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익인간 216] 단군조선과 고대중국의 관계역사 12
-단군조선(번한,마한)과 하은주(夏殷周)의 관계역사 6-
[단군조선과 은(殷)나라 시대]
1. 은나라 제1대왕 탕(湯)
은나라 왕 탕은 서기전1766년부터 서기전1754년까지 13년 재위하였다.
탕은 성명(姓名)이 자리(子履)이며, 천을(天乙) 또는 성탕(成湯)이라고도 한다. 박(亳)에 수도를 정하였다.
성탕이 자리잡은 박(亳)이 정확히 어디인지는 불명이나, 소위 은허라고 발굴된 지금의 안양(安陽)이 은나라 시대의 수도이던 박(亳)의 하나가 되는데, 여기서 동서남북으로 하여 황하(黃河) 남쪽에 아마도 원래의 상(商)나라의 박(亳)이 있었던 것이 될 것이다. 박(亳)이라는 땅은 서기전2436년경에 황제헌원의 나라인 웅국(熊國:有熊國)의 대를 이은 제곡고신씨(帝嚳高辛氏)가 수도를 정한 곳이기도 하다.
은나라 시조 탕(湯)이 원래 상(商)이라는 하나라의 제후국 출신이므로 탕이 세운 나라를 상(商)나라라고도 부른다.
[한] 서기전1766년 을미년에 번한 소전(少佺)이 묵태(墨胎, 고죽君)를 보내 탕(湯)의 즉위를 축하하였다.
묵태는 고죽국(孤竹國)의 임금인 바, 고죽국은 단군조선 번한(番韓)의 관할에 속하는 군국(君國)이 된다. 그래서 번한 소전이 그 관할에 속하는 봉국(封國)인 고죽국의 임금 묵태(墨胎)를 은나라에 사자로 보낸 것이다.
은나라의 건국은 단군조선의 군사적 지원으로 이루어졌고, 또한 하나라의 제후국인 상나라가 하나라의 동쪽에 있어 단군조선의 영향하에 있었던 것이 되는 바, 단군조선의 서쪽을 관할하던 번한이 단군조선의 천왕(天王)을 대리하여 사자를 파견한 것이 된다.
단군조선의 사자가 되는 고죽군인 묵태의 즉위축하로 은나라 시조 탕왕은 단군조선의 정식 천자(天子)로 인정받은 것이 된다.
사마천의 사기(史記) 등 고대중국의 기록에서는 고죽국이 마치 은나라의 제후국인 양 적고 있으나 이는 소위 춘추필법에 의한 역사의 윤색날조에 해당한다.
고죽국은 하(夏)나라 이전부터 존속한 단군조선의 군후국(君侯國)의 하나로서, 서기전2267년 도산회의 때 봉해진 것이 분명하며 서기전650년경 춘추시대에 연나라와 패자였던 제나라의 합공으로 망한 것으로 된다. 고죽국은 최소한 1,6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지는 단군조선의 제후국(군후국의 일반칭)인 것이다.
[중] 서기전1766년 "탕왕 1년 성탕(成湯)이 즉위하고 견이를 정벌하였는데, 앞 시대 후걸(后桀)의 반란 때 견이가 빈 과 기(岐) 사이의 땅에 들어와 살았으며, 성탕이 이미 부흥하여 쳐서 물렸다"<후한서 동이열전>
탕왕은 서기전1766년에 즉위하였으며, 성탕이 즉위하고서 곧바로 견이를 정벌하였다 하는 바, 이는 은나라가 건국 후에 바로 단군조선의 제후국을 공격하였다는 것이 되어, 상국인 단군조선을 배신한 것이 된다. 이렇게 고대중국의 역사상 그들의 나라는 배신행위를 밥먹듯이 하였던 무례(無禮), 무도(無道)한 족속들이었던 것이다.
하나라 마지막 왕인 걸왕의 시대에 단군조선의 견이가 하나라 서쪽 따잉 되는 빈, 기의 땅에 들어가 웅거하였는데, 성탕이 이 견이를 정벌하였다는 점에서 하나라를 함께 정벌하여 건국을 도와 주었던 단군조선을 바로 배반한 것이 되겠다.
성탕이 은나라를 건국하여 부흥한 것은 단군조선의 군사적 지원으로 이루어진 것인데, 이 기록은 이를 모두 숨기고 있어 과히 춘추필법의 표본이라고 할 수 있다.
2. 은나라 제2대왕 외병(外丙)
은나라 왕 외병은 서기전1753년부터 서기전1752년까지 2년 재위하였다.
3. 은나라 제3대왕 중임(仲壬)
은나라 왕 중임은 서기전1751년부터 서기전1748년까지 4년 재위하였다.
4. 은나라 제4대왕 태갑(太甲)
은나라 왕 태갑은 서기전1747년부터 서기전1721년까지 27년 재위하였다.
5. 은나라 제5대왕 옥정(沃丁)
은나라 왕 옥정은 서기전1720년부터 서기전1692년까지 29년 재위하였다.
6. 은나라 제6대왕 태경(太庚)
은나라 왕 태경은 서기전1691년부터 서기전1667년까지 25년 재위하였다.
이상의 왕들은 특별히 상국인 단군조선에 반역행위를 하지 않았던 것이고 대체적으로 평화시대를 이끈 것으로 된다.
7. 은나라 제7대왕 소갑(小甲)
은나라 왕 소갑은 서기전1666년부터 서기전1650년까지 17년 재위하였다.
[한] 서기전1661년 경진년에 은주(殷主) 소갑(小甲)이 단군조선(代音 천왕:서기전1661년~서기전1610년)에 화평을 청하였다.
은나라 왕인 소갑(小甲)이 단군조선에 화평을 청하였다는 것은. 이 이전에는 적대적 관계에 있었다는 것이 되는데, 이는 소갑이 함부로 단군조선의 영역을 침범하였거나 그 이전의 왕들이 도에 이긋나는 짓을 하였기 때문이 된다.
대체적으로 은나라는 단군조선의 은혜를 저버린 무도한 나라로서 언제든지 국경을 침략하는 전쟁을 일으킬 수 있는 족속들이었다. 이는 곧 은나라가 단군조선의 가르침을 받아 단군조선의 제도를 본 따 다스린 것이 아니라, 천지인의 도를 잘 알지 못하던 하(夏)나라의 제도를 답습하였기 때문이 된다.
8. 은나라 제8대왕 옹기(雍己)
은나라 왕 옹기는 서기전1649년부터 서기전1638년까지 12년 재위하였다.
9. 은나라 제9대왕 태무(太戊)
은나라 왕 태무는 서기전1637년부터 서기전1563년까지 75년 재위하였다.
[한] 서기전1614년 정묘년에 번한 진단(震丹:서기전1614년~서기전1579년)이 즉위하고 은주(殷主, 은나라 왕) 태무(太戊)가 번한에 조공하였다.
은나라 왕 태무가 단군조선 번한에 조공을 한 것은, 그 이전에 은나라 왕 소강이 단군조선에 화평을 청한 이후로, 은나라가 단군조선에 호의적으로 변한 것을 나타내는 것이 된다.
10. 은나라 제10대왕 중정(仲丁)
은나라 왕 중정은 서기전1562년부터 서기전1550년까지 13년 재위하였다.
[중] 서기전1562~서기전1550년경 "중정(仲丁)에 이르러 남이(藍夷)가 도적질을 하였다"<후한서 동이전>
[중] 서기전1562년 "중정 즉위년(서기전1562년)에 남이(藍夷)를 정벌하였다"<죽서기년>
남이(藍夷)는 구이 중의 하나로서 풍이라고도 하는데, 산동지역과 회수지역에 걸치는 회대(淮岱)의 땅에 살던 동이족(東夷族)으로서, 태호복희와 치우천왕의 후손들이라고도 기록된다. 후한서동이열전의 구이(九夷)에는 남이를 빼고 풍이(風夷)를 넣고 있다.
고대중국 기록에서는 산동과 회대지역에 있는 회이(淮夷), 서이(徐夷=徐國), 도이(島夷=藍夷), 래이(萊夷), 우이(隅夷) 등 사는 곳에 따라 중국내륙의 동이(東夷)를 여러가지로 부르고 있다. 즉, 단군조선의 구족(九族)이나 군후국(君侯國)들을 모두 이(夷)라고 적었는데, 여기서 남이(藍夷)는 곧 단군조선의 군국(君國)인 산동지역의 남국(藍國)이 된다. 남국은 서기전2333년에 단군왕검(檀君王儉) 천제(天帝)께서 치우천왕의 후손을 봉한 나라이다.
남이(藍夷)가 도적질을 하였다라는 것은 남이가 은나라의 왕 중정이 정치를 잘못 하므로 견제하고 정치에 간섭하거나 접수하기 위하여 군사를 움직인 것을 가리킨다.
은나라 왕 중정이 단군조선의 군국(君國)이던 남국(藍國)을 정벌하였다 하는 것은, 남국(藍國:남이)이 은나라 왕 중정이 정치를 잘못 하므로 이를 가르치거나 나라를 접수하기 위하여 군사를 움직여 정벌한 것에 대응하여 전쟁을 벌인 것이 된다.
이와 같이 하(夏)나라나 은(殷)나라와 전쟁을 한 단군조선은 단군조선 본국(本國)이 아니라 단군조선의 삼한에 속하는 제후국인 것이다. 이는 하나라나 은나라는 천하왕의 나라인 천자국(天子國)이고, 단군조선 본국은 천상제(天上帝)의 나라로서 천제국(天帝國), 천왕국(天王국)이며, 그 아래 천하왕국이 되는 천군국(天君國)과 천자국(天子國) 등의 일반제후국을 두었던 것으로서, 하나라와 은나라의 천자국에 대응하는 나라는 곧 단군조선의 고죽국, 남국, 청구국, 구려국, 숙신국 등의 군국(天君國)과 일반 제후국(天侯國)이 되는 것이다.
11. 은나라 제11대왕 외임(外壬)
은나라 왕 외임은 서기전1549년부터 서기전1535년가지 15년 재위하였다.
[한] 서기전1550년 신미년에 마한 두막해(豆莫奚)가 즉위하고, 서기전1549년 임신년에 하주(夏主:夏王) 외임(外壬)이 사신을 파견하여 마한 두막해(豆莫奚)가 참성단에 제를 올리는 것을 도왔다.<馬韓世家>
여기서 외임(外壬)은 하(夏)나라 왕이 아니라 은(殷)나라의 왕이므로 은주(殷主)의 오기가 된다.
은나라 왕 외임이 사신을 파견하여 서기전1549년에 마한인 두막해가 참성단에 직접 올라 제천하는 것을 도왔다고 하여 은나라가 단군조선의 제후국임을 바로 나타내고 있다.
즉, 마한(馬韓)은 단군조선의 정식명칭의 왕(王)은 아니지만, 왕보다 높은 격의 임금으로 천왕(天王)의 비왕(裨王)이므로 천상(天上)의 비왕(裨王)인 천왕격(天王格)이 되고, 은나라는 임금의 명칭이 왕으로서 천하왕(天下王)인 바, 마한과 은나라 왕의 사이에는 천상의 왕과 천하의 왕이라는 격차가 있는 것이다. 즉, 마한은 은나라의 상국(上國)에 해당한다.
서기전425년부터는 단군조선의 번한은 번조선왕, 마한은 마조선왕이 되었는 바, 진조선의 천왕과 함께 같은 지위의 천왕이 된다. 다만, 진조선의 천왕은 삼조선(三朝鮮)의 소위 진왕(辰王)으로서 최고의 임금인 점에서 단군조선 내에서는 마조선왕과 번조선왕을 천왕이라 하지 않는 것이다.
서기전323년 기자(箕子)의 먼 후손인 기후(箕후)가 번한 수한(水韓)이 죽자 명을 받고 군령을 대행하다가 연(燕)나라가 천자, 왕이라 칭하고 장차 쳐들어오려고 하므로, 이에 기후도 번조선왕(番朝鮮王)이라 칭하고 진조선 천왕의 윤허를 받았다. 이는 왕은 독자적으로 군사를 부릴 수 있는 권한이 있는 임금이나, 왕 아래 군, 공, 후, 백, 자, 남 등의 군후(君侯)는 원칙적으로 명을 받고서 군사를 움직였으며, 비상시나 반역하여 자칭 왕이라 하는 경우 외에는 함부로 군사를 움직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12. 은나라 제12대왕 하단갑(河亶甲)
은나라 왕 하단갑은 서기전1534년부터 서기전1527년까지 9년 재위하였다.
하단갑은 수도를 상(相)으로 옮겼다.
[중] 서기전1531년 "하단갑 4년 경인년에 남이(藍夷)를 정벌하였다"<죽서기년>
남이(藍夷)는 산동지역에 있던 단군조선의 군국(君國)인 남국(藍國)이며, 서기전2333년경부터 존속한 나라이다.
은나라 왕 하단갑이 남이를 정벌하였다는 것은, 하단갑이 무례무도(無禮無道)하게 남국을 침공한 것이 된다.
[한] 서기전1528년 계사년(癸巳年)에 은나라가 조공을 하지 않아 번한 소밀(蘇密)이 은나라의 수도 북박(北박)을 쳤으며, 이에 하단갑(河壇甲)이 사죄를 하였다.<番韓世家>
이 기록으로 보아 은나라 왕 하단갑이 무례무도하게 산동지역의 단군조선 군국인 남국을 침공한 것이 사실로 보이며, 이에 이르러 남국(藍國)의 직속 상국이 되는 번한(番韓)의 소밀이 직접 군사를 이끌고 가서 은나라를 정벌 또는 토벌하여 수도를 공격한 것이 된다.
이로써, 은나라 왕 하단갑이 항복하여 진정한 신하로 되돌아 온 것이 된다.
13. 은나라 제13대왕 조을(祖乙)
은나라 왕 조을은 서기전1525년부터 서기전1507년까지 19년 재위하였다.
조을은 홍수 때문에 수도를 경(耿)으로 옮겼다.
14. 은나라 제14대왕 조신(祖辛)
은나라 왕 조신은 서기전1506년부터 서기전1491년까지 16년 재위하였다.
하단갑 이후로 은나라가 무례무도한 짓을 하지 않아 거의 평화시대였던 것이 된다.
-------------------------------------------------
[필자 프로필] 조홍근(曺洪根, 52세). 한문화재단(桓文化財團) 사무총장. 트위트 역사당 부총재. 현 법무사.
|  | |
|
| | |
|
30여년 족보(族譜)와 한중일(韓中日)의 역사를 연구해 오면서, 부도지(符都誌), 한단고기(桓檀古記), 규원사화(揆園史話), 단기고사(檀奇古史) 등 귀중한 역사자료를 통하여, 우리역사 1만년을 넘어 마고(麻姑) 시대를 포함한 7만2천390년 역사를 밝히고 있음.
-우비(禹碑, 우 치수기념 부루공덕비)의 비문을 국내 최초로 역사적 해석을 하여, 서기전2267년 이후 우가 치수에 성공한 후 치수법을 전수해 준 단군조선 태자부루의 공덕을 새긴 것임을 밝혔음.
-일본 국조신(國祖神)인 천조대신(天照大神)의 이세신궁(伊勢神宮)에 소장된 원시한글 축문을 국내 최초로 완벽 해독하고, 천조대신이 단군조선 두지주 예읍의 추장의 후손임을 역사적으로 밝혔음.
-명도전(明刀錢) 최초 해독학자 허대동선생<저서 고조선문자>의 가림토(加臨土) 해독의 검증에 참여하여 첨수도, 명도전이 단군조선의 화폐이며, 거기에 새겨진 문자가 단군조선의 문자임을 밝혔음.
-천제(天帝), 천황(天皇:天王), 천군(天君), 천공(天公), 천후(天侯), 천백(天伯), 천자(天子), 천남(天男)의 위계질서를 최초로 밝혔으며, 천제자(天帝子)와 천자(天子)의 차이점을 최초로 밝혔음.
-태호복희씨(太皞伏羲氏)가 일반 천자(天子)가 아니라 천군(天君)임을 최초로 밝혔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