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익인간 255] 단군조선 문화제도 22
(마) 3월 삼신영고제(三神迎鼓祭)
음력 3월 16일에는 삼신영고제 즉 삼신맞이굿을 행하였다. 하루 전날인 3월 15일은 단군조선 개국시조이신 단군왕검(檀君王儉) 천제(天帝)께서 승천하신 날로서 단군왕검 천제께 제사를 지낸 것이 되고, 그 다음날을 삼신맞이날로 삼아 천지인(天地人) 삼신(三神)께 제사를 지낸 것이 된다.
즉, 단군조선 시대에 3월 16일에 행하였던 삼신영고제는 서기전2241년 3월 15일 단군왕검 천제께서 승천하신 이후에 지내는 풍습이 되는데, 후기 단군조선을 시작한 제22대 색불루 천왕은 서기전1285년 3월 16일에 마한(馬韓) 여원흥(黎元興)으로 하여금 삼한대백두산(三韓大白頭山)인 태백산(太白山:백두산)에서 천제(天祭)를 올리게 하여 전기 단군조선의 정통성을 이었음을 하늘에 고하였던 것이며, 서기전425년 3월 16일에는 제44대 구물(丘勿) 천왕도 천제(天祭)를 지내고 장당경(藏唐京)에서 즉위하였는데, 이 또한 스스로 단군조선의 정통성을 이었음을 하늘에 고한 것이 된다.
삼신영고제는 역대 단군 천왕(天王)들이 직접 행하였는데, 삼육대례(三六大禮) 즉 삼육구배(三六九拜)로써 하였던 것이 된다.
(바) 10월 백의제(白衣祭:束身白茅之義)와 국중대회(國中大會)
단군조선 시대에는 10월에 백의제(白衣祭)를 행하였는데, 이는 서기전7197년경 사방분거시 마고대성(麻姑大城) 복본(複本)의 맹서를 하였던 황궁씨(黃穹氏)의 속신백모지의(束身白茅之義)를 따른 것이며, 10월에 열었던 조제(朝祭) 즉 희생제(犧牲祭)를 포함하는 조선제(朝鮮祭)와 함께 행한 것이 되고, 백성들에게는 축제로서 국중대회(國中大會)가 된다. 백의제는 백의(白衣) 즉 흰옷를 입고서 행한 제사가 된다.
10월 상순에 국중대회를 열어 둥근 단을 쌓고 하늘에 제를 올렸다. 음력 10월은 12지지(地支)로는 해월(亥月)로서 상달(上月)로 삼았던 것이고, 나라 전체적으로 추수로 인한 풍요로움에 대한 감사의 축제를 벌인 것으로도 된다.
한국(桓國)시대에 이미 10월에 국중대회를 열어 노래하고 춤을 추고 하늘에 제사를 지냈으며, 무예(武藝)와 문예(文藝)를 겨루는 것을 의식(儀式)으로 삼았는데, 이러한 습속은 후삼한(後三韓) 시대까지 이어져 소위 삼한(三韓)의 습속(習俗)이 되었던 것이 된다.
한국시대부터 있어온 10월 제천(祭天) 국중대회(國中大會)는 서기전3897년 10월 3일의 배달나라 개천(開天)과 서기전2333년 10월 3일의 조선 개국(開國)과도 연관성이 있는 것이며, 지금에 이르러서는 음력 10월에 각 씨족의 종중(宗中)이나 문중(門中)에서 조상께 묘사(墓祀)를 지내는 습속(習俗)인 시제(時祭)와도 일맥상통하는 것이 된다.
(사) 단군조선 역대 천왕의 제천행사
단군조선 시대에 제천(祭天)을 행한 곳은 태백산(太白山:백두산), 마한의 마한산(馬韓山), 마한의 혈구(강화도) 마리산 참성단(塹城壇), 탕지산(湯池山), 회대지역(산동)의 태산(泰山), 엄독홀(奄瀆忽), 진한의 상춘 구월산(九月山), 장당경(藏唐京), 영고탑(寧古塔), 해성(海城)이 된다.
태백산은 단군조선의 중앙에 해당하는 천부단(天符壇)이 있는 곳으로, 마고성(麻姑城)의 중앙에 두었던 천부단과 일맥상통하는 것이 된다.
마한(馬韓)은 남보(南堡)의 땅으로 단군왕검이 특별히 마리산에 참성단을 만들게 하였는데, 한반도에서 가장 기(氣)가 센 곳이 된다. 마한 땅에서는 마한산, 마리산 참성단에서 제천한 것이 된다. 여기서 마한산은 수도가 있던 지금의 대동강 부근의 산이 될 것이다.
번한(番韓)은 서보(西堡)의 땅으로 발해만 유역과 산동지역을 관할하였다. 번한 땅에서는 탕지산, 태산, 엄독홀 등에서 제천하였다.
진한(眞韓)은 북보(北堡)의 땅으로 상춘(常春)과 장당경(藏唐京)과 영고탑(寧古塔)과 해성(海城)에서 천제를 지냈다.
동보(東堡)는 백두산의 동쪽 땅에 해당하는 예국(濊國)이 된다. 동쪽은 동해(東海)에 접하여 특별히 경계할 적(敵)이 없어 서보(西堡)와는 달리 상대적으로 평안했던 곳이 된다. 단, 서기전2173년에 두지주(豆只州) 예읍(濊邑)의 추장 소시모리(素尸牟犁)의 반란이 있었는데 예국(濊國)의 제후 여수기(余守己)가 진압하여 소시모리의 머리를 벤 역사가 있기는 하다.
위와 같이 태백산의 천부단, 예국의 동보, 마한의 남보, 번한의 서보, 진한의 북보를 두어 제천행사를 벌였던 단군조선은 마고(麻姑)시대의 법(法)을 그대로 계승한 것이 된다.
마고성(麻姑城) 시대에는 중앙에는 천부단(天符壇), 북에는 북보(北堡), 동에는 동보(東堡), 남에는 남보(南堡), 서에는 서보(西堡)를 두었는데, 중앙의 천부단은 마고(麻姑)가 머물고 제천(祭天)하는 장소이며, 북보는 황궁씨(黃穹氏), 동보는 청궁씨(靑穹氏), 남보는 흑소씨(黑巢氏), 서보는 백소씨(白巢氏)가 각각 맡아 다스렸던 것이다.
1) 단군조선 개국시조 단군왕검 천제(天帝) 시대의 제천(祭天)
서기400년경에 신라의 박제상(朴堤上)이 지은 부도지(符都誌)에서는 임검씨(壬儉氏:단군왕검)가 100년 사이에 가지 아니한 곳이 없었다고 적고 있는 바, 제족(諸族)을 찾아다니며 홍익인간(弘益人間) 세상을 실현하기 위하여 순방정치를 하였던 것이 된다.
가) 마한산(馬韓山) 제천
서기전2333년경 마한(馬韓) 웅백다(熊伯多)로 하여금 마한산(馬韓山)에 올라 하늘에 제사하도록 하였으며, 이때 단군왐검 천제께서는 조서(詔書)를 내리셨다.
나) 마리산(摩璃山) 제천
서기전2283년에 운사(雲師) 배달신(倍達臣)에게 명하여 혈구(穴口)에 삼랑성(三郞城)을 짓고 마리산에 제천단을 쌓게 하였다. 여기서 마리산 제천단이 곧 마리산 참성단(塹城壇)이다.
서기전2280년에 단군왕검 천제께서 친히 마리산(摩璃山)에 행차하여 하늘에 제사 지내셨다.
강화도의 마리산 참성단은 해발 468미터 정상에 있는데, 조선시대 세종 때만 하여도 마니산(摩尼山)이 아닌 마리산으로 기록하고 있었다. 마리는 머리, 마루, 꼭대기를 뜻한다. 참성단(塹城壇)이란 산꼭대기를 깎아(塹) 성을 쌓아(城) 만든 제단(祭壇)이라는 뜻이다.
강화학파로 유명한 한말의 최대 문장가인 이건창이 남긴 글에 "참성단은 혈구 두악산(강화도 마리산)에 있으니 단군왕검이 재위 51년(서기전 2283년)에 산을 깎아 성단(城壇)하고 돌을 쌓아 지어 올렸으며, 높이는 17척이요, 모양은 위는 네모이고, 아래는 둥근데, 바로 단군이 제천하던 곳이다"라고 적고 있다.
또, 참성단에서 약 30미터쯤 떨어진 곳에 중수비가 있는데, 정유년(丁酉:서기1717년)에 강화유수(江華留守) 최석항(崔錫恒)이 썼으며, "우리나라 수천리 땅에 강화는 나라의 방패, 그런 강화 중에도 마리산은 천신에게 제사드리는 명산, 서쪽 제일 높은 곳에 돌을 쌓아 단을 만들었으니 이름하여 참성단이다. 세상이 전하기로는 단군이 돌을 쌓아 단을 만들어 하늘에 제사하던 곳. 돌이켜 보건대, 수천년을 지났으니 풍우에 씻기고 깎이어서 서북 두면이 반쯤 무너졌고 동편계단이 기울어졌다. 그래서 이 고을 어른들이 만나면 서로 개탄하고 있다. 부족한 유수로서 이 산에 올라 보니 분연히 이곳을 중수할 뜻이 생겼도다. 아, 무너진 것을 고쳐 옛 모습을 되살리는 것은 수령의 마땅한 책무가 아닌가. 하물며 이곳은 이 겨레의 시조 단군이 당요와 같은 시대에 나시어 손수 단을 쌓아 정결히 제사지내던 곳임에 있어서랴!"라고 적고 있다.<1987.10.16.자 조선일보 13면 기사 참조>
한편, 고려말 이암(李嵒)선생이 지은 단군세기(檀君世紀)에는 "무오 51년(서기전 2283년)에 임금께서 운사(雲師)인 배달신(倍達臣)에게 명하여 혈구(穴口)에 삼랑성(三郞城)을 짓고 제천의 단(祭天壇)을 마리산(摩璃山)에 쌓게 하였으니 참성단(塹城壇)이 바로 그것이다"라고 적고 있다.
또, 조선시대 이맥(李陌)선생이 지은 태백일사 삼한관경본기 마한세가 상편에는 "단군왕검 51년에 천왕은 운사인 배달신에게 명하여 삼랑성을 혈구에 쌓고 제천단을 마리산에 만들었으니 강남(江南)의 장정 8,000명을 선발하여 이들에게 일을 하도록 하였다. 신유(서기전 2280년임) 3월 천왕은 몸소 마리산으로 행차하여 하늘에 제사 지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상으로 보면, 참성단은 단군왕검 즉위(서기전 2333년 10월 3일) 51년인 무오년(서기전 2283년)에 운사에게 명령하여 쌓은 것이며, 마한 땅이었던 한반도의 장정 8,000여명이 선발되어 삼랑성을 쌓고 제천단을 함께 만든 것이 된다.
삼랑성(三郞城)은 속설에 단군의 세 아들이 지었다고 하나 마한(馬韓) 땅의 장정 8천여명이 쌓은 것이 되고, 세 아들이라는 말은 삼랑(三郞)에서 나온 것이 된다. 삼랑은 배달신(倍達臣)을 가리키는 바, 삼신시종지랑(三神侍從之郞) 즉 삼신(三神)을 모시는 직책을 말한다.
다) 태산(泰山) 제천
서기전2267년 번한(番韓) 낭야(琅邪)가 태자부루의 명을 받아 나라에 크게 경당(扃堂)을 일으키고 삼신(三神)을 태산에서 제사지내니, 이로부터 삼신을 받드는 풍속이 회대(淮岱) 사이에 크게 행해지게 되었다.
여기서 회대(淮垈) 사이의 땅은 산동지역의 태산(泰山)에서 회수(淮水)에 걸치는 지역이 되며, 이에 회대지역은 하(夏), 은(殷), 주(周) 나라를 통하여 남이(藍夷)의 땅으로서 곧 중국내륙의 동이(東夷) 땅이 된다.
태산(泰山)은 대종(岱宗)이라고 불리는 산이다. 산동지역의 서쪽에 위치하는 산으로서 단군조선 초기에 번한 땅의 청구(靑邱) 서쪽과 남국(藍國)의 북쪽에 해당하는 곳에 있던 산이 된다. 이 태산에서 회수(淮水)에 이르는 땅을 회대(淮岱)지역이라 부르는 것이며, 이 회대지역은 대체적으로 남이(藍夷)의 땅이 되는 것이다.
남이(藍夷)의 분파로는 엄이(淹夷), 서이(徐夷), 회이(淮夷), 사이(沙夷) 등이 있었다. 모두 고대중국의 내륙 동쪽에 있던 단군조선의 동이족이며 제후국들의 나라 이름에 지역이나 족속의 명칭인 이(夷)를 붙인 것이 된다. 즉, 고대중국에서는 단군조선의 번한관경 내 군후국이던 남국(藍國)을 남이(藍夷)라고 불렀던 것이 된다.
남국(藍國)은 치우천왕의 후손으로 이루어진 나라인데, 서기전1236년에 단군조선은 남국의 남쪽에 각각, 엄(淹), 서(徐), 회(淮)라는 제후국을 세웠다. 이들 나라를 고대중국에서는 각 엄이, 서이, 회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단군조선 이후 태산(泰山) 제천의 연원과 천자의 봉선(封禪)]
서기전2267년 단군조선의 태자부루가 도산회의를 주관하러 도산(塗山)으로 가던 중 번한에 반달간 머물면서 중국 천자 순임금으로부터 치수에 대한 경과보고를 받았고, 번한(番韓) 낭야를 대동하고 남쪽으로 가다가 번한 낭야로 하여금 태산(泰山)에서 천제를 올리게 하였는데, 이때부터 삼신(三神)에게 올리는 제천행사가 중국내륙의 동쪽 지역에 널리 행해지게 되었던 것이라 기록된다.
특히 고대중국의 주나라 시대에 천자(天子)가 태산(泰山)에서 제천을 하였다고 기록되고 있는데, 이는 주나라의 왕인 천자가 태산에서 하늘에 제사를 지낸 것으로, 회대(淮岱)지역 동이족의 제천풍속을 이은 것으로서 천하왕인 천자(天子)로서의 역할을 행한 것이 된다.
천자(天子)는 천제(天帝) 또는 천왕(天王)으로부터 봉해진 천하(天下)의 왕(王)이다. 즉 배달나라 시대 고대중국의 소위 삼황오제(三皇五帝)를 비롯하여 요순(堯舜)을 천자로 봉(封)한 이후 세습되어 하은주(夏殷周) 나라의 왕은 천자가 되는 것이다.
하나라는 처음 우(禹)가 단군조선을 반역한 반역자로서 천자로 인정받지 못하였으나 후대에는 하나라 왕들이 사실상 천자(天子)로 묵인되었던 것이 되고, 은나라 시조 탕은 단군조선의 군사력을 엎고서 하나라를 멸망시켜 왕이 되었으며, 이때 단군조선은 고죽국(孤竹國)의 임금인 묵태(墨胎)를 보내어 즉위를 축하하여 주는 등 천자로 인정하였던 것이고, 주나라도 은나라를 멸한 후 단군조선의 제후국인 숙신(肅愼)으로부터 왕권(王權)을 상징하는 활을 선물로 축하를 받는 등 진정 천자(天子)로 인정받았던 것이 된다.
단군조선에서는 삼신(三神)에게 제사를 올리는데, 이를 천제(天祭), 또는 제천(祭天)이라 한다. 삼신은 천지인의 일신(一神)을 가리키고, 삼일신(三一神) 사상에 의하여 한인 천제, 한웅 천왕, 단군왕검을 모두 천제(天帝), 삼신(三神)이라고 한다. 제천행사는 단군 천왕이 주관하거나 천왕의 명을 받은 천군(天君)이나 천왕(天王)의 대리자가 행한다. 그래서 단군조선의 삼한(三韓)은 천군(天君) 이상 천왕격의 나라가 되며, 별읍(別邑)이 되는 소도(蘇塗)에서는 소위 천군(天君)이 천제를 지낸 것이 된다.
이와는 달리, 고대중국은 천자(天子)의 나라이다. 천자는 천군(天君)보다 훨씬 아래의 직책으로서 독자적으로 천제(天祭)를 지내지 못하며, 단군조선 전기인 하은(夏殷) 시대에는 마한(馬韓)이나 번한(番韓)의 제천행사를 도왔던 것이 되고, 주나라 시대에는 태산(泰山)이 주나라에 속한 이후에는 제천행사를 계승하여 주나라 왕인 천자가 봉선(封禪)이라는 의식으로서 제천을 행한 것이 된다.
태산은 주나라 시대에 노(魯)나라나 제(齊)나라에 속하게 된 것이 되는데, 당시 제나라 땅의 북쪽과 연(燕)나라의 동쪽은 청구(靑邱)가 되고 제나라의 남쪽과 노나라의 동쪽은 남국(藍國)의 땅이 된다. 제나라의 남쪽에는 남이(藍夷)의 무리인 동이족들의 나라로 서국(徐國), 회국(淮國) 등이 존속하였으며, 서국은 서기전512년까지, 회국은 서기전221년 진나라 진시황 시대까지 존속하였다.
진(秦)나라의 진시황(秦始皇)과 한(漢)나라의 한무제(漢武帝)도 주(周)나라 시대에 천자(天子)가 행한 봉선(封禪) 의식을 계승하여 스스로 황제라 하며 태산(泰山)에서 봉선(封禪)을 행하였던 것이다. 특히, 진시황은 주나라 등 이전 시대의 천자(天子)보다 더 높은 제왕으로서 옛 삼황오제를 본따 처음으로 황제를 칭한 것이 되고, 한나라는 천자(天子)의 품격을 황제(皇帝)로 승격시키고 그 아래에 왕, 군, 제후 등을 두었던 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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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프로필] 조홍근(曺洪根, 52세). 한문화재단(桓文化財團) 총재. 트위트-페이스북 역사당 부총재. 현 법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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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년 족보(族譜)와 한중일(韓中日) 역사를 연구해 오면서, 부도지(符都誌), 한단고기(桓檀古記), 규원사화(揆園史話), 단기고사(檀奇古史) 등 귀중한 역사자료를 통하여, 우리역사 1만년을 넘어 마고(麻姑) 시대를 포함한 7만2천390년 역사를 밝히고 있음.
1. 역법(曆法)의 시초는 마고성(麻姑城)의 황궁씨(黃穹氏) 시대인 서기전24418년 계해년(癸亥年)임을 밝혔으며, 서기전70378년 계해년이 마고(麻姑) 기원(紀元:천부 天符)임을 밝혔음.
2. 나반(那般:那般尊者:獨聖者)이 한국(桓國)시대 한인씨(桓因氏) 이전의 임금이던 유인씨(有因氏)이며, 한인씨 7대(代)가 약1,000년을 다스렸던 것임을 밝혔음.
3. 윷놀이판의 모습이 천부경(天符經)의 역(易), 역법(曆法), 음양오행(陰陽五行), 단군조선의 정치행정구조를 나타낸 것임을 밝혔으며, 태호복희 8괘역과 윷놀이판의 역이 지구의 자전과 공전을 기반으로 한 역(易)임을 밝혔음.
4. 천제(天帝), 천황(天皇:天王), 천군(天君), 천공(天公), 천후(天侯), 천백(天伯), 천자(天子), 천남(天男)의 위계질서를 최초로 밝혔으며, 천제자(天帝子)와 천자(天子)의 차이점을 최초로 밝혔음.
5. 태호복희씨(太皞伏羲氏)가 일반 천자(天子)가 아니라 천지인(天地人) 제사장인 천군(天君)임을 밝혔음. 6. 아리랑(阿里嶺) 민요의 원천이 되는 최초의 역사적 사실을 밝혔음.
7. 고대중국의 요순우(堯舜禹)와 고대일본의 신무왕(神武王)이 단군조선의 반역자(反逆者)이면서 제후격의 천자임을 밝혔음.
8. 우비(禹碑, 우 치수기념 부루공덕비)의 비문을 국내 최초로 역사적 해석을 하여, 서기전2267년 이후 우가 치수에 성공한 후 치수법을 전수해 준 단군조선 태자부루의 공덕을 새긴 것임을 밝혔음.
9. 일본 국조신(國祖神)인 천조대신(天照大神)의 사당인 이세신궁(伊勢神宮)에 소장된 원시한글 축문을 국내 최초로 완벽 해독하고, 요하유로 기록된 천조대신이 단군조선 두지주 예읍의 추장의 후손임을 역사적으로 밝혔음.
10. 명도전(明刀錢) 최초 해독학자 허대동선생<저서 고조선문자>의 가림토(加臨土) 해독의 검증에 참여하여 첨수도, 명도전이 단군조선의 화폐이며, 거기에 새겨진 문자가 단군조선의 문자임을 밝혔음. 그 외 다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