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익인간 276] 북부여(北夫餘) 연대기 1
2012년 04월 06일 (금) 07:28:51 | 천산(天山) sppopsj@yahoo.co.kr |
1. 북부여(北夫餘) 제1대 해모수(解慕漱) 천왕(天王)(서기전239년~서기전195년)
[고구려(高句麗) 출신의 종실 해모수가 군사를 일으키다 - 북부여(北夫餘)의 시작]
서기전239년 임술년(壬戌年) 4월 8일에 23세이던 종실(宗室) 대해모수(大解慕漱)가 천왕의 자리에 오르고자 몰래 수유(須臾) 사람 기비(箕丕)와 약속하고 웅심산(熊心山)을 내려와 군대를 일으켜, 옛 서울 백악산(白岳山)을 습격하여 점령하고는 천왕랑(天王郞)이라 칭했다.
해모수는 웅심산(熊心山)에 의지하여 궁실을 난빈(蘭濱)에 쌓았다. 까마귀 깃털로 만든 모자를 쓰고 용광(龍光)의 칼(釰)을 차고 오룡거(五龍車)를 타고 다녔다. 따르는 종자들 500인과 함께 아침에는 정사를 듣고 저녁에는 하늘로 오르더니 이에 즉위하였다. 해모수의 선조는 고리국(藁離國) 사람이다.
해모수가 북부여 시조가 된 때 23세였으며, 고주몽이 북부여(졸본부여) 단군이 된 때가 23세였다.
웅심산(熊心山)은 곰맘산으로서 고마산이며, 고마산은 즉 개마산(蓋馬山)을 다르게 나타낸 글자가 되는데, 이 개마산은 지금의 백두산이 있는 동개마산이 아닌 북개마산(北蓋馬山)으로서 지금의 대흥안령산맥(大興安嶺山脈)에 있는 산이 될 것이며, 상춘(常春)에 있는 백악산아사달(白岳山阿斯達)에 가까운 산이 될 것이다.
[해모수 천왕랑의 3월 제천(祭天)과 연호법(煙戶法) 제정]
서기전238년 3월 16일에 해모수 천왕랑(天王郞)께서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연호법(烟戶法)을 제정하더니 오가(五加)의 병력을 나누어 배치하여 밭을 갈아 자급자족함으로써 뜻밖의 일에 대비하도록 하였다.
연호법은 묘(墓)나 릉(陵)을 관리하고 제사지내는 등의 법(法)을 가리킨다. 고구려의 제19대 광개토호태황이 국연(國烟)과 간연(看烟)의 연호법을 제정하여 시행한 것으로 광개토황비문에 새겨져 있기도 하다.
[단군조선 오가 공화정 철폐, 해모수가 천왕(天王)으로 즉위하다]
서기전232년 기사년(己巳年)에 해모수 천왕랑(天王郞)이 무리를 이끌고 가서 옛 도읍의 오가(五加)들을 회유하여 마침내 공화정치를 철폐하였다. 이에 만백성들이 추대하여 단군(檀君)으로 즉위하여 천왕(天王)이 되었으며, 이에 북부여(北夫餘) 시조라 한다.
여기서 옛 도읍은 장당경(藏唐京)을 가리킨다.
공화정치는 공동화백(共同和白) 정치를 가리키는데, 서기전238년 3월 16일에 고열가(高列加) 천왕이 오가들에게 정치를 맡긴 이후 서기전232년까지 오가(五加)의 공화정(共和政)이 시행된 것이 되며, 이를 해모수가 철폐시키고 나라를 접수함으로써 천왕의 자리에 정식으로 오른 것이 된다.
[기비(箕丕)를 번조선왕으로 삼다]
서기전232년에 해모수 천왕은 그동안 명령을 받들어 열심히 보좌하였던 번조선왕 기윤(箕潤)의 아들인 수유후(須臾侯) 기비(箕丕)를 번조선왕(番朝鮮王)으로 삼고 상하(上下)의 운장(雲障)을 지키게 하였다.
상하(上下)의 운장(雲障)은 패수(浿水)였던 지금의 난하(灤河) 중류 지역의 바로 동쪽에 있었던 것이 되는데, 서기전209년에 연제조(燕齊趙)의 망명인들을 살게 하였던 곳이기도 하다.
[태교(胎敎) 시행 - 공양태모법(公養胎母法)]
서기전232년 겨울 10월에 해모수 천왕(天王)은 공양태모법(公養胎母法)을 세워 사람을 가르침에는 반드시 태교(胎敎)부터 실시하도록 하였다.
태교는 태아 즉 아이가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부터 가르치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러한 철학은 태아를 사람으로 보는 것이며, 태어나자마자 한살로 치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태어나자마자 한살로 계산하는 법은 한국의 독특한 나이 계산법으로서 다른 나라의 계산법과 확연히 차이가 있는데, 다른 나라는 태어나면 0살이며 만 1년이 되어야만 한살로서 만(滿)으로 계산한다.
태교를 하는 이유는 태아를 사람으로 보기 때문이다.
[북막의 약탈질]
서기전229년 임신년(壬申年)에 북막(北漠)의 추장(酋長) 산지객륭(山只喀隆)이 영주(寧州)를 습격하여 순사(巡使) 목원등(穆遠登)을 죽이고 크게 약탈질하고 돌아갔다.
북막은 서기전248년에 추장 아리당부가 단군조선에 연나라를 치자고 요청하였다가 거절당하자 그때부터 조공국(朝貢國)에서 일탈하여 독자적으로 활동하였던 것이며, 이에 이르러 북부여를 침공하여 약탈질한 것이 된다.
영주(寧州)는 북부여의 서쪽이자 번조선의 서북쪽 변경이 될 것인데, 옛 구려국의 남쪽 땅으로서 현재의 고하(沽河)의 중상류 부근이 될 것이며, 후대에 거란의 땅이던 영주(營州)이거나 그 부근이 될 것이다.
[기준을 번조선왕으로 봉하다]
서기전221년 경진년(庚辰年)에 번조선왕 기비(箕丕)가 죽으니 아들 기준(箕準)을 아비의 뒤를 이어 번조선왕으로 봉하였으며, 관리를 보내어 병사를 감독하고 연(燕)나라를 대비하는 일에 더욱 힘쓰게 하였다.
기준왕은 서기전195년에 위만(衛滿)을 박사로 모셨으나 서기전194년에 위만이 배신하여 나라를 빼앗았는데, 이에 기준왕은 배를 타고 마한 땅으로 가서 평양(平壤, 낙랑)을 거쳐 다시 남쪽의 금마(金馬)에 정착하여 서기전194년에 제1대 마한왕(馬韓王)이 되었다.
[백악산아사달 제천]
서기전220년 신사년(辛巳年)에 명을 내리어 백악산아사달에서 하늘에 제사를 지내도록 하였다.
[366간 천안궁]
서기전220년 가을 7월에 백악산아사달에 새로운 궁궐 366간을 지어 이름하여 천안궁(天安宮)이라 하였다.
366이라는 숫자는 4년마다 계산되는 1년의 완성된 숫자인데, 낱자를 모두 합하면 3+6+6=15 여기서 1+5=6이 되어 음양의 사람을 나타낸 숫자가 되어 창조의 뜻을 가지게 되는데, 1년은 주기적으로 무한히 되풀이 되는 것이다.
북부여의 본궁인 신궁(新宮)이 백악산아사달에 지어진 것이 된다. 북부여의 첫수도는 웅심산(熊心山) 난빈(蘭濱)이다. 이후 북부여의 수도는 고무서 천왕이 졸본(卒本)을 수도로 삼은 서기전59년까지 백악산아사달이 된다.
[창해역사 여홍성의 진시황 저격]
서기전219년 계미년(癸未年)에 창해역사(滄海力士) 여홍성(黎洪星)이 한(韓)나라 사람 장량(張良)과 함께 진(秦)나라 왕 정(政)을 박랑사(博浪沙) 가운데서 저격하였으나 빗나가 진시황을 호위하던 부차(副車)를 박살냈다.
-------------------------------
[필자 프로필] 조홍근(曺洪根, 52세). 한문화재단(桓文化財團) 총재. 트위트-페이스북 역사당 부총재. 현 법무사.
30여년 동안 족보(族譜)와 한중일(韓中日) 역사를 연구해 오면서, 부도지(符都誌), 한단고기(桓檀古記), 규원사화(揆園史話), 단기고사(檀奇古史) 등 귀중한 역사자료를 통하여, 우리역사 1만년을 넘어 마고(麻姑) 시대를 포함한 7만2천390년 역사를 밝히고 있음.
1. 홍익인간(弘益人間) 천부(天符)의 역사는 마고성(麻姑城:파미르고원)의 마고(麻姑)시대인 서기전70378년 계해년(癸亥年)부터 시작되었음을 최초로 밝혔음.
2. 역법(曆法)이 시작된 해는 마고성(麻姑城)의 황궁씨(黃穹氏) 시대인 서기전25858년 계해년(癸亥年)임을 밝혔으며, 서기전70378년 계해년이 마고(麻姑) 기원(紀元:천부 天符)임을 밝혔음.
3. 황궁씨를 이은 나반(那般:那般尊者:獨聖者)이 한국(桓國)시대 한인씨(桓因氏) 이전의 임금이던 유인씨(有因氏)이며, 한인씨 7대(代)가 약1,000년을 다스렸다는 것임을 밝혔음.
4. 윷놀이판의 모습이 천부경(天符經)의 무한조화순환역(無限造化循環易), 음양오행(陰陽五行), 태양태음성력(太陽太陰星曆), 단군조선의 정치행정 구조를 나타낸 것임을 밝혔으며, 하도(河圖)와 낙서(洛書)가 배달나라 시대의 음양오행수리역(陰陽五行數理易)이며, 태호복희 8괘역과 윷놀이판의 역이 지구의 자전(自轉)과 공전(公轉)을 기반으로 한 역(易)임을 밝혔음.
5. 천제(天帝), 천황(天皇:天王), 천군(天君), 천공(天公), 천후(天侯), 천백(天伯), 천자(天子), 천남(天男)의 위계질서를 최초로 밝히고, 천제자(天帝子)와 천자(天子)의 차이점을 최초로 밝혔으며, 태호복희씨(太皞伏羲氏)가 일반 천자(天子)가 아니라 천지인(天地人) 삼신(三神)에게 제(祭)를 올리는 권한을 가진 제사장인 천군(天君)임을 밝혔음.
6. 아리랑(阿里嶺) 민요의 원천이 되는 최초의 역사적 사실이 서기전2333년 10월 3일 조선을 건국하기 이전에 있었던 당요(唐堯)의 전란(戰亂)으로 인한 단군왕검(檀君王儉)의 동북 아사달로의 이동과정임을 밝혔음.
7. 고대중국의 천자로 불리는 요순우(堯舜禹)와 고대일본의 신무왕(神武王)이 단군조선의 반역자(反逆者)이면서 제후인 천자(天子)임을 밝혔음.
8. 우비(禹碑:우 치수기념 부루공덕 비)의 비문을 국내 최초로 역사적 해석을 하여, 서기전2267년 이후 우(禹)가 치수에 성공한 후 치수법(治水法)을 전수해 준 단군조선 태자부루의 공덕을 새겨 남악(南嶽) 형산(衡山)에 세운 것임을 밝혔음.
9. 일본 국조신(國祖神)인 천조대신(天照大神)의 사당인 이세신궁(伊勢神宮)에 소장된 원시한글 축문을 국내 최초로 완벽 해독하고, 요하유로 기록된 천조대신이 단군조선 두지주(豆只州) 예읍(濊邑)의 추장(酋長)의 후손임을 밝혔음.
10. 명도전(明刀錢) 최초 해독학자 허대동선생<저서 고조선문자>의 가림토(加臨土) 해독의 검증에 참여하여 첨수도(尖首刀), 명도전이 단군조선의 화폐이며 새겨진 문자가 단군조선의 상형 및 표음 문자임을 밝혔음. 그 외 다수 ----------
천산(天山)의 다른기사 보기 | |
ⓒ 데일리전북(http://www.dailyjeonbuk.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
'얼(뿌리를 찾아서) > 홍익인간 7만년 역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홍익인간 278] 북부여(北夫餘) 연대기 3 (0) | 2018.01.22 |
---|---|
[홍익인간 277] 북부여(北夫餘) 연대기 2 (0) | 2018.01.22 |
[홍익인간 275] 북부여(北夫餘) -후삼한(後三韓) 시대 2 (0) | 2018.01.22 |
[홍익인간 274] 북부여(北夫餘) -후삼한(後三韓) 시대 1 (0) | 2018.01.22 |
[홍익인간 273] 단군조선 문화제도 40 (0) | 2018.01.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