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뿌리를 찾아서)/홍익인간 7만년 역사

[홍익인간 266] 단군조선 문화제도 33

양해천 2018. 1. 22. 11:43
[홍익인간 266] 단군조선 문화제도 33
2012년 03월 28일 (수) 06:41:27천산(天山)  sppopsj@yahoo.co.kr
(4) 자부선인의 우서(雨書) 

서기전2700년경 배달나라 치우천왕 시절에 자부선인(紫府仙人)이 우서(雨書)를 만들었다 전한다. 

자부선인은 배달나라의 대표적인 선인(仙人)으로서 광성자(光成子) 또는 광명왕(光明王)으로도 불리는데, 서기전3500년경 태호복희와 동문수학하였던 발귀리(發貴理) 선인(仙人)의 후손으로서 서기전2240년경 단군조선 시대의 선인(仙人)으로 일명 묘전랑(妙佺郞)이라 불리던 대련(大連)과 서기전2181년에 가림토(加臨土) 38자를 정립한 을보륵(乙普勒) 선인(仙人)과 함께 태백산(太白山) 사선각(四仙閣)에 모셔진 사선(四仙)의 한 분이시다. 위 사선(四仙)을 모신 것은 단군조선 초기가 되며, 그래서 태백산은 지금의 백두산이 된다. 

우서(雨書)는 앞의 용서(龍書)나 화서(花書)처럼 비가 하늘에서 떨어지는 모양을 본 따 만든 서체(書體)의 일종이 될 것이다. 

(5) 창힐의 과두문(蝌蚪文)과 조족문(鳥足文) 

서기전2700년경 배달나라 치우천왕 시절에 창힐(倉頡)이라는 인물이 과두문과 조족문을 만들었다라고 전한다. 

창힐은 배달나라 시대에 배달나라의 동부(東部)를 관할한 청제(靑帝)가 된다. 헌원이 배달나라의 중앙지역이 되는 황부(黃部)를 맡은 천자(天子)로서 황제(黃帝)라 하는 것과 같다. 

창힐은 황제헌원에게 문자를 전수한 인물로 전하는데, 배달나라의 문자인 부도(符圖)의 글을 배운 인물이 된다. 부도(符圖)는 곧 배달나라의 상형문자를 가리킨다. 창힐은 황제헌원에게 과두문을 전하였다 하기도 하고 조족문을 전수하였다 하기도 하는데, 과두문은 글자의 체가 올챙이 모양이며, 조족문은 새발자국 모양이 된다. 소위 조족문(鳥足文)이라고 알려진 글로는 창힐이 만든 글자가 되는 창성조적서(倉聖鳥跡書)에 새겨진 글이 대표적이다. 

  
 
 창성조적서(倉聖鳥跡書):창힐(倉頡)의 조족문(鳥足文):녹도문(鹿圖文:鹿書)?> 
 
과두문의 서체(書體)로서 가장 오래된 유물로 남아 있는 것으로 서기전2267년경에서 서기전2247년경 사이에 요순(堯舜)시대 9년 대홍수의 치수관계로 우순(虞舜)의 사공(司空) 우(禹)가 단군조선의 태자부루로부터 치수법(治水法)을 전수받고 치수에 성공한 후, 남악(南岳) 형산(衡山)의 구루봉에 세운, 중국측에서 소위 우왕비(禹王碑)라 부르는 우치수기념부루공덕비(禹治水紀念扶婁功德碑)를 들 수 있다. 

다. 표음문자(表音文字) - 상음문자(象音文字) 

배달나라 시대의 표음문자는 별도의 명칭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상형문자의 일종이 되는데, 상형과 표음 즉 읽히는 소리가 일치하는 글자가 되어 소위 상음문자(象音文字)라고 부를 수 있다. 

이 상음문자의 대표적인 글자로서 서기전3897년에 배달나라를 세울 때 한국(桓國)에서 가져온 천부삼인의 부호이자 상형문자가 되는 ○, □, △이다. 이 ○, □, △의 세가지 글자는 표음문자의 자음이 되는 ㄱ, ㄴ, ㄷ, ㄹ, ㅁ, ㅂ, ㅅ, ㅇ 등의 조합된 글자이기도 하면서, 이들을 도출할 수 있는 글자로서 그 원천이 되는 글자이기도 하다. 물론 이들 글자의 원형은 천지자연에 그대로 담겨져 있는 것이며, 의사소통을 위하여 그 특징을 그림으로 그려 글자로 사용한 것이 되는 것이다. 

서기전3897년경 배달나라 초기부터 표음문자의 시초가 되는 글자로서 이미 소위 상음문자(象音文字)가 사용되어온 것이 된다. 이 상음문자는 서기전2181년에 단군조선 제3대 가륵(嘉勒) 천왕 시절의 삼랑 을보륵이 가림토 38자로 정선(精選)하여 정리된 것으로 된다. 

즉, 단군조선의 가림토 38자는 배달나라 시대에 사용되던 소위 상음문자의 낱자를 대표적인 글자로 정리한 것이며, 그 외에도 소리글자가 되는 글자들이 있었던 것이 되고, 이후에도 같은 소리를 내는 글자를 다른 형태로 표현하여 사용한 것이 되는데, 이는 사람마다 같은 글자라도 다른 모양으로 쓰는 것과 같은 이치에 해당한다. 

이리하여, 단군조선 시대인 서기전2181년에 정립된 가림토 38자가 아닌 다른 형태의 글자가 계속 사용되었던 것이 되고, 이러한 사실은 단군조선 시대에 주조된 소위 명도전(明刀錢)에 새겨진 글자로써 증명되며, 또한 배달나라 상음문자 또는 가림토 글자 계통이라 할 수 있는 인도의 브라미(Brahmi) 문자로 보아도 알 수 있는 것이 된다. 인도의 브라흠(Brahm)은 한자로 범(梵)이라 기록되며 인도의 고대 산스크리트를 범어(梵語)라고 부른다. 

라. 황제헌원과 원시중국어 

소위 중국(中國)의 역사는 주(周)나라 전국(戰國)시대부터 스스로 중화(中華), 중국(中國)이라 칭하면서 본격 시작되나, 그들의 실질적인 선대역사는 멀게는 서기전2698년 계해년에 유웅국의 왕이 되어 배달나라 치우천왕에게 100여회를 도전하였던 황제헌원(黃帝軒轅)에 뿌리를 두는 것이 된다. 

황제헌원은 배달나라의 천자(天子)로서 서기전2697년 이후에 치우천왕에게 10년간 73회를 도전하고 합 100여회에 걸쳐 전쟁을 일으켰다가, 서기전2688년경에 이르러 자부선인의 가르침으로 삼황내문경을 접하고, 도를 깨달아 배달나라의 진정한 신하가 됨으로써, 배달나라의 중앙지역인 황부(黃部)의 최고책임자인 황제(黃帝)로 인정되어 정식 천자(天子)가 되었던 것이다. 

황제헌원은 공손씨(公孫氏)의 아들이거나 후손이며, 공손씨의 공손(公孫)이라는 말은 곰의 후손이라는 이두식 표기가 되는데, 공손씨의 선대가 되는 유웅국(有熊國)의 시조인 소전씨(少典氏)는 웅족 출신으로서 서기전3252년에 배달나라 천왕으로부터 강수(姜水)에 감병(監兵)으로 봉해진 천자(天子)이다. 

소전씨의 아들인 염제신농씨(炎帝神農氏)는 처음 배달나라의 농사담당이던 우가(牛加)를 지낸 인물로 신농(神農)이라 불리며, 서기전3218년에 산동지역에 있던 태호복희가 서기전3528년경에 세웠던 나라인 진(震)나라를 접수하여 다스리게 되니 염제(炎帝)라 불리는 것이다. 

공손씨는 염제신농씨의 방계(傍系) 혈족이 된다. 공손씨는 감병을 게을리 하여 헌구(軒丘)로 유배되었다가 그곳에서 왕이 되니 소전씨의 나라이름을 그대로 따 유웅국(有熊國)이며, 헌원이 이 헌구(軒丘)의 유웅국에서 태어났으므로 헌원이라 부르는 것이 된다. 

서기전2698년경 당시에 헌원(軒轅)은 염제신농국이 쇠퇴하여 많은 제후들이 군사를 일으키려 할 때, 치우천왕(治尤天王)이 먼저 염제신농국을 평정하자 치우천왕에게 도전한 것이다. 그런데, 황제헌원은 나라의 관제(官制)에 운(雲)이라는 글자를 사용한 벼슬이름을 두었으며, 산해경(山海經)에 배달나라 제14대 한웅(桓雄)이 되는 치우(蚩尤)가 풍백(風伯)과 우사(雨師)에게 청하여 헌원(軒轅)을 폭풍우로 혼줄내게 하였다는 기록 등을 감안하면, 당시 헌원이 배달나라의 운사(雲師)를 지낸 인물로 추정되기도 한다. 

즉, 헌원이 유웅국 출신으로서 배달나라의 운사(雲師)를 지내고 염제신농국이 쇠퇴함을 보고 유웅국으로 되돌아가 군사를 일으켜 전쟁을 도모한 것으로 보이는 것이다. 

헌원이 정식으로 배달나라의 천자(天子)로서 황제(黃帝)가 된 후, 창힐(倉頡)로부터 문자를 전수받아 백성들에게 가르친 것이 된다. 이후 유웅국의 백성들은 창힐이 전수한 상형문자로 일상생활의 의사소통 도구로 사용하였을 것이고, 나아가 이를 언어(言語)로 사용하게 됨으로써 원시중국어가 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배달나라에는 8음(音) 2문(文)이 있었다고 하는데, 8개 부족에 각 다른 언어가 존재하였던 것이며, 글자는 2가지가 있었다는 것이다. 이에 더하여 황제헌원이 상형문자로 된 문장을 말로써 사용함으로써 9개 언어가 되는 셈이다. 

태호복희씨 이후 주양(朱襄)이라는 인물이 육서(六書)를 정립하였다고 전한다. 이때는 서기전3300년경이 되는데, 황제헌원 이전에 상형문자로서 글자를 만드는 방법이 정립되었고 이를 사용한 문장작법이 정립되어 있었던 것으로 된다. 

이에 따라 황제헌원의 백성들은 점차 문장언어(文章言語)를 사용함에 따라 배달나라 일반백성들과는 다른 형식의 언어를 사용한 것이 되는데, 상형문자를 사용하는 문장언어는 고립어(孤立語) 형식이며, 배달나라 일반 백성들이 사용하는 언어는 원시한국어인 교착어 형식이 되는 것이다. 

이후 당우하은(唐虞夏殷)과 주(周) 나라를 거치면서 원시중국어는 약 2,000년을 지나는 사이에 문장언어(文章言語)가 하나의 구두언어(口頭言語)로 정착되어 지금의 중국어로 굳어진 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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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프로필] 조홍근(曺洪根, 52세). 한문화재단(桓文化財團) 총재. 트위트-페이스북 역사당 부총재. 현 법무사. 

  
 
  
 
30여년 동안 족보(族譜)와 한중일(韓中日) 역사를 연구해 오면서, 부도지(符都誌), 한단고기(桓檀古記), 규원사화(揆園史話), 단기고사(檀奇古史) 등 귀중한 역사자료를 통하여, 우리역사 1만년을 넘어 마고(麻姑) 시대를 포함한 7만2천390년 역사를 밝히고 있음. 

1. 홍익인간(弘益人間) 천부(天符)의 역사는 마고성(麻姑城:파미르고원)의 마고(麻姑)시대인 서기전70378년 계해년(癸亥年)부터 시작되었음을 최초로 밝혔음. 
2. 역법(曆法)이 시작된 해는 마고성(麻姑城)의 황궁씨(黃穹氏) 시대인 서기전25858년 계해년(癸亥年)임을 밝혔으며, 서기전70378년 계해년이 마고(麻姑) 기원(紀元:천부 天符)임을 밝혔음. 
3. 황궁씨를 이은 나반(那般:那般尊者:獨聖者)이 한국(桓國)시대 한인씨(桓因氏) 이전의 임금이던 유인씨(有因氏)이며, 한인씨 7대(代)가 약1,000년을 다스렸다는 것임을 밝혔음. 
4. 윷놀이판의 모습이 천부경(天符經)의 무한조화순환역(無限造化循環易), 음양오행(陰陽五行), 태양태음성력(太陽太陰星曆), 단군조선의 정치행정 구조를 나타낸 것임을 밝혔으며, 하도(河圖)와 낙서(洛書)가 배달나라 시대의 음양오행수리역(陰陽五行數理易)이며, 태호복희 8괘역과 윷놀이판의 역이 지구의 자전(自轉)과 공전(公轉)을 기반으로 한 역(易)임을 밝혔음. 
5. 천제(天帝), 천황(天皇:天王), 천군(天君), 천공(天公), 천후(天侯), 천백(天伯), 천자(天子), 천남(天男)의 위계질서를 최초로 밝히고, 천제자(天帝子)와 천자(天子)의 차이점을 최초로 밝혔으며, 태호복희씨(太皞伏羲氏)가 일반 천자(天子)가 아니라 천지인(天地人) 삼신(三神)에게 제(祭)를 올리는 권한을 가진 제사장인 천군(天君)임을 밝혔음. 
6. 아리랑(阿里嶺) 민요의 원천이 되는 최초의 역사적 사실이 서기전2333년 10월 3일 조선을 건국하기 이전에 있었던 당요(唐堯)의 전란(戰亂)으로 인한 단군왕검(檀君王儉)의 동북 아사달로의 이동과정임을 밝혔음. 
7. 고대중국의 천자로 불리는 요순우(堯舜禹)와 고대일본의 신무왕(神武王)이 단군조선의 반역자(反逆者)이면서 제후인 천자(天子)임을 밝혔음. 
8. 우비(禹碑:우 치수기념 부루공덕 비)의 비문을 국내 최초로 역사적 해석을 하여, 서기전2267년 이후 우(禹)가 치수에 성공한 후 치수법(治水法)을 전수해 준 단군조선 태자부루의 공덕을 새겨 남악(南嶽) 형산(衡山)에 세운 것임을 밝혔음. 
9. 일본 국조신(國祖神)인 천조대신(天照大神)의 사당인 이세신궁(伊勢神宮)에 소장된 원시한글 축문을 국내 최초로 완벽 해독하고, 요하유로 기록된 천조대신이 단군조선 두지주(豆只州) 예읍(濊邑)의 추장(酋長)의 후손임을 밝혔음. 
10. 명도전(明刀錢) 최초 해독학자 허대동선생<저서 고조선문자>의 가림토(加臨土) 해독의 검증에 참여하여 첨수도(尖首刀), 명도전이 단군조선의 화폐이며 새겨진 문자가 단군조선의 상형 및 표음 문자임을 밝혔음. 그 외 다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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