙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고대에 육지였던 황해대평원과 그 마문명이 퍼져나간 평야지대들(지금은 얕은 바다)을 말하는 것으로 보는데 [황해평원 마문명]에서 퍼져나간 [어머니 나라 - 무]의 문명 수준은 어떻했을까. 물론 이 또한 현재 정확히 알수 없지만 전편에서 다룬 [오키나와 피라미드]가 그 일면을 보여주고 있다 하겠다. 위 오키나와(= 류큐 = 유구) 피라미드는 수심 약 20~25m 지점에 위치해 있으니 약 1만년전에 바다에 잠긴 것으로 본다. 당시 인류가 살기 가장 좋았던 황해대평원에서 보면 당시에도 오키나와는 변방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저정도 수준을 보이고 있다. 마문명의 중심이었던 황해대평원의 문명은 저보다 훨씬 더 수준이 높았다고 볼 수 있다. 오래전 문명이라고 무조건 무시하면 안된다. 현대 과학기술로도 [고려청자]를 복원하지 못하고 있다. 고조선 고유문명인 [다뉴세문경]도 복원하지 못하고 있다. 1만년전 마문명이 단지 돌도끼나 갈던 정도의 문명이라고 생각한다면 이는 현대인의 선입견, 오만 때문이라고 본다. 인도는 범어(산스크리트어)가 들어오기 전에 [드라비다어]라는 것을 썼다. 드라비다어는 지금도 많은 인도인들이 쓰고 있는데 한국어와 근본적으로 너무 비슷해서 많은 사람들이 놀라고 있다. 그에 대한 글들도 가면 갈수록 많이 나오고 있다. 그래서 인도 [드라비다어]가 한국에 들어와서 한국어가 되지 않았나 하는 소리까지 나오는데 이는 [황해평원 마문명]을 생각하지 않은 데서 나온 착각. 사실은 1만년 이상 전에 일부 고대한국인들이 인도로 이동하고 그들의 말이 지금의 드라비다어의 뿌리로 본다. 그리고 전편에서 밝혔듯이 실제로 한국에서는 세계최초의 쌀농사 유물이 발견되었고 (충북 청원 - 1만5천년전 것.) 이 재배볍씨 중에서는 한국, 일본에서 많이 기르는 쌀인 [자포니카]쌀과 함께 현재 동남아, 인도에서 많이 기르는 [인디카]쌀도 발견되어서 자포니카와 인디카 모두 한국이 원산지 임을 밝혀주고 있다. ( 전세계 쌀은 크게 자포니카와 인디카로 나뉜다.) 즉 세계 모든 쌀의 원산지가 한국. 고대한국에서 기르던 개가 1만5천년전부터 사람을 따라서 이동하여 전세계 개들의 조상이 되었듯이 고대한국에서 기르던 쌀도 전세계 쌀들의 조상이 된 것. 세계에서 가장 먼저 농사 지은 한국 - 1만 5천년전 쌀농사 <- 관련글 인도에는 크게 2가지 언어가 있다. 1. 드라비다어 2. 범어 (산스크리트어) 둘다 고대한국에서 전해진 언어.
단지 전해진 시기가 다르다. 드라비다어가 더 먼저 인도에서 사용되고 있었고 (1만년 이상 전부터) 드라비다어는 인도 남부에서 먼저 쓰기 시작한다. (난생신화) 그런데 그보다 수천년 후에 [아리안]이 인도 북부로 들어오게 된다. (천손신화) 그들의 말인 범어가 인도북부에서부터 퍼지기 시작한다.
[알타이 파지릭 고분에서 발굴된 그림] 의자에 앉아있는 사람이 당시 제1계급 [브라만] 동북아인의 모습.
[브라만]은 인도로 들어온 [아리안]을 말하는 것이고 7천년 전부터 이미 중앙아시아에 나타났다는 [아리안]은 고대한국인들의 이동으로 본다. 고대 인도에서는 민족에 따라서 계급이 나뉘었던 것으로 본다. 이처럼 인도에는 크게 보면 2번의 문명전파가 있다. 1) 약 1만년 이상 전의 황해평원 마문명의 전파( 쌀농사, 고인돌, 난생신화) -> 드라비다어 2) 약 1만년전 이후의 고대한국의 문명의 전파. -> 범어 (산스크리트어) [고대한국어]가 건너가서 [인도 범어(梵語)]가 되었다. <- 관련글 [ 아리안의 이동과 언어의 전파 ] 중고등학교 교과서에도 나오듯이 [인도-유럽어족]은 세계 3대 어족(같은 언어의 집단)중 하나. 인도(산스크리트어)와 유럽의 대부분의 언어가 이에 속한다. 그리스어, 라틴어,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등 거의 모든 유럽언어가 여기에 속하는데 이 [인도-유럽어족]은 다른 말로 [아리안어족]이라 한다. 학계에서 [인도 - 유럽어족]이라 하지 [유럽 - 인도어족]이라 하지 않는이유는 그 언어가 유럽에서 인도로 전파된 것이 아니라 인도에서 유럽으로 전파되었기 때문. 인도 -> 유럽 [아리안]은 수천년전 유럽에 문명을 전해 준 전설적인 종족이름이고 [아리안]이 없었다면 유럽의 고대문명은 존재할 수 없었다. 그래서 히틀러는 독일인이 유럽에 온 [아리안]의 '제1 적통'이라 주장하면서 그 [아리안]의 원형을 찾으려고 멀리 티벳에까지 사람을 보낸 사실은 널리 알려져있다 하겠다. 분명히 존재했고, 영어 등 지금의 대부분의 유럽언어의 뿌리가 되었던 [아리안] 그런데 유럽인들은 그 [아리안]의 실체를 찾기가 쉽지 않았고 그저 "[아리안]이 7천년 전에도 이미 인도북부와 중앙아시아에 나타났으며 그들이 유럽으로도 퍼졌다(진출했다)." 정도의 사실을 밝혀냈다 하겠다. 그런데 고대사를 살펴보다 보면 분명히 존재했지만 실체를 쉽게 규정할 수 없는 이 [아리안]이 사실은 동북아시아에서 끊임없이 서쪽으로 문명을 전하러 이동해 간 사람들이라는 귀결이 나온다 하겠다. 즉 [아리안]이라는 사람들은 단순히 '어느 한 시대의 한 무리의 부족'이 아니라 수천년 동안 계속해서 선진문명을 가지고 동방에서 서방으로 이동해간 사람들의 [통칭]이라는 것. 영어에서 [오리엔트(동방)]이라는 말은 그 말 자체가 [오리진(근원)]이라는 말을 포함하고 있다. 이 [오리]와 아리안의 [아리]가 같은 말이라는 것. "빛은 동(東)방에서"라는 말이 있듯이. 인도 남부에서 주로 쓰이는 [드라비다어]는 1만년 이상 전의 [마문명] 때 전해진 것이고 인도 북부에서 주로 쓰이는 [산스크리트어]는 1만년전 이후의 [한문명] 때 전해진 것이라 하겠다. - 약 1만년전 [마문명(모계사회)]가 끝나고 황해평원에서 한반도로 상륙한 사람들이 [한문명(부계사회)]을 열었다 본다. 한반도 중부, 남부 사람들이 스스로를 [마한]이라 한 것은 스스로 [마문명]과 [한문명]의 후계임을 표방한 것이라 본다. 원래는 한반도 전체를 [마한]이라 했다. [마한]은 후대에 [마한(馬韓)]이나 [마한(摩韓)]으로도 기록되었지만 [마한]의 원래 표기는 [마한(麻韓)]이라 하겠다. [마한]이라는 말은 한반도가 [마문명]과 [한문명]의 적통계승임을 표방한 것. 한국어가 인도어와 유럽어의 뿌리다? 그렇다면 지금의 한국어는 왜 인도어, 유럽어와 그토록 다른가. 축구의 박지성선수가 네덜란드에서 활약할 때 현지 팬들이 박지성선수를 뭐라 불렀을까. 그들이 [박지성]을 발음 할 때 지쑹빠르크, 위쏭빠르크, 위쏭빠레 이런식으로 불렀고, 물론 지금도 그렇게 부른다. [박지성]과 [지쑹빠르크, 위쏭빠르크, 위쏭빠레]가 같은 말이라는 얘기. 언뜻보면 완전히 다른 말들이지만 사실은 같은 말. 지금도 우리가 유럽에 가서 빨갛다는 의미의 [붉]이라는 말을 유럽인들에게 하면 그들은 [붉]을 [부르크]라 발음할 것이다. [밝]이라는 말은 [바르크]라 할 것이다. 유럽에는 함부르크, 룩셈부르크 등 수많은 [부르크]들이 있다. 지금도 유럽에는 중요한 자리에 [레드 카펫]이라는 것을 까는 전통이 있다. [붉은 색]을 숭상하던 흔적이라 하겠다. 태양이 떠오를 때 (일출, 해돋이) 태양의 색이 붉은 색. - 다 뜨면 태양이 하얗게 된다. ( 밝은 색 ) 유럽에서 붉은 색이 숭상되던 제1 이유는 [붉은 색]이 해뜨는 동방(東方)을 뜻하는 색깔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고대 유럽의 중심지들에 붉(부르크)이라는 말이 많이 붙은 이유는 고대한국인들이 스스로를 표현하는 말 중에 붉 , 밝 이라는 말을 많이 써서 그렇지 않나 한다. 한국어에서 [얼굴이 발그스름(밝으스름)하다]는 표현은 얼굴이 [붉어졌다]는 얘기이듯이 한국어에서는 [붉다]와 [밝다]가 혼용되는 면이 있는데 이는 우리 한국인들이 스스로 한국이 [붉은 태양] 즉 해뜨는 나라라는 [태양이 생성되는 근원국]이라는 자부심이 커서 그러한 것으로 본다. 또한 중국 황제들의 상징색에 [붉은 (빨간) 색]이 있는 것도 [붉은 색]이 문명의 근원인 동방 즉 고대한국을 상징하는 색깔이어서 그렇지 않나 한다. 예수교 경전인 바이블에 '바벨탑 전설'이 나오는데 '인류가 원래는 같은 언어를 사용했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이 다 그 이유가 있다 하겠다. - 바이블의 구약이 주로 유태(이스라엘)민족의 역사를 기록한 책이지만 사실은 세계 공통적인 고대사 이야기들도 상당부분 들어있다 하겠다. 어느 민족의 고대사 이야기나 대개 다 그러하듯이. 수메르인들 (어디선가 나타나서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일으킨 사람들) 역시 통칭 아리안의 일종으로 본다. 그들은 6천~7천 년전에 어디선가 갑자기 나타난 [머리카락이 검은 사람들]
[5천년전에 만들어진 수메르 왕조 지도자 '구데아(gudea)'의 인물상] 수메르의 말이 한국어와 비슷하다는 것은 이미 많이 알려져 있다. 1만5천년전부터 지구기온이 급격히 올라가면서 바다물이 밀려들고 1만4천년 전에는 마문명이 지금의 경기, 충청, 전라, 경남의 앞바다 지역으로 이동했을 것이다.
위 지도에서도 보이듯이 경기, 충청, 전라, 경남의 앞바다는 수심이 낮다. 즉 가장 마지막에 바다물이 들이찼을 것이다. 1만4천년전부터 지구 기온이 다시 내려갔다가 1만2천년전부터 다시 지구기온이 올라가면서 바다물이 다시 들이차고 황해평원 마문명 사람들은 현 남한지역으로 대대적으로 올라온다. (8천년전에 대강 지금 정도의 해안선이 됐다는 것이 기상학자들 이야기.) 전남 화순에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고인돌 즉 8천년전 고인돌이 있는데 이는 황해평원 마문명 사람들의 이동시기와 맞아떨어진다. 강원도 양양군에서 발견된 8천년전 빗살무늬토기 역시 마찬가지. 빗살무늬토기(한국)
빗살무늬 토기 (한국)
빗살무늬토기 : 한국에서 시작하여 세계로 퍼지다. <- 관련글 물론 한반도에도 8천년 이상에도 고인돌과 빗살무늬토기를 만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때는 한반도가 비교적 높은 지대였고 사람들이 많이 살지 않아서 (당시에는 사람들이 대부분 황해, 남해 평원에서 살아서) 8천년 이상 전에는 지금의 한반도 땅에 고인돌과 빗살무늬토기가 많지는 않았을 것이고 그래서 8천년 이상 전 것은 아직 발견되지 않고 있다 하겠다. 한반도의 황해, 남해속에는 8천년 이상 전의 수많은 고인돌과 빗살무늬토기가 묻혀있을 것이다. 고인돌, 빗살무늬토기는 황해평원 마문명 사람들의 문화로 본다. 왜 한반도에 세계 고인돌의 절반 이상이 몰려있는지 왜 한반도에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고인돌들이 있는지 이러한 상황이 그 이유를 알려주고 있다 하겠다. 경남 창녕 고인돌
전북 고창 고인돌
전북 고창 고인돌
강원도 양구 고인돌 - 장승(황헌만 사진, 이종철 외 3인 지음, 열화당, 1993)에서 인용
[고인돌 집중지역] 고대황해평원 마문명에서 남한땅에 전해진 고인돌문화는 차차 황해도 등으로 북상한다. 대동강에서 제주도까지의 영역은 세계고인돌의 절반이 몰려있는 대단히 특수한 곳.
[한반도 남부]의 고인돌문화는 차차 [한반도 북부와 만주]로 전파된다. [고인돌 주요 분포도] - 백두산 부근은 지대가 높아서 사람이 많이 살지 않았고, 그래서 고인돌이 많이 발견되지 않는다.
고인돌 문화는 차차 퍼져서 한반도 북부와 만주로 전파되고 산동반도와 일본 규슈 지방으로도 전파된다. 물론 산동반도의 고인돌도 한국보다 늦은 것들이고 일본의 고인돌은 한국보다 수천년 이상 늦다. 일본의 고인돌은 약 2천수백년전에 한반도에서 건너간 사람들이 전해준 것인데 그들은 쌀농사와 금속문명도 같이 전파해준다. 그전까지 일본은 원시석기시대였고 기원전 4세기 경에 한국인들에 의해서 문명화되기 시작한다. 이것을 학계에서는 [야요이(彌生) 문명]이라 부른다. 이때가 되어서야 일본은 비로소 원시석기시대에서 벗어난다. 한국보다 최소한 수천년 늦다. 이러한 사실은 일본 지식인들의 심각한 [역사 컴플렉스]가 되어 일제 때 극심하게 한국고대사를 왜곡, 날조하게 된다. 벼농사, 금속문명도 일본에 가르쳐준 한국 <- 관련글
검룡소 [儉龍沼] - 강원도 태백시 창죽동 금대봉에 있는 소(沼). | | |
남한강 발원지. 서해에 살던 이무기가 용이 되려고 강줄기를 거슬러 올라와 이곳에서 머무르고 있다는 전설이 있다고 한다. 검룡소[儉龍沼]의 검[儉]자는 [단군왕검 檀君王儉]의 검[儉]자. 게다가 주변 가까운 곳에 [태백산 천제단]이 있다. [서해에 살던 이무기가 강줄기를 거슬러 왔다]는 얘기는 고대 황해대평원 [마문명] 사람들의 이동으로 볼수 있는 것 같다. 고대부터 한강이 중요시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겠고 한반도 북부보다 한반도 남부에서 먼저 문명이 꽃피워졌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근거 중 하나라 하겠다. 이렇게 주로 한반도 남부, 중부 지역으로 이동한 마문명 사람들은 황해평원을 [마]라 불렀듯이 한반도 남부, 중부를 [마]라 불렀고 이 지역은 나중에 [마한]이라 불리게 된다. [백두에서 한라까지] [백두에서 한라까지]라는 말이 있다. 실제로 고대에 백두산 천지에서 흘러내린 물은 압록강 , 황해대강을 지나서 한라산 쪽으로 흘러간다. 그리고 백두산에서 뻗어내린 백두대간은 결국 한라산까지 이어진다. [물]로도 [산맥]으로도 [백두와 한라]는 이어져 있다. 그리고 희한한것이 백두산과 한라산은 둘 다 화산폭발을 했고 둘 다 정상에 호수가 있다. (천지, 백록담) 그리고 그 중간에 세계 최고의 절경이라는 [금강산]이 있다. 그 넓다는 중국땅에도 감히 [금강]이라는 이름이 붙은 산은 없다. 불경에도 금강경이 있듯이 [금강]이란 최고를 뜻한다. 중국 황제들도 뻑하면 한국의 금강산 그림을 가져다 보고자 했다. 진시황도 불로초를 한국땅에서 찾고자 했다. 저 [황해평야 대강]을 고대한국인들은 [밀이내(미리내)]라 불렀을 것이다. [밀이의 강]이라는 것. [밀이]는 [말(마) 사람(이)]이라는 뜻이고 지금도 한국에서는 사람들을 칭할때 [무리(물이)]라는 말을 쓴다.
[말(언어), 멀이(머리), 물이(무리)]
말(언어)도 원래 [마]에서 쓰던 것이고 멀이(멀 사람)는 머리 즉 지도자였다. 지도자는 지식과 지혜가 있어야 하므로 멀이(머리)라는 말은 인간의 두뇌를 뜻하는 말로 변화한다. 나중에 [미리내(밀이내)]는 [은하수]를 가리키는 말로 쓰이는데 원래는 땅에는 땅의 미리내 - 대강(大江) 하늘에는 하늘의 미리내 - 은하수 대강이나 은하수나 둘 다 남북으로 걸쳐 있는 큰 강. 고대한국어로 용(龍)을 [미르(밀으)]라 한다. 한국어로 [사람들]을 [물이(무리)]라 한다. [물이(무리)]와 [밀이(미리)]는 근본이 같은 말로 본다. 황해대강은 대표적 [물]이었고 곡식 [밀]도 황해, 남해 평원에서 처음 기른 것으로 본다. 쌀농사가 한국이 원조인 것이 밝혀진 것처럼 밀농사도 한국이 원조인 것이 밝혀지는 것은 시간문제라 본다.
천상열차분야지도(天象列次分野之圖) - 국보 제228호 조선 태조 4년(1395)에 고구려 천문도를 바탕으로 해서 만든 천문도 각석. 한국 하늘의 별들을 돌에 새긴 것. 위의 둥그런 [노란 강]이 바로 미리내(밀이내 - 은하수) 그런데 [천상열차분야지도]는 좌우가 [서동(選)]이 아닌 [동서(東西)]로 되어있다. 동 서
위 그림처럼
북 (현무) 동 (청룡) 서 (백호) 남 (주작) 으로 배치되어 있는 것. 이것을 동과 서를 바로잡으면 은하수의 모양은 다음과 같이 반대방향이 된다.
고대에 나오는 한수(漢水)라는 기록은 대개 한강, 대동강, 압록강 중 하나다. 3강을 모두 한수(漢水)라 불렀다. 중국의 한수(漢水)라는데는 양자강 지류에 불과한 일종의 [모방] 이는 [원조인 한국 김치]와 일본 기무치의 관계와 비슷하다. [한(漢)]자가 가리키는 [종족이름]은 원래는 한국민족을 가리킨다. [황해평야 대강] 지역 특히 그 동부에 살았던 민족이 한민족. 즉 한민족의 [한] 이라는 말을 표현하는 한자가 桓(한), 韓(한) 뿐만 아니라 漢(한)도 있었던 것. 그래서 서울에도 [한강(漢江)]이 흐른다. 즉 고대 한민족은 [서울 한강]을 [황해대평원 한강(대강)]으로 흘러드는 [대표적인] 강으로 보았던 것. 원조 漢(한)민족은 한국민족을 가리킨다. 한족(漢族)의 비밀 <- 관련글 강북 ㅣ --------------------------------------- ㅣ <- <- <- 서울 한강(漢江) ㅣ ㅣ-------------------------------------- ㅣ ㅣ 강남 ㅣ ㅣ ㅣ ㅣ 경기도 ㅣ ㅣ ㅣ 한강 ㅣ ㅣ (漢江) ㅣ 충청도 ㅣ ㅣ ㅣ = 황해 ㅣ ㅣ 대강 ㅣ 전라도 ㅣ ㅣ [원조 한족(漢族)]은 [황해대평원 대강 즉 한강(漢江)]의 동쪽에 살고 있던 민족. 그 민족은 스스로를 태양민족, 하늘민족이라는 의미로 [한]이라 불렀고 그 [한]을 한자로 쓴 것이 [桓(한)]이고 [韓(한)]이고 [한(漢)] 황해대강(大江)의 이름이 [한(漢)]이었다는 것은 한라산 [漢拏山]의 위치를 보아도 알 수 있다. 전편에 나왔던 호주 시드니대학 보고서의 그림. 위 그림에서 보이듯이 황해대강은 한라산을 향하고 있다. 한라산[漢拏山]의 한자 뜻은 한[漢]을 끌어당기는[拏: 당길 라] 산이라는 뜻. 절묘하지 않은가. 실제로 한라산(漢拏山)은 한[漢] 즉 황해대강을 끌어당기고 있다! 황해대강은 한라산을 향해서 흐르고 있다. 그래서 한라산은 한라산(漢拏山)이라는 이름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한라산(漢拏山) 계속 그 이름을 가지고 있는 것도 희한하다. 사람들이 다 잊어버렸던 황해대강의 존재를 한라산은 그 이름으로 지금까지 우리에게 외치고 있었다. 1만 2천년전 낙동강 하류 김해평야 삼각주 기름진 들은 지금보다 훨씬 컸다. 지금의 부산 앞바다가 당시에는 평야지대. 그러므로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었을 것이다. 지금 부산이 한국 제2의 도시인 것처럼.
고대의 낙동강 삼각주는 지금보다 훨씬 더 컸다. 위치는 지금의 부산, 마산 앞바다. 삼각주는 농사짓기도 좋고 바다와도 가까와서 사람들이 많이 산다. 지금의 낙동강 하류 바다속에도 많은 고대 유물들이 있을 것이다.
이러한 [낙동강 삼각주 마문명]은 [영남문화권]의 뿌리가 된 것으로 본다. 습관처럼 [마...그래서...마...그런데...마...]하는 [마...문화권] [영남 문화권] 위 [영남 문화권]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8천년전 배가 발견된 곳.
배만들기(조선)도 한국이 세계 최초 <- 관련글
[울산 반구대 암각화] 반구대 암각화 - 영국 BBC “한국이 고래잡이 세계 최초” <- 관련 기사 위 반구대 암각화는 8천년전 것. 그런데 저 그림에는 배타고 멀리 나가야만 볼수 있는 큰 고래들 그림이 자세히 그려져 있고 실제로 배타고 나가서 고래잡이하는 그림도 있다. 은하수는 대강 위 그림처럼 왼쪽(서쪽)으로 불룩한모양. 서울을 지나는 한강(漢江)이 왜 은하수 한(漢)자를 썼는지 알수 있다. [한강 미리내(은하수)]를 보시라. 위 그림은 서울 한강이 대강으로 흘러 바다로 나가는 모습. 하늘의 은하수와 같은 모습. ( 북한강은 금강산에서 시작하고 남한강은 태백산에서 시작한다.) 은하수를 한자로 [천한(天漢)] 즉 [하늘의 한(漢)]이라 하듯이 (백과사전 -> http://krdic.naver.com/detail.nhn?docid=30045900) [한강 - 황해 대강]은 그냥 [한(漢)]이고 은하수는 [천한(天漢)]인 것. 한국의 [한강(漢江)]이 왜 [한강(韓江)]으로 안불리고 [한강(漢江)]으로 불려 왔는지 이해가 가는 일이다. 그런데 고대 기록의 한강 즉 한수(漢水)는 3군데. 한강, 대동강, 압록강을 모두 한수(漢水)라 부른 기록이 있다. 그 이유는 다음 그림을 보면 쉽게 아실 수 있다. [대동강 미리내] [압록강 미리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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