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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인간 279] 북부여(北夫餘) 연대기 4

양해천 2018. 1. 22. 12:54

[홍익인간 279] 북부여(北夫餘) 연대기 4

2012년 04월 10일 (화) 07:39:27천산(天山)  sppopsj@yahoo.co.kr

4. 북부여(北夫餘) 제4대 고우루(高于婁) 천왕(天王)(서기전108년~서기전87년) 

[고진(高辰)을 고구려후(高句麗侯)로 삼다] 

서기전120년 신유년(辛酉年)에 장수를 보내어 우거(右渠)를 토벌하였으나 이로움이 없었다. 

고진(高辰)을 발탁하여 서압록(西鴨綠)을 수비토록 하니 병력을 늘리고 많은 성책(城柵)을 설치하여 능히 우거(右渠)를 대비하는 데 공이 있었으므로 승진시켜 고구려후(高句麗侯)로 삼았다. 

당시 위씨조선의 3대왕인 우거의 세력이 강했던 것이 되는데, 지금의 요하가 되는 서압록 지역을 고진(高辰)으로 하여금 지키게 하여 공을 세우니 고구려후로서 제후로 봉한 것이며, 일명 고리군왕(槀離郡王)이라고도 한다. 

고리(槀離)는 구려(句麗:구리)와 같은 소리를 나타낸 글자이며, 서기전1285년 이후에는 고씨(高氏)의 구려국(句麗國)이므로 또한 고구려(高句麗)라 하는 것이 되고, 후대에 구려국(句麗國)을 고리군(槀離郡)이라 부른 것이 된다. 

고주몽(高朱蒙) 성제(聖帝)의 고구려(高句麗)라는 국명은 가깝게는 해모수의 북부여(北夫餘)가 구려국 출신인 해모수(=고모수)의 나라이므로 일명 고구려이며, 멀게는 서기전1285년 고씨 단군 천왕이 다스리던 구려국에 고씨 천왕족(天王族)이 봉해져서 고구려라 할 수 있는 것이다. 

[해성(海城) 이북 50리를 우거(右渠)에게 빼앗기다] 

서기전118년 계해년(癸亥年)에 우거(右渠)의 도적들이 대거 침략하니 우리의 군대가 크게 패하여 해성(海城) 이북 50리의 땅을 모조리 우거의 땅이 되었다. 

이때 우거왕이 동쪽으로 서압록(西鴨綠)이던 지금의 요하(遼河)를 건너와 장당경(藏唐京) 남쪽에 위치한 해성(海城) 평양의 북쪽 50리 땅을 차지하였던 것이 된다. 

[해성(海城) 수복 실패] 

서기전117년 갑자년(甲子年)에 천왕께서 장군을 보내 성을 공격하였으나 석달이 걸려도 이기지 못하였다. 

[해성(海城) 격파] 

서기전115년 병인년(丙寅年)에 천왕께서 몸소 정예군 5,000을 이끌고 습격하여 해성(海城)을 격파하고 추격하여 살수(薩水)에 이르르니 구려하(九黎河)의 동쪽은 모두가 항복해 왔다. 

고우루 천왕께서 친히 군사 5,000을 거느리고 해성(海城)을 습격하여 우거(右渠)의 군대를 격파하고 남쪽으로 흐르는 살수(薩水) 유역을 수복하니, 우거의 군대가 물러나고 구려하의 동쪽이 북부여에 귀복하였던 것이다. 

여기 구려하(九黎河)가 정확이 어느 강인지는 이름으로만 보면 불명하나, 서압록의 서쪽에 있는 강이 될 것이며, 구(九)라는 글자가 있어 아홉 갈래의 강이라고 보면 아마도 지금의 요하의 상류지역을 가리키는 것이 될 것인데, 소위 열하(烈河)라고 불리는 지역으로 보이며, 단군조선의 군국(君國)이던 구려국(句麗國)이 동서로 걸쳐 있는 지역이 될 것이다. 

역사적으로 구려하(九黎河)는 서안평(西安平) 부근에 있는 강으로서 지금의 서요하(西遼河) 상류 지역이 분명하게 된다. 한편, 요동반도 바로 서쪽에서 남으로 굽어 흐르는 요하 즉 서요하의 중하류 지역은 서압록(西鴨綠)이라 불렸으며, 지금의 압록강은 동압록(東鴨綠)이 불렸다. 

[좌원(坐原)에 목책(木柵)을 설치하다] 

서기전114년 정묘년(丁卯年)에 목책(木柵)을 좌원(坐原)에 설치하고 군대를 남여(南閭)에 두어 이로써 뜻하지 않은 사태에 대비하게 하였다. 

남여성(南閭城)을 수복한 것이 되는데, 서압록이 되는 지금의 요하 서편에서 남쪽에 위치한 성이 된다. 남여성은 진번(眞番)의 남쪽 지역이 되는 임둔(臨屯) 땅에 있었던 것이 될 것이다. 

[위씨조선(衛氏朝鮮) 멸망] 

서기전108년 계유년(癸酉年)에 한(漢)나라 유철(劉徹)이 평나(平那)를 노략질하여 우거를 멸망시키더니 4군(郡)을 두고자 사방으로 병력을 침략시켰다. 

한(漢)나라 유철(劉徹)은 한무제(漢武帝)를 가리키며, 평나(平那)는 위씨조선 땅의 중심지를 가리키는 것이 되고, 소위 한사군의 땅이 된 지역은 위씨조선 땅으로서 낙랑(樂浪), 번조선(番朝鮮) 땅, 진번(眞番), 임둔(臨屯), 구려(句麗)의 일부가 되며, 낙랑을 포함한 번조선 땅이 소위 낙랑군(樂浪郡)이 되고, 낙랑의 서북지역 중 구려의 일부가 현토군(玄ꟙ郡)이 되며, 낙랑군의 동쪽에 진번군, 진번군의 남쪽에 임둔군이 있었던 것이 된다. 

[한(漢)나라가 위씨조선 땅에 군(郡)을 설치하다] 

서기전108년에 낙랑군(樂浪郡)을 설치하고 서기전107년에 현토군(玄兎郡)을 설치하였다고 기록되고 있다. 

소위 낙랑군은 서기전108년에 설치하였다 하고, 현토군은 서기전107년에 설치하였다 하며, 진번군과 임둔군에 대하여는 정확한 기록이 보이지 아니한 바, 서기전108년에 낙랑군과 함께 설치한 것으로 간주하고 있는 듯이 보이는데, 아마도 토착인의 자치에 맡겨진 것이 될 것이다. 

한(漢)나라는 위씨조선을 멸망시키고 서기전108년에 단군조선의 낙랑홀 자리이던 곳에 낙랑군을 설치하고, 서기전107년에는 단군조선의 구려국 땅의 남부지역의 일부에 현토군을 설치하였던 것이 된다. 낙랑과 현토는 단군조선 시대에 이미 있던 지명으로서 한(漢)나라가 군명으로 그대로 사용한 것이 된다. 

진번(眞番)과 임둔(臨屯)은 서기전194년 위만이 번조선을 뺏은 후 위씨정권이 침공으로 차지한 것이 되는데, 서기전108년에 한나라가 위씨조선을 멸망시키고 이전부터 사용하던 이름을 그대로 따서 진번군, 임둔군이라 명명한 것이 되며, 서기전82년에 북부여가 수복함으로써 서기전42년에 소서노(召西奴)가 비류와 온조를 데리고 이곳으로 와서 개척하여 어하라국(於瑕羅國)을 세워 서기전31년에 고주몽 성제(聖帝)로부터 제후로 봉해진 것이 된다. 

[졸본의 고두막한이 동명(東明)이라 칭하며 다물업을 열어 북부여를 부흥시키다] 

서기전108년 계유년(癸酉年)에 고두막한(高豆莫汗)이 일찍이 북부여가 쇠약해지고 한(漢)나라 도둑들이 왕성해짐을 보고 북부여의 부흥을 위하여, 분연히 세상을 구할 뜻을 세워 졸본(卒本)에서 즉위하고 스스로 동명(東明)이라 하였다. 고두막한을 고열가(古列加)의 후손이라고 한다. 

고두막한(高豆莫汗)은 졸본(卒本)의 한(汗) 즉 북부여의 제후이다. 졸본은 단군조선 시대에 제후국 중의 하나이다. 

여기 동명(東明)은 고두막한이 세운 동명국(東明國)이기도 하며 고두막한이 한(汗)에서 나아가 왕(王)을 칭하여 동명왕(東明王)임을 나타낸다. 왕(王)은 독자적인 군사권을 가지므로 명을 받아 군사권을 수행하는 비왕(裨王)인 한(汗)과는 다르다. 굳이 왕이라 하는 것은 그냥 제후가 아닌 독자적으로 군사권을 가진 것을 나타내는 것이 된다. 

고두막한의 고(高)는 고씨라는 성씨가 되고, 두막(豆莫=豆莫婁 : 콩마루=큰마루)은 “큰 머리”라는 뜻을 소리로 표기한 글자가 되며, 한(汗)은 단군조선 시대의 지방 천하왕(天下王)인 군후(君侯)를 가리킨다. 

즉 한(汗)은 지방의 천하왕으로서 고대중국의 천자(天子)에 해당하는 작위(爵位)가 된다. 작위체계상으로 세분하면, 군(君)>공(公)>후(侯)>백(伯)>자(子)>남(男)의 앞에 천국(天國), 천조(天朝)에서 명을 받은 봉작(封爵)이라는 의미로서 천(天)이라는 글자를 붙이면, 천군(天君)>천공(天公)>천후(天侯)>천백(天伯)>천자(天子)>천남(天男)이 되는데, 천자는 끝에서 두 번째 봉작이 되고 단군조선의 한(汗)은 천군(天君)에서 천남(天男)을 통칭한 것이 된다. 반면, 진한, 마한, 번한의 한(韓)은 특별히 일반적인 한(汗)보다 한 단계 위가 되는 천왕격(天王格)으로서 천제(天帝), 천왕(天王)의 비왕(裨王)이 된다. 

서기전108년에 졸본 출신의 고두막한(高豆莫汗)이 펼친 북부여(北夫餘) 부흥의 다물업(多勿業)은, 서기전59년에 동부여(東夫餘)에서 졸본(卒本)으로 오면서 오이, 마리, 협보, 재사, 묵거, 무골의 의인(義人)을 얻은 고주몽(高朱蒙)에 의하여 단군조선 구려(高句麗) 부흥의 다물업으로 계승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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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프로필] 조홍근(曺洪根, 52세). 한문화재단(桓文化財團) 총재. 트위트-페이스북 역사당 부총재. 현 법무사. 

30여년 동안 족보(族譜)와 한중일(韓中日) 역사를 연구해 오면서, 부도지(符都誌), 한단고기(桓檀古記), 규원사화(揆園史話), 단기고사(檀奇古史) 등 귀중한 역사자료를 통하여, 우리역사 1만년을 넘어 마고(麻姑) 시대를 포함한 7만2천390년 역사를 밝히고 있음. 

1. 홍익인간(弘益人間) 천부(天符)의 역사는 마고성(麻姑城:파미르고원)의 마고(麻姑)시대인 서기전70378년 계해년(癸亥年)부터 시작되었음을 최초로 밝혔음. 
2. 역법(曆法)이 시작된 해는 마고성(麻姑城)의 황궁씨(黃穹氏) 시대인 서기전25858년 계해년(癸亥年)임을 밝혔으며, 서기전70378년 계해년이 마고(麻姑) 기원(紀元:천부 天符)임을 밝혔음. 
3. 황궁씨를 이은 나반(那般:那般尊者:獨聖者)이 한국(桓國)시대 한인씨(桓因氏) 이전의 임금이던 유인씨(有因氏)이며, 한인씨 7대(代)가 약1,000년을 다스렸다는 것임을 밝혔음. 
4. 윷놀이판의 모습이 천부경(天符經)의 무한조화순환역(無限造化循環易), 음양오행(陰陽五行), 태양태음성력(太陽太陰星曆), 단군조선의 정치행정 구조를 나타낸 것임을 밝혔으며, 하도(河圖)와 낙서(洛書)가 배달나라 시대의 음양오행수리역(陰陽五行數理易)이며, 태호복희 8괘역과 윷놀이판의 역이 지구의 자전(自轉)과 공전(公轉)을 기반으로 한 역(易)임을 밝혔음. 
5. 천제(天帝), 천황(天皇:天王), 천군(天君), 천공(天公), 천후(天侯), 천백(天伯), 천자(天子), 천남(天男)의 위계질서를 최초로 밝히고, 천제자(天帝子)와 천자(天子)의 차이점을 최초로 밝혔으며, 태호복희씨(太皞伏羲氏)가 일반 천자(天子)가 아니라 천지인(天地人) 삼신(三神)에게 제(祭)를 올리는 권한을 가진 제사장인 천군(天君)임을 밝혔음. 
6. 아리랑(阿里嶺) 민요의 원천이 되는 최초의 역사적 사실이 서기전2333년 10월 3일 조선을 건국하기 이전에 있었던 당요(唐堯)의 전란(戰亂)으로 인한 단군왕검(檀君王儉)의 동북 아사달로의 이동과정임을 밝혔음. 
7. 고대중국의 천자로 불리는 요순우(堯舜禹)와 고대일본의 신무왕(神武王)이 단군조선의 반역자(反逆者)이면서 제후인 천자(天子)임을 밝혔음. 
8. 우비(禹碑:우 치수기념 부루공덕 비)의 비문을 국내 최초로 역사적 해석을 하여, 서기전2267년 이후 우(禹)가 치수에 성공한 후 치수법(治水法)을 전수해 준 단군조선 태자부루의 공덕을 새겨 남악(南嶽) 형산(衡山)에 세운 것임을 밝혔음. 
9. 일본 국조신(國祖神)인 천조대신(天照大神)의 사당인 이세신궁(伊勢神宮)에 소장된 원시한글 축문을 국내 최초로 완벽 해독하고, 요하유로 기록된 천조대신이 단군조선 두지주(豆只州) 예읍(濊邑)의 추장(酋長)의 후손임을 밝혔음. 
10. 명도전(明刀錢) 최초 해독학자 허대동선생<저서 고조선문자>의 가림토(加臨土) 해독의 검증에 참여하여 첨수도(尖首刀), 명도전이 단군조선의 화폐이며 새겨진 문자가 단군조선의 상형 및 표음 문자임을 밝혔음. 그 외 다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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