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익인간 229] 단군조선과 고대일본의 관계역사 1
![]() | 2012년 02월 16일 (목) 08:58:37 | 천산(天山) ![]() | ![]() |
-일본 신대역사(神代歷史) 개관 1-
[단군조선 추장(酋長)의 역사]
일본의 씨족 역사는 서기전2173년 단군조선의 두지주(豆只州) 예읍(濊邑)의 추장이던 소시모리(素尸牟犁)에서 시작한다. 약 1,000년이 지난 후 소시모리의 후손들이 서기전1100년경 이전에 한반도 춘천(春川)에 자리 잡은 것으로 추정되고, 다시 남하하여 서기전1100년경에 소위 국상입존(國常立尊)을 비롯한 후손들이 한반도 남부에 자리 잡은 것으로 추정되며, 국상입존은 일본 땅에 출입하여 고천원(高天原)과 아시하라(葦原) 등의 지명을 남긴 것이 된다.
서기전850년경에 일본의 국조신(國祖神)인 천조대신(天照大神)이 고천원(高天原)을 떠나 풍위원(豊葦原:토요아시하라)에 정착한 것이 되는데, 고천원은 소시모리의 후손들이 한반도에 자리잡았던 땅으로서 일본 땅에 그대로 대입된 것이며, 아시하라(葦原)는 "아시벌"로서 "아침땅"이라는 말이고 천조대신이 처음 도착한 곳이 바로 이세(伊勢)이다. 이세(伊勢)라는 말도 아침이라는 말이 될 것이다.
고구려가 왜(倭)를 정벌한 역사를 보더라도 단군조선이 일본 땅을 다스렸다는 것은 기정 사실이다. 원래 구주(九州:큐슈), 사국(四國:시코쿠), 본주(本州:혼슈)의 남서부는 단군조선의 마한(馬韓) 관경에 속한 것이며, 본주(本州) 중북부와 북해도(北海島:홋가이도)는 단군조선의 동보(東堡)인 예국(濊國)의 관경에 속하였던 것이 된다. 소시모리가 추장 노릇을 하던 땅은 예(濊)에 속하는 것이다.
단군조선의 두지주(豆只州) 예읍(濊邑)의 위치가 밝혀지면 일본의 뿌리가 밝혀지는데, 두지의 두(豆)가 콩과 관련된 말이 되어 만주 땅에 위치한 것이 되고, 예(濊)는 단군조선의 개마(蓋馬)인 백두산(白頭山)의 동쪽에 위치하므로, 두지주 예읍은 두만강 유역에 위치하였던 것이 된다. 소시모리의 땅이 후대에 우수국(牛首國)이 되었다 하고, 강원도 춘천(春川)이 이전에는 우수국(牛首國)이었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단군조선의 예(濊)에 속했던 소시모리의 후손들이 남하하여 한반도의 동예(東濊) 땅에 살다가, 이후 국상입존(國常立尊)이 바다를 건너 일본 땅에 출입한 것이 된다.
서기전660년 이전의 일본역사는 바로 단군조선의 역사로서 소위 일본의 신대역사(神代歷史)가 되며, 소위 신무천황(神武天皇)의 왕가는 단군조선의 두지주 예읍의 추장의 후손이고, 이후 백제, 가야, 신라, 고구려, 대진국(발해)와 관계 속에서 이어진 역사가 된다.
서기전2173년에 등장하는 단군조선 두지주 예읍의 추장 소시모리는 일본 왜(倭:大和) 왕조의 시조가 되는 신무(神武)의 선조가 되며, 소시모리는 원래 읍의 수장인 읍차(邑借) 아래 마을단위의 수장격인 추장(酋長)이었던 것이다. 일본학자나 일본인들은 신무천황 이전에 "우가야"시대가 있었다고 내세우고 있는데, 이는 독립왕국이 아니라 단군조선의 영역 내에 있었던 추장(酋長) 즉 마을의 씨족 또는 부족 장(長)의 역사가 된다.
신무가 서기전660년에 천황을 참칭하기 전에는 그 형이 되는 도반명(稻飯命)이 단군조선 마한(馬韓)의 제후였던 협야후(陜野侯)였으며, 도반명의 아버지가 되는 언파불합(彦波不合)은 단군조선 마한의 한 장수였고, 그 선대는 대대로 단군조선의 두지주 예읍의 추장 직을 이은 것이 된다.
일본의 역사는 서기전2173년 단군조선 두지주 예읍의 추장이었던 소시모리로부터 시작되어 이후 30세에 이르러 천조대신(天照大神:大日靈貴)이 있으며, 34세에 언파불합(彦波不合)이 있고, 35세로 신무(神武)가 출현하는 바, 신무 이전의 역사는 단군조선 추장 또는 제후의 역사로서 34대 1,513년간이 된다.
<일본의 뿌리 조상 소시모리(素尸牟犁)>
서기전2173년에 단군조선 두지주 예읍의 추장이던 소시모리가 반란을 일으키므로 예국(濊國)의 제후였던 여수기(余守己)가 진압하고 소시모리의 머리를 베었다. 여수기는 단군조선 초기에 구가(狗加)를 지낸 인물로 예국에 봉해졌다.
이후 소시모리의 땅을 소시모리(素尸牟犁)라 하다가 한자로 적어 우수국(牛首國)이 라 하게 되었다. 여기서 우수국의 우수는 곧 소머리로서 소시모리를 이두식으로 표기한 것이 된다.
일본서기에 나오는 국상입존(國常立尊)의 15대조가 되는 천지어중주존(天之御中主尊)은 예읍 추장 소시모리 이후 우수국(牛首國)이라는 나라의 시조가 되는 인물이 된다.
원래 일본 땅에는 소, 말, 양, 닭 등이 없었다고 기록되고 있기도 한데, 소모리데라(소머리 절:牛頭寺)라는 절이 있어 소와 관련된 것이 있으니, 우두사를 세운 주인공들은 도래인(渡來人)이 분명한 것이다. 천조대신(天照大神)의 선대에 우두천황(牛頭天皇)이 있으니 아마도 단군조선의 추장 소시모리가 아닌가 한다.
우두천황은 큰 죄 지은 자들을 처단하는 자로 기록되는데, 이는 단군조선 때 반역하다 참수를 당한 것이 와전되어, 그 스스로 참수를 당하였던 것을 본보기로 하여, 후대인들이 소시모리를 우두천황이라 받들고 악을 처단하는 상징으로 삼은 것이 될 것이다.
<국상입존(國常立尊)>
천지어중주존의 16세손이자 천조대신의 7대조에 해당하는 국상입존은 서기전1100년경 사람이 된다. 고천원(高天原:다까아마하라) 시대는 강원도 춘천(春川)에 있던 시대이거나, 한반도 남부의 가야지역에 있던 시대로 추정되는데, 소시모리의 먼 후손이 되는 국상입존이 서기전1100년경에 단군조선의 마한 땅이던 지금의 한반도 내에 터를 잡은 것이 된다.
서기전1100년경 이후에 국상입존이 바다를 건너 지금의 일본 땅에 출입하면서 본주(本州:혼슈)에 이름을 정한 고천원(高天原)에 정착하고, 이후 서기전870년경에 천조대신이 고천원과 위원(葦原:아시하라)에 정착한 것이 된다.
소시모리의 후손들이 우수국(牛首國)이 된 두지주 예읍에서 점차 남하하여 강원도 춘천의 우수국에 자리잡았던 것이 되고, 이후 다시 남하하여 한반도 남부에 정착한 것이 되며, 서기전1100년경에서 서기전870년경 사이에 지금의 일본 땅 본주(本州:혼슈)를 정착지로 삼은 것이 된다.
<천조대신(天照大神)>
국상입존의 8세손이자 언파불합의 4대조에 해당하는 천조대신은 서기전870년경 사람이 되며, 신무(神武) 이전의 풍위원(豊葦原:토요아시하라) 시대에 일본 땅에 정착한 것이 되는데, 그래서 천조대신을 국조신(國祖神)이라 하는 것이 되며, 그 이전의 다까아마하라(高天原) 시대는 천조대신과 소전오존(素戔嗚尊)의 고향이 되는 한반도 땅에 원래 있었던 것이 된다.
서기전870년경 천조대신의 아우인 소전오존이 근국(根國:고향나라)인 신라(新羅)에 갔다라는 기록은 ,일본서기 기록 당시는 서기720년으로서 신라시대이므로 그리 적은 것이고, 실제로는 단군조선의 마한 땅이 되는 곳으로서 우수국인 춘천이나 한반도 남부지역이 되는 것이다.
신라시대 이전의 진한(辰韓)은 6부로 이루어진 나라이고, 박혁거세를 신라왕으로 추대한 6부 촌장들 중에 소벌도리(蘇伐都利)는 일명 소벌공(蘇伐公)이라 기록되는데, 도리는 곧 공(公) 등과 같이 우두머리를 가리키며 공(公)은 공작(公爵)이나 일반적인 존칭이 된다. 천조대신을 두지도리라 하는 바, 두지도리는 곧 두지의 한 읍(邑)의 우두머리인 추장(酋長)으로서 두지공(豆只公)과 같은 말이 된다.
제후(諸侯)는 지방의 왕이 되는데, 제후 아래 성주(城州)나 군(郡) 등에 해당하는 지방장관으로 욕살(褥薩)이 있고, 그 아래 읍(邑)에는 읍차(邑借)가 있으며, 읍의 아래가 마을이 되는데, 이들 마을의 우두머리가 추장(酋長), 촌장(村長)이 된다. 즉 천조대신의 선대가 되는 소시모리는 원래 읍(邑)에 속하는 마을의 추장이었던 것이다.
서기전2173년 반란을 도모하다 참수를 당한 소시모리의 후손 중에 국상입존이 일본 땅을 처음 밟은 것이 되고, 국상입존의 조카인 이장낙존(伊奘諾尊)이 고천원에 정착한 것이 되며, 이장낙존의 딸인 천조대신이 고천원과 아시하라를 다스린 것이 된다.
고천원(高天原:다까아마하라)은 높은 하늘 벌이며, 풍위원중국(豊葦原中國:토요아시하라)는 풍성한 아침 벌인데, 천조대신이 세습하여 고천원과 위원중국을 다스린 것이 된다. 그리하여 천조대신(天照大神)이 국조신(國祖神)으로 받들어지는 것이다.
국조신이라는 천조대신은 나라의 왕(王)이 아니라 단군조선의 추장의 직을 세습한 것이 된다. 그래서 천조대신을 제사하는 이세신궁에 소장되어 있는 원시한글의 내용에 천조대신은 "두디도리(豆只都利:豆只公)"라 적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도리는 우두머리로서 촌장(村長) 또는 추장(酋長)의 뜻인 것이다.
일본의 이세신궁에 소장되어 있는 문헌의 글을 보면, 이세신궁의 주인공인 천조대신은 단군조선 두지주 예읍의 추장 후손이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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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신궁소장문헌 : 원시한글 축문 | ||
위 이세신궁소장문헌(伊勢神宮所藏文獻)의 글은 “우미가유거하고시나두무오호가하라노우어구사우미가하이사요후 하마두디도리하마요하유가수이시두다후”이다.
여기서 “두디도리”와 “요하유”는 천조대신(天照大神)을 가리키는 말이다. 두디도리는 두지공(豆只公) 즉 천조대신의 직책이 단군조선의 두지주 예읍의 추장(酋長)이라는 것이며, 요하유는 천조대신의 원래 이름인 “대일령(大日靈:오~히루:오~하이류)”의 일본어식 발음으로서 변음된 상태의 용어가 된다. 천조대신을 대일령존(大日靈尊) 또는 대일령귀(大日靈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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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프로필] 조홍근(曺洪根, 52세). 한문화재단(桓文化財團) 사무총장. 트위트 역사당 부총재. 현 법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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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년 족보(族譜)와 한중일(韓中日)의 역사를 연구해 오면서, 부도지(符都誌), 한단고기(桓檀古記), 규원사화(揆園史話), 단기고사(檀奇古史) 등 귀중한 역사자료를 통하여, 우리역사 1만년을 넘어 마고(麻姑) 시대를 포함한 7만2천390년 역사를 밝히고 있음.
*일본 국조신(國祖神)인 천조대신(天照大神)의 이세신궁(伊勢神宮)에 소장된 원시한글 축문을 국내 최초로 완벽 해독하고 천조대신이 단군조선 두지주 예읍의 추장의 후손임을 역사적으로 밝혔음.
*우비(禹碑, 우 치수기념 부루공덕비)의 비문을 국내 최초로 역사적 해석을 하여, 서기전2267년 이후 우가 치수에 성공한 후 치수법을 전수해 준 단군조선 태자부루의 공덕을 새긴 것임을 밝혔음.
*명도전(明刀錢) 최초 해독학자 허대동선생<저서 고조선문자>의 가림토(加臨土) 해독의 검증에 참여하여 첨수도, 명도전이 단군조선의 화폐이며, 거기에 새겨진 문자가 단군조선의 문자임을 밝혔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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