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뿌리를 찾아서)/홍익인간 7만년 역사

[홍익인간 300] 고구려(高句麗) 연대기 9

양해천 2018. 1. 22. 13:13

[홍익인간 300] 고구려(高句麗) 연대기 9

2012년 04월 30일 (월) 11:18:10천산(天山)  sppopsj@yahoo.co.kr

[광개토경평안호태황비문] 

3. 세상의 자리를 즐거워하지 않자, 하늘이 황룡을 보내 내려오게 하여 왕을 영접하게 하였다. 왕은 홀본의 동강(東岡) 황룡산(黃龍山)의 머리(首:꼭대기)에서 하늘로 오르셨다. 세자 유류왕을 돌아보며 이도여치(以道輿治)하라 명하셨다. 

(不樂世位 天遣黃龍來下迎王 王於忽本東岡黃龍首昇天 顧命世子儒留王 以道輿治<34자>). 

세상의 자리를 즐거워하지 않자 하늘이 황룡(黃龍)을 내려 보내어 왕을 맞이하도록 하였다는 것은, 고주몽 성제가 붕(崩)하려 한다는 뜻 즉 세상을 떠날 때가 되었다는 것이며, 홀본의 동강(東岡) 황룡산(黃龍山)의 머리(곡대기)에서 하늘로 오르셨다는 것은, 졸본의 동강(동쪽 언덕 들판)의 황부(黃部) 즉 중앙(中央)에 있는 용산(龍山)의 머리쪽에 왕릉을 만들었다는 것이 된다. 

고주몽 성제의 릉은 졸본(卒本)의 동강(東岡)이라는 땅의 중앙에 있는 용산(龍山)의 정상에 있는 것이 된다. 그래서 한반도 평양(平壤)에 있는 용산(龍山)이라는 땅은 후대에 지어진 이름이 된다. 

유류왕(儒留王)은 제2대 유리명제(琉璃明帝:서기전19년~서기18년)를 가리킨다. 

이도여치(以道輿治)는 도(道)로써 순방(巡訪)을 하며 다스린다는 의미이다. 순방 또는 순행의 제도는 서기전7197년부터 이어져 온 전통으로서, 서기전2333년에 조선을 개국한 단군왕검 천제(天帝)도 순방정치(巡訪政治)를 하셨던 것인 바, 100여년 사이에 가지 아니한 곳이 없었다라고 기록되고 있다. 

4. 대주류왕께서 그 업을 이어셨으며, 전하여 17세손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에 이르렀다. 18세에 즉위하여 연호(年號)를 영락(永樂)이라 하셨다. 

(大朱留王 紹承基業 傳至十七世孫 國岡上廣開土境平安好太王 二九登祚 號爲永樂<34자>). 

대주류왕(大朱留王)은 고구려의 제3대 대무신열제(大武神烈帝)를 가리키고, 서기18년부터 서기44년까지 재위하였으며, 서기37년에 한반도의 평양에 있던 최씨(崔氏)의 낙랑국(樂浪國)을 멸망시켰던 임금이다. 

광개토황은 고구려 제19대왕(代王)인데, 고구려의 제3대왕 대무신열제로부터는 제17세손(世孫)이 된다. 제19대왕은 고구려 건국시조 고주몽 성제로부터 19번째 왕이라는 것이며, 제17세손은 대무신열제로부터 17번째 왕임을 가리키는 것이 되어, 고주몽을 제1세로 하면 제19세손이 되는 것이다. 여기서 17세손의 세(世)는 직계혈족(直系血族)으로 따진 것이 아니라 왕계(王系)로 따진 것이 된다. 직계혈족으로 따지면 제19대 광개토호태황은 고주몽의 13세손(世孫)이 된다. 

광개토황은 서기374년에 탄생하여 이구(2X9) 18세인 서기391년 신묘년(辛卯年)에 즉위하였으며, 39세인 서기412에 붕(崩)하여 22년 재위 하였다. 

광개토황의 연호(年號)는 영락(永樂)이다. 제1대 고주몽 성제(聖帝:서기전37년~서기전19년)는 서기전28년에 연호를 다물(多勿)이라 하였으며, 제6대 태조무열제(太祖武烈帝:서기53년~서기146년)가 연호를 융무(隆武)라 하였고, 제19대 광개토경호태황(廣開土境好太皇:서기391년~서기412년)이 영락(永樂)이라 하였으며, 제20대 장수홍제호태열제(長壽弘濟好太烈帝:서기412년~서기491년)가 건흥(建興)이라 하였고, 제21대 문자호태열제(文咨好太烈帝)가 명치(明治)라 하였으며, 제25대 평강상호태열제(平岡上好太烈帝:서기559년~서기590년)가 대덕(大德)이라 하였고, 제26대 영양무원호태열제(嬰陽武元好太烈帝:서기590년~서기618년)가 홍무(弘武)라 하였으며, 제28대 보장제(寶藏帝:서기642년~서기668년)가 개화(開化)라 하였다. 

5. 태왕의 은혜와 혜택은 황천(皇天)에 넘쳐 적시고 위무(威武)는 사해(四海)에 떨치고 덮어, 원한과 부끄러움을 없애고 그 업을 모두 평안하게 하며, 나라는 부강하고 백성들은 부유하며, 오곡은 풍년들어 익었도다. 

(太王恩澤 洽于皇天 威武 拂被四海 掃除仇恥 庶寧其業 國富民殷 五穀豊熟<30자>). 

황천(皇天)은 옥황상제가 계시는 하늘 즉 천상(天上)을 가리키고, 사해(四海)는 사방의 바다 즉 물(바다)로 둘러 쌓인 땅인 천하(天下)를 가리킨다. 즉, 광개토황의 은혜가 하늘을 적시며 위엄(威嚴)있는 무력(武力)은 땅을 덮는다는 것이다. 이리하여 은혜로써 원한을 없애고, 위무(威武)로써 부끄러운 역사를 씻으며, 이로써 나라는 부강(富强)하고 백성들은 부유(富裕)하며, 곡식은 풍년들어 태평시대가 되었음을 나타내는 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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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프로필] 조홍근(曺洪根, 52세). 한문화재단(桓文化財團) 사무총장. 트위트-페이스북 역사당 부총재. 현 법무사. 

30여년 동안 족보(族譜)와 한중일(韓中日) 역사를 연구해 오면서, 부도지(符都誌), 한단고기(桓檀古記), 규원사화(揆園史話), 단기고사(檀奇古史) 등 귀중한 역사자료를 통하여, 우리역사 1만년을 넘어 마고(麻姑) 시대를 포함한 7만2천390년 역사를 밝히고 있음. 

1. 홍익인간(弘益人間) 천부(天符)의 역사는 마고성(麻姑城:파미르고원)의 마고(麻姑)시대인 서기전70378년 계해년(癸亥年)부터 시작되었음을 최초로 밝혔음. 
2. 역법(曆法)이 시작된 해는 마고성(麻姑城)의 황궁씨(黃穹氏) 시대인 서기전25858년 계해년(癸亥年)임을 밝혔으며, 서기전70378년 계해년이 마고(麻姑) 기원(紀元:천부 天符)임을 밝혔음. 
3. 황궁씨를 이은 나반(那般:那般尊者:獨聖者)이 한국(桓國)시대 한인씨(桓因氏) 이전의 임금이던 유인씨(有因氏)이며, 한인씨 7대(代)가 약1,000년을 다스렸다는 것임을 밝혔음. 
4. 윷놀이판의 모습이 천부경(天符經)의 무한조화순환역(無限造化循環易), 음양오행(陰陽五行), 태양태음성력(太陽太陰星曆), 단군조선의 정치행정 구조를 나타낸 것임을 밝혔으며, 하도(河圖)와 낙서(洛書)가 배달나라 시대의 음양오행수리역(陰陽五行數理易)이며, 태호복희 8괘역과 윷놀이판의 역이 지구의 자전(自轉)과 공전(公轉)을 기반으로 한 역(易)임을 밝혔음. 
5. 천제(天帝), 천황(天皇:天王), 천군(天君), 천공(天公), 천후(天侯), 천백(天伯), 천자(天子), 천남(天男)의 위계질서를 최초로 밝히고, 천제자(天帝子)와 천자(天子)의 차이점을 최초로 밝혔으며, 태호복희씨(太皞伏羲氏)가 일반 천자(天子)가 아니라 천지인(天地人) 삼신(三神)에게 제(祭)를 올리는 권한을 가진 제사장인 천군(天君)임을 밝혔음. 
6. 아리랑(阿里嶺) 민요의 원천이 되는 최초의 역사적 사실이 서기전2333년 10월 3일 조선을 건국하기 이전에 있었던 당요(唐堯)의 전란(戰亂)으로 인한 단군왕검(檀君王儉)의 동북 아사달로의 이동과정임을 밝혔음. 
7. 고대중국의 천자로 불리는 요순우(堯舜禹)와 고대일본의 신무왕(神武王)이 단군조선의 반역자(反逆者)이면서 제후인 천자(天子)임을 밝혔음. 
8. 우비(禹碑:우 치수기념 부루공덕 비)의 비문을 국내 최초로 역사적 해석을 하여, 서기전2267년 이후 우(禹)가 치수에 성공한 후 치수법(治水法)을 전수해 준 단군조선 태자부루의 공덕을 새겨 남악(南嶽) 형산(衡山)에 세운 것임을 밝혔음. 
9. 일본 국조신(國祖神)인 천조대신(天照大神)의 사당인 이세신궁(伊勢神宮)에 소장된 원시한글 축문을 국내 최초로 완벽 해독하고, 요하유로 기록된 천조대신이 단군조선 두지주(豆只州) 예읍(濊邑)의 추장(酋長)의 후손임을 밝혔음. 
10. 명도전(明刀錢) 최초 해독학자 허대동선생<저서 고조선문자>의 가림토(加臨土) 해독의 검증에 참여하여 첨수도(尖首刀), 명도전이 단군조선의 화폐이며 새겨진 문자가 단군조선의 상형 및 표음 문자임을 밝혔음. 그 외 다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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