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익인간 217] 단군조선과 고대중국의 관계역사 13
![]() | 2012년 02월 05일 (일) 11:18:02 | 천산(天山) ![]() | ![]() |
-단군조선(번한,마한)과 하은주(夏殷周)의 관계역사 7-
[단군조선과 은(殷)나라 시대]
15. 은나라 제15대왕 옥갑(沃甲)
은나라 왕 옥갑은 서기전1490년부터 서기전1466년까지 25년 재위하였다.
16. 은나라 제16대왕 조정(祖丁)
은나라 왕 조정은 서기전1465년부터 서기전1434년까지 32년 재위하였다.
17. 은나라 제17대왕 남경(南庚)
은나라 왕 남경은 서기전1433년부터 서기전1409년까지 25년 재위하였다.
18. 은나라 제18대왕 양갑(陽甲)
은나라 왕 양갑은 서기전1408년부터 서기전1402년까지 7년 재위하였다.
19. 은나라 제19대왕 반경(盤庚)
은나라 왕 반경은 서기전1401년부터 서기전1374년까지 28년 재위하였다.
반경은 수도를 다시 박(亳)으로 옮겼다. 반경 이전의 나라를 상(商)이라 하고 반경 이후를 은(殷)나라로 부르기도 한다.
은나라의 수도는 처음 시조 성탕(成湯이 하남성의 박(亳)에 두었다가, 서기전1560년경에 제10대 중정(仲丁)이 하남성의 효(囂)로 옮겼으며, 서기전1530년경에 제12대 하단갑(河亶甲)이 하북성의 상(相)으로 옮겼으며, 제13대 조을(祖乙)이 산서성의 경(耿:刑)으로 옮겼다가 다시 산동성의 비(庇)로 옮겼고, 제17대 남경(南庚)이 산동성의 엄(奄)으로 옮겼으며, 제19대 반경(盤庚)이 다시 박(亳)으로 옮겼던 것이 된다. 그리하여 은나라의 수도는 최소한 6군데가 된다.
여기서 동서남북중으로 보면 산동성의 수도 비와 엄은 동경(東京), 동박(東亳)에 해당하고, 산서성의 수도 경은 서경(西京), 서박(西亳)에 해당하고, 하남성의 수도 효는 남경(南京), 남박(南亳)에 해당하며, 하북성의 상(相)은 북경(北京), 북박(北亳)에 해당하고, 박(亳)은 중경(中京), 중박(中亳)에 해당하게 된다.
20. 은나라 제20대왕 소신(小辛)
은나라 왕 소신은 서기전1373년부터 서기전1353년까지 21년 재위하였다.
21. 은나라 제21대왕 소을(小乙)
은나라 왕 소을은 서기전1752년부터 서기전1325년까지 28년 재위하였다.
[한] 서기전1337년 갑진년(甲辰年) 소태(蘇台)단군 때 은주 소을(小乙)이 조공하였다.<檀君世紀>
서기전1337년은 은나라 왕 소을의 16년이 되는 해가 된다.
22. 은나라 제22대왕 무정(武丁)
은나라 왕 무정은 서기전1324년부터 서기전1266년까지 59년 재위하였다.
무정을 고종(高宗)이라고 부르는데, 은나라 주변의 단군조선 제후국들을 침공하여 무력을 펼쳤으나, 단군조선 본국(眞朝鮮:眞韓)의 정벌을 받고 굴복하여 조공을 바쳤다.
삼국유사에서는 은 무정 8년에 단군조선이 망하고 164년 후인 서기전1122년에 은나라 기자(箕子)가 주무왕(周武王)에 의하여 조선(朝鮮)에 봉해졌다 기록하고 있으나, 은나라 무정 8년은 서기전1317년이 되어 서기전1122년의 164년 이전이 되는 서기전1286년과는 31년의 시차를 보이고 있다. 그래서 삼국유사의 기록은 중국기록만 보고서 계산한 것이며, 서기전1286년은 은나라 무정 39년이 되는 해가 되고, 3년상을 계산하면 38년이 된다. 삼국유사의 연대계산은 명백한 오류이다.
[한] 서기전1291년 경인년(庚寅年)에 은주 무정(武丁)이 귀방(鬼方)을 이기고 재침하였으나 은이 대패하여 화해를 청하고 공물을 바쳤다.<檀君世紀>
서기전1291년은 은나라 무정 34년이 되는 해이다.
여기서 귀방(鬼方)은 단군조선의 번조선과 은나라의 국경 부근으로서, 북경 서쪽이자 태원의 북쪽으로 추정되는데, 방향을 가리키는 말로 된 지역 이름이 되며, 북쪽이나 서남쪽을 귀신이 드나드는 방향이라고 하는 바, 은나라로 보면 북쪽이 귀방이 되고 단군조선으로 보면 서남쪽이 귀방이 되므로 위치상으로 일치하게 된다. 은나라의 북쪽과 단군조선의 서남쪽 즉 번조선의 서쪽은 주로 흉노족들이 활동하던 무대였는데, 북적(北狄)에 해당하는 구이(九夷)의 땅임을 알 수 있다.
[한] 서기전1289년 임진년(壬辰年)에 개사원욕살 고등(高登)과 서여(西余)가 귀방을 멸하여 은나라 무정을 토벌하였다. <檀君世紀>
서기전1289년은 은나라 무정 36년이 되는 해이다.
고등은 단군조선의 개사원(蓋斯原) 욕살(褥薩) 출신으로서 서기전1287년 우현왕(右賢王)이 되었고, 이 고등의 손자인 색불루(索弗婁)가 서기전1286년 세습하여 우현왕이 되었으며, 서기전1286년에 소태(蘇台) 단군으로부터 선양(禪讓)을 받아 즉위하여 후기 단군조선의 시조가 되었다.
서여(西余)는 전기 단군조선의 종실로서 한서여(桓西餘)이며 서우여(徐于餘)라고도 기록되는 인물이다. 해성(海城)의 욕살로서 서기전1286년에 소태 단군으로부터 살수(薩水)의 기수(奇首)로 봉해졌다가, 소태단군이 서여에게 선양(禪讓)하려 하자 우현왕 색불루와 마한(馬韓) 아라사(阿羅斯)가 극구 반대하는 바람에 무산되었고, 결국 우현왕 색불루가 군사력을 기반으로 단군으로 즉위하여 소태단군으로부터 선양을 받자, 소태단군이 서우여를 서인(庶人)으로 폐하였던 것이다. 이에 서우여가 몰래 좌원(坐原)에서 군사를 일으키니 색불루 단군의 신하인 개천령(蓋天齡)이 이때 전사하자 색불루 단군이 직접 나서서 서우여를 토벌하기 전에, 서우여를 번한(番韓)으로 봉하겠다 설득하니, 서우여가 이를 받아 들여 후기 단군조선의 번한의 시조가 되었던 것이다.
욕살(褥薩)은 고구려 때의 지방장관처럼 단군조선 시대에 단군 천왕으로부터 봉해진 지방장관이 된다. 때에 따라 욕살이 제후인 한(汗:지방 왕)으로 승진되어 봉해지기도 하였다.
[한] 서기전1285년 병신년(丙申年) 11월 단군 색불루가 친히 구한의 군사를 이끌고 여러 차례 싸워 은(殷)나라 수도를 격파하여 화친을 맺었으나 다시 크게 싸워 대파하였으며, 이해에 은나라 무정(武丁)은 사신을 파견하여 조공을 약속하였다.<檀君世紀>
서기전1285년은 은나라 무정 40년이 되는 해이다.
이때 은나라의 수도는 서기전1401년에 후기 은나라를 시작한 제19대 반경이 수도를 삼았던 곳으로서 소위 은허로 불리는 지금의 안양(安陽)인 하남성의 박(亳)이다.
[한] 서기전1284년 정유년(丁酉年) 2월에 단군 색불루가 은(殷)나라 군사를 추격하여 황하(黃河) 주변에서 승전의 축하를 받고 변한(弁韓)의 백성들을 회대(淮岱) 땅으로 옮겨 가축을 기르고 농사를 짓게 하였다.<檀君世紀>
서기전1284년은 은나라 무정 41년이 되는 해이다.
여기서 변한(弁韓)은 번한(番韓)을 다르게 표기한 것이 되고, 회대(淮岱)는 회수(淮水)와 대종(岱宗)인 태산을 가리킨다.
이때 단군조선의 색불루 천왕이 은나라 땅 깊숙이 정벌하여 호전적이던 은나라 왕 무정(武丁)의 버릇을 고친 것이 된다.
[한] 서기전1280년 신축년(辛丑年)에 은주(殷主) 무정(武丁)이 번한(番韓)을 거쳐 천왕(단군)에게 글을 올리고 방물을 바쳤다.
서기전1280년은 은나라 무정 45년이 되는 해이다.
이때 번한(番韓)의 임금은 서여(西余:徐于余)이다. 천자(天子) 무정이 상국(上國)이 되는 천왕격(天王格)의 나라인 번한(番韓)을 통하여 그 상국(上國)인 진조선(眞朝鮮) 천왕(天王)에게 조공을 바친 것이 된다.
[한] 서기전1266년 을묘년(乙卯年)에 22대 색불루단군 때 남국(藍國)이 강성하여 고죽군(孤竹君)과 함께 적(은나라)을 쫓아 남으로 엄독홀(奄瀆忽)에 이르러 은나라 국경 근처에 거하고, 여파달(黎巴達)로 하여금 병사를 나누어 진격하여 빈(邠), 기(岐)의 땅에 웅거하도록 하여 유민들과 나라를 세워 여(黎)라고 하였으며, 서융(西戎)과 함께 은나라의 제후들 사이에 차지하도록 하였으니, 천황의 교화가 멀리 항산(恒山) 이남의 땅까지 미쳤다.<檀君世紀>
서기전1266년은 은나라 무정의 마지막 해인 59년이 되는 해이다.
여기서 남국(藍國)은 단군조선의 군국(君國)으로서 산동지역에 있던 소위 남이(藍夷)라고 기록되는 나라이다.
여기서 보면 고죽국은 남국과 함께 은나라를 공격한 것이 되어 단군조선의 제후국임이 분명해진다.
엄독홀은 서기전1430년경 은나라 제17대 남경(南庚)이 수도로 삼았던 엄(奄)이 있던 곳이 되는데, 이때에 이르러 다시 단군조선의 영역이 된 것이다.
여파달(黎巴達)은 여씨(黎氏)가 되고 나라에 공을 세워 빈, 기의 땅에 세운 나라를 여(黎)라 한 것이 된다.
빈(邠)과 기(岐)는 관중(關中)에 있는 땅으로 견이(畎夷)가 사는 곳이기도 한데, 서기전1200년경 은나라의 서방 제후국이던 주(周)나라의 근거지이기도 하다.
서융(西戎)은 서쪽에 있던 융족을 가리키는데, 서이(西夷)를 낮추어 부른 명칭이 되고, 서이는 곧 단군조선의 구이 중의 하나인 백이(白夷)가 된다. 여기 서융에는 은나라 북쪽의 이족이 되는 흉노나 견이들이 빈, 기의 땅으로 옮겨가 살았던 것으로 보아 이들을 통칭한 것이 된다.
항산(恒山)은 태항산맥(太行山脈)에 있는 산으로서 고대중국의 동서남북의 4악 중 북악(北岳)이 되는데, 단군조선의 군국(君國)인 고죽국(孤竹國)과 제후국(諸侯國)인 기후국(箕侯國)의 사이가 되는 태항산맥 중 해발 약3,000미터가 되는 지금의 오대산(五臺山)이 될 것이다.
은나라 서쪽에는 세부적으로 서이(西夷), 견이(畎夷), 서융(西戎), 종융(踵戎), 여(黎) 등의 나라가 있는 것이 된다.
이상의 은나라 무정과 관련된 기록은 은나라 644년 중에서 말기의 200년간의 역사가 되는데, 서기400년경 신라시대 박제상 선생이 지은 부도지(符都誌)에서, 부루씨(夫婁氏)가 천부삼인(天符三印)을 이어받아 천웅(天雄)의 법(法)을 행하고, 일찍이 운해주(雲海州)와 긴밀하게 연락하여 하토(夏土)가 하나로 돌아오기를 시도하였으나 이도(異道)가 심하여 마침내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는 기록과 일맥상통한다.
즉, 색불루 천왕이 후기 단군조선을 막 시작하고서, 운해주(雲海州)에 해당하는 중국내륙 중에서 황하 남쪽이자 양자강 유역 사이가 되는 회대(淮岱)지역의 단군조선의 제후국인 남국(藍國) 등과 함께 도(道)를 잃은 무정(武丁)의 은(殷)나라를 공격하여 통일을 이루고자 하였으나, 하(夏)나라 땅을 이어 하나라의 제도(制度)를 그대로 답습한 은나라가 결국 다른 길을 감으로써 뜻을 이루지 못한 것을 가리키는 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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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프로필] 조홍근(曺洪根, 52세). 한문화재단(桓文化財團) 사무총장. 트위트 역사당 부총재. 현 법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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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년 족보(族譜)와 한중일(韓中日)의 역사를 연구해 오면서, 부도지(符都誌), 한단고기(桓檀古記), 규원사화(揆園史話), 단기고사(檀奇古史) 등 귀중한 역사자료를 통하여, 우리역사 1만년을 넘어 마고(麻姑) 시대를 포함한 7만2천390년 역사를 밝히고 있음.
-우비(禹碑, 우 치수기념 부루공덕비)의 비문을 국내 최초로 역사적 해석을 하여, 서기전2267년 이후 우가 치수에 성공한 후 치수법을 전수해 준 단군조선 태자부루의 공덕을 새긴 것임을 밝혔음.
-일본 국조신(國祖神)인 천조대신(天照大神)의 이세신궁(伊勢神宮)에 소장된 원시한글 축문을 국내 최초로 완벽 해독하고, 천조대신이 단군조선 두지주 예읍의 추장의 후손임을 역사적으로 밝혔음.
-명도전(明刀錢) 최초 해독학자 허대동선생<저서 고조선문자>의 가림토(加臨土) 해독의 검증에 참여하여 첨수도, 명도전이 단군조선의 화폐이며, 거기에 새겨진 문자가 단군조선의 문자임을 밝혔음.
-천제(天帝), 천황(天皇:天王), 천군(天君), 천공(天公), 천후(天侯), 천백(天伯), 천자(天子), 천남(天男)의 위계질서를 최초로 밝혔으며, 천제자(天帝子)와 천자(天子)의 차이점을 최초로 밝혔음.
-태호복희씨(太皞伏羲氏)가 일반 천자(天子)가 아니라 천군(天君)임을 최초로 밝혔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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