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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인간 256] 단군조선 문화제도 23

양해천 2018. 1. 22. 11:35

[홍익인간 256] 단군조선 문화제도 23

2012년 03월 18일 (일) 10:42:07천산(天山)  sppopsj@yahoo.co.kr

2) 제4대 오사구 천왕(天王) 

가) 태백산 제천 

서기전2137년 겨울 10월에 북쪽을 순시하다 돌아와 태백산(太白山)에 이르러 삼신께 제사하고 신령한 약초를 얻으니 인삼(人蔘)이라 하고 또 선약(仙藥)이라고도 한다. 

여기서 태백산은 곧 백두산이다. 지금의 백두산은 단군조선 시대부터 대진국(大震國:발해) 시대까지 태백산이라 불리었다. 고려시대부터 백두산(白頭山)이라 적히게 되는데 그 이전에는 개마산(蓋馬山) 즉 해마루산으로 불린 것이 된다. 태백(太白)은 한밝, 큰밝이라는 말이고, 백두는 흰머리, 희머리, 해마루라는 말로서 같은 맥락의 글자가 된다. 

단군조선의 특산물로 영주해삼(瀛州海蔘)이라 불리는 인삼(人蔘), 오엽서실(五葉瑞實)이라 불리는 잣, 칠색보옥(七色寶玉)이라 불리는 옥이 있었다. 특히 잣나무는 학명으로도 한국의 소나무 즉 영어로는 코리안 파인트리(korean pinetree)이다. 

나) 상춘 구월산 제천 

서기전2109년 임자년(壬子年) 마한(馬韓) 근우지(近于支)는 천왕의 명령을 받고 상춘(常春)에 들어가 구월산(九月山)에서 삼신께 제사지내는 것을 도왔다. 

상춘은 백악산아사달의 땅으로서 곧 아사달이기도 하며, 아사달산인 구월산이 있고 이곳에 제천단이 있었던 것인 바, 마한 근우지가 제3대 오사구 천왕을 명을 받들어 상춘 구월산에서 제천행사를 보좌(輔佐)한 것이 된다. 

3) 제5대 구을 천왕 

가) 태백산 제천 

서기전2099년에 제5대 구을 천왕께서 명을 내려 태백산(太白山)에 단을 쌓고 사자(使者)를 보내 제사를 올리게 하였다. 

태백산에 제천단을 쌓은 해가 서기전2099년이라 하고 있으나, 4대 단군오사구가 서기전2137년 겨울 10월에 북쪽을 순시하다 돌아와 태백산에 이르러 삼신께 제사하였다 하므로, 서기전2137년 이전에 이미 태백산(백두산)에 제천단이 있었던 것이 되는 바, 단군왕검이 태백산에 천부단을 쌓고 4 보단을 만들었다라는 부도지의 기록을 보건대, 단군왕검의 시대에 이미 제천단을 마련하였던 것이 된다. 

나) 장당경 제천 

서기전2084년에 구을 천왕께서 장당경(藏唐京)에 행차하여 삼신단(三神壇)을 봉축하고 한화(桓花)를 심었으며, 7월에 남쪽을 순수하다 풍류강(風流江)을 건너 송양(松壤)에 이르러 병을 얻어 붕어하시니 대박산(大博山)에 장사지냈다. 

장당경은 서기전425년에 단군조선의 제3차 수도로 삼은 곳인데, 서기전1285년에 색불루 천왕이 조부인 우현왕(右賢王) 고등(高登)의 묘(廟)를 건립한 곳인 바, 지금의 심양(瀋陽) 땅으로서 개원(開原)이라 불리었고, 개사원 욕살이던 우현왕 고등의 고향이 되며, 개사원에 장당(藏唐)이라는 관청을 두어 당요(唐堯)를 장치(藏置)한 곳이 되며, 단군조선의 이궁으로서 장당경(藏唐京)이라 부른 것이 된다. 

풍류강, 송양, 대박산이 고구려 시대 비류(沸流)라 불리던 강의 근처인지, 아니면 지금의 평양 근처인지 불명이다. 북한은 대박산을 평양의 대박산으로 보아 단군왕릉을 만든 것이 되는데, 연대기적으로 볼 때, 그 유골은 단군조선 이전의 배달나라 시대에 다스리던 군장(君長)의 것으로 추정된다. 왜냐하면 단군조선의 수도는 당시 하얼빈이며, 지금의 평양 땅은 마한(馬韓) 땅의 수도가 있던 곳이기 때문이다. 

4) 제6대 달문 천왕 

가) 상춘 구월산 제천 

서기전2049년에 모든 한(汗)들을 상춘(常春)에 모이게 하고 삼신(三神)을 구월산(九月山)에 제사하도록 하여 신지(神誌) 발리(發理)로 하여금 서효사(誓效詞)를 짓게 하였다. 

한(汗)은 단군 천왕(天王)이 봉한 군후(君侯) 즉 제후격의 왕(王)을 가리키는데, 원칙적으로 독자군사권을 가지지 않으며, 천왕의 명을 받아 군사를 부릴 수 있다. 왕(王)은 독자군사권을 가진다. 왕은 독자군사권을 가지므로 군사력을 기반으로 반역을 할 가능성이 많다. 지방의 왕은 천하왕(天下王)으로서 천군(天君), 천자(天子) 등으로 불리는데, 천제(天帝) 또는 천왕(天王)이 되는 소위 단군(檀君)이 봉하거나 인정하여준 자가 진정한 지방의 왕이 되는 것이며, 왕을 참칭한다고 왕이 되는 것이 아니다. 

요임금은 서기전2357년경 제왕(帝王)을 참칭하였다가 서기전2324년경 단군조선에 굴복하여 신하가 되어 정식 천자(天子)로 인정되었으며, 순임금도 천자에 해당하고, 우임금은 자칭 하왕이라 하여 단군조선에 반역하였으므로 진정한 천자가 아니었던 것인데, 실질적인 고대중국의 왕조는 하나라로부터 시작된다. 

상춘은 늘봄, 늘벌(늛은 벌?)이라는 말로서 눌현(訥見)으로 적히는데, 눌견(늘 봄)으로 읽어야 이두식 표기법이 되며, 지금의 장춘(長春)이다. 백악산아사달이 있는 곳으로 단군조선 제2차 수도가 있는 곳이며, 해모수 북부여의 수도이던 웅심산(熊心山) 난빈(蘭濱) 또는 천안궁(天安宮)이 있던 곳이기도 하다. 

구월산(九月山)은 상춘(常春)에도 있으며, 지금의 한반도 황해도에도 있는 것이 되는데, 원래의 구월산은 아사달산으로서 상춘에 있었던 것이 된다. 

서효사에서는 상춘을 신경(新京)이라 부르고 있는데, 수도 아사달 외에 신경을 세운 것이 되어 이궁(離宮)에 해당하며, 또다른 이궁(離宮)으로 영고탑(寧古塔)을 두었다. 상춘의 신경은 서기전1984년부터 서기전1982년 사이 3년간 우착의 난을 피하여 머물렀는데 이궁의 역할을 한 것이 된다. 

고려시대 고려사에서 서효사를 인용한 부분이 있는데, 단군조선의 삼한(三韓)의 수도를 저울에 비유하여 진한은 저울대, 마한은 저울그릇, 번한은 저울추에 비유하고 특히 번한의 수도를 오덕지(五德地)라 적으면서 개경, 서경 외에 오덕지에 해당하는 목멱산(木覓山:南山)이 있는 지금의 서울지역에 남경(南京)을 설치하는 것이 어떠냐는 글을 남기고 있다. 

5) 제8대 우서한 천왕 

서기전1993년에 우서한 천왕이 마한(馬韓)의 백아강(白牙岡)에 머무르면서 밭을 나누어 4 가(家)를 한 구(區)로 만들게 하고 각 구는 일승(一乘)을 내서 향토를 지키게 하였다. 

직접적으로 천왕이 천제(天祭)를 지냈다라고 기록하고 있지 않으나 순행(巡行) 또는 순시(巡視)를 하면서 제천단에서 천제를 지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백아강은 마한(馬韓)의 달지국(達支國)에 있으며, 지금의 평양(平壤)을 가리키고, 마한의 수도인 왕검성이 된다. 

사가작구(四家作區)의 제도는 4가(家)를 1구(區)로 하여 1승(乘)을 담당한 것이 되는데, 가(家)에는 10호(戶)가 있고 호(戶)에는 평균 100명의 식구가 있는 바, 4가(家)에는 400명의 인구가 있어 남성(男性)인 장정(壯丁)은 그 1/4 정도로 최소한 100명이 되며, 전차(戰車) 1대를 만들어 향토수비를 지켰던 것이 된다. 

주나라 시대에 천자(天子)는 만승(萬乘)의 나라라 하고, 큰 제후국의 나라는 천승(千乘)의 나라라 하는 바, 단군조선으로 보면 1주(州)에는 약400만명이 살았던 것이 되고, 단군조선의 삼한관경이 되는 36주(州) 안에는 합1억4,400만명이 살았던 것으로 계산이 되는데, 서기전1666년의 단군조선에서 실시한 호구조사(戶口調査)에서는 총 1억8,000만명이라 하여 아주 타당성 있는 계산치가 됨을 알 수 있다. 

6) 제12대 아한 천왕 

서기전1833년 가을 8월에 나라 안을 두루 순수하여 요하(遼河)의 왼쪽에 이르러 순수관경비(巡狩管境碑)를 세워 역대 제왕의 이름을 새겨 이를 전하게 하였다. 

여기서도 직접적으로 천제를 지냈다라는 것을 기록하고 있지 않으나, 순수하면서 천제를 지냈던 것이 틀림없다. 

요하(遼河)는 서압록(西鴨綠)이라 불리던 지금의 요하(遼河)가 아니라, 요동, 요서를 구분하던 요하로서 번한(番韓) 땅에 있는 원래의 대요수(大遼水)이던 지금의 영정하(永定河)가 된다. 한편, 지금의 요하의 상류지역은 소위 요하문명의 중심지로서 단군조선 시대에는 구려의 땅이 되며, 구려하(九黎河)로 불리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구려하의 하류가 서압록인 지금의 요하가 된다. 동압록은 지금의 압록강이다. 서압록은 요동반도 바로 서쪽의 남쪽 발해만으로 흐르는 강인 것이다. 

7) 제15대 대음 천왕 

서기전1652년에 서쪽으로 약수(弱水)로 가시어 신지 우속에게 명하여 금과 철과 고유(석유)를 채취하도록 하였다. 

서기전1634년에 태백산(太白山)에 올라 비석을 세워 역대 단군과 한(汗)들의 공을 새겼다. 

약수 지역 행차시에 천제를 지냈다라는 직접적인 기록은 없으나 천제나 산천에 제를 지낸 것이 될 것이다. 약수(弱水)는 진한(眞韓)의 서쪽이자 번한(番韓)의 서쪽인 황하중류 지역이 되는 북단동류 지역으로서 태원(太原)의 서쪽 지역에 있는 강이 되며, 흉노족의 근거지가 된다. 흉노(匈奴)의 시조가 되는 색정(索靖)은 원래 열양(列陽) 욕살이었는데, 약수에 종신극치(終身棘置) 당하였다가 나중에 사면되어 약수에 봉해졌던 것이다. 열양은 발해만 유역에 있던 땅으로서 지금의 고하(沽河) 유역이 된다. 색정을 종신 귀양형에 처하여, 탱자나무를 울타리로 하여 금치(禁置)하였던 것이 된다. 

고유는 지금의 소위 석유(石油)인 원유(原油)를 가리킨다. 이미 단군조선 시대에 석유를 채취하는 기술이 있었던 것이 된다. 

8) 제16대 위나 천왕 

<영고탑 제천> 

서기전1583년에 구한의 여러 한(汗)들을 영고탑(寧古塔)에 모이게 하여 삼신상제(三神上帝)에게 제사지내고, 한인, 한웅, 단군왕검을 모셨다. 5일 동안 크게 연회를 베풀고 무리와 함께 등을 밝히고 밤을 지새며 경을 읊고 마당밟기를 하며, 한쪽은 횃불을 나란히 하고 한쪽은 환무(環舞)로 애한가(愛桓歌)를 일제히 불렀다. 

여기서 영고탑은 단군조선의 이궁(離宮)이 되며, 이때부터 삼신(三神)으로서 한인(桓因), 한웅(桓雄), 단군왕검(檀君王儉)이 모셔지게 된 것으로 된다. 

9) 제17대 여을 천왕 

서기전1501년에 오가(五加)와 함께 나라를 돌아보았는데, 개사성(蓋斯城) 경계에 이르니 청포노인이 하례를 하였다. 

여기서도 천왕이 천제를 지냈다는 직접적인 기록은 없으나 오가(五加)와 함께 순행(巡行)을 하면서 천제(天祭)을 행한 것이 될 것이다. 

개사성은 개사원에 있는 성이 되는데, 개사원의 욕살(褥薩)이 개사성에 머물며 다스리는 것이 된다. 개사원 욕살은 개사성의 욕살이라고도 한다. 개사원에 단군조선의 이궁인 장당경이 있으며, 서기전425년에 단군조선의 수도가 되었다. 

<마리산 참성단 제천> 

서기전1489년 3월 16일 마한(馬韓) 두막해(豆莫奚)가 몸소 마리산(摩璃山)에 행차하여 삼신(三神)을 참성단(塹城壇)에서 제사하니 하주(夏主) 외임(外壬)이 사신을 파견해 제사를 도왔다. 

여기서 하주(夏主)는 하나라 왕(王)을 가리키는 말이나, 서기전1489년 당시에는 은(殷)나라 시대이므로 외임은 은나라 왕이 된다. 

은나라 왕인 외임이 단군조선의 마한으로 가서 마한 두막해가 천제를 올리는 것을 보좌한 것이 된다. 이로써 은나라 왕은 곧 천상의 임금이 되는 천군(天君)이상 천왕격에 해당하는 마한(馬韓)의 아래 직책이 되는 천자(天子)로서 천하왕(天下왕)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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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프로필] 조홍근(曺洪根, 52세). 한문화재단(桓文化財團) 총재. 트위트-페이스북 역사당 부총재. 현 법무사. 

  
 
  
 

30여년 족보(族譜)와 한중일(韓中日) 역사를 연구해 오면서, 부도지(符都誌), 한단고기(桓檀古記), 규원사화(揆園史話), 단기고사(檀奇古史) 등 귀중한 역사자료를 통하여, 우리역사 1만년을 넘어 마고(麻姑) 시대를 포함한 7만2천390년 역사를 밝히고 있음. 

1. 역법(曆法)의 시초는 마고성(麻姑城)의 황궁씨(黃穹氏) 시대인 서기전24418년 계해년(癸亥年)임을 밝혔으며, 서기전70378년 계해년이 마고(麻姑) 기원(紀元:천부 天符)임을 밝혔음. 
2. 나반(那般:那般尊者:獨聖者)이 한국(桓國)시대 한인씨(桓因氏) 이전의 임금이던 유인씨(有因氏)이며, 한인씨 7대(代)가 약1,000년을 다스렸던 것임을 밝혔음. 
3. 윷놀이판의 모습이 천부경(天符經)의 역(易), 역법(曆法), 음양오행(陰陽五行), 단군조선의 정치행정구조를 나타낸 것임을 밝혔으며, 태호복희 8괘역과 윷놀이판의 역이 지구의 자전과 공전을 기반으로 한 역(易)임을 밝혔음. 
4. 천제(天帝), 천황(天皇:天王), 천군(天君), 천공(天公), 천후(天侯), 천백(天伯), 천자(天子), 천남(天男)의 위계질서를 최초로 밝혔으며, 천제자(天帝子)와 천자(天子)의 차이점을 최초로 밝혔음. 
5. 태호복희씨(太皞伏羲氏)가 일반 천자(天子)가 아니라 천지인(天地人) 제사장인 천군(天君)임을 밝혔음. 6. 아리랑(阿里嶺) 민요의 원천이 되는 최초의 역사적 사실을 밝혔음. 
7. 고대중국의 요순우(堯舜禹)와 고대일본의 신무왕(神武王)이 단군조선의 반역자(反逆者)이면서 제후격의 천자임을 밝혔음. 
8. 우비(禹碑, 우 치수기념 부루공덕비)의 비문을 국내 최초로 역사적 해석을 하여, 서기전2267년 이후 우가 치수에 성공한 후 치수법을 전수해 준 단군조선 태자부루의 공덕을 새긴 것임을 밝혔음. 
9. 일본 국조신(國祖神)인 천조대신(天照大神)의 사당인 이세신궁(伊勢神宮)에 소장된 원시한글 축문을 국내 최초로 완벽 해독하고, 요하유로 기록된 천조대신이 단군조선 두지주 예읍의 추장의 후손임을 역사적으로 밝혔음. 
10. 명도전(明刀錢) 최초 해독학자 허대동선생<저서 고조선문자>의 가림토(加臨土) 해독의 검증에 참여하여 첨수도, 명도전이 단군조선의 화폐이며, 거기에 새겨진 문자가 단군조선의 문자임을 밝혔음. 그 외 다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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