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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인간 214] 단군조선과 고대중국의 관계역사 10

양해천 2018. 1. 22. 09:45

[홍익인간 214] 단군조선과 고대중국의 관계역사 10

2012년 02월 01일 (수) 08:55:38천산(天山)  sppopsj@yahoo.co.kr

-단군조선(번한,마한)과 하은주(夏殷周)의 관계역사 4- 

[단군조선과 하(夏)나라 시대] 

[한] 서기전2133년 무자년(戊子年) 4대 오사구(烏斯丘) 단군(檀君) 때 가을 8월에 하(夏)나라 사람이 특산물을 바치고 신서(神書)를 구해 갔다.<檀君世紀> 

서기전2133년 음력 8월에 하나라 사람들이 단군조선에 조공을 하고 신서를 선물로 받아갔던 것이 된다. 신서(神書)는 신령스런 책으로서 단군조선에서 지어진 것이 되는데, 아마도 신선도(神仙道) 또는 역(易)과 관련한 책이 아닌가 한다. 서기전2267년에 태자부루(太子扶婁)로부터 우(禹)가 받았다는 신서(神書)는 소위 홍범구주(洪範九疇)로서 단군조선에서 지어진 책이며 금간옥첩(金簡玉牒)이라고도 하고 황구종(皇矩宗)이라고도 하는데, 치수(治水)의 요결(要訣) 즉 오행치수법(五行治水法)과 관련된 내용이 기록되어 있는 책이 된다. 실제 홍범구주에는 첫 번째로 오행(五行)에 관한 내용이 간략히 기록되어 있다. 

서기전2133년은 하나라 제5대왕 상(相)(서기전2146(중강 사망)~3년상~서기전2142(1祀)~서기전2119. 28년간)의 즉위10사(祀:年)로 조상의 사당을 세웠으며 이해에 응국(鷹國)의 왕이 인방(人方)의 응(鷹) 땅을 정벌하였다고 적고 있다<금갑문(낙빈기):戊子王相柱祖 王錫衆艅柱貝 鷹王來正人方鷹 王十祀又五五日> 

응(鷹)이라는 글자는 매를 뜻하는데, 단군조선 시대에 응가(鷹加)라는 직책이 있었으며, 요하문명권에서 출토되는 옥제품 중에서 매의 모양으로 다듬어진 옥돌에 솔개(매) 모양의 상형문자를 새기고 있어, 실제로 응국이라는 나라가 존재하였던 것이 틀림없는 것으로 보인다. 

[한] 서기전2119년 임인년에 하주(夏主) 상(相)이 덕을 잃으니, 4대 오사구 단군이 식달(息達)에게 명하여 남(藍), 진(眞), 변(弁)의 3부(部)의 병력을 이끌고 가서 이를 정복하도록 하니 천하가 복종하게 되었다. 

하(夏)나라의 제4대왕 상(相)이 백성을 못살게 굴거나 방탕해 지는 등 정치를 잘못하니, 단군조선의 제4대 오사구 천왕이 하(夏)나라를 접수하려고 군대를 파견한 것으로 보인다. 하나라 왕상은 서기전2146년부터 서기전2119년까지 왕 자리에 있었는데, 이때 하나라의 왕 상이 물러나고 예(羿)가 왕 자리에 올랐던 것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중국기록에서는 예(羿)가 태강(太康:서기전2188년~서기전2160년)이 유람간 사이에 태강의 동생 중강(仲康:서기전2159년~서기전2147년)을 세워 왕으로 삼았고, 중강이 죽자 왕 상(相)이 왕이 되었는데, 예(羿:서기전2118년~서기전2080년)가 왕상(王相)을 몰아내고 왕이 되었으며, 예의 신하이던 한착(寒浞)이 또 예(羿)를 죽이고 왕이 되었고, 이후 왕상의 아들 소강(少康:서기전2079년~서기전2058년)이 한착을 멸하고 다시 왕이 되었다. 

자고로 요, 순, 하, 은 나라는 항상 동이족(구이)에 둘러쌓여 견제를 받았다. 남(藍)은 산동지역의 남국(藍國) 즉 남이(藍夷)의 나라, 진(眞)은 진한(眞韓), 변(弁)은 번한(番韓)을 가리키는 것이 되는데, 병력을 차출하여 정치를 잘못 하고 있는 하나라를 정벌한 것이 된다. 남이(藍夷)는 회대(淮岱)지역에 있던 배달나라 치우천황의 중심백성들로서 치우천왕의 후손이라 불려지고 중국내륙의 동이족이 되는데, 원래 한국(桓國)의 9족(族)의 하나에 해당한다. 

하나라의 왕인 상(相)이 도를 잃어 정치를 잘못하고 있으므로, 오사구 천왕이 식달(息達)에게 명하여 진한의 군사와 번한의 군사와 군국(君國)인 남국의 군사를 합하여 하나라를 정벌하도록 한 것이 되는데, 단군조선의 정치제도상으로 일반 군후(君侯)는 천왕의 명을 받지 않고서는 원칙적으로 독립(獨立)하여 군사를 부릴 수 없었던 것이다. 

6. 하나라 제6대왕 예(羿) 

하나라 왕 예(羿)는 서기전2119년에 제5대왕 상(相)을 살해하였다. 

예는 서기전2118년부터 서기전2080년까지 39년 재위하였다. 

예는 또한 자신의 신하였던 한착(寒浞)에게 살해되었다. 

[중] 서기전2118년 "소강(少康) 즉위년(서기전2118년)에 방이(方夷)가 내빈하였다"<후한서동이열전> 

[중] 서기전2117년 "소강(少康) 2년(서기전2117년)에 방이(方夷)가 내빈하였다"<죽서기년> 

하나라 제7대왕인 소강은 서기전2079년부터 서기전2058년까지 왕에 있었는데, 죽서기년(竹書紀年)에 의하면 소강 40년이 임오년(壬午年)으로 서기전2079년에 해당되어, 하나라 6대왕인 후예(后羿)의 시기인 서기전2118년부터 서기전2058까지를 포함한 것이 된다. 이는 역사적 사실에 반하며, 하나라 역사의 치부(恥部)를 숨겨 적은 거짓 기록이 된다. 

제6대왕 예(羿)는 바로 태강(太康)을 쫓아내고 중강(仲康)을 왕으로 세웠고, 중강의 아들 왕상(王相)을 후예(后羿)가 쫓아내고 서기전2118년부터 서기전2080년까지 39년간 왕자리를 차지하였던 것이다. 

이후 예(羿)의 신하인 한착(寒捉)이 예를 죽이고 왕자리를 차지하였는데, 소강이 한착을 멸하고 서기전2079년에 왕자리를 도로 찾았던 것이다. 

이 기록에서는 예(羿)와 한착(寒浞)의 왕위연대를 인정하지 아니하고 소강의 연대로 합산한 것이 되는데, 명백한 역사적 사실에 반하는, 소위 춘추필법에 의한 기록이 된다. 

방이(方夷)는 구이(九夷)의 하나이며 황이(黃夷)에서 분파된 이족(夷族)이다. 하나라의 동북쪽에 위치하였던 이족으로서 속말(粟末)의 북쪽에 있었다. 속말은 지금의 송화강, 우수리 강을 가리킨다. 방이의 땅은 신지씨(神誌氏)의 나라로서 단군조선 9봉국(封國)의 하나이며, 국명을 숙신(肅愼)이라 하는데, 신지씨는 마가(馬加)를 지낸 인물이다. 

방이는 단군조선의 제후국으로서 세습자치국인데, 독자적 정치목적으로 하나라 소강을 찾아간 것인지, 아니면 단군조선의 명을 받고 견제하기 위하여 찾아간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으나, 일단 손님(賓)으로서 하나라를 방문하여 정세를 관찰한 것이 된다. 

이때는 소강(少康)의 시대가 아닌 후예(后羿)의 시대인 바, 후예가 왕상을 죽이고 왕이 되었는데, 이는 아마도 예(羿)가 단군조선의 영향력으로 하나라의 왕 자리를 뺏은 것이 되며, 이때 방이(方夷)가 단군조선의 사자(使者)로서 하(夏)나라 왕이 된 예(羿)를 방문하여 즉위를 축하(祝賀)한 것이 될 것이다. 

즉, 위 소강(少康) 원년과 2년은 소위 춘추필법(春秋筆法)에 의한 역사은폐 또는 역사날조에 해당하며, 실제로는 각 제6대왕인 예(羿)의 원년과 2년이 된다. 

7. 하나라 제7대왕 한착(寒浞) 

한착은 후예(后羿)를 시해하고 하나라 왕이 되었으나, 곧바로 소강(少康)에게 살해된 것이 된다. 

8. 하나라 제8대왕 소강(少康) 

소강은 제5대 왕상(王相)의 아들이며, 서기전2079년부터 서기전2058년까지 22년 재위하였다. 

소강의 재위년수(在位年數)를 앞의 제6대왕 후예(后羿)가 즉위한 서기전2118년부터 계산하여 61년이라 기록하기도 하나, 이는 역사적 사실에 반하는 윤색날조가 된다. 

[중] 서기전2079년 "소강 40년 임오년 여름에 도(道)가 다시 흥하였다"<標準世界年表> "소강 이후로 세상이 왕의 교화에 따랐다"<후한서 동이열전> 

하나라 소강의 재위 40년이 임오년이면 소강은 서기전2118년에 즉위한 것이 되어 소강 2년은 서기전2117년이 되는데, 소강의 재위연수가 22년이면 서기전2079년부터 서기전2058년이 되고, 재위연수가 61년이면 서기전2118년부터 서기전2058년이 된다. 소강 40년 임오년이라 하고 있어 소강의 왕위기간을 61년으로 계산한 것이 된다. 실제 소강이 즉위한 해는 서기전2079년이므로 사실적 역사를 윤색날조하여 서기전2118년에 즉위한 것으로 적은 것이 된다. 

소강 40년에 도가 다시 흥하였다라는 말은 후예가 왕자리를 빼앗고 한착이 빼앗고 한 것을 서기전2079년에 소강이 하나라의 왕자리를 도로 찾았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적은 것으로 된다. 역사사실적으로 소강은 서기전2079년이 원년으로서 한착을 죽이고 왕이 되었다. 

[한] 서기전2077년 갑신년 번한 호갑(虎甲) 때 하나라 왕 소강(少康)이 사신을 보내 새해인사를 올렸다.<番韓世家> 

이 기록은 번한세가에서 번한 오라(烏羅:서기전2072년~서기전2016년)의 즉위 기록 뒤에 갑신년(甲申年)으로 적어 갑신년이 되는 서기전2017년에 해당하는 것으로 적은 것으로 보이나, 실제 호갑(虎甲:서기전2098년~서기전2073년) 때의 일인지 오라 때의 일인지 불분명하게 되는데, 하나라 왕 소강(少康:서기전2079년~서기전2058년)의 연대로 따지게 되면 호갑 때의 일로 분명해 진다. 

9. 하나라 제9대왕 저(杼) 

하나라 왕 저(杼)는 서기전2057년부터 서기전2041년까지 17년 재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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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프로필] 조홍근(曺洪根, 52세). 한문화재단(桓文化財團) 사무총장. 트위트 역사당 부총재. 현 법무사. 

30여년 족보(族譜)와 한중일(韓中日)의 역사를 연구해 오면서, 부도지(符都誌), 한단고기(桓檀古記), 규원사화(揆園史話), 단기고사(檀奇古史) 등 귀중한 역사자료를 통하여, 우리역사 1만년을 넘어 마고(麻姑) 시대를 포함한 7만2천390년 역사를 밝히고 있음. 

*일본 국조신(國祖神)인 천조대신(天照大神)의 이세신궁(伊勢神宮)에 소장된 원시한글 축문을 국내 최초로 완벽 해독하고 천조대신이 단군조선 두지주 예읍의 추장의 후손임을 역사적으로 밝혔음. 
*우비(禹碑, 우 치수기념 부루공덕비)의 비문을 국내 최초로 역사적 해석을 하여, 서기전2267년 이후 우가 치수에 성공한 후 치수법을 전수해 준 단군조선 태자부루의 공덕을 새긴 것임을 밝혔음. 
*명도전(明刀錢) 최초 해독학자 허대동선생<저서 고조선문자>의 가림토(加臨土) 해독의 검증에 참여하여 첨수도, 명도전이 단군조선의 화폐이며, 거기에 새겨진 문자가 단군조선의 문자임을 밝혔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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