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뿌리를 찾아서)/홍익인간 7만년 역사

[홍익인간 285] 후삼한(後三韓) 역사 3

양해천 2018. 1. 22. 12:59

[홍익인간 285] 후삼한(後三韓) 역사 3

2012년 04월 16일 (월) 08:10:06천산(天山)  sppopsj@yahoo.co.kr

-마한(馬韓)의 역대 연대기- 

1. 제1대 무강왕(武康王:기준(箕準):서기전194년~서기전193년) 

<번조선(番朝鮮)의 멸망> 

서기전194년 정미년(丁未年)에 번조선왕 기준(箕準)은 수유(須臾)에 있으면서 항상 많은 복을 심어 백성들이 매우 풍부하였다. 뒤에 떠돌이 도적인 위만(衛滿)의 꼬임에 빠져 패하고 마침내 바다로 들어간 후 돌아오지 않았다. 

수유(須臾)는 수유족(須臾族)이 사는 곳을 가리키며, 수유족은 소위 은(殷) 기자(箕子) 서여(胥餘)의 후손인 기후족(箕侯族)을 가리킨다. 

여기서는 수유는 수유족의 근거지인 번조선 땅을 지칭하는 것이 된다. 

기준왕이 바다로 들어간 후 돌아오지 않았다는 것은, 기준왕이 위만의 속임수에 빠져 번조선을 잃고서 회복하지 못하고 멀리 떠난 것을 가리키는데, 역사적으로는 서기전194년에 기준왕이 번조선을 떠나 배를 타고 마한 땅으로 갔던 것인 바, 처음에는 서기전195년에 최숭(崔崇)이 먼저 정착하여 세웠던 낙랑국(樂浪國)이 있는 지금의 평양(平壤)에 도착하였으나 토착인들의 저항에 부딪혀 다시 남하하였던 것이고, 이에 한반도의 남서쪽 금마(金馬)에 정착하게 되었던 것이며, 스스로 마한왕이 되었으나 1년을 채우지 못하고 붕(崩)하였던 것이다. 

이에 번조선 출신의 상장군(上將軍) 탁(卓)이 무리를 이끌고 와서 월지(月支)에서 중마한(中馬韓)을 세웠는데, 금마(金馬)의 마한(馬韓)을 이어 제2대 왕이 되었던 것이며, 서기전194년부터 서기9년에 백제에게 멸망할 때까지 후삼한의 마한(馬韓)은 합 10대왕 203년의 역사를 가진다. 여기서 월지(月支)는 목지(目支)를 다르게 적은 글자가 된다. 중마한은 마한 땅의 중부지역이 되는 지금의 직산(稷山)을 중심으로 한 나라이기 때문에 붙여진 국명이 된다. 

<마한 땅의 후삼한> 

서기전194년 위만(衛滿)에게 속아 나라를 빼앗긴 번조선왕(番朝鮮王) 기준(箕準)은 배를 타고 마한(馬韓) 땅의 낙랑(樂浪)에 들어갔으나, 토착인들의 저항에 부딪혀 쫓겨나니, 다시 배를 타고 남하하여 마한 땅의 서쪽 지역인 금마(金馬)에 이르러 나라를 세우니 마한(馬韓)인 것이며, 금마는 지금의 익산(益山)이 된다. 

이리하여 기준왕(箕準王)은 마한(馬韓)의 제1대 무강왕(武康王)이라 하며 1년만에 붕하니, 목지(目支:月支)에서 중마한(中馬韓)을 세운 탁(卓)이 제2대 마한왕이 되었다. 월지(月支)는 목지(目支)의 오기(誤記)가 된다. 목지는 천안과 평택 사이에 위치한 지금의 직산(稷山)이다. 

2. 제2대 강왕(康王:卓:서기전193년~서기전189년) 

서기전194년 번조선이 망하자 오가의 무리들은 상장(上將) 탁(卓)을 받들어 모두 함께 산을 넘어 마한땅 서쪽 지역에 있는 월지(月支)에 이르러 나라를 세우니, 월지는 탁이 태어난 고향이니 이를 가리켜 중마한(中馬韓)이라 한다. 서기전193년에 기준왕의 뒤를 이어 제2대 마한왕이 되니 강왕(康王)이라 한다. 

마한 땅에 기준왕(箕準王)과 탁왕(卓王)의 마한이 세워지기 전인 서기전209년에 동쪽에 진한(辰韓)이 세워지고, 이때 남쪽에는 변한(弁韓)이 세워졌는데, 이후 진한과 변한은 마한(馬韓)의 다스림을 따르며 세세토록 배반하는 일이 없었다. 

즉 마한의 임금인 마한왕(馬韓王)이 진한과 변한을 모두 아우르는 진왕(辰王)이 되었고 진한과 변한은 왕이라기 보다 비왕(裨王)인 한(韓)인 것이다. 이는 진한(眞韓) 즉 진조선(眞朝鮮)의 임금인 단군이 천왕(天王)으로서 마한(馬韓) 즉 마조선(馬朝鮮)과 번한(番韓) 즉 번조선(番朝鮮)을 다스린 것과 같은 맥락이다. 

단군조선 시대에는 진한(眞韓)-진조선(眞朝鮮)의 임금이 진왕(辰王)으로서 본왕(本王) 즉 상국(上國)의 왕인 천왕(天王)이며, 마한(馬韓)-마조선(馬朝鮮)과 번한(番韓)-번조선(番朝鮮)은 비왕(裨王)이 다스린 것이다. 

3. 제3대 안왕(安王:龕:서기전189~서기전157) 

4. 제4대 혜왕(惠王:寔:서기전157~서기전144) 

5. 제5대 명왕(明王:武:서기전144~서기전113) 

6. 제6대 효왕(孝王:亨:서기전113~서기전73) 

7. 제7대 양왕(襄王:燮:서기전73~서기전58) 

8. 제8대 원왕(元王:勳:서기전58~서기전32) 

9. 제9대 계왕(稽王:貞:서기전32~서기전16) 

<백제(百濟)의 건국> 

서기전18년에 마한의 제9대 계왕(稽王)이 백제의 시조 온조(溫祚)에게 한강유역 땅을 떼어 주어 나라를 세우게 하였다. 이에 온조는 서기전18년에 한산(漢山) 아래 한강의 남쪽 즉 하남(河南)에 위지성(尉支城:위례성)을 쌓았다. 

위지성(위례성)은 13년간 백제의 초기 수도로서 지금의 풍납토성 자리가 되며, 서기전5년부터 서기271년까지 276년간 수도가 된 한성(漢城)은 해자를 갖춘 몽촌토성(蒙村土城)이 되고, 서기371년부터 서기475년까지 약100년간 수도가 된 한산(漢山)은 지금의 남한산성(南漢山城) 자리가 되는데, 지금의 서울 즉 한성(漢城)에서의 백제역사는 서기전18년부터 서기475년까지 총493년이 된다. 

10. 제10대 학왕(學王:서기전16년~서기9년) 

서기9년에 백제에게 망하니, 이로써 후삼한의 마한은 10대 203년이다. 

마한의 계왕이 서기전18년에 온조에게 나라를 세울 수 있도록 한강유역을 떼어 주면서 배려하였으나, 서기9년에 백제의 공격을 받고 멸망하였던 것이 된다. 

- 마한 54국 - 

[마한54국] 

마한은 한반도의 서쪽에 있으며 모두 54국이 된다. 북쪽은 낙랑과 연결되고, 남쪽은 왜와 연접되며, 동쪽은 진한과 접한다. 진한 12국과 변한 12국을 합하면 마한 관할에는 모두 78국이 있는 것이 된다. 

마한 54국은 아래와 같다. 

원양국(爰襄國), 모양수국(牟襄水國), 상수국(桑水國), 소석색국(小石索國), 대석색국(大石索國), 우휴모록국(優休牟淥國), 신분첨국(臣濆沾國), 백제국(伯濟國), 속로불사국(速盧不斯國), 일화국(日華國), 고탄자국(古誕者國), 고리국(古離國), 노남국(怒藍國), 자지국(自支國), 자리모로국(咨離牟盧國), 소위건국(素謂乾國), 고원국(古爰國), 막로국(莫盧國), 비리국(卑離國), 고리비국(古卑離國), 신첩국(臣疊國), 지침국(支侵國), 구로곡(狗盧國), 비미국(卑彌國), 감해비리국(監奚卑離國), 고만국(古滿國), 치리국국(致利鞠國), 염로국(冉路國), 아림국(兒林國), 사로국(駟盧國), 내비리국(內卑離國), 감해국(感奚國), 매로국(邁盧國), 군비리국(群卑離國), 전사오차국(田斯烏且國), 일리국(一離國), 불미국(不彌國), 우반국(友半國), 구소국(狗素國), 정로국(挺盧國), 모로비리국(牟盧卑離國), 신소도국(臣蘇塗國), 막로국(莫盧國), 고랑국(古榔國), 임소반국(臨素半國), 신운신국(臣雲神國), 여래비리국(如來卑離國), 초산도비리국(楚山塗卑離國), 일난국(一難國), 구해국(狗奚國), 불운국(不雲國), 불사분사국(不斯濆邪國), 원지국(爰池國), 건마국(乾馬國), 초리국(楚離國)이다.<삼국지 동이전 韓> 

[마한의 관제] 

작은 고을 즉 별읍(別邑)마다 우두머리로 거수(渠帥)가 있다. 큰 고을에서는 우두머리를 신지(臣智)라 하고, 그 아래에 검측(儉側)이 있고, 그 아래에 번지(樊祗)가 있고, 그 아래에 살해(殺奚)가 있으며, 그 아래에 읍해(邑偕)가 있다<후한서 동이전 韓>. 

진왕(辰王)은 월지국(月支國)을 다스리고, 신지(臣智)에게는 우호신운견지보안사숙지분신리아불례구사진지렴(優呼臣雲遣支報邪叔支濆臣離兒不例狗邪秦支廉)이라는 칭호를 더하기도 하였다. 

벼슬에는 위솔선읍군(魏率善邑君), 귀의후(歸義侯), 중랑장(中郞將), 도위(都尉), 백(伯), 장(長), 후(侯) 등이 있었다. 

각 나라마다 한 사람씩을 세워 천신(天神)에게 제사를 올리게 하는데 이 사람을 천군(天君)이라고 한다. 

여기서 별읍(別邑)은 소도(蘇塗)를 가리키는 것이 된다. 소도에는 큰 나무가 있어 방울과 북을 매다는데 절(寺)과 같은 말이 된다. 큰 나무는 신단수 즉 당산나무를 가리키는 것이 되고, 절과 같다는 말은 종교행사 장소인 신성지역임을 나타내는 것이 된다. 

마한의 소국(小國)에서 천제(天祭)를 지내는 담당자를 천군(天君)이라 하는 바, 이로써 목지국(目支國:月支國)의 왕인 마한(馬韓)의 진왕(辰王)은 소국들의 본왕으로서 천왕격(天王格)의 임금이 된다. 여기서 월지국(月支國)은 목지국(目支國)의 오기가 된다. 

소도의 수장은 거수(渠帥)이다. 소도를 관장한 사람은 국선(國仙)이 되는데, 곧 국선이 거수에 해당하는 것으로 된다. 

신지(臣智), 검측(儉側), 번예(樊濊)의 다른 표기가 되는 번지(樊祗)는 공후백자남의 제후에 해당하고, 그 아래의 살해(殺奚)는 지방의 최고장관인 욕살(褥薩)에 해당하며, 읍해(邑偕)는 읍차(邑借)의 오기(誤記)로서 읍(邑)의 수장을 가리키는 것이 된다. 

<인구수> 

큰 나라는 만여호가 되고, 작은 나라는 수천 호가 된다. 총 10여만호가 된다. 

마한의 관할에 속하는 진한과 변한을 합한 총 78국의 땅을 모두 합치면 약4,000리(里)가 된다. 이는 가로와 세로 각 약 2,000리 즉 방(方) 2,000리라는 것이 되는데, 단군조선 시대의 1주(州)에 해당하는 방(方) 1,000리의 땅이 4개가 있는 것이 된다. 

하지만 후삼한 시대의 마한 관할은 실제로 한반도의 중남부 지역이 되는데, 즉 지금의 한강유역에서 남쪽으로 전지역을 가리키는 것이 되며, 사방 둘레가 약4,000리로서 방(方) 1,000리의 땅이 된다. 

1호당 식구를 약10명이라고 계산하면 10여만호의 총인구수는 약100만여명이 된다. 즉 지금의 한강 이남으로 약100만명이 살았다는 것이 된다. 

한편, 단군조선 시대인 서기전1666년경에는 36주(州)와 은(殷)나라 9주(州)를 합한 총 45주(州)에 총 1억8,000만명이 살아, 평균적으로 1주(州)에 해당하는 방(方) 1,000리에 약400만명이 살았던 것이 되어, 후삼한 시대에 비하여 인구밀도가 약4배에 해당되었던 것으로 계산된다. 물론 단군조선의 영역은 45주 밖으로 일반 조공국까지 합하면 동서 2만리 남북 5만리의 땅이 되어 서기전1666년경에 1억 8,000만명이 살았다는 것은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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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프로필] 조홍근(曺洪根, 52세). 한문화재단(桓文化財團) 사무총장. 트위트-페이스북 역사당 부총재. 현 법무사. 

30여년 동안 족보(族譜)와 한중일(韓中日) 역사를 연구해 오면서, 부도지(符都誌), 한단고기(桓檀古記), 규원사화(揆園史話), 단기고사(檀奇古史) 등 귀중한 역사자료를 통하여, 우리역사 1만년을 넘어 마고(麻姑) 시대를 포함한 7만2천390년 역사를 밝히고 있음. 

1. 홍익인간(弘益人間) 천부(天符)의 역사는 마고성(麻姑城:파미르고원)의 마고(麻姑)시대인 서기전70378년 계해년(癸亥年)부터 시작되었음을 최초로 밝혔음. 
2. 역법(曆法)이 시작된 해는 마고성(麻姑城)의 황궁씨(黃穹氏) 시대인 서기전25858년 계해년(癸亥年)임을 밝혔으며, 서기전70378년 계해년이 마고(麻姑) 기원(紀元:천부 天符)임을 밝혔음. 
3. 황궁씨를 이은 나반(那般:那般尊者:獨聖者)이 한국(桓國)시대 한인씨(桓因氏) 이전의 임금이던 유인씨(有因氏)이며, 한인씨 7대(代)가 약1,000년을 다스렸다는 것임을 밝혔음. 
4. 윷놀이판의 모습이 천부경(天符經)의 무한조화순환역(無限造化循環易), 음양오행(陰陽五行), 태양태음성력(太陽太陰星曆), 단군조선의 정치행정 구조를 나타낸 것임을 밝혔으며, 하도(河圖)와 낙서(洛書)가 배달나라 시대의 음양오행수리역(陰陽五行數理易)이며, 태호복희 8괘역과 윷놀이판의 역이 지구의 자전(自轉)과 공전(公轉)을 기반으로 한 역(易)임을 밝혔음. 
5. 천제(天帝), 천황(天皇:天王), 천군(天君), 천공(天公), 천후(天侯), 천백(天伯), 천자(天子), 천남(天男)의 위계질서를 최초로 밝히고, 천제자(天帝子)와 천자(天子)의 차이점을 최초로 밝혔으며, 태호복희씨(太皞伏羲氏)가 일반 천자(天子)가 아니라 천지인(天地人) 삼신(三神)에게 제(祭)를 올리는 권한을 가진 제사장인 천군(天君)임을 밝혔음. 
6. 아리랑(阿里嶺) 민요의 원천이 되는 최초의 역사적 사실이 서기전2333년 10월 3일 조선을 건국하기 이전에 있었던 당요(唐堯)의 전란(戰亂)으로 인한 단군왕검(檀君王儉)의 동북 아사달로의 이동과정임을 밝혔음. 
7. 고대중국의 천자로 불리는 요순우(堯舜禹)와 고대일본의 신무왕(神武王)이 단군조선의 반역자(反逆者)이면서 제후인 천자(天子)임을 밝혔음. 
8. 우비(禹碑:우 치수기념 부루공덕 비)의 비문을 국내 최초로 역사적 해석을 하여, 서기전2267년 이후 우(禹)가 치수에 성공한 후 치수법(治水法)을 전수해 준 단군조선 태자부루의 공덕을 새겨 남악(南嶽) 형산(衡山)에 세운 것임을 밝혔음. 
9. 일본 국조신(國祖神)인 천조대신(天照大神)의 사당인 이세신궁(伊勢神宮)에 소장된 원시한글 축문을 국내 최초로 완벽 해독하고, 요하유로 기록된 천조대신이 단군조선 두지주(豆只州) 예읍(濊邑)의 추장(酋長)의 후손임을 밝혔음. 
10. 명도전(明刀錢) 최초 해독학자 허대동선생<저서 고조선문자>의 가림토(加臨土) 해독의 검증에 참여하여 첨수도(尖首刀), 명도전이 단군조선의 화폐이며 새겨진 문자가 단군조선의 상형 및 표음 문자임을 밝혔음. 그 외 다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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