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익인간 267] 단군조선 문화제도 34
![]() | 2012년 03월 29일 (목) 07:41:32 | 천산(天山) ![]() | ![]() |
5. 단군조선 시대의 문자
한단고기(桓檀古記) 삼한관경본기(三韓管境本紀)에 보면 "풍백(風伯)은 천부(天符)를 새긴 거울을 들고 앞서가고"라는 기록이 있는데, 이로써 청동거울에 천부(天符)를 새긴 것으로 되며, 이 천부는 바로 원(○), 방(□), 각(△) 또는 무극(無極:원:○), 태극(太極:ꁋ), 삼태극(三太極)의 문양 또는 하나(一), 둘(二), 셋(三) 등 천지인(天地人)을 의미하는 상징을 새긴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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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태극 문양 | ||
한단고기 단군세기(檀君世紀)에서는 서기전1833년에 요하(遼河)의 남쪽에 순수관경비(巡狩管境碑)를 세워 역대 제왕(帝王)의 이름을 새겼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여기서 비문의 글자는 곧 단군조선의 문자가 되는 것이다.
또, 신라(新羅) 시대인 서기400년경 박제상(朴堤上)이 지은 부도지(符都誌)에서는 단군조선 시대의 어문정리(語文整理)와 어문통일(語文統一)에 관한 기록을 남기고 있다.
부도지에 의하면, "임검씨(壬儉氏)는 마고(麻姑)의 계보(系譜)를 닦아 그 족속(族屬)을 밝히고, 천부(天符)의 음(音)에 준하여 그 어문(語文)을 정리하였으며, 매 10년마다 반드시 신시(神市)를 여니 이에 어문이 같아지고 천하가 하나로 되어 인세(人世)가 태화(太和)하였다(壬儉氏...修麻姑之譜 明其族屬 準天符之音 整其語文 ...每十歲必開神市 於是 語文同軌 一準天下 人世太和...)라고 적고 있다.
여기서 임검씨의 나라는 곧 단군조선(檀君朝鮮)이며, 단군조선의 시조 단군왕검(檀君王儉)은 신지(神誌)에게 글자를 만들게 하였던 것이고, 제3대 가륵(嘉勒) 단군은 서기전2181년에 상형문자인 진서(眞書)가 있어도 말이 통하지 않아 바른소리인 정음(正音) 38자를 만들도록 하였는데, 이를 가림토(加臨土:加臨多)라 하였다 한다.
진서(眞書)는 뜻글자로서 상형문자(象形文字)이며 바로 배달나라의 녹서(鹿書:鹿圖文), 용서(龍書), 우서(雨書), 화서(花書), 조족문(鳥足文), 과두문(蝌蚪文) 등을 가리키는 것이고, 단군조선에서는 이를 신전(神篆)이라 하였던 것이며, 가림토는 소리글자로서 말(언어)이나 글자의 소리를 통일시키기 위하여 필요한 발음기호에 해당하는 글자가 된다.
단군조선 시대에도 배달나라와 같이 10년마다 신시(神市)를 열어 사방의 사해(四海) 각지의 백성들이 모이게 하여 특산물을 교환하면서 하늘에 제사도 지내고 언어소통의 통일을 기하였던 것이다.
배달나라 말기에 요(堯)는 신시(神市)에 참가하였던 인물이며, 단군조선 시대에는 요임금을 비롯한 순임금, 하, 은, 주의 천자(天子)들이 모두 단군조선에 조공하였던 것이 되고, 매 10년마다 신시(神市)에 사자(使者) 등을 보내어 참가한 것이 될 것이다.
배달나라의 신시와 단군조선의 신시에는 한국(桓國)의 9족이 되는 구한(九桓) 즉 배달나라의 구려(九黎)이자 단군조선의 구한 또는 구이(九夷)가 되는 족속들은 모두 참석한 것으로 추정되며, 역대 하은주(夏殷周)가 번한(番韓)이나 마한(馬韓)에 조공(朝貢)을 하거나 참례(參禮)한 사례가 있음을 보아, 고대중국도 사신을 보내거나 하여 신시(神市)에 참석한 것이 틀림없는 것이 된다.
왜냐하면, 단군조선은 요(堯)의 당(唐)나라, 순(舜)의 우(虞)나라, 하(夏), 은(殷), 주(周)나라를 단군조선 백성들과 족속이 다른 나라로 보지 않았고, 특히 하나라 시조 우(禹)는 단군조선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고 반역하여 자치(自治) 왕조(王朝)를 시작한 인물이며, 주(周)나라는 백족(白族:白夷:西夷)의 나라인데 백족 역시 마고(麻姑)의 후손으로서 단군조선은 주(周)나라의 지배층을 마고의 후손으로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 된다.
즉, 단군조선의 수도는 일개의 소부족(小部族)의 나라인 소국(小國)의 수도가 아니며, 사방 사해(四海)의 9족(族)의 공도(公都)였다. 단군조선은 마고계보(麻姑系譜)의 족속들의 결속을 다지기 위하여 매 10년마다 신시(神市)를 열어 문물을 교환하기도 하고 어문(語文)을 통일시키고 종교행사를 벌였던 것이다.
가. 상형문자
(1) 진서(眞書:참글:神篆:신전)
단군조선은 배달나라를 계승한 나라이므로, 배달나라의 상형문자를 사용한 것은 당연한 것이 된다. 즉, 단군조선 시대에 배달나라의 상형문자가 되는 녹서(鹿書) 또는 녹도문(鹿圖文), 용서(龍書), 화서(花書), 우서(雨書), 과두문(蝌蚪文), 조족문(鳥足文) 등으로 불리던 문자를 사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단군조선에 소위 단군조선 상형문자로서 전서체(篆書體)라 할 수 있는 신전(神篆)이라는 참글, 진서(眞書)가 있었다. 신전(神篆)은 신령스런 옛 글자라는 뜻이 되며, 진서(眞書)라는 글자는 훈(訓)으로 읽으면 참글이 된다.
참글이라는 말은 "참 그림"이라는 말로서 상형문자임을 의미한다. 즉 신전이라는 문자는 상형문자인 것이다. 이는 신전 또는 진서가 곧 배달나라 초기부터 전해져 오던 녹서(鹿書), 태호복희에 의하여 만들어진 용서(龍書), 자부선인에 의하여 만들어진 우서(雨書), 치우천왕 시대의 화서(花書), 창힐이 창안하였다는 과두문(蝌蚪文), 조족문(鳥足文) 등을 가리키는 것이 된다.
특히, 배달나라의 동부(東部)를 책임지고 있던 청제(靑帝) 창힐(倉頡)이 다스리던 땅인 산동지역과 발해만 유역은 단군조선의 서쪽 영역으로서 번한(番韓) 관경에 속하는 바, 단군조선이 창힐이 창안하였다는 과두문과 조족문을 사용하고 있었다는 것은 의심할 수 없는 것이 된다.
대진국(大震國:발해) 제3대 문황제(文皇帝)가 지은 삼일신고봉장기(三一神誥奉藏記)에 의하면, 서기전2333년 10월 3일 조선 개국 당시에 단군왕검(檀君王儉)께서 삼일신고(三一神誥)를 강연하실 때, 고시(高矢)는 동해(東海)에서 청석(靑石)을 캐오고, 신지(神誌)는 청석에다 삼일신고를 새겼다고 전한다. 이때 청석에 새긴 삼일신고의 글자체가 곧 상형문자로서 신전(神篆) 즉 진서(眞書)로서 과두문(蝌蚪文) 등이 될 것이다.
또, 단군조선 초기가 되는 서기전2267년에 치수문제로 개최된 도산회의(塗山會議)에서 단군조선의 태자부루가 우순(虞舜)의 신하 사공(司空) 우(禹)에게 전수한 홍범구주(洪範九疇)라 불리는 소위 금간옥첩(金簡玉牒) 또는 신서(神書)는, 단군조선에서 작성한 책으로서 그 안에 든 글자는 서기전2181년 가림토 38자가 만들어지기 이전이므로 상형문자인 진서(眞書)가 되는 것이다.
금간옥첩이란 말은 금(金)으로 판(版)에 옥(玉)으로 된 책(冊)이란 뜻이 되는데, 이는 곧 금판에 글자를 새긴 것이며 옥(玉)을 박아 꾸민 것이 된다. 물론 옥을 글자모양으로 갈고 다듬어 금판에 박은 것일 수도 있다. 그 글자의 형태는 아마도 녹도문(鹿圖文:鹿書:사슴 그림 글자) 또는 과두문(蝌蚪文:올챙이 모양의 글자) 등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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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 치수기념 부루공덕비(禹治水紀念扶婁功德碑):과두문 | ||
(2) 진서(眞書)의 아류인 은문(殷文:은갑골문)
은문(殷文)은 은(殷)나라의 문자로 소위 갑골문(甲骨文)이라고 불린다. 은나라는 서기전1766년에 단군조선(檀君朝鮮)의 군사력 지원으로 하(夏)나라를 멸망시키고 시작된 나라이며, 서기전1122년에 폭정을 펼치던 주왕(紂王)이 주(周)나라의 무왕(武王)에게 망하기까지 645년간 존재한 나라이다. 서이족(西夷族)의 나라인 주(周)나라에 반하여 은(殷)나라는 동이족(東夷族)의 나라로 알려져 있다.
갑골문(甲骨文)은 거북이 등껍질(甲)이나 동물의 뼈(骨)에 새긴 글자를 가리키는데, 예리한 칼 등으로 긁어 파서 만드는 글자로서 글(契)이라는 글자에서 대(大)를 뺀 글자와 상통하게 된다. 즉, 글(契)이란 그림(圖)이라는 말과 어원을 같이하는 말로서 칼(刀)로써 긁어 표시한 뜻을 지닌 문자(文字)가 되는 것이다.
은나라 시대의 갑골문은 단적으로 상형문자(象形文字)이며, 지사(指事), 상형(象形), 가차(假借), 전주(轉注) 등의 육서법(六書法)이 적용되는 글자이다.
서기전1120년경 은(殷)나라의 자작(子爵)이던 기자(箕子)가 은나라가 망하자, 자신이 홍범구주(洪範九疇)를 가르쳐 주었던 주(周)나라의 무왕(武王)에게 신하가 되지 않고 단군조선 땅으로 망명하였는데, 이때 기자는 일토산(一土山:王山) 사람으로서 자신의 사사(士師)이던 왕수긍(王受兢)에게 부탁하여 단군조선의 삼일신고(三一神誥)를 단목판(檀木板)에 은문(殷文)으로 옮겨 적게 하여 읽었다라고 서기739년경 대진국(大震國:발해)의 제3대 문황제(文皇帝)가 지은 삼일신고봉장기(三一神誥奉藏記)에 전한다.
여기서, 서기전1120년경 당시에 목판에 글을 새기는 방법을 알고 있었던 것이 되는데, 이때 은문(殷文)은 은나라의 소위 갑골문(甲骨文)으로서 대체적으로 단군조선의 신전(神篆)과는 다른 글자체였던 것이 된다. 이는 아마도 은나라가 시대 흐름에 따라 원래 단군조선의 글자와 같았던 상형문자의 형태를 변형시켜 사용하거나 독자적으로 새로운 글자를 만들어 사용함으로써 글자의 모양이 달라진 것이 될 것이다. 이는 주나라 전국시대의 육국의 문자가 각각 달랐던 것과 같은 이치가 된다.
역사적으로 은나라 유적지인 은허(殷墟) 외에 단군조선의 영역이던 발해만 유역과 두만강 유역에 갑골문의 일종인 우골문(牛骨文)이 나타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은허는 산동지역의 서쪽으로 황하 바로 이북에 있는 지금의 안양(安陽)이라는 땅이 대표적인데, 역사적으로 이곳은 은나라의 여러 수도 중의 하나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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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殷) 갑골문(甲骨文) | ||
갑골문을 새긴 도구가 대체적으로 뽀족한 칼이라는 점에서 글자의 형태가 칼로 긁은 모양이 되는데, 청석 등 돌에 글자를 새길 때와는 다른 형태가 된다. 아마도 돌에 새긴 글자의 형태는 서기전2267년이후 서기전2247년경 사이에 우순(虞舜)의 신하 사공(司空) 우(禹)가 새겼던 치수기념비의 비문과 같은 글자체인 과두문과 같은 유형이 될 것이다.
소위 갑골문의 글자체가 선으로 이루어진 것을 염두에 두면, 단군조선 시대에 글자를 읽는 소리가 은 갑골문의 글자를 읽는 소리와 밀접하게 관련이 있는 것이 된다. 즉, 서기전2181년에 정립된 단군조선의 가림토 38자의 모양을 고려하면, 은 갑골문의 글자가 자음(子音)과 모음(母音)으로 구분이 가능한 글자가 되는데, 곧 은 갑골문은 단군조선의 상형문자인 신전(神篆) 즉 진서(眞書)와 같은 상형문자(象形文字)로서 그 아류(亞類)가 되는 것이며, 그 글자를 읽는 소리는 단군조선의 가림토 38자의 자음과 모음의 낱자로 이루어진 글자로 분석하여 읽었던 소리와 일치하는 것으로 강력히 추정되는 것이다.
단적인 예로써 하나를 든다면, 은 갑골문에 나타나는 사람이라는 글자인 인(人)이라는 글자는, 왼쪽으로 삐친 l 모양과 오른쪽으로 삐친 ㄴ모양의 글자가 되어 "l ㄴ“이 되어 지금의 ”인“이 되는 이치와 같은 것이다. 물론 이 인(人)이라는 글자는 사람모습을 나타낸 ”사람“이라고 읽히는 글자의 특징을 살린 축소화된 글자가 되며, 그리하여 人이라는 글자를 후대에 훈(訓:뜻)과 음(音:소리)으로 읽어 ”사람 인”이라 하는 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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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프로필] 조홍근(曺洪根, 52세). 한문화재단(桓文化財團) 총재. 트위트-페이스북 역사당 부총재. 현 법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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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년 동안 족보(族譜)와 한중일(韓中日) 역사를 연구해 오면서, 부도지(符都誌), 한단고기(桓檀古記), 규원사화(揆園史話), 단기고사(檀奇古史) 등 귀중한 역사자료를 통하여, 우리역사 1만년을 넘어 마고(麻姑) 시대를 포함한 7만2천390년 역사를 밝히고 있음.
1. 홍익인간(弘益人間) 천부(天符)의 역사는 마고성(麻姑城:파미르고원)의 마고(麻姑)시대인 서기전70378년 계해년(癸亥年)부터 시작되었음을 최초로 밝혔음.
2. 역법(曆法)이 시작된 해는 마고성(麻姑城)의 황궁씨(黃穹氏) 시대인 서기전25858년 계해년(癸亥年)임을 밝혔으며, 서기전70378년 계해년이 마고(麻姑) 기원(紀元:천부 天符)임을 밝혔음.
3. 황궁씨를 이은 나반(那般:那般尊者:獨聖者)이 한국(桓國)시대 한인씨(桓因氏) 이전의 임금이던 유인씨(有因氏)이며, 한인씨 7대(代)가 약1,000년을 다스렸다는 것임을 밝혔음.
4. 윷놀이판의 모습이 천부경(天符經)의 무한조화순환역(無限造化循環易), 음양오행(陰陽五行), 태양태음성력(太陽太陰星曆), 단군조선의 정치행정 구조를 나타낸 것임을 밝혔으며, 하도(河圖)와 낙서(洛書)가 배달나라 시대의 음양오행수리역(陰陽五行數理易)이며, 태호복희 8괘역과 윷놀이판의 역이 지구의 자전(自轉)과 공전(公轉)을 기반으로 한 역(易)임을 밝혔음.
5. 천제(天帝), 천황(天皇:天王), 천군(天君), 천공(天公), 천후(天侯), 천백(天伯), 천자(天子), 천남(天男)의 위계질서를 최초로 밝히고, 천제자(天帝子)와 천자(天子)의 차이점을 최초로 밝혔으며, 태호복희씨(太皞伏羲氏)가 일반 천자(天子)가 아니라 천지인(天地人) 삼신(三神)에게 제(祭)를 올리는 권한을 가진 제사장인 천군(天君)임을 밝혔음.
6. 아리랑(阿里嶺) 민요의 원천이 되는 최초의 역사적 사실이 서기전2333년 10월 3일 조선을 건국하기 이전에 있었던 당요(唐堯)의 전란(戰亂)으로 인한 단군왕검(檀君王儉)의 동북 아사달로의 이동과정임을 밝혔음.
7. 고대중국의 천자로 불리는 요순우(堯舜禹)와 고대일본의 신무왕(神武王)이 단군조선의 반역자(反逆者)이면서 제후인 천자(天子)임을 밝혔음.
8. 우비(禹碑:우 치수기념 부루공덕 비)의 비문을 국내 최초로 역사적 해석을 하여, 서기전2267년 이후 우(禹)가 치수에 성공한 후 치수법(治水法)을 전수해 준 단군조선 태자부루의 공덕을 새겨 남악(南嶽) 형산(衡山)에 세운 것임을 밝혔음.
9. 일본 국조신(國祖神)인 천조대신(天照大神)의 사당인 이세신궁(伊勢神宮)에 소장된 원시한글 축문을 국내 최초로 완벽 해독하고, 요하유로 기록된 천조대신이 단군조선 두지주(豆只州) 예읍(濊邑)의 추장(酋長)의 후손임을 밝혔음.
10. 명도전(明刀錢) 최초 해독학자 허대동선생<저서 고조선문자>의 가림토(加臨土) 해독의 검증에 참여하여 첨수도(尖首刀), 명도전이 단군조선의 화폐이며 새겨진 문자가 단군조선의 상형 및 표음 문자임을 밝혔음. 그 외 다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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