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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인간 288] 한사군(漢四郡)의 문제 1

양해천 2018. 1. 22. 13:02

[홍익인간 288] 한사군(漢四郡)의 문제 1

2012년 04월 19일 (목) 19:09:37천산(天山)  sppopsj@yahoo.co.kr

1. 소위 한사군 설치 문제 

가. 소위 한사군(漢四郡) 

서기전108년에 한(漢)나라는 위씨조선(衛氏朝鮮)을 멸망시키고 위씨조선의 땅에 소위 한사군을 설치하였다 하는 바, 원래 위씨조선 땅은 단군조선 땅이었던 것이 된다. 

서기전194년에 시작된 위씨조선은 험독(險瀆)을 수도로 삼았으며, 나중에 서북쪽에 있던 낙랑(樂浪)과 동북쪽에 있던 진번(眞番), 그리고 동쪽에 있던 임둔(臨屯)의 땅을 차지하였던 것이 된다. 위씨조선은 우거왕 때인 서기전118년부터 서기전115년까지 지금의 요동반도에 있던 심양(瀋陽:藏唐京)의 남쪽에 위치한 땅인 해성(海城)을 점령한 적도 있다. 

소위 한사군으로 기록되는 것은 낙랑군(樂浪郡), 현도군(玄ꟙ郡), 진번군(眞番郡), 임둔군(臨屯郡)이다. 

실제로 한사군이라 불리는 낙랑군, 현도군, 진번군, 임둔군이 설치되었는지 여부에 대하여는 여전히 의문점이 있으나, 한(漢)나라가 위씨조선을 침략하여 멸망시킨 사실, 위씨조선 땅을 당시 북부여(北夫餘)가 지배하지 못하고 서기전108년에 위씨조선이 망하였을 때 고토회복 전쟁을 하였다는 사실, 그리고 고대중국의 기록에서 서기전108년에 낙랑군을 설치하고 서기전107년에 현도군을 설치하였으며 진번군과 임둔군은 서기전82년에 폐지하여 낙랑군에 붙였다 하는 등의 기록을 볼 때, 일단은 한(漢)나라가 위씨조선을 멸망시키고 북부여나 고구려의 지배력이 미치지 못하였던 옛 위씨조선 땅을 지배하였을 가능성은 농후한 것이 된다. 

나. 군명(郡名)의 유래 

소위 한사군에 해당하는 낙랑, 현도, 진번, 임둔이라는 명칭은 한(漢)나라가 위씨조선을 멸망시키고 처음으로 만들어낸 지명이 아니라, 이미 위씨조선 시대에 있던 명칭이며, 더 나아가 단군조선 시대에 이미 존재하던 명칭이 된다. 즉, 낙랑국, 현도국, 진번국, 임둔국이라는 단군조선의 제후국이 되는 것이다. 기록상으로는 낙랑과 진번은 100% 단군조선의 봉국인 것이며, 현도와 임둔도 단군조선의 수많은 제후국(諸侯國)들 중의 하나라고 보여지는 것이다. 

즉, 한(漢)나라는 이미 있던 단군조선의 군후국(君侯國)의 국(國)에 해당하던 명칭이나 북부여의 군명(郡名)을 한(漢)나라의 군명(郡名)으로 대체한 것이 된다. 

다. 한사군의 설치 시기 

낙랑군은 서기전108년에 설치하고 현도군은 서기전107년에 설치하였으며, 진번군과 임둔군은 언제 설치된 것인지 명백한 기록이 없으나 서기전108년에 낙랑군과 함께 설치되었다는 취지로 기록되고 있다. 

2. 소위 한사군 위치 문제 

가. 낙랑군 

한무제(漢武帝)가 서기전108년에 설치하였다고 기록되는데, 원래 낙선(樂鮮)으로서 유주(幽州)에 붙였다 하는 바, 여기서 낙선은 곧 낙랑조선(樂浪朝鮮)이라는 말이며 이는 조선에 속하는 낙랑 땅이라는 말이 된다. 

(1) 소속 현의 위치 

(가) 한서 지리지의 낙랑군 소속 현 

1) 조선(朝鮮) 

낙랑군의 조선현을 주나라 무왕(武王)이 기자(箕子)를 봉한 땅이라고 하나, 은나라 왕족인 기자 서여(胥餘)는 서기전1120년에 주나라의 신하가 되기를 거부하고 단군조선 영역으로 도피한 인물인 바, 주무왕이 기자를 제후로 봉하였던 것이 아니며, 망명 기자는 곧 단군조선의 제후로서 그 정착지는 지금의 태항산 서쪽이던 서화(西華)라고 불리던 지역인 것이고, 후대에 기자의 후손들이 동쪽의 번한 땅으로 이주하여 읍차(邑借) 기후(箕詡)라는 자가 번조선왕이 된 이후 기준왕(箕準王)에 이르게 되었는데, 이에 주무왕이 기자를 봉하였다는 조선과 여기 낙랑군의 조선현은 아무 상관성이 없는 것이다. 

2) 남감(남邯) 

3) 패수(浿水) 

패수라는 강은 서쪽으로 흘러 증지(增地)에 이르러 바다로 들어갔다라고 하고, 왕망(王莽)이 이곳을 낙선정(樂鮮亭)이라 하였다 한다. 

그러나, 낙랑군에 속하는 패수현의 패수는 지금의 난하(灤河)이며, 낙선정의 낙선(樂鮮)은 곧 낙랑조선(樂浪朝鮮)이라는 말로서 단군조선의 봉국(封國)이던 낙랑(樂浪)을 가리키는 것이 되고, 패수의 흐름으로 보면 중하류 지역에서 서쪽으로 흐르는 것이 아니라 서북에서 동남으로 흐르다 동쪽으로 하여 바다에 들어가는 모양을 가진다. 

패수의 상류나 중상류 지역으로 보면 증지(增地)라는 땅 부근에서 서쪽으로 흐를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는 것이 된다. 

후한서(後漢書) 군국지(郡國誌) 동이전(東夷傳)에서는 구수(俱水)라고 적고 있는데, 이는 패수(浿水)의 오기가 된다. 

4) 함자(含資) 

후한서 군국지 동이전에서는 탐자(貪資)라고 적고 있는 바, 함자나 탐자 중 어느 하나가 오기가 된다. 

5) 대수(帶水) 

대수라는 강은 서쪽으로 흘러 대방(帶方)에 이르러 바다로 들어갔다. 

대수는 서쪽으로 흐르는 강으로서 대방지역을 지나는 바, 서기204년에 공손강(公孫康)이 낙랑군의 남부지역을 나누어 대방군(帶方郡)을 설치하였던 것인데, 이 대방군은 곧 지금의 난하 하류지역의 서쪽으로 당산(唐山) 사이에 있는 것이 된다. 

후한서 군국지 동이전에서는 낙랑군에 대수현이 제외된다. 

6) 점제(黏磾) 

후한서 군국지 동이전에서는 점선(占蟬)이라고 적고 있는데, 점제의 오기가 된다. 

소위 한사군의 낙랑군에 속하는 점제현은 위치상으로 난하 유역에 있는 것이며, 한반도의 평양 부근에 있는 것이 아닌 것이 명백하다. 

7) 수성(遂成) 

8) 증지(增地) 

왕망은 증지를 증토(增土)라고 하였다. 

증지라는 땅이 패수(浿水)가 흘러 서쪽으로 지나는 지역에 있는 것이라면, 증지는 패수가 서쪽으로 흐르는 곳으로서 패수중류의 북쪽에 위치한 것이 된다. 

9) 대방(帶方) 

대수(帶水)가 흘러 지나는 땅이 되므로, 패수(浿水)이던 지금의 난하(灤河) 바로 서쪽으로 당산(唐山) 사이에 있는 땅이 된다. 

10) 사망(駟望) 

11) 해명(海冥) 

왕망은 이 해명현 땅을 해환(海桓)이라고 하였다. 즉, 왕망은 어둡다는 뜻을 가진 명(冥)을 밝다는 뜻을 가진 환(桓)으로 고친 것이다. 

12) 열구(列口) 

열구(列口)는 지금의 고하(沽河) 지역에 있는 땅이 된다. 고하는 옛날의 열수(列水)가 되며, 습수(濕水), 열수(列水), 산수(汕水) 등의 강이 있는 것이 된다. 여기서 습수는 습여수(濕餘水)이다. 

13) 장잠(長岑) 

이 장잠이라는 말은 장령(長岺)이라는 글자와 뜻이 같은데, 난하 중류지역의 동쪽으로 장령이라는 지명이 있으며, 이곳이 낙랑군 장잠현이 되는 것이다. 

14) 둔유(屯有) 

둔유현은 대방현 부근에 있는 것이 된다. 

15) 소명(昭明) 

남부도위가 다스렸다 하므로 낙랑군의 남쪽에 위치한 현이 된다. 

16) 누방(鏤方) 

낙랑군의 동북에 위치한 현이 되어 패수인 난하의 동쪽에 위치한 것이 된다. 

17) 제해혼미(提奚渾彌) 

18) 탄열(呑列) 

분여산(分黎山)이 있고, 열수(列水)가 탄열현에서 시작되어 서쪽으로 흘러 점선(黏蟬)에 이르러 바다로 들어갔다 한다. 

즉, 탄열현은 열수 즉 지금의 고하(沽河)가 시작되는 곳에 위치한 것이 된다. 

19) 동이(東이) 

20) 불이(不而) 

동부도위가 다스렸다 하므로, 낙랑군의 동부지역에 해당하는 것이 된다. 

21) 잠태(蠶台) 

22) 화려(華麗) 

23) 사두매(邪頭昧) 

24) 전막(前莫) 

25) 요조(夭祖) 

(나) 한서 지리지의 낙랑군 소속 현 외 군국지 동이전에 기록된 현 

1) 구수(俱水) 

구수는 한서 지리지에 낙랑군에 속한 현으로 기록된 패수(浿水)의 오기가 된다. 

2) 탐자(貪資) 

탐자는 한서 지리지에 낙랑군에 소속된 현으로 기록된 함자(含資)의 오기가 된다. 

3) 점선(占蟬) 

점선은 한서 지리지에 낙랑군에 소속된 현으로 기록된 점제(黏磾)의 오기가 된다. 

4) 낙도(樂都) 

단군조선 시대에 봉국(封國)으로서의 낙랑(樂浪)의 수도(首都)가 있던 곳을 가리키는 것이 아닌가 한다. 

(2) 낙랑군의 위치 

낙랑군은 옛 단군조선의 봉국이던 낙랑홀 땅을 중심으로 하는 지역이 되는데, 패수(浿水)이던 지금의 난하(灤河)의 중하류를 중심으로 하여 동서지역에 걸친 것이 되는 바, 서쪽으로는 고하(沽河)의 중상류에 이르고 동쪽으로는 대릉하 상류지역에 이르는 것이 된다. 

낙랑군의 서쪽에는 요동군(遼東郡)과 우북평군(右北平郡)이 위치하고, 서북쪽에는 현도군(玄菟郡)이 위치하며, 동쪽으로는 남방에 임둔(臨屯), 북쪽에 진번(眞番)이 위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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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프로필] 조홍근(曺洪根, 52세). 한문화재단(桓文化財團) 사무총장. 트위트-페이스북 역사당 부총재. 현 법무사. 

30여년 동안 족보(族譜)와 한중일(韓中日) 역사를 연구해 오면서, 부도지(符都誌), 한단고기(桓檀古記), 규원사화(揆園史話), 단기고사(檀奇古史) 등 귀중한 역사자료를 통하여, 우리역사 1만년을 넘어 마고(麻姑) 시대를 포함한 7만2천390년 역사를 밝히고 있음. 

1. 홍익인간(弘益人間) 천부(天符)의 역사는 마고성(麻姑城:파미르고원)의 마고(麻姑)시대인 서기전70378년 계해년(癸亥年)부터 시작되었음을 최초로 밝혔음. 
2. 역법(曆法)이 시작된 해는 마고성(麻姑城)의 황궁씨(黃穹氏) 시대인 서기전25858년 계해년(癸亥年)임을 밝혔으며, 서기전70378년 계해년이 마고(麻姑) 기원(紀元:천부 天符)임을 밝혔음. 
3. 황궁씨를 이은 나반(那般:那般尊者:獨聖者)이 한국(桓國)시대 한인씨(桓因氏) 이전의 임금이던 유인씨(有因氏)이며, 한인씨 7대(代)가 약1,000년을 다스렸다는 것임을 밝혔음. 
4. 윷놀이판의 모습이 천부경(天符經)의 무한조화순환역(無限造化循環易), 음양오행(陰陽五行), 태양태음성력(太陽太陰星曆), 단군조선의 정치행정 구조를 나타낸 것임을 밝혔으며, 하도(河圖)와 낙서(洛書)가 배달나라 시대의 음양오행수리역(陰陽五行數理易)이며, 태호복희 8괘역과 윷놀이판의 역이 지구의 자전(自轉)과 공전(公轉)을 기반으로 한 역(易)임을 밝혔음. 
5. 천제(天帝), 천황(天皇:天王), 천군(天君), 천공(天公), 천후(天侯), 천백(天伯), 천자(天子), 천남(天男)의 위계질서를 최초로 밝히고, 천제자(天帝子)와 천자(天子)의 차이점을 최초로 밝혔으며, 태호복희씨(太皞伏羲氏)가 일반 천자(天子)가 아니라 천지인(天地人) 삼신(三神)에게 제(祭)를 올리는 권한을 가진 제사장인 천군(天君)임을 밝혔음. 
6. 아리랑(阿里嶺) 민요의 원천이 되는 최초의 역사적 사실이 서기전2333년 10월 3일 조선을 건국하기 이전에 있었던 당요(唐堯)의 전란(戰亂)으로 인한 단군왕검(檀君王儉)의 동북 아사달로의 이동과정임을 밝혔음. 
7. 고대중국의 천자로 불리는 요순우(堯舜禹)와 고대일본의 신무왕(神武王)이 단군조선의 반역자(反逆者)이면서 제후인 천자(天子)임을 밝혔음. 
8. 우비(禹碑:우 치수기념 부루공덕 비)의 비문을 국내 최초로 역사적 해석을 하여, 서기전2267년 이후 우(禹)가 치수에 성공한 후 치수법(治水法)을 전수해 준 단군조선 태자부루의 공덕을 새겨 남악(南嶽) 형산(衡山)에 세운 것임을 밝혔음. 
9. 일본 국조신(國祖神)인 천조대신(天照大神)의 사당인 이세신궁(伊勢神宮)에 소장된 원시한글 축문을 국내 최초로 완벽 해독하고, 요하유로 기록된 천조대신이 단군조선 두지주(豆只州) 예읍(濊邑)의 추장(酋長)의 후손임을 밝혔음. 
10. 명도전(明刀錢) 최초 해독학자 허대동선생<저서 고조선문자>의 가림토(加臨土) 해독의 검증에 참여하여 첨수도(尖首刀), 명도전이 단군조선의 화폐이며 새겨진 문자가 단군조선의 상형 및 표음 문자임을 밝혔음. 그 외 다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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