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뿌리를 찾아서)/홍익인간 7만년 역사

[홍익인간 299] 고구려(高句麗) 연대기 8

양해천 2018. 1. 22. 13:12

[홍익인간 299] 고구려(高句麗) 연대기 8

2012년 04월 30일 (월) 07:51:28천산(天山)  sppopsj@yahoo.co.kr

[광개토호태황비문]

2. 알을 갈라 세상에 내려오니, 나면서 성스러운 덕[德?]이 있으셨다. 뒷날에 어머니의 명을 받들어[後日奉母命?] 가마를 타고 동남쪽 아래로 길을 가다 부여의 엄리대수를 만나니, 왕께서 나루에 임하여 말하여 가라사대, 나는 황천(皇天)의 아들이요, 어머니는 하백여랑이며, 추모왕이니, 나를 위하여 자라를 잇고 거북을 뜨게 하라 하셨으며, 소리에 응한 즉, 자라가 잇고 거북이 떠오르게 된 연후에 비류곡으로 건너게 되셨다. 홀본서성의 산위에 도읍을 세우셨다. 

(剖卵降世 生而有聖德 後日王奉母命駕 巡東南下路 由夫餘奄利大水 王臨津言曰 我是皇天之子 母河伯女郞 鄒牟王 爲我 連鼈浮龜 應聲 卽爲連鼈浮龜然後 造渡於沸流谷 忽本西城山上而建都焉<79자>). (*해독불능자가 표시된 비문 : 剖卵降世生而有聖□□□□□□命駕巡東南下路由夫餘奄利大水王臨津言曰我是皇天之子母河伯女郞鄒牟王爲我連鼈浮龜應聲卽爲連鼈浮龜然後造渡於沸流谷忽本西城山上而建都焉). 

알을 갈라 세상에 내려왔다라 하는 것은 어머니 뱃속에서 나와 출생하였다는 뜻이며, 태생(胎生)을 난생(卵生)으로 표현하여 신비로움을 나타낸 것이 된다. 그리하여 태어나면서 성스러움 또는 성스러운 덕(德)이 있었다고 기록하는 것이 된다. 

고주몽은 동부여에서 시기질투를 받아 목숨이 위태롭게 되었는데, 이에 어머니 유화부인이 고주몽에게 동부여를 떠나라고 명령하였던 것이며, 이에 고주몽은 예씨부인(禮氏夫人)과 아들 유리(琉璃)를 남겨두고, 오이(烏伊), 마리(摩離), 협보(陜父)와 함께 수레를 타고 동남쪽으로 길을 떠나 엄리대수를 건너 비류곡에 도착하게 되었다. 이로써 졸본 땅의 위치는 대체적으로 동부여의 동남쪽에 위치하는 것이 되며, 상춘(常春:늘봄:눌현)을 기준으로 하면 동동남쪽에 위치한 것이 된다. 

엄리대수는 큰 강으로서 그냥 걸어서는 건널 수 없는 강이 되는데, 이에 고주몽이 산천(山川)에 고하여 자신의 신분을 밝히고 도움을 요청한 것이 된다. 이에 따라 자라와 거북에 비유되는 어부(漁父)들이 힘을 합쳐 배를 준비하여 다리처럼 엮어서 고주몽의 일행을 건너게 한 것이 된다. 

고주몽 일행은 이어 졸본의 모둔곡(毛屯谷)에 도착하여 재사(再思), 무골(武骨), 묵거(墨居)라는 세 사람의 의인(義人)을 만났다. 이에 7 의인(義人)이 다물흥방(多勿興邦)을 맹세하며 하늘에 제(祭)를 올렸다. 

<다물흥방 고천문(告天文)> 

한한상존(桓桓上尊)이시여! 구한(九桓)에 비추어 내리시사, 밭을 일구고 황무지를 바꾸어, 우리 땅에 우리 곡식으로, 오직 우리 진한(辰韓:단군조선 眞韓)이 융성하고 부강하게 하소서! 

7인(人)이 같은 덕(德)으로 큰 원(願)을 회복하고자 맹서하며, 도적들을 물리쳐, 우리 옛 강토를 완전하게 하고, 오래된 숙병(宿病)을 제거하며, 우리의 누적된 원한을 풀고, 기근과 병란을 일거에 없애며, 도(道)를 따라 백성을 사랑하고, 삼한(三韓)이 함께 다스려져, 서에서 동으로, 북에서 남으로, 어려서는 반드시 전(佺)을 따르고 늙어서는 종(倧)이 있을 바이다! 노래와 춤으로 마땅히 취하고 배부르게 되오며, 구한(九桓)이 하나의 땅으로서 오래오래 계승되오리다! 

이제 소자 과덕하여 근면에 힘씀에, 머리를 조아려 받드니, 신(神)께선 흠향을 마다하지 마시고, 소자들이 가는 정벌에 이롭게 하시고, 공을 빛나게 하소서! 우리나라를 도우시사 우리 백성들이 오래 살게 하소서! 
(桓桓上尊 照臨九桓 畇畇闢荒 我土我穀 惟我辰韓 旣殷且富 七人同德 誓復弘願 斥逐寇掠 完我旧疆 去彼宿病 解我積寃 飢饉兵亂 一幷掃盡 引道愛民 三韓同治 自西而東 自北而南 幼必從佺 老有所倧 以歌以舞 且醉且飽 九桓一土 齊登壽域 今朕寡德 甚勤而時 叩頭薦供 神嗜飮食 以利我征 俾光我功 佑我國家 壽我人民) 

이때, 졸본(卒本)에 수도를 두었던 북부여 고무서(高無胥) 천왕이 서기전59년에 즉위하였는데, 고주몽을 보고 범상한 인물이 아님을 알고서 남편을 잃은 둘째딸인 소서노(召西弩)를 시집보내어 사위로 삼았다. 이때 소서노는 전남편 우태(于台)와의 사이에 비류(沸流)라는 아들을 두고 있었다. 우태는 동부여 해부루왕의 서손(庶孫)이라고 하는데, 해부루왕이 아들이 없어 금와(金蛙)를 양자로 맞았으므로, 우태는 해부루왕의 딸의 아들이 된다. 

서기전239년 4월 8일에 해모수(解慕漱)에 의하여 시작된 북부여는 지명(地名)이 국명(國名)이 된 것인데 당시의 단군조선의 국호는 대부여(大夫餘)였고, 서기전108년에 졸본의 한(汗)이었던 고두막한(高豆莫汗)이 위씨조선이 한(漢)나라에 망하자 고토를 회복하고 북부여를 부흥시키기 위하여 동명왕(東明王)이라 칭하면서 의병(義兵)을 일으켜 한(漢)나라와 전쟁을 하였던 것이며, 서기전86년에 북부여 제5대 해부루 천왕을 동부여후(東夫餘侯)로 강등시켜 봉하고 북부여(北夫餘)라 칭하며 천왕이 되었는 바, 서기전59년에 붕하자 고무서 천왕이 고두막 천왕을 졸본천(卒本川)에 장사지내고 수도로 삼았던 것이 된다. 

고주몽은 서기전79년생이며, 소서노는 고주몽보다 9세가 많아 서기전88년생이 되고, 우태(于台)는 소서노보다 나이가 많았다고 보아 서기전88년 이전 출생이 될 것인데, 비류(沸流)는 소서노가 약 25세이던 서기전65년경 출생이 될 것이다. 온조(溫祚)는 고주몽이 소서노와 혼인한 서기전59년 이후에 출생한 것이 되고, 비류와 온조는 서기전42년에 어머니 소서노를 따라 졸본을 떠나 패대지역으로 갔는 바, 이때 온조는 약10여세 남짓한 것이 되며, 서기28년까지 살아 약80세 정도를 산 것으로 되고, 비류보다는 10여세가 적은 것이 된다. 

서기전58년에 북부여 고무서 천왕이 아들이 없이 붕하시니 고주몽이 유언에 따라 대통을 이었던 것이며, 이로부터 고구려 창건을 위하여 노력을 다하여 20여년이 지나 43세이던 서기전37년에 북부여 졸본(卒本:홀본:忽本) 땅에 있던 홀본서성(忽本西城)의 산위에 도읍지를 정하고 고구려를 열었던 것이다. 

서기전58년에 대통을 이은 고주몽은 서기전57년에 즉위한 것이 되는데, 서기전57년은 신라 시조 박혁거세(朴赫居世)가 즉위한 해이기도 한 바, 박혁거세의 어머니 파소(婆蘇)는 소서노의 언니로서 북부여 고무서 천왕의 장녀가 틀림없는 것이 된다. 파소는 서기전69년에 박혁거세를 낳았는데, 남편은 북부여의 거서간(居西干)으로서 아마도 한(漢)나라와의 전쟁 중에 전사(戰死)한 것으로 추정되며, 서기전69년경에 북부여 제실(帝室)로 돌아온 파소는 당시 북부여 고두막 천왕의 태자이던 고무서의 딸로서 미래가 불투명하다고 판단하여 측근을 데리고 동옥저를 거쳐 배를 타고 한반도의 동쪽에 자리한 진한(辰韓)의 서라벌에 도착하였던 것이고, 이후 박혁거세가 13세이던 서기전57년에 진한의 6부촌의 촌장이던 소벌도리(蘇伐都利:소벌公)의 추대로 거서간(居西干)으로 즉위한 것이 된다. 거서간은 서방(西方)에 머물며 지키는 간(干) 즉 천왕(天王)의 제후인 천자(天子)라는 의미가 된다. 신라와 백제는 처음부터 왕(王)이라 하지 않고 왕을 보좌(輔佐)하는 수장(首長)이라는 뜻으로서 간(干:居西干:麻立干), 어라하(於羅瑕:於陸:長:어른)라고 하였다. 

해독불가로 표시된 “生而有聖□□□□□□命駕”에 해당하는 부분을 단단학회 발행 비문의 글자는 “生子有聖德鄒牟王奉母命駕”라 하였는데, 앞부분의 “生子有聖德”의 子는 而의 오독(誤讀)이 분명하게 보이는 바, 이는 “剖卵降世 生子有聖”이 되어 앞뒤 문맥이 맞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즉, 부란강세(剖卵降世)의 주체는 추모왕이고, 생자(生子)의 주체는 하백여랑이 되어 불일치하게 되는 것이다. 그 뒤 부분의 “鄒牟王奉母命駕”의 부분은 전체적인 내용에서 볼 때 사실적 역사에서 벗어나는 것은 아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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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프로필] 조홍근(曺洪根, 52세). 한문화재단(桓文化財團) 사무총장. 트위트-페이스북 역사당 부총재. 현 법무사. 

30여년 동안 족보(族譜)와 한중일(韓中日) 역사를 연구해 오면서, 부도지(符都誌), 한단고기(桓檀古記), 규원사화(揆園史話), 단기고사(檀奇古史) 등 귀중한 역사자료를 통하여, 우리역사 1만년을 넘어 마고(麻姑) 시대를 포함한 7만2천390년 역사를 밝히고 있음. 

1. 홍익인간(弘益人間) 천부(天符)의 역사는 마고성(麻姑城:파미르고원)의 마고(麻姑)시대인 서기전70378년 계해년(癸亥年)부터 시작되었음을 최초로 밝혔음. 
2. 역법(曆法)이 시작된 해는 마고성(麻姑城)의 황궁씨(黃穹氏) 시대인 서기전25858년 계해년(癸亥年)임을 밝혔으며, 서기전70378년 계해년이 마고(麻姑) 기원(紀元:천부 天符)임을 밝혔음. 
3. 황궁씨를 이은 나반(那般:那般尊者:獨聖者)이 한국(桓國)시대 한인씨(桓因氏) 이전의 임금이던 유인씨(有因氏)이며, 한인씨 7대(代)가 약1,000년을 다스렸다는 것임을 밝혔음. 
4. 윷놀이판의 모습이 천부경(天符經)의 무한조화순환역(無限造化循環易), 음양오행(陰陽五行), 태양태음성력(太陽太陰星曆), 단군조선의 정치행정 구조를 나타낸 것임을 밝혔으며, 하도(河圖)와 낙서(洛書)가 배달나라 시대의 음양오행수리역(陰陽五行數理易)이며, 태호복희 8괘역과 윷놀이판의 역이 지구의 자전(自轉)과 공전(公轉)을 기반으로 한 역(易)임을 밝혔음. 
5. 천제(天帝), 천황(天皇:天王), 천군(天君), 천공(天公), 천후(天侯), 천백(天伯), 천자(天子), 천남(天男)의 위계질서를 최초로 밝히고, 천제자(天帝子)와 천자(天子)의 차이점을 최초로 밝혔으며, 태호복희씨(太皞伏羲氏)가 일반 천자(天子)가 아니라 천지인(天地人) 삼신(三神)에게 제(祭)를 올리는 권한을 가진 제사장인 천군(天君)임을 밝혔음. 
6. 아리랑(阿里嶺) 민요의 원천이 되는 최초의 역사적 사실이 서기전2333년 10월 3일 조선을 건국하기 이전에 있었던 당요(唐堯)의 전란(戰亂)으로 인한 단군왕검(檀君王儉)의 동북 아사달로의 이동과정임을 밝혔음. 
7. 고대중국의 천자로 불리는 요순우(堯舜禹)와 고대일본의 신무왕(神武王)이 단군조선의 반역자(反逆者)이면서 제후인 천자(天子)임을 밝혔음. 
8. 우비(禹碑:우 치수기념 부루공덕 비)의 비문을 국내 최초로 역사적 해석을 하여, 서기전2267년 이후 우(禹)가 치수에 성공한 후 치수법(治水法)을 전수해 준 단군조선 태자부루의 공덕을 새겨 남악(南嶽) 형산(衡山)에 세운 것임을 밝혔음. 
9. 일본 국조신(國祖神)인 천조대신(天照大神)의 사당인 이세신궁(伊勢神宮)에 소장된 원시한글 축문을 국내 최초로 완벽 해독하고, 요하유로 기록된 천조대신이 단군조선 두지주(豆只州) 예읍(濊邑)의 추장(酋長)의 후손임을 밝혔음. 
10. 명도전(明刀錢) 최초 해독학자 허대동선생<저서 고조선문자>의 가림토(加臨土) 해독의 검증에 참여하여 첨수도(尖首刀), 명도전이 단군조선의 화폐이며 새겨진 문자가 단군조선의 상형 및 표음 문자임을 밝혔음. 그 외 다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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