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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인간 274] 북부여(北夫餘) -후삼한(後三韓) 시대 1

양해천 2018. 1. 22. 12:51

[홍익인간 274] 북부여(北夫餘) -후삼한(後三韓) 시대 1

2012년 04월 04일 (수) 07:45:20천산(天山)  sppopsj@yahoo.co.kr

북부여(北夫餘)와 후삼한(後三韓)은 모두 단군조선 백성들이 세운 나라이다. 

북부여는 단군조선의 군국(君國)인 구려국(句麗國) 출신인 천왕랑(天王郞) 해모수(解慕漱)가 서기전239년 4월 8일에 웅심산(熊心山)의 난빈(蘭濱)에서 시작한 나라이며 여러 제후국들이 해모수를 따랐다. 구려국은 일명 고리국(藁釐國,高離國)이라고 하며, 서기전1285년에 시작된 후기단군조선(後期檀君朝鮮)의 종실(宗室)인 고씨(高氏)의 구려이므로 고구려(高句麗)라고도 부른다. 웅심산은 북부여에 소재하므로 해모수의 부여를 북부여라 부르는 것이 된다. 

북부여라는 국호(國號)는 실제로 서기전86년에 후기 북부여를 시작한 졸본(卒本) 출신의 한(汗)이었던 고두막(高豆莫) 천왕(天王)이 칭하였다. 즉 그 이전에는 단군조선의 말기인 서기전425년에 칭한 대부여(大夫餘)라는 국호가 있었으며, 해모수가 별도로 국호를 칭한 것이 아닌 것이다. 

후삼한의 진한(辰韓), 변한(弁韓), 마한(馬韓)은 원래 단군조선 시대의 진한(眞韓), 번한(番韓), 마한(馬韓)의 같은 소리를 딴 명칭이 된다. 다만 진한(辰韓)의 진을 진(秦)으로 쓰기도 하고, 변한(弁韓)의 변(弁)이라는 글자가 단군조선의 번한(番韓)의 번(番)과는 조금 다른 소리가 되는데, 이는 후대에 기록하면서 와전(訛傳)된 것으로 보인다. 물론 변한의 변을 고깔 변(弁)을 쓴 이유가 한반도 남부에 고깔처럼 생긴 변한 땅의 모습을 나타내거나 고깔모자를 즐겨 쓰던 사람들의 특징을 나타낸 글자임을 부정할 수는 없는 것이 된다. 

북부여 시대는 서기전239년부터 고구려가 세워진 서기전37년까지 계속되었고, 후삼한 시대는 서기전209년부터 가야가 건국된 서기42년까지 계속된 것으로 된다. 

[북부여] 

1. 고리국 출신 천왕랑 해모수 

서기전239년 4월 8일에 해모수가 웅심산의 난빈에서 북부여를 시작하였다. 해모수는 후기단군조선의 종실인 고씨로서 원래 고모수(高慕漱)이며, 성씨를 태양(太陽)을 가리키는 해(解)로 삼은 것이다. 

해모수의 선대가 불명이나 단군조선의 종실(宗室)로서 구려국(句麗國:고리국)의 왕족이 되며, 천왕랑(天王郞)을 지낸 것이 된다. 천왕랑이란 단군조선의 천지화랑(天指花郞), 국자랑(國子郞)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단군조선 천왕의 혈족임을 나타내는 것이 된다. 

아마도 해모수가 구려국 출신으로서 어려서 단군조선 중앙 조정의 국자랑(國子郞)이 되어 천웅도(天雄道)를 수련하고, 이후 구려국을 기반으로 군사력을 키워 단군조선이 쇠퇴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기회를 기다린 것이 된다. 이는 해모수가 번조선(番朝鮮)의 기비(箕丕)와 모의한 것에서도 나타난다. 

그래서 북부여는 단군조선을 역성혁명(易姓革命)으로 나라를 바꾼 것이 아니라, 종실로서 접수, 승계한 것이 된다. 

2. 단군조선 말기 오가(五加)의 6년 공화정 

서기전238년 3월 16일 삼신영고제(삼신맞이굿)를 지낸 후 단군조선의 마지막 제47대 고열가(高列加) 천왕이 제위(帝位)를 내놓으시고 오가(五加)들에게 정치를 맡기면서, 오가의 공화정(共和政)이 시작되었다. 

이후 오가들은 공화정을 실시하면서 현자(賢者)를 물색하여 천왕으로 모시지 못하고 6년이라는 시간을 허비한 것이 된다. 

이러한 때 서기전239년 4월 8일부터 북부여를 시작하였던 해모수가 서기전232년에 단군조선의 수도였던 장당경(藏唐京)을 찾아가 오가들을 설득하여 공화정을 철폐하고 나라를 접수하였던 것이다. 

3. 단군조선을 접수한 천왕랑 해모수가 단군이 되다 

해모수가 천왕랑으로서 북부여를 일으켰다가 서기전232년에 단군조선의 오가 공화정을 철폐하여 접수하니, 오가들을 비롯한 나라 사람들이 해모수를 추대하여 단군으로 모시니 정식 천왕(天王)으로 즉위한 것이 된다. 

이로써, 해모수는 천왕랑(天王郞)이라는 직책에서 단군조선을 계승한 나라의 천왕(天王)으로 즉위한 것이다. 단군(檀君)은 원래 배달나라의 작은 임금으로서 천군(天君)에 해당하는 말이지만, 단군조선의 단군(檀君)은 수 많은 제후들을 거느린 천왕(天王)이며, 북부여의 단군 또한 천왕이 되는 것이다. 즉 단군조선의 제후국들은 자동적으로 북부여의 제후국으로 인수인계된 셈이다. 

4. 해모수 북부여를 부흥시킨 동명왕(東明王) 고두막한 

서기전108년에 위씨조선(衛氏朝鮮)이 한무제(漢武帝)의 한(漢)나라에 망하자, 단군조선의 고토를 회복하여 북부여를 부흥시키고자 기회를 보고 있던 졸본의 왕이던 고두막한(高豆莫汗)이 의병을 일으켜 동명왕(東明王)이라 칭하면서 한(漢)나라와 전쟁을 하였다. 동명(東明)이란 이두식으로 새밝, 새벌, 새부여라는 뜻을 가진 글자가 되어 부여를 부흥시킨다는 의미를 가지는 것이 된다. 

동명왕 고두막(高豆莫)은 서기전108년부터 서기전87년까지 옛 구려 땅과 위씨조선 땅의 유민들과 더불어 한(漢)나라 군사와 전쟁을 하면서 땅을 되찾거나 지켰다. 

서기전108년에는 지금의 난하(灤河) 최상류 지역에 위치하고 소요수(小遼水:지금의 청수하)의 동쪽에 소재한 서안평(西安平:북안평)까지 진출하여 구려(句麗) 땅을 찾았으며, 서기전86년에 북부여 천왕으로 즉위한 후 줄곧 한(漢)나라와 전쟁을 하면서 땅을 지켰고, 서기전82년에는 소위 한사군에 속하였던 진번(眞番)과 임둔(臨屯) 땅을 수복하였던 것이 된다. 서안평 남쪽이 되는 구려 땅 남부의 현도군(玄ꟙ郡)과 난하 중하류 지역의 동서로 걸치면서 서쪽으로 치우쳐 있던 낙랑군(樂浪郡)은 한(漢)나라 이후에는 소위 북중국(北中國)이라 불리는 여러나라가 이어오다가 서기313년에 고구려에 의하여 완전히 축출되었다. 

5. 북부여 대통을 이은 고구려 시조 동명성제(東明聖帝) 고주몽 

서기전59년에 동부여에서 도망하여 북부여의 졸본(卒本)으로 온 고주몽(高朱蒙)이 서기전58년에 즉위하여 북부여 고무서(高無胥) 단군의 대를 이었다. 그래서 고주몽을 또한 단군(檀君)이라 한다. 물론 나라의 힘이 많이 축소된 상태라 천왕(天王)이라 하기에는 역부족이기는 하나 엄면히 천왕의 나라를 계승한 것이 된다. 

고주몽 단군이 서기전37년에 고구려(高句麗)를 세우면서, 단군조선의 부여 땅에 자리잡은 북부여의 나라에서 나아가, 단군조선의 동서지역의 중앙(中央)이던 구려(句麗) 땅에 근거를 두어 다물정책(多勿政策)을 펼치기 시작하였다. 즉 북부여라는 나라를 부흥시킨 고두막 천왕의 다물업(多勿業)을 이어 본격적인 단군조선 고토회복 정책을 편 것이 된다. 

고구려 시조 고주몽을 동명성제(東明聖帝)라 함은, 북부여 동명왕(東明王) 고두막한(高豆莫汗)의 고토회복(古土恢復)의 업(業)을 이은 고구려의 황제(皇帝)임을 나타내는 것이 된다. 이후 고구려는 여러 제후국을 둠으로써 소위 천왕(天王)의 나라가 되며, 왕호를 제(帝), 태황(太皇)이라 하여 어하라(於瑕羅:비류백제), 신라(新羅), 백제(百濟:온조백제), 가야(伽倻), 대마(對馬), 왜(倭), 거란(契丹), 비려(碑麗), 동부여(東夫餘), 비류(沸流) 등 일반왕국 등을 제후국으로 둔 황제국(皇帝國)이 된다. 

6. 북부여의 제후국 동부여(東夫餘) 

서기전86년에 동명왕 고두막한이 북부여 천왕(天王)으로 즉위하고서 북부여 해부루(解夫婁) 천왕을 강등시켜 동부여 제후로 봉하였는데, 이후 동부여는 북부여의 제후국으로 지내다가 북부여의 계승국인 고구려와 대적하기도 하였다. 

서기22년에 동부여의 대소왕(帶素王)이 고구려의 대무신열제(大武神烈帝)에게 망하였다. 이에 동부여의 흔적은 갈사국(曷思國)과 고구려 서쪽의 연나부(椽那部) 낙씨(絡氏)의 부여(夫餘)로 이어졌는데, 갈사국은 서기68년에 고구려에 항복하였고, 연나부 부여는 서서히 서쪽으로 진출하여 독립적으로 활동하다가 서기494년에 고구려 문자제(文咨帝)에 의하여 낙씨 부여도 완전히 망하여 고구려의 연나부에 다시 속하게 되었다. 

7. 북부여 역대기 

(1) 전기(前期) 북부여 

1) 제1대 해모수(解慕漱) 천왕 : 단군조선 고구려(高句麗:고씨 구려) 출신으로서 고씨단군(高氏檀君) 천왕(天王)의 종실이며, 웅심산(熊心山) 난빈(蘭濱)에서 즉위하여 서기전239년 임술년(壬戌年) 4월 8일부터 서기전195년 병오년(丙午年) 겨울까지 45년 재위하였다. 

서기전232년 기사년(己巳年)에 장당경(藏唐京)으로 가서 단군조선의 오가(五加) 공화정(共和政)을 철폐하고, 나라 사람들에 의하여 단군으로 추대되어 천왕(天王)이 되었다. 

2) 제2대 모수리(慕漱離) 천왕 : 해모수 천왕의 태자이며, 서기전194년 정미년(丁未年)부터 서기전170년 신미년(辛未年)까지 25년 재위하였다. 

3) 제3대 고해사(高奚斯) 천왕 : 모수리 천왕의 태자이며, 서기전169년 임신년(壬申年)부터 서기전121년 경신년(庚申年)까지 49년 재위하였다. 

4) 제4대 고우루(高于婁:또는 해우루(解于婁)) 천왕 : 고해사 천왕의 태자이며, 서기전120년 신유년(辛酉年)부터 서기전87년 갑오년(甲午年) 10월까지 34년 재위하였다. 

5) 제5대 해부루(解夫婁) 천왕 : 고우루 천왕의 아우이며, 서기전87년 갑오년(甲午年) 10월경에 즉위하였으나 동명왕(東明王) 고두막(高豆莫)의 위협으로 서기전86년 을미년(乙未年)에 동부여(東夫餘)로 옮기고 강등되어 동부여후(東夫餘侯:동부여 왕)가 되었다. 

(2) 후기(後期) 북부여 

6) 제6대 고두막(高豆莫) 천왕 : 졸본(卒本)의 한(汗) 출신으로서 단군조선 고열가 천왕의 후손(後孫)이라 하며, 서기전86년 을미년(乙未年)부터 서기전60년 신유년(辛酉年)까지 27년 재위하였다. 

서기전108년 계유년(癸酉年)부터 서기전86년까지 동명왕(東明王)으로서 23년 재위하였다. 

7) 제7대 고무서(高無胥) 천왕 : 서기전59년 임술년(壬戌年)에 졸본천(卒本川)에서 즉위하여 서기전58년 계해년(癸亥年) 10월까지 2년 재위하였다. 

(3) 말기(末期) 북부여 

8) 제8대 고주몽(高朱蒙) 천왕 : 서기전57년 갑자년(甲子年)에 즉위하여, 서기전37년 갑신년(甲申年)에 국호를 고구려(高句麗)라 하였으며, 서기전19년 임인년(壬寅年)까지 39년 재위하였고, 61세를 사셨다. 

북부여 시조 해모수의 나라를 고구려(高句麗)라고도 하므로, 고구려의 역사는 서기전239년부터 서기668년까지 907년의 역사를 가진다. 또는 단군조선을 접수한 서기전232년을 기준으로 하면 서기668년까지 900년의 역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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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프로필] 조홍근(曺洪根, 52세). 한문화재단(桓文化財團) 총재. 트위트-페이스북 역사당 부총재. 현 법무사. 

30여년 동안 족보(族譜)와 한중일(韓中日) 역사를 연구해 오면서, 부도지(符都誌), 한단고기(桓檀古記), 규원사화(揆園史話), 단기고사(檀奇古史) 등 귀중한 역사자료를 통하여, 우리역사 1만년을 넘어 마고(麻姑) 시대를 포함한 7만2천390년 역사를 밝히고 있음. 

1. 홍익인간(弘益人間) 천부(天符)의 역사는 마고성(麻姑城:파미르고원)의 마고(麻姑)시대인 서기전70378년 계해년(癸亥年)부터 시작되었음을 최초로 밝혔음. 
2. 역법(曆法)이 시작된 해는 마고성(麻姑城)의 황궁씨(黃穹氏) 시대인 서기전25858년 계해년(癸亥年)임을 밝혔으며, 서기전70378년 계해년이 마고(麻姑) 기원(紀元:천부 天符)임을 밝혔음. 
3. 황궁씨를 이은 나반(那般:那般尊者:獨聖者)이 한국(桓國)시대 한인씨(桓因氏) 이전의 임금이던 유인씨(有因氏)이며, 한인씨 7대(代)가 약1,000년을 다스렸다는 것임을 밝혔음. 
4. 윷놀이판의 모습이 천부경(天符經)의 무한조화순환역(無限造化循環易), 음양오행(陰陽五行), 태양태음성력(太陽太陰星曆), 단군조선의 정치행정 구조를 나타낸 것임을 밝혔으며, 하도(河圖)와 낙서(洛書)가 배달나라 시대의 음양오행수리역(陰陽五行數理易)이며, 태호복희 8괘역과 윷놀이판의 역이 지구의 자전(自轉)과 공전(公轉)을 기반으로 한 역(易)임을 밝혔음. 
5. 천제(天帝), 천황(天皇:天王), 천군(天君), 천공(天公), 천후(天侯), 천백(天伯), 천자(天子), 천남(天男)의 위계질서를 최초로 밝히고, 천제자(天帝子)와 천자(天子)의 차이점을 최초로 밝혔으며, 태호복희씨(太皞伏羲氏)가 일반 천자(天子)가 아니라 천지인(天地人) 삼신(三神)에게 제(祭)를 올리는 권한을 가진 제사장인 천군(天君)임을 밝혔음. 
6. 아리랑(阿里嶺) 민요의 원천이 되는 최초의 역사적 사실이 서기전2333년 10월 3일 조선을 건국하기 이전에 있었던 당요(唐堯)의 전란(戰亂)으로 인한 단군왕검(檀君王儉)의 동북 아사달로의 이동과정임을 밝혔음. 
7. 고대중국의 천자로 불리는 요순우(堯舜禹)와 고대일본의 신무왕(神武王)이 단군조선의 반역자(反逆者)이면서 제후인 천자(天子)임을 밝혔음. 
8. 우비(禹碑:우 치수기념 부루공덕 비)의 비문을 국내 최초로 역사적 해석을 하여, 서기전2267년 이후 우(禹)가 치수에 성공한 후 치수법(治水法)을 전수해 준 단군조선 태자부루의 공덕을 새겨 남악(南嶽) 형산(衡山)에 세운 것임을 밝혔음. 
9. 일본 국조신(國祖神)인 천조대신(天照大神)의 사당인 이세신궁(伊勢神宮)에 소장된 원시한글 축문을 국내 최초로 완벽 해독하고, 요하유로 기록된 천조대신이 단군조선 두지주(豆只州) 예읍(濊邑)의 추장(酋長)의 후손임을 밝혔음. 
10. 명도전(明刀錢) 최초 해독학자 허대동선생<저서 고조선문자>의 가림토(加臨土) 해독의 검증에 참여하여 첨수도(尖首刀), 명도전이 단군조선의 화폐이며 새겨진 문자가 단군조선의 상형 및 표음 문자임을 밝혔음. 그 외 다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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