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익인간 271] 단군조선 문화제도 38
2012년 04월 01일 (일) 10:53:47 | 천산(天山) sppopsj@yahoo.co.kr |
(나) 가림토 38자의 음가
가림토 38자의 음가는 훈민정음의 자음과 모음의 음가와 다르지 않은 것이 된다. 즉, 같은 글자의 자음은 가림토의 음가가 훈민정음의 음가가 동일한 것이며, 같은 글자의 모음 또한 음가가 동일한 것이 된다.
단지, 가림토 38자에는 있고 훈민정음 28자에는 없는 글자가 되는, X는 ㄱㅅ, ㅋㅅ, ㅎ에 해당하는 것이 되고, ㅡ 아래 ㅈ은 ㅉ이 되며, ㅅ 아래 ㅁ은 ㅅㅁ으로 ㅁㅁ과 같은 소리가 되고, ㅅ 아래 ㄷ은 ㅅㄷ으로 ㄸ과 같은 소리이며, M은 ㅅㄱ이 되고, ㅣ 뒤에 ㄷ은 디의 구개음화된 소리로 “치” 소리가 되며, ㅐ는 ㅂ이 되고, ㅒ는 ㅃ이 되며, ㅡ 아래 △은 ㅆ의 유성음이 되고, ㅡ 아래 ㄱ은 ㄲ이 되며, 工은 ㄴ의 쌍자음 즉 ㄴㄴ 소리가 되고, ㅡ 아래 ㅍ은 ㅍ의 쌍자음이 된다.
(다) 상형문자의 표준음 정립
서기전2181년에 가림토 38자가 정리된 이유는 당시에 사용되던 상형문자의 읽는 소리를 통일하기 위한 것이다.
즉, 당시 상형문자이던 참글 즉 진서(眞書:神篆)를 읽는 소리가 10리(里)의 읍(邑)마다 100리(里)의 나라마다 모두 달라져 의사소통에 장애가 생기므로, 이 상형문자를 읽는 소리를 통일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것이 된다.
(라) 상형문자를 읽는 소리 - 음독(音讀)과 훈독(訓讀)
상형문자를 읽는 소리는 그 글자의 모습을 보고 자음과 모음을 어떻게 구분하여 읽느냐에 따라 다르게 읽힐 수도 있게 되는데, 이리하여 상형문자를 읽는 소리로서 하나만이 아니라 글자의 모양에 따라 한가지 이상 생겨나게 되는데, 이리하여 소위 음독(音讀)과 훈독(訓讀)이 생겨난 것이 된다.
즉, 상형문자인 참글(眞書:神篆)의 글자 모습이 시대가 흐름에 따라 간소화 하는 과정을 밟게 되는데, 이러한 과정에서 읽히는 글자의 소리가 두가지 정도로 나게 되어 음독과 훈독으로 불리게 되는 경우로 나타난 것이 된다.
예를 들면, 소를 가리키는 牛라는 글자는 뿔을 가진 소(牛)의 모습을 나타낸 글자가 변형된 모습의 글자인데, 가림토식의 자음과 모음으로 나누어 읽는다면, 그 글자의 모습이 ㅅ ㅣ ㅡ가 되어 “쇼 (또는 셔)”에 가까운 소리가 되고, 이 “쇼”라는 소리가 시대가 흐름에 따라 중모음이 단모음화 되어 “소”가 되고, 한편 모음이 변음되어 “슈”가 되며 이어 자음이 유성음화 되어 “유”가 되고, 다시 중모음이 단모음으로 변음되어 “우”가 되는 과정을 거치게 되는데, 여기서 지금까지 남아 있는 소리인 “소”와 “우”라는 소리를 “牛”라는 글자를 읽는 소리로 하여 “소 우”라고 읽는 것이 된다.
다. 가림토 38자 외의 소리글자
가림토 38자는 유사한 글자를 계통으로 분류하여 가장 대표성 있는 글자를 한자식 정선하여 몯 38자로 정리한 것이 되는데, 어디까지나 가림토38자는 견본이 되는 글자이며 그 글자체의 모습이 변화무상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것이 된다. 이는 사람마다 같은 글자를 쓴다 하더라도, 그 글자를 쓰는 모습이나 주어지는 힘 등이 모두 다르므로 그 결과 쓰여진 글자 또한 그 모양이 달라지는 것과 같은 이치가 된다.
역사적으로 단군조선의 화폐가 되는 소위 명도전(明刀錢)에 새겨진 문자에는, 상형문자만이 아니라 소리글자인 가림토 글자가 상형모양으로 새겨진 것으로 볼 수 있는 글자들이 수없이 많다.
단군조선의 상형문자는 가림토 38자가 정립되기 이전부터 자음과 모음을 각각 나타내는 글자의 혼합된 상태가 되는 소위 상형-표음 문자로 변형발전되었던 것이 되고, 이러한 글자의 형태는 가림토 38자가 만들어진 이후까지 줄곧 쓰여진 것이 된다. 특히 가림토38자가 정립된 이후에는 상형문자를 그 글자의 소리를 나타내는 자음과 모음을 혼합하여 표기하는 방식으로 적기도 하였던 것이 되는데, 이러한 글자형태가 바로 단군조선의 화페가 되는 소위 첨수도(尖首刀), 침수도(針首刀), 명도전(明刀錢)에 수없이 남아 있다. 상형문자를 자음과 모음을 혼합한 방식으로 새겨진 글자를 소위 상형-표음 문자라 할 수 있겠다.
갑골문은 거북의 등껍질이나 소뼈 등에 새긴 글자인데, 은(殷)나라는 서기전1766년부터 서기전1122년 사이에 약645년간 존재한 나라이고, 단군조선은 서기전2333년부터 서기전232년 사이에 2,102년간 존재한 나라가 되는데, 은나라보다 약600년 이전에 건국되었다. 이 은나라의 문자가 되는 소위 갑골문자는 상형문자이면서 가림토식의 자음과 모음으로 읽히는 글자가 되는데, 상형-표음 문자라 할 수 있겠다.
한편, 은나라 말기나 주나라 초기에 나타나는 소위 금문(金文)은 갑골문에 비하여 부드러운 서체가 되는데, 기본적으로는 상형문자이나 그 읽는 소리는 갑골문에 준하는 글자가 될 것이며, 단군조선과 주나라의 빈번한 상호교류 관계로 보아 상형문자를 공유한 것이 되는 바, 단군조선의 제후국이 되는 기후국의 방정과 고죽국의 방정이 이를 입증해 주는 것이 된다.
금문(金文) | ||
단군조선은 서기전2333년경에 이미 청석(靑石)을 재료로 하여 글을 남겼다. 그리고 서기전1122년경 목판(木板)에 글을 새겼다. 그외에 소위 우골(牛骨)문자가 유물로 나타난다. 즉, 글자를 쓰는 재료가 있었으므로 글자를 쓰는 방법이 당연히 있었던 것이고, 글자의 모습 즉 서체(書體)가 있었던 것이 된다. 소리글자인 가림토 글자와 연관시켜 보면 소위 명도전 등에 새겨진 문자의 형태는 주물형태이므로 끝이나 선의 모양이 부드러운 반면에, 갑골문의 글자 형태는 칼 등으로 긁은 모양이 되어 선이 날카로운 모양이 된다.
서기전209년 이후에 시작된 한반도에서의 후삼한 시대를 지나 서기42년에 시작된 가야시대에서 지금의 함안에 자리잡은 아라가야가 있는데, 이 아라가야의 출토유물 중에서 토기에는 단군조선 시대의 가림토 글자가 되는 문자들이 많이 새겨져 있다. 즉, 아라가야의 토기에 새겨진 문자는 곧 단군조선 시대의 가림토 글자가 되는 것이며, 가림토38자에 없는 형태의 글자들이 있는데 단순한 상형문자가 아닌 소리글자임에 틀림없는 것이 된다.
또, 서기전660년에 시작된 것으로 되는 일본의 소위 왜왕조(倭王朝) 이전의 시기를 소위 신대(神代)라 부르는데, 이 신대에 해당하는 시기에 만들어졌다는 신대문자가 일본 땅에 많이 남아 있는 바, 이 신대문자가 거의 단군조선의 가림토 38자에 해당하는 글자가 되며, 특히 응용되어 만들어진 글자도 있다.
工이라는 글자는 가림토 38자에서는 ㄴ의 쌍자음에 해당하는 소리로서 “, 나”로 읽히는 글자가 되는데, 일본의 이세신궁의 소장문헌에 나타나는 원시한글에 있는 工과 유사한 글자는 ㅣ의 모음을 2등분한 글자로서 반자음 “이[y]”의 소리가 된다.
또, ㄷ의 좌우를 바꾼 글자를 ㄹ 글자로 사용하고 있으며, ㅅ 아래 ㅇ을 쓴 글자는 ㅎ 글자로 사용한 것이 된다.
돌궐족은 역사상 단군조선의 한 부족에 해당하는 견족(畎族:견이)의 후예가 되는데, 서기7~8세기에 이르러 나라를 세우기도 하면서 문자를 사용하였는데, 이를 돌궐문자라 하는 바, 그 글자들의 모든 형태가 단군조선 시대에 사용되던 상형문자에서 딴 것이 되는데, 결국 가림토 글자와 같거나 유사한 형태인 것이며, 다만 글자들의 발음이 가림토식 발음과 다른 것이 된다. 이는 시대가 흐름에 따라 글자를 읽는 방법이 다르거나 변음 즉 소리가 변화된 것으로 빚어진 결과가 될 것이다.
라. 칼돈(刀錢:명도전)에 새겨진 표음문자
넓게는 첨수도와 명도전에 새겨진 모든 글자가 소리글자에 해당하게 된다. 즉, 첨수도나 명도전에 새겨진 글자인 상형문자가 단순한 상형문자가 아니라 소리글자로 읽혀지는 상형문자인 것이며, 여기서 나아가 상형-표음 문자로 발전하고 다시 표음-상형 문자로 발전하며, 다시 최종적으로 순수한 표음문자로 발전하게 된 것으로 된다.
원래 표음문자가 상형문자에서 나왔으니 상형문자이기도 하지만 발음을 표기하는 수단에서 나아가, 그 글자의 상형의 뜻을 초월하여 단어가 되고, 다시 문장을 표현하는 방식으로 발전하면 순수한 표음문자 즉 소리글자로 정착되는 것이 된다.
첨수도보다 명도전에는 순수한 표음문자로 해독되는 글자가 많은 것이 된다. 즉, 원래의 상형을 초월하여 순수한 소리글자로써 새겨진 것이 된다. 물론, 훈민정음의 글쓰는 방식과는 다소 체계화 되어 있지 아니하나 자음과 모음의 결합으로 읽는 방식은 같은 것이 된다.
가림토 38자가 정립된 이후에 특히 가림토 글자를 상형화하여 자음과 모음을 구분하여 상형문자로 새긴 글자를 표음-상형 문자라 할 수 있는데, 이러한 글자 또한 첨수도, 침수도, 명도전에 수없이 남아 있다. 서기전1680년에 주조된 자모전(子母錢)은 이 표음-상형 문자를 새긴 도전으로 여겨진다. 원래는 상형문자가 변형되어 자음과 모음이 혼합된 상형-표음문자였으나 표음부분의 자음과 모음을 구분하여 적는 방식으로 표음-상형 문자가 출현한 것이 된다.
소위 첨수도, 침수도, 명도전에 새겨진 글자 중에는 순수한 표음문자 즉 가림토38자를 이용한 글자도 있다. 이두식으로 상형문자를 표음문자로 활용한 사례도 발견된다. 그리하여 서기전924년경 왕문이 부예와 이두법을 만들 때 이전의 상형-표음 문자나 표음-상형 문자를 본따 부예를 만든 것이 되고, 이두법을 정립한 것이 될 것이다.
첨수도, 침수도는 단군조선 초기 및 은나라 초기가 되는 서기전1600년경 이전부터 주조된 것으로 되며, 명도전은 은나라 후기 또는 주나라 초기에 주조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첨수도, 침수도, 명도전은 원래 고대중국의 은, 주, 연, 제 나라의 화폐가 아니라 단군조선에서 주조되고 사용된 화폐였던 것이며, 후대에 제나라나 연나라가 별도로 이전의 명도전을 본 따 만들었을 수도 있다. 제명도, 연명도의 주조연대를 밝히면 그 역사적 과정을 더 확실히 알 수 있게 된다.
이후 가림토38자는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시대에 고대중국과의 교류로 인하여, 단군조선의 상형문자이던 신전(진서)이 하나라와 은나라 때 서로 유통이 거의 단절되다시피 하였다가 은나라가 망하고 주나라가 되면서 상통하게 되면서 동화된 상형문자인 소위 한자를 주로 씀으로서 세종대왕이 훈민정음28자를 신제하기 전까지는 기록에만 남아 있게 되고 거의 소장되다시피 하였던 것이 된다.
은갑골문은 단적으로 배달나라의 조족문이나 과두문이 황제헌원의 나라에 유통된 이후 약1,000년이 지나면서 변형발전된 상형문자이다. 서기전2224년에 우가 단군조선에 반역하여 자칭 하왕이라 하면서 독단으로 폐쇄정치를 함으로써 단군조선과의 교류가 뜸해져 문자와 말이 완전히 달라지게 되었고, 은나라 때도 문자의 유통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아 은나라가 망한 때인 서기전1122년경에 이미 은갑골문과 단군조선의 신전(진서) 문자가 많이 달라져 있었던 것이다. 물론 서로 상통하는 문자도 많았던 것은 사실로 보인다.
중국학자들조차 단군조선의 화폐라고 보고 있는 첨수도, 침수도에는 명도전 이전의 문자가 새겨져 있는데 상형문자, 상형-표음문자로 볼 수 있는 문자들이다. 명도전에는 상형문자, 상형-표음문자, 표음-상형문자, 표음문자, 이두식 문자 등이 새겨져 있다.
고대중국의 문자가 되는 은갑골문 이후의 문자가 아닌 특유한 문자가 새겨진 첨수도, 침수도, 명도전 상의 글자는 100% 단군조선의 문자이며, 이 글자를 연구하여 해독하고 해석함으로서 단군조선 시대의 언어, 문자, 정치, 제도, 문화, 역사 등을 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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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프로필] 조홍근(曺洪根, 52세). 한문화재단(桓文化財團) 총재. 트위트-페이스북 역사당 부총재. 현 법무사.
30여년 동안 족보(族譜)와 한중일(韓中日) 역사를 연구해 오면서, 부도지(符都誌), 한단고기(桓檀古記), 규원사화(揆園史話), 단기고사(檀奇古史) 등 귀중한 역사자료를 통하여, 우리역사 1만년을 넘어 마고(麻姑) 시대를 포함한 7만2천390년 역사를 밝히고 있음.
1. 홍익인간(弘益人間) 천부(天符)의 역사는 마고성(麻姑城:파미르고원)의 마고(麻姑)시대인 서기전70378년 계해년(癸亥年)부터 시작되었음을 최초로 밝혔음.
2. 역법(曆法)이 시작된 해는 마고성(麻姑城)의 황궁씨(黃穹氏) 시대인 서기전25858년 계해년(癸亥年)임을 밝혔으며, 서기전70378년 계해년이 마고(麻姑) 기원(紀元:천부 天符)임을 밝혔음.
3. 황궁씨를 이은 나반(那般:那般尊者:獨聖者)이 한국(桓國)시대 한인씨(桓因氏) 이전의 임금이던 유인씨(有因氏)이며, 한인씨 7대(代)가 약1,000년을 다스렸다는 것임을 밝혔음.
4. 윷놀이판의 모습이 천부경(天符經)의 무한조화순환역(無限造化循環易), 음양오행(陰陽五行), 태양태음성력(太陽太陰星曆), 단군조선의 정치행정 구조를 나타낸 것임을 밝혔으며, 하도(河圖)와 낙서(洛書)가 배달나라 시대의 음양오행수리역(陰陽五行數理易)이며, 태호복희 8괘역과 윷놀이판의 역이 지구의 자전(自轉)과 공전(公轉)을 기반으로 한 역(易)임을 밝혔음.
5. 천제(天帝), 천황(天皇:天王), 천군(天君), 천공(天公), 천후(天侯), 천백(天伯), 천자(天子), 천남(天男)의 위계질서를 최초로 밝히고, 천제자(天帝子)와 천자(天子)의 차이점을 최초로 밝혔으며, 태호복희씨(太皞伏羲氏)가 일반 천자(天子)가 아니라 천지인(天地人) 삼신(三神)에게 제(祭)를 올리는 권한을 가진 제사장인 천군(天君)임을 밝혔음.
6. 아리랑(阿里嶺) 민요의 원천이 되는 최초의 역사적 사실이 서기전2333년 10월 3일 조선을 건국하기 이전에 있었던 당요(唐堯)의 전란(戰亂)으로 인한 단군왕검(檀君王儉)의 동북 아사달로의 이동과정임을 밝혔음.
7. 고대중국의 천자로 불리는 요순우(堯舜禹)와 고대일본의 신무왕(神武王)이 단군조선의 반역자(反逆者)이면서 제후인 천자(天子)임을 밝혔음.
8. 우비(禹碑:우 치수기념 부루공덕 비)의 비문을 국내 최초로 역사적 해석을 하여, 서기전2267년 이후 우(禹)가 치수에 성공한 후 치수법(治水法)을 전수해 준 단군조선 태자부루의 공덕을 새겨 남악(南嶽) 형산(衡山)에 세운 것임을 밝혔음.
9. 일본 국조신(國祖神)인 천조대신(天照大神)의 사당인 이세신궁(伊勢神宮)에 소장된 원시한글 축문을 국내 최초로 완벽 해독하고, 요하유로 기록된 천조대신이 단군조선 두지주(豆只州) 예읍(濊邑)의 추장(酋長)의 후손임을 밝혔음.
10. 명도전(明刀錢) 최초 해독학자 허대동선생<저서 고조선문자>의 가림토(加臨土) 해독의 검증에 참여하여 첨수도(尖首刀), 명도전이 단군조선의 화폐이며 새겨진 문자가 단군조선의 상형 및 표음 문자임을 밝혔음. 그 외 다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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