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조 고대한국문명 ] 즉 [마 문명] 2|원조 고대한국문명 마문명
미래를 위하여|조회 5534|추천 4|2007.10.14. 17:53http://cafe.daum.net/121315/WTY/91 

 

 

[밝은 앞날 되시기를][꿈은 이루어진다][꿈은 미래의 현실이다]


백두산 천지

 

과거와 현재는 미래를 위해서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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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10만년동안 지금보다 추웠던 지구가 

1만 수천년 전부터 점점 더워지면서

현재의 해안선은 8천년전의 해안선과 대강 같다. (기상학자들 이야기)


그런데 그후 기후가 계속 더워져서

6 ~5천년전에 기온이 최고로 높아지고

그 후 차차 식어서 지금에 이른다.

 


 

 

  

 

 

기후변화 등의 이유로 고대한국의 수도지(중심지)는 
[한반도 남부 -> 한강 -> 대동강 -> 압록강]으로 이동했다고 본다.

 

더워지는 기후에 따라서 고대한국의 중심지도 북상.

 

본래 문명은 적당한 기후가 되어야 대체로 활발히 발전한다.

지금도 대체로 그렇지만 고대에는 더욱 그렇다.

 

홍산문명은 고대한국 중심지는 아니다.

압록강 유역에서 홍산문명보다 훨씬 더 많은 피라미드 등

고대 유적 유물이 훨씬 더 많이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도.

 

압록강변 집안에는 홍산문명보다 백배, 천배 더 많은 유적유물이 있다.

대부분 고구려 때 것으로 '둔갑'되어 있거나 중국당국이 '비공개'로 감추어 놨지만. 

 

중국당국이 홍산문명을 부각시킨 이유는 그 지역(만주 서부 요하 유역)이

압록강보다 더 중국에 가깝기 때문.

 

중국당국은 동북꽁정이 성공했다고 생각하면 언제든지

압록강 유역의 유적 유물들을 급격히 부각시킬 것이다.

특히 [집안] 지역의 것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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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그림은 고대한국의 주요영역을 시대별로 대강 그린 것.

물론 1만년전 이상 전에도 고대한국문명(마문명)은 세계로 전파되었다.

그런데 약 1만년전 현 남한지역에서 새롭게 시작한 고대한국문명(한문명)은 또 다른 발전을 보인다.


마문명 -> 한문명


그래서 7천년에 시작된 산동반도 북신문화나

6천5백년전에 시작된 대문구문화

6천년전에 시작된 홍산문화 등은

1만년전 이후에 다시 시작된 (황해 마문명과는 또 다른) 고대한국문명의 영향을 다시 직접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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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동반도에서 발굴된 고조선족의 팽이형 토기와 아사달 모양(네모 안).

중국 측은 기원전 4300년∼기원전 2200년의 유물로 추정한다.

사진 제공 신용하 교수

출처 : http://www.donga.com/fbin/output?n=200705260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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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토기는 산동반도 [대문구문화]의 토기.

아사달( 해뜨는 땅, 해뜨는 산) 무늬가 그려져있다.

산동반도가 오래전부터 고대한국의 영향을 받았음은

고인돌이 많이 발견되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모(母)계사회에서 부(父)계사회로의 변화.

 

학계에서도 얘기하듯이 고대의 인류는 원래 모계사회였고  

황해 마문명 역시 모계사회였던 것으로 본다.

그런데 [마문명] 시대가 가고 [고대한국] 시대가 시작되면서 부계사회로 바뀐 것으로 보인다.

약 1만년전에 세계최초로 한반도 남부에서 부계사회가 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요하 홍산문명에서도 원주민은 고대 마문명의 영향으로 모계사회(여성지도자)였고

나중에 고대한국에서 그곳으로 간 환웅씨는 남성지도자.

[남남북녀]라는 말의 근본은 이러한 데에 있다고 본다.

남성지도자가 출현한 곳이 남쪽이라는 것.

 

황해마문명의 전파로 세계는 '신석기혁명'이 일어나고 (대략 1만5천년전~)

그 바탕위에 세계에 다시 고대한국문명이 전해지는 것. ( 1만년전 이후 - 이들을 통칭 [아리안(알이안)]이라 한다. )  

 

 

지구기온은 6~5천년전 가장 따뜻했다.

그래서 이 때에 고대한국문명은 시베리아 등 북부로도 많이 전해졌다.

당시 시베리아는 지금보다 많이 따뜻했으므로.


 

 

 
빗살무늬토기(한국)
 
 
 



빗살무늬 토기 (한국)

 

 

 

 

   

 

 

빗살무늬토기도 한국이 원조. 

8천년전 것도 발견되었다. - 강원 양양군 손양면 오산리

 

그 전에도 시베리아 등에 고대한국문명이 전파되었겠지만

6~5천년전에 지구기온이 가장 따뜻했을 때

고대한국문명이 시베리아로 활발히 전파된 것으로 본다.

 

그 시기에 빗살무늬토기 뿐만이 아니라 많은 고대한국문명이 시베리아로 전파되었는데

이를 거꾸로 시베리아에서 한국으로 문명이 전파됐다하면 곤란하다.

- 일제의 조작 등으로 이렇게 거꾸로 알려진 것이 많다.

 

시베리아는 너무 추워서 고도문명이 자체 발생, 발전되기가 어려운 곳.

 

( 바이칼리안(밝할인)이 황해평원에 온 것은 그보다 훨씬 전 일이고 (수만년전 추정)

그들은 별다른 높은 문명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이는 바이칼 호수 지역 발굴 유물로도 알 수 있다. )

 

위 그림을 보면 고대한국인들은 시베리아를 건너 북유럽까지 가고 있다.

북유럽은 백인의 발생지로 추정되는 곳인데

원조 백인들은 머리카락이 탈색돼서 하얗다. (은발)

그런데 독일 등에 사는 [게르만]은 머리카락이 빨간색 등 여러가지.

이는 원조백인들(하얀머리)과 고대한국인들(검은머리)의

혼혈때문이 아닌가 싶다. 

 

 

 

 

 

시베리아 동쪽에 [아무르강]이라는 강이 있다.

- 이 강을 중국에서는 [흑룡강]이라 부른다.

 

 



아무르강 유역 꼰돈에서 발굴된 
아무르 여인상 (4천년전)

 

 

세계 고고학계에서 [아무르의 비너스]라 불리는 위 여인상은

얼굴이 한국인의 전형적인 특징을 보여주고 있고

머리를 납작하게 만든 편두문화는 가야, 신라의 편두와 같다.

  


[아무르]라는 이름도 고대한국인들이 지은 것으로 보이는데

아무르는 [아물] 즉 [아(해뜨는 동쪽)에 있는 물]이라는 말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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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생신화는 대략 한국 이남 위도 지역에 널리 퍼져있고

천손신화는 대략 한국 이북 위도 지역에 널리 퍼져있다.

위그림은 [난생신화와 천손신화의 주요 지역]을 대강 그린 것. 

 

천손신화지역 즉 [범 알타이 지역]은 주로 1만년전 이후에 문명이 전파된다.

또한 그래서 그 지역에는 부계사회의 전통이 강하다. 부권이 비교적 쎄다.

물론 고대한국에서 계속적으로 사람들이 이동해 갔을 것이다.

 

1만년 이상 전에는 고대한국인들(마문명인들)이 주로

한국보다 남쪽지방으로 많이 이동해간다.

지구가 지금보다 추웠으므로.

동남아 등지에서는 상대적으로 비교적 모권이 쎄다.

이는 모계사회였던 마문명의 영향이 아직도 남아있는 듯.

 

난생신화 천손신화는 근본적으로는 같다.

(새)알을 알이라 부르는 것은 알이 태양처럼 둥글기 때문.

그리고 예로부터 원(둥근 것)은 진리를 뜻한다.


고대한국에서 태양은 [아, 안, 알, 하, 한, 할] 등으로 불린다.

 

훌륭한 인물이 알에서 태어났다는 것은

말하자면 태양의 정기를 타고 태어났다는 것.

[한국]이라 할 때 [한]이라는 한국어는 [하늘(天), 태양(日)]을 뜻한다.

 

하늘(天)과 태양(日)은 다른 개념이 아니다.

태양이 없으면 지구상 모든 생명은 죽는다.

하늘도 태양도 사람을 살려주는 존재.

 

남방으로의 [난생신화], [고인돌] 그리고 [쌀농사]의 전파는

1만년전 이상 전부터도 많았던 것으로 본다.

 

( 중국에도 난생신화, 천손신화가 전파됐겠지만

후대에 '중국의 자존심' 때문에 많이 단절된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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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계림로 14호분에서 출토된 장식보검

(국립경주발물관 소장 - 보물 635호)

 

위 보검은 동아시아에서는 유일한 것이고

세계적으로도 똑같은 것은 없고, 유사한 것은 카자흐스탄, 이란에 하나씩 밖에 없다.

 

신라는 고조선의 진한인들이 이동해 와서 

지금의 경상도 지역 원주민과 만나서 생겨난 나라.

그래서 신라유물에는 알타이 유물과 비슷한 것이 많이 나온다.

알타이는 중국 북방의 초원지대.

주로 8천년전 이후 지구가 지금보다 더웠을때 고대한국에서 퍼져나간 [아리안]들이 많이 간 지역.

 

세계로 퍼져나갔던 [아리안]의 일부가 [선조의 고향]을 찾아 한국에 다시 온 경우가 있는데(해외교포의 귀환)

신라 초기에 대륙에서 경상도로 들어 온 사람들도 그러한 경우이고

북방 초원지대 문명과 비슷하다고 알려진 초기 신라 유물도 그래서 경주에 많다.  

 

위 보검은 [아리안]의 전통을 일면 보여주고 있다 본다.

 

위 보검과 유사한 것들은 중앙아시아(카자흐스탄)와 중동(이란)에서만 발견되었는데

이는 고대한국을 출발한 [아리안]이 중앙아시아를 거쳐서

중동으로 진출한 한 예라 하겠다.

 

 


[알타이 파지릭 고원에서 발견된 카펫 그림]

( 이러한 그림은 여러장 발견되었다.)

- 상트페테르부르크 에르미타지 박물관 소장.

  

위 그림에 보면 동북아인 지도자(브라만)에게 아랍계 기사(크샤트리아)가 따르는 모습.

앉아있는 동북아인이 더 크게 그려져 있는 것을 보아도

계급이 더 높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도 [원조 아리안]은 동북아인이고

중동으로 문명을 전파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리안]은 인도에 들어와서 [브라만]이라 불리고

그 후손 중에 한 분이 석가불.

그러므로 석가불은 고대한국의 후손이라 본다. (한국의 해외교포의 후손)

 

불상에 보면 석가불은 왜 귀가 길게 묘사될까.

백제, 신라 유물에서도 보이듯이 고대한국에서는 특히 신분이 높으면

남자도 귀걸이를 했다.

대체로 신분이 높을수록 더 큰 것을 했을 것인데

그래서 귀가 늘어진 것으로 본다.

또한 멀리서 보면 귀걸이도 귀로 보여서 귀가 크다고 생각되었을 것이다.

석가불의 귀가 길었는지 아닌지는 정확히 알수 없지만

불상 등에서 긴 귀로 표현 한 것은 [신분이 높은 아리안(브라만)집안]이라는 의미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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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천 5백년전 알타이 파지릭 카펫 - 복원품  

http://www.carpetworldwide.net/pakistan/pakistan-1-1-2.htm

 


[아리안]은 3천5백년전에 이미 저러한 정교한 카펫을 만들 정도로 문명이 있었다.

이러한 사실이 왜 비교적 널리 알려지지 않았냐면

그동안 세계사가 백인 위주로 많이 쓰여져서 그렇다.

 

백인들이 세력이 강하므로

세계 고대사가 [유럽지역에 유리하게] 홍보되었다.

유럽에서 멀수록 대체로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리고 동아시아 고대사는 중국에 유리하게 홍보되어 왔다.

한반도, 만리장성 이북 등 중국 바깥지역 고대사는 폄하되어왔다.

조선왕조실록에 보면 중국의 눈치 때문에 조선임금들이 전국에 명령을 내려서 한국역사책들을 거둬서 없애버린다.

그리고 후대에 일제도 한국고대역사책들을 전국에서 거둬다가 없애버린다.

삼국사기, 삼국유사 등 몇 종만 남겨놓는다.

그들에게 만만한 것들만.


삼국사기는 좋은 면도 많지만 사대주의 성향도 많이 들어가 있고

고조선에 대한 기록이 거의 없다. (일부러 누락)

삼국유사는 '동화식'으로 쓰여져 있다.

일제는 '만만한' 한국사서 몇종만 남겨놓고 나머지는 다 불태워버리던가

일본으로 가져다가 꼭꼭 숨겨놓았을 것이다.

일본 왕실 도서관 창고 깊숙한 곳 같은 데다가.

 

한국고대사서는 한국과 일본에 아직도 많다?! <- 관련글

 

 

한단고기 등 민족사서들의 내용이 다 맞다고 보지는 않지만

틀린 서술도 있다 보지만

무조건 위서로 매도할 게 아니라 활발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본다. 

어차피 100% 맞게 쓰여진 고대사서는 없다.

사마천의 사기도 고대사(상고사) 부분은 오류 많다 하겠다.

 

중국과 일제의 오랜 한국고대사 왜곡 공작으로

한국 고대사서들은 거의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몇가지 간신히 전한다는 몇가지 사서도 '진위논란' 등으로 발목이 잡혀있다 하겠다.


하지만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는 법.

세상이 점점 더 개명되고 과학이 점점 더 발전하면서 

한국고대사의 진실, 세계 고대사의 진실은 차차 살아나고 있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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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기사의 말에는 콧잔등과 가슴에 [곡옥(曲玉)]이 달려있다.

( 이는 동북아인인 브라만(앉아있는 사람)이 하사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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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천마총 금관]

위 신라금관에도 수많은 [곡옥]이 달려있다.

신라유물에는 수많은 [곡옥]이 발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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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라 금허리띠 ]

위 허리띠에도 곡옥이 매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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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유물 - 최근 부여 왕흥사터에서 출토

 

위에서 보이듯이 백제도 곡옥을 만들었다.(사진 우상)

 

 

 

 

  

 

위 그림의 동북문명 지역 중 홍산문화에서는

수많은 곡옥들이 나오는데 아래 것도 그 중 하나.

 

 

  

 

 

곡옥은 [생명의 탄생]을 상징한다. 

홍산문화는 6천년전~4천2백년전 까지의 문화.

홍산문화는 고대한국에서 퍼져나간 [환웅문화] 중 하나.

 

곡옥은 고대한국의 상징 중 하나.

 

그 곡옥이 중동까지 퍼져 나간 것이 위 [알타이 파지릭 그림]에서도 나오고

백제, 신라 역시 당연히 고대한국의 전통을 이어받았으니

곡옥을 많이 만들었던 것.

 


 

  


처음에는 한강이 아리수(알이수), 한수(漢水)로 불리다가 
대동강, 압록강도 아리수(알이수), 한수(漢水)로 불리게 된다.

 

날씨가 더워지면서 북한 이북지역으로도 문명이 활발히 전파되고 (만주에도 문명이 전파되고)

그 중 하나가 요하 [홍산문명]

 

그런데 [홍산문명]도 고대한국 문명전파의 부분적인 일부일 뿐.

 

 

 

 

[압록강 유역 (집안)의 고대한민족 피라미드들 - 1만기가 넘는다.]

 

위 피라미드들은 중국당국이 새로 보수를 해서 새것처럼 보이는 것도 많지만

아주 오래된 것들.

저 피라미드들은 고구려무덤과는 아주 다르다.

장군총은 저 피라미들 중 좀 큰편에 속한다.

일제와 중국당국은 장군총 등 한국 피라미드들이 고구려때 거라고 믿게 하려고

공작을 많이 벌였다.

그런데 장군총 등이 고구려때 거라는 근거는 전혀없다.

고구려보다 훨씬 더 전 것이라는 근거는 많다.

 

장군총은 고구려보다 훨씬 이전의 작품    <- 관련글

 

그런데 꽁정파는 동북꽁정이 어느 정도 먹혀들어간다고 생각했는지

탐원꽁정이라 이름을 바꾸더니 (탐원 - 근원을 찾는다.) 

 

최근 들어서는 압록강 유역에 [여명문화]라는 이름을 붙여가며

더욱 더 본색을 드러내고 있다.

 

동북꽁정파가 [여명문화] 즉 [처음 시작한 문화]라는 이름 붙인

[신별유적]은 길림성 통화현에 있다.

물론 아직 그 유물들을 공개하지는 않고 있다.

 

그런데 통화현은 집안시에 붙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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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하문명의 뿌리도 배달문명 <- 홍산문명 관련글
 
압록강변 집안시에는 저런 피라미드들이 널려있는데 (1만기 이상)
요하 홍산문명에는 몇개 없다.
 
그런데 홍산문명의 피라미드들에 대해서는 
중국당국이 5천년 이상 전 것이라는 것을 이미 발표했다.
 
 
홍산문명의 피라미드는 5천년 이상 전 것이고
압록강변에 있는 똑같은 것들은 고구려 때 것인가. 
 
꽁정파는 이제 슬슬 더욱 본색을 드러내며
집안시 바로 위 통화현의 유적을 
시작하는 문화 즉 [여명문화]라 이름 붙이며 
점점 더 한국고대사 '납치' 시도를 본격화하고 있다.
 
그들은 이미 압록강문명이 홍산문명보다 빠르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
 
그동안은 중국과 비교적 가까운 [홍산문명]에 대해서만 정보를 조금씩 흘리며
마치 거기가 압록강변보다 문명이 더 빠른 것처럼 저기하다가
 
이제는 점점 더 꽁정이 성공할 것 같아서인지
압록강변 집안시 바로 위 통화현 문명에다가
[여명문화]라는 이름까지 붙여가며 다가온 것이다.
[백두산꽁정]과 함께.
 

그들은 유물, 유적발굴들을 통해서 이미 많은 것을 알고 있는 것 같다.

물론 그 대부분을 아직 공개하지 않고 있지만

그들은 '때가 되었다'고 생각되면 대대적으로 발표할 것이다.

 

세계에다가 대고 대대적으로 

'이 압록강변 유적들을 봐라~ 중국이 세계고대문명의 시조다~' 라고.

그들이 동북꽁정이니 탐원꽁정이니 백두산꽁정이니 하면서

그리도 '목숨 거는'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하겠다.

 
그들의 꽁정은 치밀하게 장기적으로 감행되어 왔다.
 
하지만 필자는 중국당국이 고맙다.

그들의 동북꽁정이 고맙다.

그들은 만주고대사를 중국고대사로 둔갑시킬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고

그래서 만주 고대 유적 유물을 열심히 발굴하고 있다.

머지않아 만주유물들을 모두 공개하면서 중국역사라고 우길려고.

하지만 그들의 만주 고대 유물, 유적 발굴은 고마운 것이라 본다.

간단하다. 우리는 단지 그게 한국고대사라는 것을 증명하기만 하면 된다.

고인돌, 빗살무늬토기 등 한국고대사라는 근거는 너무나 많다.

정신병자가 아니라면 만주 특히 압록강변 고대사를 중국고대사로 볼 학자는 없다.

모든 것은 결국 사필귀정.

우리는 제3국 사람들과의 공동연구를 통해서

그것이 한국고대사의 일부라는 것을 증명하기만 하면 된다.

그래서 동북꽁정이 고마운 것이다.

우리가 힘들게 발굴해야 할 것을 그들이 다 해주니까.

땡큐, 꽁정파.

 

 

문명의 뿌리가 어디인지는 
아래 그림을 보아도 알 수 있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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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돌 주요 분포도]
- 백두산지역은 지대가 높아서 사람이 많이 살지 않았고, 그래서 고인돌이 별로 없다.

고인돌은 전세계적으로 널리 퍼져 있지만

세계에서 가장 밀집되어 있는 지역이 남한과 그 주변.  

 

삼국유사에는 [환인(桓仁)씨] , [환웅(桓雄)씨]에 대한 기록이 나온다.

( [씨]라는 말은 고대에는 극존칭. 아주 훌륭한 분들에 대한 존칭.)

 

삼국유사에는 아주 단순하게 말하자면 [동화식]으로 표현되었는데

이를 과학적으로 분석해보자.

 

황해(+남해)대평원은 1만5천년전~1만4천년전 물이 들어와서

바다가 되었고

다시 물이 빠졌다가

1만2천년전~ 8천년전 사이에 다시 물이 들어와서

지금의 바다처럼 되었다.

 

마문명 사람들은 한반도 남부로 올라올 수 밖에 없었다.

사람은 물고기가 아니므로.

황해(+남해)대평원은 대단히 넓고 사람이 살기 좋은 곳이었는데

한반도는 그에 비해서는 평야가 좁고 척박하다.

 

그래서 어떤 변화들이 생기는데

그 중 하나가 [남성 최고지도자의 탄생].

 

그 [남성 최고지도자]의 존칭은 원래 [하이] 라 본다.

 

하이 = 해

 

[하이]는 [태양(하)같은 사람(이)] , [하늘 같은 이]

- 한민족은 원래 사람을 [이]라고 부른다. (그 이, 저 이)

 

[하이]는 후에 [한이]가 되고 [한인]이 된 것으로 본다.

삼국유사에 나오는 [환인임금]이 바로 [한인임금]

 

[환(桓)]자의 원래 발음은 [환]이 아니라 [한]이고

[환인씨]는 원래는 [한인씨]로 발음 되었다.

 

한하다(태양(한)같이 밝다) -> 환하다, 훤하다

 

옥편에도 [환(桓)]자의 원래 발음은 [한]이라고 나온다. 

 

[桓(환)]의 원래 발음은 [한]    <- 관련글

 

 

[마문명]에서 한민족의 최고지도자는 여성(마할머니)였는데 (모계사회)

차차 한반도 남부로 올라오면서 [한문명]이 되고

 

마문명 -> 한문명

 

남성이 최고지도자인 문화가 생겼고 (부계사회)

그 최고지도자를 [태양(하늘)같은 분]이라는 의미로 [하이]라 불렀고

[하이]라는 존칭이 나중에 [한이], [한인]으로 바뀌었고

다시 발음이 [환인]으로 바뀐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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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옛역사책에서도 한반도 중부, 남부에 있던 [마한]을

그냥 [한국(韓國)]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한반도 북부와 만주에 있던 [진한(辰韓)]과 만주 서부, 중국대륙 동해안에 있던 [변한(弁韓)]은

그냥 [한국(韓國)]이라 부르지는 않는다.

 

이를 보아도 한국의 시작은 역시 [한반도 남부, 중부]지역이라 하겠다. 

 

 

마한 진한 변한    <- 관련글

 


 

[한국]이라는 말은 원래는 [한반도 남부, 중부 지방]을 뜻하는 말

그 [한국]의 지도자가 [한인(환인)씨]

[한인(하늘, 태양같은 분)]이 다스리는 [한국(하늘, 태양의 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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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그림은 약 1만년전 한반도로 올라온

마문명인들의 주요 영역을 대강 그린 것.

 

다른 지역은 위 초기 한국 지역보다 문명이 훨씬 뒤쳐져 있었다고 본다.

 

- 물론 당시에는 세계 사람들이 나라(국가)라는 것이 없이 부족, 씨족 단위로 흩어져서 살았다.

 

삼국유사에 [환인 - 환웅 - 단군]의 계승이 나오는데

여러대(여러분)의 환인, 여러대(여러분)의 환웅, 여러대(여러분)의 단군으로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마문명을 계승한 고대한국(환국)의 최고지도자의 통칭 [환인씨]

[환인씨]의 뜻을 받고 미개지역으로 가서 그곳을 개화시킨 젊은 지도자의 통칭 [환웅씨]

 

 

[단군왕검]께서는 [제1대 단군]이신 것으로 본다.

[단군왕검]께서 마한, 진한, 변한을 통합하는 [고조선 연방]을 세우신 것으로 본다.

당시 한국의 임금을 [단군]이라 불렀고

시간상으로 보아 수십대 정도의 [역대 단군]의 계승이 있었을 것이다.

 

상고사의 진실은 앞으로 본격적으로 밝혀져 나갈 것으로 본다.

각 사서들에 대한 통합적 분석과 종합,

그리고 과학의 힘을 빌려서 또한 그렇게 될 것으로 본다.

 

상고사의 통찰은 전체 인류의 미래를 위해서도 필수불가결한 것으로 본다.

과거를 밝힐 수 있어야 미래를 밝힐 수 있으므로. 

 

 

 

 


[강화도 마니산 참성단]

 

[강화도 마니산 참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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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지도에서 보이듯이 강화도 마니산은 마문명에서 한강으로 올라가는 길목에 있다. 

마니산 참성단은 단군왕검시대 이전부터도 존재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고조선
古朝鮮
 
[옛 조선]이라 하여 붙은 이름.
원래 이름은 당연히 [조선(朝鮮)]
( 고려 이후에 건국된 [조선]은 [고조선의 부활]을 뜻한다.)
 
 
단군왕검께서는 [원조 한문명지역] 즉 한반도와
[새로운 한문명 지역] 즉 만주를 확실한 하나의 나라로 만들기 위해서
대동강에 수도를 세우고 조선(朝鮮)을 건국하신 것.
대동강(大同江)의 이름이 대동(大同)인 것이 다 그 이유가 있다 하겠다. 
 
대동(大同) - 크게 하나됨. 

 

 

( 한자의 원조가 어디인지는 아래 글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갑골문자보다 천년 앞선 동이(한민족) 골각문자 발표 <- 관련글

 

  

단군왕검께서는 [고대한국 제2차 수도지]인 대동강에 도읍하고
[고대한국 제1차 수도지]인 한강 어귀의 강화도에 [참성단]을 만든다.

( 원래 있던 것을 보수한 것으로 추정.)


 
[참성단]은 하늘에 제사지내는 제단인데
강화도는 [마문명]에서 한강을 타고 한반도로 올라오는 길목.

                                           

 

한반도로 올라온 마문명인들

그들의 초기 중심 영역은 대략 [한강유역에서 제주도까지]로 본다.

 

[한강~제주도] 지역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고인돌들이 발견되고

또한 세계최고의 고인돌 밀집지역.

 

차차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한민족의 중심은 북상을 시작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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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유역 이남]에서 시작된 고대한국은

차차 대동강 유역으로 그 영역을 넓혀간다.

 

한강이 한수(漢水)로 불렸던 것처럼

후에 대동강도 역시 한수(漢水)로 불리게 된다.

제2차 한수 -  대동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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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환인씨]는 한강 이남에 도읍한 것으로 본다.

그런데 차차 기후변화와 문명전파를 위해서

후대에 대동강으로 도읍이 옮겨졌던 것으로 본다.

 

처음엔 한강을 한수(漢水)로 부르다가

대동강으로 도읍을 옮기고는 대동강을 한수(漢水)로 부른다.

 

그리하여 결국 한강과 대동강은 모두 한수(漢水)라는 이름이 붙는다.

 

한수(漢水)는 다른말로 [아리수]라 불린다.

 

아리수

아리의 물

알이의 물

 

아리안

알이안

알이 사람

 

알이 - 태양(알)같은 사람(이)  

 

 

[한인(환인)]의 어원으로 보이는 [하이]라는 존칭이  

다 떠오른 밝은 해 (하) 같은 분 (이) 즉 최고지도자를 뜻한다면

[알이]는 떠오르는 해같은 젊은 지도자를 뜻한다고 본다.

 

아이 -> 알이

 

보통 최고지도자가 직접 멀리 가지는 않는다.

젊은 지도자를 보낸다.

그래서 [알이]들은 세계로 퍼졌고

그들은 후에 [알이안(아리안)]이라는 이름으로 세계인들에게 전해진다고 본다.

 

[알이]의 다른 이름...[환웅씨]

[환웅씨]는 세상에 문명을 전파하기를 원했던 젊은 지도자.

 

오랜 기간 역대 [환인씨]들은 세상에 문명을 전파하기 위해

많은 [환웅씨]들을 떠나보냈다고 본다.

 

그 [환웅씨]들 즉 [알이(아리)]분들의 고향에는

강이 있는데 

그 이름이 

아리수

 

즉 알이수...알이의 물

 

그리고

 

아리랑 고개

알이랑 고개

 

고대 한국어에서 태양은 [아],[하],[라]로 불린다.

[라] , [랑]이란 [태양] 또는 [태양같이 밝은 사람]

 

아리랑은 슬픈 노래다.

왜?

떠나가니까.

[알이] 즉 [알이랑]들이 떠나가니까.

한번 가면 살아 생전 다시 돌아올 기약이 없는 머나먼 길.

문명을 전파하러, 널리 사람을 이롭게 하려고

그 먼 길을 간다.

꽃다운 [알이]들이.

[알이랑]들이.

 

[홍익인간 정신]은 단군왕검 훨씬 이전

[환인씨]시대에 이미 있었다 본다.

 

환인씨는 미개지역에 환웅씨를 보내서 문명을 전파한다.

만주에 [곰을 상징동물로 하는 부족]과 [호랑이를 상징동물로 하는 부족]이 있었다.

 

동북아에는 수많은 [곰 부족]과 [호랑이 부족]들이 있었다.

곰과 호랑이가 동북아의 대표적인 맹수이기 때문.

 

중국 고전 서경도  [곰 부족]을 그냥 [곰(熊)]이라 부르고

[호랑이 부족]을 그냥 [호랑이(虎)]라 부른다.

 

마치 지금 한국 프로야구단중에 [베어스(곰들)]와 [타이거스(호랑이들)]가 있는 것과 같다.

 

[곰 토템 부족]과 [호랑이 토템 부족]들이 [人]이 되고 싶어하는데 

 

그럼 人 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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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갑골문의 人 자 - 사람이 절을 하며 예의를 갖추는 모습]

 

고대 갑골문에 보면 人이란 그냥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예절을 갖출줄 아는 문명화된 사람]을 뜻한다.

 

즉 원시사회였던 곰부족이 [환웅씨]에게 감화되어

[예절을 갖출줄 아는 문명화된 사람]이 되었다는 것.

 

[환웅씨]는 미개했던 주변 부족들을 차차 인간다운 인간 즉 [人]으로 만들어나갔던 것.

  


 

 중국의 양식있는 사람들은 한국을 존경했다.    <- 관련글



Posted by 海天(해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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