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익인간 270] 단군조선 문화제도 37
나. 표음문자
앞에서 모든 상형문자(象形文字)가 원래 소위 상음문자(象音文字)로서 그 글자를 읽는 발음요소을 포함하고 있는 점에서, 소리글자와 크게 다르지 않는 것이 되는데, 다만, 소리글자는 상형문자의 형태를 벗어나 발음을 나타내는 형태의 글자로 간소하게 변한 것이 된다.
즉, 표음문자는 상형(象形)의 틀을 벗어나 소리를 나타내는 부호로서 기능을 하는 것이 된다. 배달나라 시대부터 이미 상형문자와 소리글자가 일치하는 간단한 형태의 상음문자가 있었던 것이며, 복잡한 형태의 상형문자 속에도 각 표음문자가 되는 자음과 모음의 요소를 가지고 있어 소리글자로 읽을 수 있는 글자가 되는 것인데, 이러한 자음과 모음의 요소가 되는 형태의 글자를 정선하여 대표적인 모양으로 정리한 것이 서기전2181년에 삼랑(三郞) 을보륵(乙普勒) 선인(仙人)이 만든 가림토(加臨土) 38자인 것이다
(1) 가림토 38자 정립 이전의 소리글자
서기전2181년 가림토 38자가 정립되기 이전에도 소리글자인 소위 상음문자와 상형문자의 발음요소가 되는 글자가 배달나라 시대부터 있었다.
이러한 글자는 가림토 38자의 자음과 모음의 각 낱자와 유사한 형태의 글자가 되는데, 음가는 거의 같은 것이라 보면 된다.
가림토 38자 이전의 소리글자가 되는 대표적인 예로서 인도 브라미(Brahmi) 문자를 들 수 있다. 소위 범어(梵語) 즉 산스크리트라 불리는 문자가 곧 브라미 문자로서 서기전2181년 이전의 배달나라 시대와 단군조선 초기에 사용되던 소리글자가 된다.
(2) 정음(正音:바른소리) 가림토(加臨土) 38자
서기전2181년에 삼랑 을보륵에 의하여 가림토 38자가 만들어졌다. 가림토라는 말은 "가리는 말"로서 소리를 구분하는 글자를 의미한다. 다른 말로 정음(正音)이라고 하는데 정음이라는 글자를 훈으로 읽으면 "바른소리"가 되는데 말소리를 바르게 표기하는 글자라는 의미가 된다.
그리하여 서기전2181년에 이미 있던 상형문자에 표음문자가 추가로 정립된 것이다. 가림토 38자의 정립은 특히 상형문자의 소리를 표기하여 지방마다 나라마다 달라지는 발음을 하나로 통일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리하여 단군조선의 상형문자에 대한 단군조선의 발음은 이후 부여삼한을 거쳐 고구려, 백제, 신라, 고려, 조선 시대에 이르기까지 거의 변함없이 이어져 온 것이 된다.
단군조선의 상형문자에 대한 발음이 고대중국에 유통되어 소위 한자(漢字)라는 같은 뜻의 글자에 적용시켜 한나라 시대에 허신이 반절법(半切法)이라는 방식으로 발음을 표기하였던 것이 된다. 이 반절법에 의한 발음과 그 변형된 발음이 차차 지금의 중국어 발음이 된 것이고, 세종대왕 때의 동국정운(東國正韻)의 발음은 당시 중국어 발음을 한글표기로 기록한 것이 된다. 여기서 중국어 발음은 단군조선어에서 변형되어 파생된 또 다른 발음의 말이 되는 것이다.
서기전2181년에 가림토38자가 정립되기 이전에 그 훨씬 전부터 상형문자의 형태가 서서히 표음문자화 되는 과정 즉 소위 상음문자(象音文字) 단계를 밟았던 것이 된다. 즉 상형문자가 상형-표음 문자로 볼 수 있는 과정을 밟아 변형되고 이 상형-표음 문자에서 표음문자가 되는 38자를 추출한 것으로 되는 것이다.
(가) 가림토 38자 정선(精選)
단군조선 초기인 서기전2181년에 만들어졌다는 가림토 38자는 삼랑(三郞) 을보륵(乙普勒)이 처음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당시까지 존재하고 사용되고 있던 글자들을 모아 그 모양이나 소리가 같은 계통으로 각 분류하여 38자로 정리하고서 정선(精選)한 것이 된다.
즉, 굽은 모습을 나타낸 ㄱ과 유사한 모양의 글자는 ㄱ으로 통일하고, 이어진 모습을 나타낸 ㄴ과 같은 모양의 글자는 ㄴ으로 통일하고, 닿아 있으면서 떨어진 모습을 나타내는 ㄷ 또는 C와 유사한 글자는 ㄷ으로 통일하고, 굽으면서 이어지고 당하있으면서 떨어진 모습을 나타내는 글자는 ㄹ로 통일하는 식으로 체계화함으로써 모두 38자로 정리한 것이 된다.
이러한 가림토 38자가 존재하였다른 사실이, 근세 조선시대 세종대왕 시절에 정인지가 지은 훈민정음 해례본의 서문에 기록되어 있다.
[훈민정음 해례본 정인지(鄭麟趾) 서(序)]
천지자연의 소리가 있으니 반드시 천지자연의 글자가 있다. 그래서 옛 사람이 소리에 따라 글자를 만들어 만물의 뜻을 통하게 하고, 삼재(三才)의 도(道)를 실었으므로 후세에도 능히 바뀌지 아니하였다. 그러나, 사방의 풍토가 나뉘어져 다르게 되니 소리의 기운도 역시 따라 달라졌다. 대개 외국의 말은 소리는 있으나 그에 해당하는 글자가 없어 중국의 문자를 빌어 통용케 한 것은 오히려 그 소리에서 벌어지게 하는 것이 되었다. 어찌 능히 통달한다 하여도 착(鑿)이 없으리오? 대개 그 처한 바에 따라 편안하게 할 필요가 있으나 가히 억지로 같게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우리 동방의 예악과 문장은 화하(중화)와 같으나 방언의 말이 그(중화)와 같지 아니하다(有天地自然之聲 則必有天地自然之文 所以古人因聲制子 以通萬物之情 以載三才之道 而後世不能易也. 然四方風土區別 聲氣亦隨而異焉. 蓋外國之語 有其聲而無其字 假中國文字 以通其用 是猶鑿之也. 豈能達而無乎. 要皆各隨所處而安 不可强之使同也. 五東方禮樂文章 擬華夏 但方言之語 不與之同).
<有天地自然之聲>
천지자연의 소리는 곧 천지자연의 법(法)이다. 법(法)은 섭리(攝理)이며 이치(理治)이다. 그리하여 천지자연의 소리, 천음(天音)은 천지자연의 법 즉 천법(天法)이다. 천음(天音)을 나타낸 상징물이 방울(鈴)이다. 이 방울은 천지자연의 소리를 나타낸다. 방울은 태극(太極:二極:음양)을 상징하는 것으로서 천부인(天符印) 삼개 중의 하나이다. 훈민정음은 삼재(三才)의 원리에 따라 이기(二氣) 즉 음양의 이치를 담은 소리글자이다. 즉 천지인의 상징인 ㅇ ㅁ 각의 원리에 입각하여 만든 글자로서 자음과 모음이 모두 이 ㅇ ㅁ 각에서 만들어졌는데, 자음은 발음기관의 모양을 나타내면서 모음은 ㅇ ㅁ 각의 축소상징화된 . ㅡ ㅣ로 구성되면서 음양의 이치를 담고 있는 것이다. 자음과 모음 모두 삼재(三才)의 도(道)를 싣고 있는 이전의 소리글자를 본딴 것이므로 당연한 것이 된다.
서기전7197년 이전의 파미르고원 마고성 시대에 이미 오금(烏金)으로 된 귀걸이를 하고 다녔으며 천음(天音)을 듣기 위한 것이라고 기록되고 있다(박제상 저/김은수 역, 부도지 참조). 첨부인 삼인은 거울, 방울 또는 북, 칼이며, 재질로는 청동거울, 청동방울, 청동검이 대표적이다. 거울은 무극(無極), 일극(一極)으로서 하늘, 태양을 상징하며 천성(天性)을 나타내고, 방울은 이극(二極), 반극(反極), 태극(太極, 음양)으로서천음(天音)으로서 천법(天法)을 나타내며 천지(天地) 즉 하늘과 땅이 원래 하나임을 나타내고, 칼은 삼극(三極), 삼태극(三太極)으로서 천권(天權)을 나타내며, 하늘, 땅, 사람이 원래 하나임을 나타낸다.
서기전7197년경에 천부(天符)가 신표(信標)로 사용되었고, 서기전7197년경부터 서기전6097년경 사이에 해당하는 시기에 천부삼인(天符三印)이라는 용어가 기록되고 있다.
<則必有天地自然之文>
천지자연의 글자는 천지자연의 소리를 나타낸 부호이다. 천지자연의 모습을 나타낸 것이 그림이나 글자인데, 글자에는 크게 그림글자와 소리글자가 있다. 여기서 말하는 천지자연의 글자는 곧 표음문자인 소리글자를 가리킨다. 즉 앞에서 천지자연의 소리가 있고 이에 천지자연의 글자가 있다고 하였기 때문이다. 이는 정인지 선생이 훈민정음 이전에 이미 표음문자가 있었음을 단적으로 나타내 주는 글이다.
<所以古人因聲制子 以通萬物之情 以載三才之道>
옛 사람이 소리에 따라 글자를 만들어 만물의 뜻을 통하게 하고 삼재(三才)의 도(道)를 실었다 하여, 표음문자임을 다시 나타내고 있다. 소리글자로 뜻을 통하게 하였다 하므로 소리글자인 동시에 뜻글자가 되는 것이다. 삼재(三才)는 천지인을 가리키며, ㅇ ㅁ 각을 나타낸다. 이 원방각은 자음의 기본이 되기도 하고, 상징화 되어 . ㅡ ㅣ의 기본모음이 되기도 한다. ㅇ은 하늘이나 태양을 나타내고 둥근모양을 나타내며, ㅁ은 사방이 있는 땅을 나타내고, 각(세모)은 서있는 존재인 사람을 나타낸다. 상징화된 . ㅡ ㅣ는 곧 태양(하늘), 땅, 사람을 나타내는 모음이 된다. 훈민정음의 삼재(三才)의 원리가 이미 옛 사람이 만든 소리글자에 분명히 실려 있다는 것이다. 이는 옛 사람이 만든 표음문자가 삼재의 원리에 따라 만들어진 것임을 단적으로 나타내 주는 것이다.
<而後世不能易也>
후세에 능히 바뀌지 않았다 하므로, 옛 사람이 만든 소리글자가 상당히 오랜기간 동안 사용되어 왔음을 나타낸다. 이는 서기전924년 왕문(王文)에 의하여 만들어진 이두법을 고려하면, 서기전924년 이전에 오랜 기간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然四方風土區別 聲氣亦隨而異焉>
그러나, 사방의 풍토가 나뉘어져 달라지니 소리의 기운도 역시 따라 달라졌다 하는 데서, 단군조선이 망한 때가 되는 서기전238년경 이후 사방의 제후국들이 칭왕을 하면서 독자노선을 걷게 됨으로써 말소리가 달라지게 된 것을 나타낸다. 서기전2333년에 개국된 단군조선이 약150년이 지난 시점인 서기전2181년에 삼랑 을보륵이 정음(바른소리)을 만드니 가림토38자이다. 이때 가림토 글자를 만든 이유가 진서(眞書:상형문자=神篆)가 있었으나 나라마다 소리가 달라지니 이를 통일시키기 위하여 만들었다 한다. 약 1,000년이 지난 서기전1285년에 색불루단군에 의하여 후기조선이 시작되었으나 이때까지도 계속 사용된 것이 되고, 특히 침수도, 첨수도, 명도전이 주조발행된 것으로 보이는 주나라 전국시대까지도 계속 사용된 것으로 된다. 주나라 전국시대는 서기전403년부터 서기전249년까지이다. 단군조선은 서기전238년에 사실상 망하고 서기전239년에 시작된 해모수의 북부여에 의하여 서기전202년에 접수된다. 단군조선이 망하자 특히 진한과 번한의 유민들이 동으로 남으로 이동하여 한반도 남쪽으로 가서 각각 나라를 열었는데, 변한12국이 서기42년에 가야연맹에 의하여 대체될 때, 아라가야가 있었으며, 이 아라가야는 지금의 함안지역에 있었고 유물로 나온 토기 위에 가림토글자가 새겨있는 것으로 보아 이때까지도 계속 사용되어 온 것으로 보인다. 다만, 조정에서는 한자를 사용하거나 이두를 사용하여 표기한 것이 된다. 사방이 나뉘어져 각각의 나라가 되니 문화와 습속 달라지게 되므로 자연히 말소리도 변하게 된다. 그래서 소리의 기운 즉 소리내는 방법이 달라지게 되는 것이다. 서기전2181년 이후에 단군조선의 제후국들이 멀리 떨어져 있는 경우에는 그에 따라 다른 말이 생겼던 것이 분명하며, 서기전660년 일본이 천왕을 참칭하면서 독립을 시도하여 그에 따라 말소리도 달라지게 된 것으로 보인다.
<蓋外國之語 有其聲而無其字 假中國文字 以通其用 是猶鑿之也. 豈能達而無乎. 要皆各隨所處而安 不可强之使同也. 五東方禮樂文章 擬華夏 但方言之語 不與之同>
나라마다 말이 있으나 그 소리에 따른 글자가 모두 있는 것이 아니어서, 중국의 문자를 빌어 사용하였는데, 이것이 오히려 그 소리를 정확히 나타내지 못함으로서 글자와 소리를 벌어지게 한 것이 된다. 아무리 글자에 통달한다 하더라도 글자와 소리를 완전히 일치하게 할 수는 없는 것이다. 대체적으로 각기 처한 바에 따라 편안하게 사용하도록 할 필요는 있으나 억지로 같게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우리 동방(조선)의 예악과 문장은 중국에 견주나, 말은 같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세종대왕이 훈민정음 28자를 창제하시니, 象形而字倣古篆이라 하여 모양을 나타내며 글자는 옛 전자를 본 땄다 함으로써, 훈민정음이 상형문자이자 글자의 모양이 옛 글자를 본딴 것이라 한 것이다. 여기서 상형은 발음기관의 모습을 나타낸 것으로 해석이 되는데, 글자의 모양을 옛 글자에서 본딴 것이라 하므로 소리글자로서 발음기관의 모양을 나타낸 글자라는 것이다.
이상으로 훈민정음 해례본의 정인지 서문의 서두에서 보는 바와 같이, 훈민정음 이전에 이미 오랜기간 동안 천지자연의 소리에 따른 천지자연의 글자를 삼재의 원리에 따라 만들어 사용하였으며, 훈민정음의 글자를 이 글자에서 본딴 것이고, 모양은 발음기관의 모양이 되는 것이다. 바로 이 글자가 곧 단군조선의 가림토 글자가 되는 것이며, 이 가림토 글자가 바로 삼재의 원리에 따라 만든 소리글자임을 단적으로 나타내는 것이 된다.
이제 훈민정음 이전에 이미 소리글자가 있었으며, 한글이 이 소리글자를 본 딴 것임을 부인할 수 없는 것이다. 즉 서기전2181년에 만들어진 가림토38자는 세종대왕의 훈민정음의 기본글자가 되는 것이다. 다만, 훈민정음 신제 당시에 가림토38자, 정음38자, 단군(檀君)조선(朝鮮), 을보륵(乙普勒), 영해박씨, 징심록(澄心錄) 음신지(音信誌) 등을 언급하지 아니한 것이 아쉬울 뿐이다.
훈민정음은 서기전2181년에 만들어진 소리글자 가림토38자를 본딴 것이며, 이 가림토글자는 천지자연의 소리를 나타낸 부호로서 원래 천지자연의 소리와 일치하는 것이고, 천지자연의 소리는 곧 천지자연의 형상이 된다. 천지자연의 모습이 곧 천지자연의 소리인 것이다.
시각과 청각은 느끼는 감각이 다를 뿐이며 모두 천지자연의 소리이다. 천지자연의 소리는 천지자연의 법이며, 이에 따라 형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모습을 가지기 이전의 천지자연은 곧 소리인 것이다. 소리(聲)는 기(氣)이다. 성(聲)은 음(音)이다. 음은 피리 등 악기 소리을 나타내는 글자가 된다. 악기소리가 바로 천지자연의 소리를 나타낸 것이다.
기(氣)는 작용이며, 그 작용의 원천은 바로 신(神)이다. 신(神)이 기(氣)가 되고, 기(氣)가 바탕(質)이 되고, 바탕(質)에서 틀(機)이 잡히며, 틀(機)에서 체(體)가 잡히며, 체에서 형(形)이 나타난다. 소리는 기(氣)로서 만물의 바탕(質)이 되고 기(氣)가 어우러져 때로는 소리로 때로는 모습(形體)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단적으로 보이는 기(氣)는 모습(形象)이며, 보이지 않는 기(氣)는 곧 소리(音, 聲)인 것이다. 소리글자는 천지자연의 소리를 나타낸 글자이고, 천지자연의 소리는 곧 천지자연의 모습이기도 한 것이다. 그래서 그 소리글자는 바로 그 형상을 나타내는 글자로서 상형문자이기도 한 것이다. 이러한 소리글자이자 상형문자인 글자가 바로 천지인의 모습을 담은 가림토이며, 가림토는 천지자연의 소리(聲)을 나타낸 글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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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프로필] 조홍근(曺洪根, 52세). 한문화재단(桓文化財團) 총재. 트위트-페이스북 역사당 부총재. 현 법무사.
30여년 동안 족보(族譜)와 한중일(韓中日) 역사를 연구해 오면서, 부도지(符都誌), 한단고기(桓檀古記), 규원사화(揆園史話), 단기고사(檀奇古史) 등 귀중한 역사자료를 통하여, 우리역사 1만년을 넘어 마고(麻姑) 시대를 포함한 7만2천390년 역사를 밝히고 있음.
1. 홍익인간(弘益人間) 천부(天符)의 역사는 마고성(麻姑城:파미르고원)의 마고(麻姑)시대인 서기전70378년 계해년(癸亥年)부터 시작되었음을 최초로 밝혔음.
2. 역법(曆法)이 시작된 해는 마고성(麻姑城)의 황궁씨(黃穹氏) 시대인 서기전25858년 계해년(癸亥年)임을 밝혔으며, 서기전70378년 계해년이 마고(麻姑) 기원(紀元:천부 天符)임을 밝혔음.
3. 황궁씨를 이은 나반(那般:那般尊者:獨聖者)이 한국(桓國)시대 한인씨(桓因氏) 이전의 임금이던 유인씨(有因氏)이며, 한인씨 7대(代)가 약1,000년을 다스렸다는 것임을 밝혔음.
4. 윷놀이판의 모습이 천부경(天符經)의 무한조화순환역(無限造化循環易), 음양오행(陰陽五行), 태양태음성력(太陽太陰星曆), 단군조선의 정치행정 구조를 나타낸 것임을 밝혔으며, 하도(河圖)와 낙서(洛書)가 배달나라 시대의 음양오행수리역(陰陽五行數理易)이며, 태호복희 8괘역과 윷놀이판의 역이 지구의 자전(自轉)과 공전(公轉)을 기반으로 한 역(易)임을 밝혔음.
5. 천제(天帝), 천황(天皇:天王), 천군(天君), 천공(天公), 천후(天侯), 천백(天伯), 천자(天子), 천남(天男)의 위계질서를 최초로 밝히고, 천제자(天帝子)와 천자(天子)의 차이점을 최초로 밝혔으며, 태호복희씨(太皞伏羲氏)가 일반 천자(天子)가 아니라 천지인(天地人) 삼신(三神)에게 제(祭)를 올리는 권한을 가진 제사장인 천군(天君)임을 밝혔음.
6. 아리랑(阿里嶺) 민요의 원천이 되는 최초의 역사적 사실이 서기전2333년 10월 3일 조선을 건국하기 이전에 있었던 당요(唐堯)의 전란(戰亂)으로 인한 단군왕검(檀君王儉)의 동북 아사달로의 이동과정임을 밝혔음.
7. 고대중국의 천자로 불리는 요순우(堯舜禹)와 고대일본의 신무왕(神武王)이 단군조선의 반역자(反逆者)이면서 제후인 천자(天子)임을 밝혔음.
8. 우비(禹碑:우 치수기념 부루공덕 비)의 비문을 국내 최초로 역사적 해석을 하여, 서기전2267년 이후 우(禹)가 치수에 성공한 후 치수법(治水法)을 전수해 준 단군조선 태자부루의 공덕을 새겨 남악(南嶽) 형산(衡山)에 세운 것임을 밝혔음.
9. 일본 국조신(國祖神)인 천조대신(天照大神)의 사당인 이세신궁(伊勢神宮)에 소장된 원시한글 축문을 국내 최초로 완벽 해독하고, 요하유로 기록된 천조대신이 단군조선 두지주(豆只州) 예읍(濊邑)의 추장(酋長)의 후손임을 밝혔음.
10. 명도전(明刀錢) 최초 해독학자 허대동선생<저서 고조선문자>의 가림토(加臨土) 해독의 검증에 참여하여 첨수도(尖首刀), 명도전이 단군조선의 화폐이며 새겨진 문자가 단군조선의 상형 및 표음 문자임을 밝혔음. 그 외 다수 ----------
2012년 03월 31일 (토) 18:28:59 | 천산(天山) sppopsj@yahoo.co.kr |
앞에서 모든 상형문자(象形文字)가 원래 소위 상음문자(象音文字)로서 그 글자를 읽는 발음요소을 포함하고 있는 점에서, 소리글자와 크게 다르지 않는 것이 되는데, 다만, 소리글자는 상형문자의 형태를 벗어나 발음을 나타내는 형태의 글자로 간소하게 변한 것이 된다.
즉, 표음문자는 상형(象形)의 틀을 벗어나 소리를 나타내는 부호로서 기능을 하는 것이 된다. 배달나라 시대부터 이미 상형문자와 소리글자가 일치하는 간단한 형태의 상음문자가 있었던 것이며, 복잡한 형태의 상형문자 속에도 각 표음문자가 되는 자음과 모음의 요소를 가지고 있어 소리글자로 읽을 수 있는 글자가 되는 것인데, 이러한 자음과 모음의 요소가 되는 형태의 글자를 정선하여 대표적인 모양으로 정리한 것이 서기전2181년에 삼랑(三郞) 을보륵(乙普勒) 선인(仙人)이 만든 가림토(加臨土) 38자인 것이다
(1) 가림토 38자 정립 이전의 소리글자
서기전2181년 가림토 38자가 정립되기 이전에도 소리글자인 소위 상음문자와 상형문자의 발음요소가 되는 글자가 배달나라 시대부터 있었다.
이러한 글자는 가림토 38자의 자음과 모음의 각 낱자와 유사한 형태의 글자가 되는데, 음가는 거의 같은 것이라 보면 된다.
가림토 38자 이전의 소리글자가 되는 대표적인 예로서 인도 브라미(Brahmi) 문자를 들 수 있다. 소위 범어(梵語) 즉 산스크리트라 불리는 문자가 곧 브라미 문자로서 서기전2181년 이전의 배달나라 시대와 단군조선 초기에 사용되던 소리글자가 된다.
(2) 정음(正音:바른소리) 가림토(加臨土) 38자
서기전2181년에 삼랑 을보륵에 의하여 가림토 38자가 만들어졌다. 가림토라는 말은 "가리는 말"로서 소리를 구분하는 글자를 의미한다. 다른 말로 정음(正音)이라고 하는데 정음이라는 글자를 훈으로 읽으면 "바른소리"가 되는데 말소리를 바르게 표기하는 글자라는 의미가 된다.
가림토 38자 | ||
그리하여 서기전2181년에 이미 있던 상형문자에 표음문자가 추가로 정립된 것이다. 가림토 38자의 정립은 특히 상형문자의 소리를 표기하여 지방마다 나라마다 달라지는 발음을 하나로 통일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리하여 단군조선의 상형문자에 대한 단군조선의 발음은 이후 부여삼한을 거쳐 고구려, 백제, 신라, 고려, 조선 시대에 이르기까지 거의 변함없이 이어져 온 것이 된다.
단군조선의 상형문자에 대한 발음이 고대중국에 유통되어 소위 한자(漢字)라는 같은 뜻의 글자에 적용시켜 한나라 시대에 허신이 반절법(半切法)이라는 방식으로 발음을 표기하였던 것이 된다. 이 반절법에 의한 발음과 그 변형된 발음이 차차 지금의 중국어 발음이 된 것이고, 세종대왕 때의 동국정운(東國正韻)의 발음은 당시 중국어 발음을 한글표기로 기록한 것이 된다. 여기서 중국어 발음은 단군조선어에서 변형되어 파생된 또 다른 발음의 말이 되는 것이다.
서기전2181년에 가림토38자가 정립되기 이전에 그 훨씬 전부터 상형문자의 형태가 서서히 표음문자화 되는 과정 즉 소위 상음문자(象音文字) 단계를 밟았던 것이 된다. 즉 상형문자가 상형-표음 문자로 볼 수 있는 과정을 밟아 변형되고 이 상형-표음 문자에서 표음문자가 되는 38자를 추출한 것으로 되는 것이다.
(가) 가림토 38자 정선(精選)
단군조선 초기인 서기전2181년에 만들어졌다는 가림토 38자는 삼랑(三郞) 을보륵(乙普勒)이 처음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당시까지 존재하고 사용되고 있던 글자들을 모아 그 모양이나 소리가 같은 계통으로 각 분류하여 38자로 정리하고서 정선(精選)한 것이 된다.
즉, 굽은 모습을 나타낸 ㄱ과 유사한 모양의 글자는 ㄱ으로 통일하고, 이어진 모습을 나타낸 ㄴ과 같은 모양의 글자는 ㄴ으로 통일하고, 닿아 있으면서 떨어진 모습을 나타내는 ㄷ 또는 C와 유사한 글자는 ㄷ으로 통일하고, 굽으면서 이어지고 당하있으면서 떨어진 모습을 나타내는 글자는 ㄹ로 통일하는 식으로 체계화함으로써 모두 38자로 정리한 것이 된다.
이러한 가림토 38자가 존재하였다른 사실이, 근세 조선시대 세종대왕 시절에 정인지가 지은 훈민정음 해례본의 서문에 기록되어 있다.
[훈민정음 해례본 정인지(鄭麟趾) 서(序)]
천지자연의 소리가 있으니 반드시 천지자연의 글자가 있다. 그래서 옛 사람이 소리에 따라 글자를 만들어 만물의 뜻을 통하게 하고, 삼재(三才)의 도(道)를 실었으므로 후세에도 능히 바뀌지 아니하였다. 그러나, 사방의 풍토가 나뉘어져 다르게 되니 소리의 기운도 역시 따라 달라졌다. 대개 외국의 말은 소리는 있으나 그에 해당하는 글자가 없어 중국의 문자를 빌어 통용케 한 것은 오히려 그 소리에서 벌어지게 하는 것이 되었다. 어찌 능히 통달한다 하여도 착(鑿)이 없으리오? 대개 그 처한 바에 따라 편안하게 할 필요가 있으나 가히 억지로 같게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우리 동방의 예악과 문장은 화하(중화)와 같으나 방언의 말이 그(중화)와 같지 아니하다(有天地自然之聲 則必有天地自然之文 所以古人因聲制子 以通萬物之情 以載三才之道 而後世不能易也. 然四方風土區別 聲氣亦隨而異焉. 蓋外國之語 有其聲而無其字 假中國文字 以通其用 是猶鑿之也. 豈能達而無乎. 要皆各隨所處而安 不可强之使同也. 五東方禮樂文章 擬華夏 但方言之語 不與之同).
<有天地自然之聲>
천지자연의 소리는 곧 천지자연의 법(法)이다. 법(法)은 섭리(攝理)이며 이치(理治)이다. 그리하여 천지자연의 소리, 천음(天音)은 천지자연의 법 즉 천법(天法)이다. 천음(天音)을 나타낸 상징물이 방울(鈴)이다. 이 방울은 천지자연의 소리를 나타낸다. 방울은 태극(太極:二極:음양)을 상징하는 것으로서 천부인(天符印) 삼개 중의 하나이다. 훈민정음은 삼재(三才)의 원리에 따라 이기(二氣) 즉 음양의 이치를 담은 소리글자이다. 즉 천지인의 상징인 ㅇ ㅁ 각의 원리에 입각하여 만든 글자로서 자음과 모음이 모두 이 ㅇ ㅁ 각에서 만들어졌는데, 자음은 발음기관의 모양을 나타내면서 모음은 ㅇ ㅁ 각의 축소상징화된 . ㅡ ㅣ로 구성되면서 음양의 이치를 담고 있는 것이다. 자음과 모음 모두 삼재(三才)의 도(道)를 싣고 있는 이전의 소리글자를 본딴 것이므로 당연한 것이 된다.
서기전7197년 이전의 파미르고원 마고성 시대에 이미 오금(烏金)으로 된 귀걸이를 하고 다녔으며 천음(天音)을 듣기 위한 것이라고 기록되고 있다(박제상 저/김은수 역, 부도지 참조). 첨부인 삼인은 거울, 방울 또는 북, 칼이며, 재질로는 청동거울, 청동방울, 청동검이 대표적이다. 거울은 무극(無極), 일극(一極)으로서 하늘, 태양을 상징하며 천성(天性)을 나타내고, 방울은 이극(二極), 반극(反極), 태극(太極, 음양)으로서천음(天音)으로서 천법(天法)을 나타내며 천지(天地) 즉 하늘과 땅이 원래 하나임을 나타내고, 칼은 삼극(三極), 삼태극(三太極)으로서 천권(天權)을 나타내며, 하늘, 땅, 사람이 원래 하나임을 나타낸다.
서기전7197년경에 천부(天符)가 신표(信標)로 사용되었고, 서기전7197년경부터 서기전6097년경 사이에 해당하는 시기에 천부삼인(天符三印)이라는 용어가 기록되고 있다.
<則必有天地自然之文>
천지자연의 글자는 천지자연의 소리를 나타낸 부호이다. 천지자연의 모습을 나타낸 것이 그림이나 글자인데, 글자에는 크게 그림글자와 소리글자가 있다. 여기서 말하는 천지자연의 글자는 곧 표음문자인 소리글자를 가리킨다. 즉 앞에서 천지자연의 소리가 있고 이에 천지자연의 글자가 있다고 하였기 때문이다. 이는 정인지 선생이 훈민정음 이전에 이미 표음문자가 있었음을 단적으로 나타내 주는 글이다.
<所以古人因聲制子 以通萬物之情 以載三才之道>
옛 사람이 소리에 따라 글자를 만들어 만물의 뜻을 통하게 하고 삼재(三才)의 도(道)를 실었다 하여, 표음문자임을 다시 나타내고 있다. 소리글자로 뜻을 통하게 하였다 하므로 소리글자인 동시에 뜻글자가 되는 것이다. 삼재(三才)는 천지인을 가리키며, ㅇ ㅁ 각을 나타낸다. 이 원방각은 자음의 기본이 되기도 하고, 상징화 되어 . ㅡ ㅣ의 기본모음이 되기도 한다. ㅇ은 하늘이나 태양을 나타내고 둥근모양을 나타내며, ㅁ은 사방이 있는 땅을 나타내고, 각(세모)은 서있는 존재인 사람을 나타낸다. 상징화된 . ㅡ ㅣ는 곧 태양(하늘), 땅, 사람을 나타내는 모음이 된다. 훈민정음의 삼재(三才)의 원리가 이미 옛 사람이 만든 소리글자에 분명히 실려 있다는 것이다. 이는 옛 사람이 만든 표음문자가 삼재의 원리에 따라 만들어진 것임을 단적으로 나타내 주는 것이다.
<而後世不能易也>
후세에 능히 바뀌지 않았다 하므로, 옛 사람이 만든 소리글자가 상당히 오랜기간 동안 사용되어 왔음을 나타낸다. 이는 서기전924년 왕문(王文)에 의하여 만들어진 이두법을 고려하면, 서기전924년 이전에 오랜 기간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然四方風土區別 聲氣亦隨而異焉>
그러나, 사방의 풍토가 나뉘어져 달라지니 소리의 기운도 역시 따라 달라졌다 하는 데서, 단군조선이 망한 때가 되는 서기전238년경 이후 사방의 제후국들이 칭왕을 하면서 독자노선을 걷게 됨으로써 말소리가 달라지게 된 것을 나타낸다. 서기전2333년에 개국된 단군조선이 약150년이 지난 시점인 서기전2181년에 삼랑 을보륵이 정음(바른소리)을 만드니 가림토38자이다. 이때 가림토 글자를 만든 이유가 진서(眞書:상형문자=神篆)가 있었으나 나라마다 소리가 달라지니 이를 통일시키기 위하여 만들었다 한다. 약 1,000년이 지난 서기전1285년에 색불루단군에 의하여 후기조선이 시작되었으나 이때까지도 계속 사용된 것이 되고, 특히 침수도, 첨수도, 명도전이 주조발행된 것으로 보이는 주나라 전국시대까지도 계속 사용된 것으로 된다. 주나라 전국시대는 서기전403년부터 서기전249년까지이다. 단군조선은 서기전238년에 사실상 망하고 서기전239년에 시작된 해모수의 북부여에 의하여 서기전202년에 접수된다. 단군조선이 망하자 특히 진한과 번한의 유민들이 동으로 남으로 이동하여 한반도 남쪽으로 가서 각각 나라를 열었는데, 변한12국이 서기42년에 가야연맹에 의하여 대체될 때, 아라가야가 있었으며, 이 아라가야는 지금의 함안지역에 있었고 유물로 나온 토기 위에 가림토글자가 새겨있는 것으로 보아 이때까지도 계속 사용되어 온 것으로 보인다. 다만, 조정에서는 한자를 사용하거나 이두를 사용하여 표기한 것이 된다. 사방이 나뉘어져 각각의 나라가 되니 문화와 습속 달라지게 되므로 자연히 말소리도 변하게 된다. 그래서 소리의 기운 즉 소리내는 방법이 달라지게 되는 것이다. 서기전2181년 이후에 단군조선의 제후국들이 멀리 떨어져 있는 경우에는 그에 따라 다른 말이 생겼던 것이 분명하며, 서기전660년 일본이 천왕을 참칭하면서 독립을 시도하여 그에 따라 말소리도 달라지게 된 것으로 보인다.
<蓋外國之語 有其聲而無其字 假中國文字 以通其用 是猶鑿之也. 豈能達而無乎. 要皆各隨所處而安 不可强之使同也. 五東方禮樂文章 擬華夏 但方言之語 不與之同>
나라마다 말이 있으나 그 소리에 따른 글자가 모두 있는 것이 아니어서, 중국의 문자를 빌어 사용하였는데, 이것이 오히려 그 소리를 정확히 나타내지 못함으로서 글자와 소리를 벌어지게 한 것이 된다. 아무리 글자에 통달한다 하더라도 글자와 소리를 완전히 일치하게 할 수는 없는 것이다. 대체적으로 각기 처한 바에 따라 편안하게 사용하도록 할 필요는 있으나 억지로 같게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우리 동방(조선)의 예악과 문장은 중국에 견주나, 말은 같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세종대왕이 훈민정음 28자를 창제하시니, 象形而字倣古篆이라 하여 모양을 나타내며 글자는 옛 전자를 본 땄다 함으로써, 훈민정음이 상형문자이자 글자의 모양이 옛 글자를 본딴 것이라 한 것이다. 여기서 상형은 발음기관의 모습을 나타낸 것으로 해석이 되는데, 글자의 모양을 옛 글자에서 본딴 것이라 하므로 소리글자로서 발음기관의 모양을 나타낸 글자라는 것이다.
이상으로 훈민정음 해례본의 정인지 서문의 서두에서 보는 바와 같이, 훈민정음 이전에 이미 오랜기간 동안 천지자연의 소리에 따른 천지자연의 글자를 삼재의 원리에 따라 만들어 사용하였으며, 훈민정음의 글자를 이 글자에서 본딴 것이고, 모양은 발음기관의 모양이 되는 것이다. 바로 이 글자가 곧 단군조선의 가림토 글자가 되는 것이며, 이 가림토 글자가 바로 삼재의 원리에 따라 만든 소리글자임을 단적으로 나타내는 것이 된다.
이제 훈민정음 이전에 이미 소리글자가 있었으며, 한글이 이 소리글자를 본 딴 것임을 부인할 수 없는 것이다. 즉 서기전2181년에 만들어진 가림토38자는 세종대왕의 훈민정음의 기본글자가 되는 것이다. 다만, 훈민정음 신제 당시에 가림토38자, 정음38자, 단군(檀君)조선(朝鮮), 을보륵(乙普勒), 영해박씨, 징심록(澄心錄) 음신지(音信誌) 등을 언급하지 아니한 것이 아쉬울 뿐이다.
훈민정음은 서기전2181년에 만들어진 소리글자 가림토38자를 본딴 것이며, 이 가림토글자는 천지자연의 소리를 나타낸 부호로서 원래 천지자연의 소리와 일치하는 것이고, 천지자연의 소리는 곧 천지자연의 형상이 된다. 천지자연의 모습이 곧 천지자연의 소리인 것이다.
시각과 청각은 느끼는 감각이 다를 뿐이며 모두 천지자연의 소리이다. 천지자연의 소리는 천지자연의 법이며, 이에 따라 형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모습을 가지기 이전의 천지자연은 곧 소리인 것이다. 소리(聲)는 기(氣)이다. 성(聲)은 음(音)이다. 음은 피리 등 악기 소리을 나타내는 글자가 된다. 악기소리가 바로 천지자연의 소리를 나타낸 것이다.
기(氣)는 작용이며, 그 작용의 원천은 바로 신(神)이다. 신(神)이 기(氣)가 되고, 기(氣)가 바탕(質)이 되고, 바탕(質)에서 틀(機)이 잡히며, 틀(機)에서 체(體)가 잡히며, 체에서 형(形)이 나타난다. 소리는 기(氣)로서 만물의 바탕(質)이 되고 기(氣)가 어우러져 때로는 소리로 때로는 모습(形體)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단적으로 보이는 기(氣)는 모습(形象)이며, 보이지 않는 기(氣)는 곧 소리(音, 聲)인 것이다. 소리글자는 천지자연의 소리를 나타낸 글자이고, 천지자연의 소리는 곧 천지자연의 모습이기도 한 것이다. 그래서 그 소리글자는 바로 그 형상을 나타내는 글자로서 상형문자이기도 한 것이다. 이러한 소리글자이자 상형문자인 글자가 바로 천지인의 모습을 담은 가림토이며, 가림토는 천지자연의 소리(聲)을 나타낸 글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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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프로필] 조홍근(曺洪根, 52세). 한문화재단(桓文化財團) 총재. 트위트-페이스북 역사당 부총재. 현 법무사.
1. 홍익인간(弘益人間) 천부(天符)의 역사는 마고성(麻姑城:파미르고원)의 마고(麻姑)시대인 서기전70378년 계해년(癸亥年)부터 시작되었음을 최초로 밝혔음.
2. 역법(曆法)이 시작된 해는 마고성(麻姑城)의 황궁씨(黃穹氏) 시대인 서기전25858년 계해년(癸亥年)임을 밝혔으며, 서기전70378년 계해년이 마고(麻姑) 기원(紀元:천부 天符)임을 밝혔음.
3. 황궁씨를 이은 나반(那般:那般尊者:獨聖者)이 한국(桓國)시대 한인씨(桓因氏) 이전의 임금이던 유인씨(有因氏)이며, 한인씨 7대(代)가 약1,000년을 다스렸다는 것임을 밝혔음.
4. 윷놀이판의 모습이 천부경(天符經)의 무한조화순환역(無限造化循環易), 음양오행(陰陽五行), 태양태음성력(太陽太陰星曆), 단군조선의 정치행정 구조를 나타낸 것임을 밝혔으며, 하도(河圖)와 낙서(洛書)가 배달나라 시대의 음양오행수리역(陰陽五行數理易)이며, 태호복희 8괘역과 윷놀이판의 역이 지구의 자전(自轉)과 공전(公轉)을 기반으로 한 역(易)임을 밝혔음.
5. 천제(天帝), 천황(天皇:天王), 천군(天君), 천공(天公), 천후(天侯), 천백(天伯), 천자(天子), 천남(天男)의 위계질서를 최초로 밝히고, 천제자(天帝子)와 천자(天子)의 차이점을 최초로 밝혔으며, 태호복희씨(太皞伏羲氏)가 일반 천자(天子)가 아니라 천지인(天地人) 삼신(三神)에게 제(祭)를 올리는 권한을 가진 제사장인 천군(天君)임을 밝혔음.
6. 아리랑(阿里嶺) 민요의 원천이 되는 최초의 역사적 사실이 서기전2333년 10월 3일 조선을 건국하기 이전에 있었던 당요(唐堯)의 전란(戰亂)으로 인한 단군왕검(檀君王儉)의 동북 아사달로의 이동과정임을 밝혔음.
7. 고대중국의 천자로 불리는 요순우(堯舜禹)와 고대일본의 신무왕(神武王)이 단군조선의 반역자(反逆者)이면서 제후인 천자(天子)임을 밝혔음.
8. 우비(禹碑:우 치수기념 부루공덕 비)의 비문을 국내 최초로 역사적 해석을 하여, 서기전2267년 이후 우(禹)가 치수에 성공한 후 치수법(治水法)을 전수해 준 단군조선 태자부루의 공덕을 새겨 남악(南嶽) 형산(衡山)에 세운 것임을 밝혔음.
9. 일본 국조신(國祖神)인 천조대신(天照大神)의 사당인 이세신궁(伊勢神宮)에 소장된 원시한글 축문을 국내 최초로 완벽 해독하고, 요하유로 기록된 천조대신이 단군조선 두지주(豆只州) 예읍(濊邑)의 추장(酋長)의 후손임을 밝혔음.
10. 명도전(明刀錢) 최초 해독학자 허대동선생<저서 고조선문자>의 가림토(加臨土) 해독의 검증에 참여하여 첨수도(尖首刀), 명도전이 단군조선의 화폐이며 새겨진 문자가 단군조선의 상형 및 표음 문자임을 밝혔음. 그 외 다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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