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뿌리를 찾아서)/홍익인간 7만년 역사

[홍익인간 289] 한사군(漢四郡)의 문제 2

양해천 2018. 1. 22. 13:04

[홍익인간 289] 한사군(漢四郡)의 문제 2

2012년 04월 20일 (금) 06:29:41천산(天山)  sppopsj@yahoo.co.kr

나. 현도군(玄菟郡) 

한무제(漢武帝)가 서기전107년에 설치하였다고 기록된다. 

(1) 소속 현의 위치 

(가) 한서 지리지의 현도군 소속 현 

1) 고구려(高句麗) 

현도군의 고구려현에서 요산(遼山)과 요수(遼水)가 나온다. 

요수(遼水)는 백평동(白平東:臯東) 또는 위백평산(衛白平山)에서 나오고, 요산(遼山)은 소요수(小遼水)에서 나왔다라고 하는 바, 요수는 원래의 대요수(大遼水)를 가리키며 소요수는 요산에서 시작되어 서남쪽으로 흘러 요대(遼隊)에 이르러 대요수에 합류하는 강을 가리키는 것이 된다. 

지금의 영정하가 여기 요수인 대요수가 되고, 지금의 장가구(張家口) 부근에서 서남쪽으로 영정하에 합류하는 청수하(淸水河)가 여기의 소요수가 된다. 그리하여 요산은 소요수의 상류에 위치하는 것이 된다. 이로써 소요수의 동남지역과 대요수의 북동지역이 곧 원래의 요동(遼東)이 되며 그 서쪽이 원래의 요서(遼西)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고구려현은 서쪽으로는 대요수가 되는 영정하의 상류지역과 동쪽 또는 동북쪽으로는 소요수가 시작되는 서안평 가까운 곳에 걸치는 지역이 된다. 현도군 서개마현의 서쪽에 위치하는 것으로 되며, 단군조선의 구려국 땅이 된다. 단군조선의 구려국은 서쪽으로 대동(大同)에서 동쪽으로 적봉(赤峯)에 걸치는 광대한 지역이 된다. 

2) 상은대(上殷臺) 

왕망은 상은대를 하은대(下殷臺)라고 하였다. 즉, 상(上)을 하(下)로 격하시킨 것이 된다. 

3) 서개마(西蓋馬) 

왕망은 이곳을 현도정(玄菟亭)이라 하였는데, 서개마현에 있는 마자수(馬訾水)는 서북쪽으로 흘러 염난수(鹽難水)에 합류하고 서남쪽으로 흘러 서안평(西安平)에 이르러 바다로 들어갔다라고 한다. 

여기 서안평은 바다 근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왕망이 이름붙인 소위 북안평(北安平)으로서 그 북쪽에 소수맥(小水貊)이라는 호수가 있는 곳이며, 이에 서개마현은 요동군(遼東郡)에 속하는 서안평의 동북쪽에 위치하는 것이 된다. 

서개마는 지금의 대흥안령산맥의 서쪽지역을 가리키는 것이 되는데, 단군조선 시대에는 구려국(句麗國)에 속한 땅이 되며, 현도군 고구려현의 동쪽에 위치한 것으로 된다. 단군조선의 구려국은 서쪽으로 대동(大同)에서 동쪽으로 적봉(赤峯)에 걸치는 광대한 지역이 된다. 

(나) 한서 지리지의 현도군 소속 현 외 군국지 동이전에 기록된 현 

1) 고현(高顯) 

이전에는 요동군에 소속되어 있었다. 서기107년에 한(漢)나라 안제(安帝)가 고현을을 요동군에서 제외하고 현도군에 붙인 것이 된다. 

현도군 고현은 대요수와 소요수의 동쪽에 위치한 땅이 된다. 

2) 후성(候城) 

이전에는 요동군에 소속되어 있었다. 서기107년에 한(漢)나라 안제(安帝)가 후성을 을 요동군에서 제외하고 현도군에 붙인 것이 된다. 

현도군 후성은 댕수와 소요수의 동쪽에 위치한 땅이 된다. 

3) 요양(遼陽) 

이전에는 요동군에 소속되어 있었다. 서기107년에 한(漢)나라 안제(安帝)가 요양을 요동군에서 제외하고 현도군에 붙인 것이 된다. 

요양은 요의 남쪽 또는 주나라 역(易)의 방위해석으로 보면 동쪽이라는 뜻을 가지는 글자인데, 소요수의 남쪽과 대요수의 동쪽에 위치한 것이 된다. 

(2) 현도군의 위치 

현도군은 대체적으로 낙랑군의 서북에 위치하고 요동군의 북쪽 또는 동북에 위치한 것이 된다. 

다. 진번군(眞番郡) 

진번군은 낙랑군이 설치되던 해인 서기전108년에 설치되었다라는 취지로 기록되고 있는데, 진번군에 소속된 현에 관한 기록은 보이지 않으며, 진번군의 위치는 원래의 번한(番韓) 땅이 아닌 진번국(眞番國)의 땅으로서, 대체적으로 지금의 요하 서쪽으로 대릉하 중상류에 걸치는 지역이라고 보면 된다. 

서기전82년에 폐지되어 낙랑군에 붙였다고 하나, 이때 북부여의 고두막(高豆莫) 천왕(天王)의 수복정책에 따라 북부여(北夫餘)에 귀속된 것으로 보인다. 

라. 임둔군(臨屯郡) 

임둔군은 진번군과 마찬가지로 낙랑군이 설치되던 해인 서기전108년에 설치되었다라는 취지로 기록되고 있는데, 임둔군에 소속된 현에 관한 기록은 보이지 않으며, 임둔군의 위치는 원래의 번한(番韓) 땅이 아닌 진번국(眞番國)의 남쪽 땅이거나 별도로 봉해졌을 수 있는 임둔국(臨屯國)의 땅으로서, 대체적으로 지금의 요하 하류지역의 서쪽으로 대릉하 하류지역에 걸치는 땅이라고 보면 된다. 

서기전82년에 폐지되어 낙랑군에 붙였다고 하나, 이때 북부여의 고두막(高豆莫) 천왕(天王)의 수복정책에 따라 북부여(北夫餘)에 귀속된 것으로 보인다. 

3. 소위 한사군의 변동 역사 

가. 북부여 동명와 고두막한의 의병전쟁 

서기전108년에 북부여의 졸본한(卒本汗)이던 고두막(高豆莫)이 동명왕(東明王)이라 칭하며 의병을 일으켜 북부여를 부흥시키려 다물업(多勿業)을 열었는데, 이때 소위 한사군의 단군조선 유민들이 호응하였다. 그리하여 소위 한사군은 사실상 유민들의 자치가 행해졌던 것이 되며, 고두막한은 서안평(西安平)까지 진출하여 단군조선의 구려 땅을 수복하였던 것이다. 

나. 진번군과 임둔군의 폐지 문제 

서기전82년에 진번군과 임둔군을 낙랑과 현도에 붙였다라고 고대중국의 기록에서 적고 있으나 이는 춘추필법에 의한 역사은닉으로서 실제로는 이때 진번과 임둔은 고두막(高豆莫) 천왕의 북부여에 수복된 것이 된다. 

이는 서기전42년에 졸본에서 독립하려고 북부여를 떠나 진번(眞番)의 패대(浿帶)지역으로 간 소서노(召西弩)가 땅을 개척하여 나라를 열어 고구려 고주몽 성제로부터 어하라국(於瑕羅國)으로 봉해진 것으로 보아 드러나는 사실이 된다. 

다. 한사군과 진번백제(眞番百濟) 

패대지역의 패(浿)는 패수를 대(帶)는 대수를 가리키는데, 패수(浿水)는 곧 지금의 난하(灤河)를 가리키고, 대수(帶水)는 지금의 요하 중하류지역에 동쪽에서 서쪽으로 흘러 합류하는 강이 된다. 즉, 어하라국은 패수의 동쪽으로 진번 땅을 포함하며 나라의 중심지는 대수(帶水) 남쪽으로 지금의 요동반도 중남부지역으로서 지름500리의 땅이 된다. 

라. 소위 한사군의 소멸 

소위 한사군 중 낙랑군과 현도군은 서기313년에 고구려의 미천제에 의하여 낙랑군과 서기204년에 낙랑군에서 분리되어 설치된 대방군이 완전히 축출되고, 현도군도 정벌 당하여 이후 고구려의 역사에서 사라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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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프로필] 조홍근(曺洪根, 52세). 한문화재단(桓文化財團) 사무총장. 트위트-페이스북 역사당 부총재. 현 법무사. 

30여년 동안 족보(族譜)와 한중일(韓中日) 역사를 연구해 오면서, 부도지(符都誌), 한단고기(桓檀古記), 규원사화(揆園史話), 단기고사(檀奇古史) 등 귀중한 역사자료를 통하여, 우리역사 1만년을 넘어 마고(麻姑) 시대를 포함한 7만2천390년 역사를 밝히고 있음. 

1. 홍익인간(弘益人間) 천부(天符)의 역사는 마고성(麻姑城:파미르고원)의 마고(麻姑)시대인 서기전70378년 계해년(癸亥年)부터 시작되었음을 최초로 밝혔음. 
2. 역법(曆法)이 시작된 해는 마고성(麻姑城)의 황궁씨(黃穹氏) 시대인 서기전25858년 계해년(癸亥年)임을 밝혔으며, 서기전70378년 계해년이 마고(麻姑) 기원(紀元:천부 天符)임을 밝혔음. 
3. 황궁씨를 이은 나반(那般:那般尊者:獨聖者)이 한국(桓國)시대 한인씨(桓因氏) 이전의 임금이던 유인씨(有因氏)이며, 한인씨 7대(代)가 약1,000년을 다스렸다는 것임을 밝혔음. 
4. 윷놀이판의 모습이 천부경(天符經)의 무한조화순환역(無限造化循環易), 음양오행(陰陽五行), 태양태음성력(太陽太陰星曆), 단군조선의 정치행정 구조를 나타낸 것임을 밝혔으며, 하도(河圖)와 낙서(洛書)가 배달나라 시대의 음양오행수리역(陰陽五行數理易)이며, 태호복희 8괘역과 윷놀이판의 역이 지구의 자전(自轉)과 공전(公轉)을 기반으로 한 역(易)임을 밝혔음. 
5. 천제(天帝), 천황(天皇:天王), 천군(天君), 천공(天公), 천후(天侯), 천백(天伯), 천자(天子), 천남(天男)의 위계질서를 최초로 밝히고, 천제자(天帝子)와 천자(天子)의 차이점을 최초로 밝혔으며, 태호복희씨(太皞伏羲氏)가 일반 천자(天子)가 아니라 천지인(天地人) 삼신(三神)에게 제(祭)를 올리는 권한을 가진 제사장인 천군(天君)임을 밝혔음. 
6. 아리랑(阿里嶺) 민요의 원천이 되는 최초의 역사적 사실이 서기전2333년 10월 3일 조선을 건국하기 이전에 있었던 당요(唐堯)의 전란(戰亂)으로 인한 단군왕검(檀君王儉)의 동북 아사달로의 이동과정임을 밝혔음. 
7. 고대중국의 천자로 불리는 요순우(堯舜禹)와 고대일본의 신무왕(神武王)이 단군조선의 반역자(反逆者)이면서 제후인 천자(天子)임을 밝혔음. 
8. 우비(禹碑:우 치수기념 부루공덕 비)의 비문을 국내 최초로 역사적 해석을 하여, 서기전2267년 이후 우(禹)가 치수에 성공한 후 치수법(治水法)을 전수해 준 단군조선 태자부루의 공덕을 새겨 남악(南嶽) 형산(衡山)에 세운 것임을 밝혔음. 
9. 일본 국조신(國祖神)인 천조대신(天照大神)의 사당인 이세신궁(伊勢神宮)에 소장된 원시한글 축문을 국내 최초로 완벽 해독하고, 요하유로 기록된 천조대신이 단군조선 두지주(豆只州) 예읍(濊邑)의 추장(酋長)의 후손임을 밝혔음. 
10. 명도전(明刀錢) 최초 해독학자 허대동선생<저서 고조선문자>의 가림토(加臨土) 해독의 검증에 참여하여 첨수도(尖首刀), 명도전이 단군조선의 화폐이며 새겨진 문자가 단군조선의 상형 및 표음 문자임을 밝혔음. 그 외 다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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