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뿌리를 찾아서)/홍익인간 7만년 역사

[홍익인간 273] 단군조선 문화제도 40

양해천 2018. 1. 22. 11:49

[홍익인간 273] 단군조선 문화제도 40

2012년 04월 03일 (화) 09:07:16천산(天山)  sppopsj@yahoo.co.kr

7. 고대중국의 배달나라 상형문자 도입과 중국어의 분화(分化) 

지금 소위 중국과 중국인이 사용하고 있는 글자는 소위 한자(漢字)이거나 한자에서 변형된 간체자(簡體字)라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의 중국의 대표적인 공식언어는 소위 한어(漢語)라고도 하는 중국어가 된다. 그리하여, 중국의 공식적 글자와 공식적인 언어는 한자(漢字)와 한어(漢語)에 뿌리를 두는 것이 된다. 

그렇다면, 한자와 한어는 어떠한 역사를 가질까? 즉, 한자와 한어는 언제, 어디서, 누가, 무엇으로, 어떻게, 왜 만들었을까? 이에 관하여 살펴보기로 한다. 

가. 한자(漢字)의 역사 - 배달나라 문자를 도입하다 

한자(漢字)는 단적으로 상형문자이다. 고대중국의 역사 속에서 한자의 원류는 진(秦)나라 시대 문자이며, 진나라 이전의 문자는 소위 전국칠웅(戰國七雄)의 문자이며, 그 이전에는 주(周)나라 문자이고, 그 이전으로는 은(殷)나라의 문자이며 그 이전으로는 하(夏)나라 문자이고, 그 이전으로는 요순(堯舜) 시대의 문자이며, 그 이전으로는 황제헌원(黃帝軒轅)이 왕으로 있던 유웅국(有熊國)의 문자였던 것이 된다. 

서기전2698년 계해년에 헌원이 공손씨(公孫氏)를 이어 유웅국의 천자(天子)가 되었으며, 당시 염제신농국(炎帝神農國)이 쇠퇴하면서 여러 제후들이 땅을 다투기 시작하였는데, 이때 배달나라의 종주이던 제14대 치우천왕(治尤天王)이 서기전2697년 갑자년에 염제신농국을 평정하여 염제 제8대 유망(楡罔)의 아들 괴(魁)를 다시 단웅국(檀熊國)에 봉하였던 것이며, 이후 헌원이 군사를 일으켜 치우천왕에게 10년을 넘게 총 100여회를 도전하였는 바, 연전연패 한 후 결국 헌원은 자부선인(紫府仙人)의 도(道)에 대한 가르침을 전수받아 진정한 신하로서 치우천왕에게 굴복하여 황제(黃帝)로서 정식 천자로 인정되었던 것이다. 

황제헌원은 창힐(倉詰)에게서 문자를 전수받았는데 곧 배달나라 문자이던 소위 과두문(蝌蚪文:올챙이 문자) 또는 조족문(鳥足文:새 발자국 문자)이었다. 실제 역사상으로 창힐은 황제헌원의 신하가 아니라 배달나라의 동부(東部)의 책임자인 청제(靑帝)였던 것이며, 배달나라의 문자를 배워 소위 과두문과 조족문을 창안하였던 인물이 된다. 

배달나라의 상형문자를 도입한 황제헌원은 자신의 나라인 유웅국 백성들에게 사용하게 하였던 것이며, 이 상형문자로 된 문장을 일반 의사소통의 도구로 사용하게 함으로써 점차 배달나라의 언어가 되는 교착어 대신에 이 상형문자로 된 소위 문장언어를 사용하게 되었던 것으로 된다. 

이상으로, 지금의 중국(中國)이 사용하고 있는 문자인 소위 한자(漢字)는, 서기전2698년경 유웅국(有熊國)의 왕이던 황제헌원(黃帝軒轅)이 배달나라 문자이던 창힐(倉詰)의 과두문 또는 조족문을 도입하여, 백성들의 일상 의사소통 도구로서 상용(常用)하게 하였던 데서 연유한 것이 된다. 

나. 한어(漢語:중국어)의 분화(分化) - 문장언어인 고립어가 되다 

황제헌원을 비롯한 유웅국 백성들이 상용하게 된 상형문자로써 일상 의사소통의 도구로 사용하게 되니, 이는 소위 문장언어(文章言語)를 사용하게 되는 것이다. 

이로써 특히 상형문자로 된 문장언어는 뜻글자로만 조합되고 특별히 조사(助詞)를 붙이지 아니하므로 소위 고립어(孤立語)식의 문장이 되니, 자연히 유웅국 백성들이 사용하는 말은 고립어(孤立語)가 되는 것으로 된다. 

이러하기를 여러 대를 거듭하게 되자 소위 문장언어로 고착화 되어 그들 유웅국의 공식적인 언어로 정착하게 되었던 것으로 되는데, 이러한 언어적 습관이 약 1,000년 이상 내려오는 사이에 굳어져 하나의 언어로 정착된 것이다. 단적으로 수입한 언어는 그 순서를 바꾸지 못한다. 만약 단어의 순서를 바꾸게 되면 의사전달이 거의 불가능하게 되는데, 이때에는 새로운 어법이 형성되어 또 다른 형태의 언어가 만들어지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즉, 지금의 중국어는 배달나라 시대의 문장언어의 형식을 이어온 것이 된다. 

중국의 역사기록으로 보면, 중국의 역사는 서기전3528년경 태호복희에서 시작된다. 태호복희는 배달나라 한웅(桓雄)의 아들로서 중국의 입장에서는 천강(天降)의 역사이다. 그래서 서기전220년경 진시황(秦始皇) 시대 인물인 서복(徐福)은 태호복희의 역사를 하늘나라에서 내려와 세워진 천강(天降)의 역사로 기록한다. 즉 고대중국의 역사는 배달겨레의 갈래의 역사인 것이다. 

황제헌원은 배달나라 제후국인 유웅국(有熊國)의 왕으로서 중부(中部)의 천자(天子)인 황제(黃帝)라 불리는 인물이고, 동시대에 존재하였던 창힐(倉詰)은 당시 황제(黃帝)와 동격에 해당하는 청제(靑帝)였다. 즉 창힐은 배달나라의 오방(五方) 중 동방(東方)의 천자(天子)로서 오제(五帝)의 하나였던 것이다. 

창힐은 배달나라 문자인 상형문자를 황제헌원에게 전수(傳授)하여 주었던 것이 되는데, 직접 가르쳐 주었다기보다 문자담당관을 황제헌원에게 보내 주어 가르치게 하였던 것으로 이해된다. 이리하여 유웅국도 문자 전문가를 두어 나라를 다스렸던 것이 된다. 

배달나라 시대에 상형문자는 이미 6서법(書法)이 정립되어 있었다. 즉 지사(指事), 상형(象形), 회의(會意), 형성(形聲), 가차(假借), 전주(轉注)라는 6가지 글자를 만드는 서법이 있었던 것이다. 즉 의사를 전달하는 데 필요한 문자표기법(文字表記法), 문장작법(文章作法)이 완성되어 있었던 것이 된다. 

배달나라 시대에 한웅(桓雄)은 8음2문(八音二文)을 수학(修學)하였다 한다. 즉 8가지 소리에 2가지 문자를 익혔다는 것이다. 여기서 2가지 문자는 역사적으로 볼 때 상형문자(象形文字)와 표음문자(表音文字) 또는 소위 상음문자(象音文字)가 된다. 상형문자는 녹도문(鹿圖文) 또는 녹서(鹿書)가 되고, 표음문자는 ○(원), □(방), △(각)으로 대표되는 소위 간소화 된 상형문자를 간략화, 상징화 한 상형과 소리가 일치하는 문자가 된다. 

역사적 흐름으로 볼 때, 황제헌원은 상형문자를 도입하여 백성들에게 사용하게 함으로써, 지금의 중국어라는 특수한 언어를 형성케 한 인물이 된다. 황제헌원의 나라인 유웅국의 백성들이 배달나라 상형문자를 이용한 문장을 상용화(常用化)함으로써 소위 문장언어(文章言語)로서 의사소통을 하게 되고, 이것이 그들의 언어로 고착화 된 것으로 되는 것이다. 즉 황제헌원 시대에 고대중국어가 형성되기 시작하였던 것이 된다. 

배달나라의 자치제후국(自治諸侯國)이던 유웅국이 교착어가 되는 배달나라 말을 사용하는 대신 문장언어를 의사소통 수단으로 사용함으로써 중국의 선대에 고립어식(孤立語式)의 특수한 언어가 생긴 것이 되는데, 이후 요순(堯舜), 하(夏)나라와 은(殷)나라 시대를 거치면서 약 1,500년이 흐른 주(周)나라 시대에는 이미 단군조선의 언어와 확연히 구분되는 구조체계를 가진 언어를 사용한 것이 되며, 이는 소위 한자문장식(漢字文章式) 언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소위 한어인 중국어는 단적으로 자연발생적으로 생긴 자연언어가 아닌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인공언어(人工言語)가 된다. 즉 한국어처럼 단어의 순서가 다르더라도 의사소통에 문제가 거의 없는 언어형태가 아니라, 단어의 순서를 바꾸면 정확한 뜻을 알기 어려운 특수한 형태의 법칙으로 만들어진 언어인 것이다. 

일반적으로 문법(文法), 어법(語法)이 다른 외국어를 사용하는 경우 그 문장을 구성하는 단어의 자리를 바꾸지 못한다. 만약 단어의 위치를 바꾸면 뜻이 통하지 않게 된다. 이처럼 중국어는 소위 한문식(漢文式) 언어로서 배달나라의 문장언어(文章言語)에서 출발한 언어가 되는 바, 각 단어들의 위치를 임의로 바꾸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외국어에 해당하는 배달나라의 상형문자로 구성된 문장이, 그들의 언어로서 어법으로 고착화 된 것이다. 

중국어는 단적으로 말이 먼저 생기고 그 후에 문자가 생긴 언어가 아니라, 먼저 문자가 있은 후에 그 문자가 이루는 문장에 따른 언어가 된다. 이는 고립어(孤立語)의 특성상 충분히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이상으로, 중국어는 서기전2698년경 유웅국의 황제헌원이 배달나라에서 도입한 상형문자로 된 문장의 작법(作法)을 활용하여, 그에 따른 문장이 의사표시 수단으로 상용화됨으로써 습관화, 고착화 되어 시간이 흐름에 따라 특수하게 형성된 언어가 되는 것이다. 특히, 현재 한자(漢字)에 대한 중국어 발음은 많은 부분이 대체적으로 단군조선 시대 상형문자를 읽던 음독(音讀)의 변형된 소리로 추정된다. 

8. 우리 역사상 한자(漢字)의 상용화(常用化) 

단군조선 초기인 서기전2181년에 출현한 가림토 38자는 당시에 사용되고 있던 상형문자인 진서(眞書:참글:神篆)의 글자를 읽는 표준음을 통일하기 위하여 정립된 것이 된다. 

즉, 뜻을 전하는 수단은 여전히 상형문자로 된 문장인 것이며, 소리글자인 가림토 글자만으로 문장을 만들어 쓴 것이 아닌 것이다. 상형문자의 독음을 정확히 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소리글자가 탄생된 것이 된다. 

그래서, 우리 역사상 상형문자를 수입한 기록이 없을뿐더러 수입한 사실이 없다. 즉, 원래부터 우리는 상형문자를 의사소통의 한 도구로서 사용하며 왔던 것이다. 역사기록으로 서기전3897년경부터 상형문자를 사용하여 왔으며, 이에 더하여 상형문자와 읽는 소리가 같은 소위 상음문자(象音文字)를 동시에 사용하면서 역사를 이어온 것이 된다. 

단적으로 은(殷)나라 문자가 한자(漢字)의 원형이라면, 이미 단군조선 시대에는 한자의 원형인 은문(殷文) 즉 갑골문(甲骨文)을 사용하고 있었던 것이며, 하(夏)나라 문자가 한자의 원형이라면 단군조선 시대에 이미 한자의 원형을 사용하고 있었던 것이 된다. 더 나아가 황제헌원 이하 요순 시대에 사용되었던 고대중국의 문자가 한자의 원형이라면 배달나라는 물론 단군조선 초기에 이미 한자의 원형을 사용하고 있었던 것이 된다. 

그래서, 우리는 역사상 한자(漢字)를 고대 중국으로부터 수입한 적이 전혀 없으며, 배달나라 시대부터 즉 처음부터 일상의 의사소통 도구로써 소위 한자(漢字)를 상용(常用)하고 있었던 것으로 되는 것이다. 다만, 그 글자의 서체(書體)가 변형되어 왔으며, 고대중국이 사용하던 글자와 통일되어 온 것에 불과한 것이다. 물론 역사 흐름 속에서 고대중국이 상형문자를 사용하여 오면서 만든 글자가 아닌, 우리가 독자적으로 만든 글자도 상당수 있다는 것은 당연한 논리가 된다. 

9. 소위 한자는 우리 선조가 만들고 고대중국에 전수된 우리 글자이다 

이상과 같이 역사적으로 소위 한자(漢字)의 원형은 배달나라 시대에 사용되던 상형문자(象形文字)인 것이고, 배달나라 역사의 주인공은 배달나라의 정통성을 이은 나라인 단군조선(檀君朝鮮)인 것이며, 단군조선을 계승한 지금의 한국(韓國)인 것이다. 

지금의 소위 한자는 배달나라 문자에서 발전된 것이므로, 소위 한자는 곧 우리의 선조가 되는 배달나라 시대의 우리 조상들이 만든 글자로서, 배달나라 제후국이던 황제헌원의 유웅국(有熊國)에 전수(傳授)되었던 것이며, 이 유웅국을 계승한 고대중국의 문자가 된 이후 지금에 이른 것이 된다. 

특히, 단군조선 시대인 서기전925년에 왕문(王文)이 창안한 부예(符隸)라는 문자는 단군조선의 상형문자인 신전(神篆)의 글자를 간소화한 상형문자이며, 진(秦)나라 시대에 육국(六國)의 문자를 통일하며 정립된 진(秦)나라 문자 등 고대중국의 소위 한자(漢字)의 서체(書體)는 이 부예의 예법(例法)을 따른 아류(亞流)라 할 수 있는 것이 된다. 

소위 한자(漢字)는 고대중국의 한 국가였던 한(漢)나라만의 문자가 아니라, 그 이전 시대에 이미 사용되고 있었던 문자로서, 고대중국의 종주(宗主)로서 상국(上國)이던 배달나라 및 단군조선의 문자였던 것이다. 

1) 참글(眞書)과 바른소리(正音) 글자와 바른소리는 음양중의 조화완성 관계 

단군조선 시대에 양립(兩立)하는 참글인 진서(眞書:신전)와 바른소리인 정음(正音) 즉 가림토(加臨土) 글자는, 글과 소리로서 소위 음양(陰陽)의 이치에 해당하는 조화(調和)관계에 있는 것이 된다. 

상형문자인 참글은 머릿속 즉 뇌에서 뜻을 떠올리는 글자라면, 소리글자인 가림토는 말 즉 소리로써 나타내는 글자가 되는데, 뇌에 있는 존재는 신(神) 또는 심(心)이 되고, 입으로 나오는 소리(音聲)는 기(氣)가 되므로, 음양의 관계에 있는 것이 된다. 

물론, 소리글자인 가림토 즉 정음(正音)은 원래 상형문자인 참글인 진서(眞書) 즉 신전(神篆)에서 나오거나 신전에서 정립된 글자가 되어 원래 하나였던 것이 되는 바, 상형문자를 음(陰)이라 하면 가림토는 상대적으로 양(陽)이라 할 수 있고, 이 상형문자와 가림토를 읽는 소리 자체는 음양의 합이 되어 중(中)이라 할 수 있어, 소위 음양중(陰陽中)의 이치에 해당하여 삼위일체가 되어 조화완성의 관계에 있는 것이 된다. 하늘에는 하늘과 땅과 사람이 모두 포함되듯이, 원래의 상형문자에는 소리글자가 되는 요소 및 그 소리가 처음부터 내포되어 있는 것이 된다. 

2) 참글(眞書) 교육으로 역사를 보전하자 

소위 한자(漢字)는 중국 고유(固有)의 글자이기도 하지만, 원래는 우리의 고유의 글자로서 고대중국의 나라들이 그들의 글자로서 사용하여 온 것에 불과한 것인 바, 분명한 우리 고유의 글자인 것이다. 

한자(漢字)라는 용어는 한(漢)나라의 글자라는 의미를 나타내는 단어가 되므로, 우리 역사상의 용어로서 진서(眞書) 또는 참글이라 부르는 것이 타당할 것인데, 글이라는 말 자체가 그리다, 그림이라는 말과 같은 어원에서 나온 것이므로, 진서(眞書:참글)를 원래의 진정한 그림에서 나온 글자라는 의미로 사용하면 될 것이다. 

이렇게 보면, 소리글자인 가림토 또는 한글은 진서(眞書)에서 파생되어 나온 후차적인 글자가 되어 진서(眞書)가 아닌 다른 용어로서 정음(正音:바른소리)이라고 부르면 되는 것이다. 또는 상형문자와 소리글자로 구분하여 한국의 상형문자라는 의미로서 한자(桓字), 한국의 소리글자라는 의미로서 한글로 부르는 것도 타당할 것이다. 

우리의 고유의 글자인 소리글자 한글과 더불어 상형문자 참글의 역사를 제대로 알고서 자라나는 세대에게 우리 글자임을 교육하여 역사를 보전하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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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프로필] 조홍근(曺洪根, 52세). 한문화재단(桓文化財團) 총재. 트위트-페이스북 역사당 부총재. 현 법무사. 

30여년 동안 족보(族譜)와 한중일(韓中日) 역사를 연구해 오면서, 부도지(符都誌), 한단고기(桓檀古記), 규원사화(揆園史話), 단기고사(檀奇古史) 등 귀중한 역사자료를 통하여, 우리역사 1만년을 넘어 마고(麻姑) 시대를 포함한 7만2천390년 역사를 밝히고 있음. 

1. 홍익인간(弘益人間) 천부(天符)의 역사는 마고성(麻姑城:파미르고원)의 마고(麻姑)시대인 서기전70378년 계해년(癸亥年)부터 시작되었음을 최초로 밝혔음. 
2. 역법(曆法)이 시작된 해는 마고성(麻姑城)의 황궁씨(黃穹氏) 시대인 서기전25858년 계해년(癸亥年)임을 밝혔으며, 서기전70378년 계해년이 마고(麻姑) 기원(紀元:천부 天符)임을 밝혔음. 
3. 황궁씨를 이은 나반(那般:那般尊者:獨聖者)이 한국(桓國)시대 한인씨(桓因氏) 이전의 임금이던 유인씨(有因氏)이며, 한인씨 7대(代)가 약1,000년을 다스렸다는 것임을 밝혔음. 
4. 윷놀이판의 모습이 천부경(天符經)의 무한조화순환역(無限造化循環易), 음양오행(陰陽五行), 태양태음성력(太陽太陰星曆), 단군조선의 정치행정 구조를 나타낸 것임을 밝혔으며, 하도(河圖)와 낙서(洛書)가 배달나라 시대의 음양오행수리역(陰陽五行數理易)이며, 태호복희 8괘역과 윷놀이판의 역이 지구의 자전(自轉)과 공전(公轉)을 기반으로 한 역(易)임을 밝혔음. 
5. 천제(天帝), 천황(天皇:天王), 천군(天君), 천공(天公), 천후(天侯), 천백(天伯), 천자(天子), 천남(天男)의 위계질서를 최초로 밝히고, 천제자(天帝子)와 천자(天子)의 차이점을 최초로 밝혔으며, 태호복희씨(太皞伏羲氏)가 일반 천자(天子)가 아니라 천지인(天地人) 삼신(三神)에게 제(祭)를 올리는 권한을 가진 제사장인 천군(天君)임을 밝혔음. 
6. 아리랑(阿里嶺) 민요의 원천이 되는 최초의 역사적 사실이 서기전2333년 10월 3일 조선을 건국하기 이전에 있었던 당요(唐堯)의 전란(戰亂)으로 인한 단군왕검(檀君王儉)의 동북 아사달로의 이동과정임을 밝혔음. 
7. 고대중국의 천자로 불리는 요순우(堯舜禹)와 고대일본의 신무왕(神武王)이 단군조선의 반역자(反逆者)이면서 제후인 천자(天子)임을 밝혔음. 
8. 우비(禹碑:우 치수기념 부루공덕 비)의 비문을 국내 최초로 역사적 해석을 하여, 서기전2267년 이후 우(禹)가 치수에 성공한 후 치수법(治水法)을 전수해 준 단군조선 태자부루의 공덕을 새겨 남악(南嶽) 형산(衡山)에 세운 것임을 밝혔음. 
9. 일본 국조신(國祖神)인 천조대신(天照大神)의 사당인 이세신궁(伊勢神宮)에 소장된 원시한글 축문을 국내 최초로 완벽 해독하고, 요하유로 기록된 천조대신이 단군조선 두지주(豆只州) 예읍(濊邑)의 추장(酋長)의 후손임을 밝혔음. 
10. 명도전(明刀錢) 최초 해독학자 허대동선생<저서 고조선문자>의 가림토(加臨土) 해독의 검증에 참여하여 첨수도(尖首刀), 명도전이 단군조선의 화폐이며 새겨진 문자가 단군조선의 상형 및 표음 문자임을 밝혔음. 그 외 다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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