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뿌리를 찾아서)/홍익인간 7만년 역사

[홍익인간 301] 고구려(高句麗) 연대기 10

양해천 2018. 1. 23. 11:44

[홍익인간 301] 고구려(高句麗) 연대기 10

2012년 05월 01일 (화) 06:51:50천산(天山)  sppopsj@yahoo.co.kr

[광개토경평안호태황비문] 

6. 하늘이 돌보지 않아 39세에 수레를 탄 채 나라를 버리셨고, 갑인년(甲寅年:서기414년) 9월 29일 을유일(乙酉日)에 취산릉으로 옮겨 드렸으며, 이에 비를 세우고 공적을 새겨 후세에 보이노라. 그 글은 말한다. 

(昊天不弔 卅有九 宴駕棄國 以甲寅年九月卄九日乙酉 遷就山陵 於是立碑 銘記勳績以 示後世焉 其辭曰<42자>). 

여기서 광개토호태황의 39세 되는 해는 서기412년 임자년(壬子年)이며, 갑인년(甲寅年)은 서기414년을 가리키고 제20대 장수홍제호태열제 3년이 되는 해이다. 9월 29일은 음력이며 일진(日辰)이 을유일(乙酉日)이 된다. 즉 음력으로 서기전414년 9월 29일은 을유일이 되는 것이다. 

광개토호태황의 시신을 릉으로 옮긴 해는 서기414년 9월 29일 을유일이고, 붕하신 해인 서기412년으로부터 약2년이 지난 때이며, 이때 광개호태황릉을 완성한 것이 되고, 이어 광개토호태황비를 세운 것이 된다. 

7. 영락5년 을미년(서기395년)에 왕께서는 비려(碑麗)가 조공하지 않으므로, 군사를 정돈하여(整師?) 몸소 이끌고 가서 토벌하셨으니, 부산(富山)과 부산(負山)을 지나[過?] 염수(鹽水) 위에 이르러 그 언덕에 있는 부락 6~7백의 무리를 쳐 부수었는 바, 소와 말과 무리의 양이 헤아릴 수 없는 숫자였다. 

(永樂五年 歲在乙未 王以碑麗不貢 整師躬率住討 過富山 負山 至鹽水上 破其丘部洛 六七百黨 牛馬群羊 不可稱數<46자>). (*해독불능자가 표시된 비문 : 永樂五年歲在乙未王以碑麗不貢□□躬率住討□富山負山至鹽水上破其丘部洛六七百黨牛馬群羊不可稱數). 

영락5년 을미년(乙未年)은 서기395년이다. 그래서 광개토호태황은 서기391년 신묘년(辛卯年)에 즉위한 것이 된다. 

비려(碑麗)는 부산(富山)과 부산(負山)과 염수(鹽水)가 있는 곳으로서 고구려의 서쪽이나 북쪽 또는 그 사이에 위치한 것으로 되는데, 거란의 북쪽 지역으로서 지금의 대흥안령 서편이 될 것이다. 비려(碑麗)는 평량(平凉)과 유사한 소리의 글자가 되는데, 동일한 곳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이며, 이 평량은 거란에 인접해 있었던 것으로 된다. 

한편, 비려(碑麗)는 비리(卑離)라는 글자와도 소리가 비슷한데, 비리국(卑離國)은 한국(桓國)의 12한국 중의 하나로 서기전5000년 이전부터 존속한 나라가 되는데, 위치상으로 지금의 흑룡강 유역에 있었던 나라가 되고 지금의 브리야트공화국 자리가 되는 바, 부산(富山), 부산(負山)과 염수(鹽水)가 대흥안령산맥의 서북쪽이나 북쪽에 위치한 것이라면, 이 비리국(卑離國)을 가리키는 것일 수도 있는 것이 된다. 

염수(鹽水)라는 강은 소금물이 흐르는 강이라는 뜻이 되는데, 서기전1652년에 단군조선에 투항하였던 우루국(虞婁國) 20가(家)를 정착하게 한 곳도 염수(鹽水) 지역이 되는데, 대흥안령 서편으로 몽골 동부지역에 염수가 있었던 것이 틀림없는 것으로 된다. 1가(家)는 10호(戶)에 해당되고 1호에는 약 10명의 식구가 있고, 1가에 4대(代)가 살아 약150명 정도의 식구를 가지는 것이 되는 바, 20가는 약200호로서 약3,000명 정도가 된다. 

광개토호태황이 토벌한 비려의 부락이 6~700 곳이 되며 소와 말과 양의 숫자가 헤아릴 수 없이 많았던 것이 되는데, 1개 부락에 평균 10호가 있었다라고 하면, 모두 약6,000호가 되고, 1호당 평균 10명씩 잡으면 총 6만명 정도가 살았던 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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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프로필] 조홍근(曺洪根, 52세). 한문화재단(桓文化財團) 사무총장. 트위트-페이스북 역사당 부총재. 현 법무사. 

30여년 동안 족보(族譜)와 한중일(韓中日) 역사를 연구해 오면서, 부도지(符都誌), 한단고기(桓檀古記), 규원사화(揆園史話), 단기고사(檀奇古史) 등 귀중한 역사자료를 통하여, 우리역사 1만년을 넘어 마고(麻姑) 시대를 포함한 7만2천390년 역사를 밝히고 있음. 

1. 홍익인간(弘益人間) 천부(天符)의 역사는 마고성(麻姑城:파미르고원)의 마고(麻姑)시대인 서기전70378년 계해년(癸亥年)부터 시작되었음을 최초로 밝혔음. 
2. 역법(曆法)이 시작된 해는 마고성(麻姑城)의 황궁씨(黃穹氏) 시대인 서기전25858년 계해년(癸亥年)임을 밝혔으며, 서기전70378년 계해년이 마고(麻姑) 기원(紀元:천부 天符)임을 밝혔음. 
3. 황궁씨를 이은 나반(那般:那般尊者:獨聖者)이 한국(桓國)시대 한인씨(桓因氏) 이전의 임금이던 유인씨(有因氏)이며, 한인씨 7대(代)가 약1,000년을 다스렸다는 것임을 밝혔음. 
4. 윷놀이판의 모습이 천부경(天符經)의 무한조화순환역(無限造化循環易), 음양오행(陰陽五行), 태양태음성력(太陽太陰星曆), 단군조선의 정치행정 구조를 나타낸 것임을 밝혔으며, 하도(河圖)와 낙서(洛書)가 배달나라 시대의 음양오행수리역(陰陽五行數理易)이며, 태호복희 8괘역과 윷놀이판의 역이 지구의 자전(自轉)과 공전(公轉)을 기반으로 한 역(易)임을 밝혔음. 
5. 천제(天帝), 천황(天皇:天王), 천군(天君), 천공(天公), 천후(天侯), 천백(天伯), 천자(天子), 천남(天男)의 위계질서를 최초로 밝히고, 천제자(天帝子)와 천자(天子)의 차이점을 최초로 밝혔으며, 태호복희씨(太皞伏羲氏)가 일반 천자(天子)가 아니라 천지인(天地人) 삼신(三神)에게 제(祭)를 올리는 권한을 가진 제사장인 천군(天君)임을 밝혔음. 
6. 아리랑(阿里嶺) 민요의 원천이 되는 최초의 역사적 사실이 서기전2333년 10월 3일 조선을 건국하기 이전에 있었던 당요(唐堯)의 전란(戰亂)으로 인한 단군왕검(檀君王儉)의 동북 아사달로의 이동과정임을 밝혔음. 
7. 고대중국의 천자로 불리는 요순우(堯舜禹)와 고대일본의 신무왕(神武王)이 단군조선의 반역자(反逆者)이면서 제후인 천자(天子)임을 밝혔음. 
8. 우비(禹碑:우 치수기념 부루공덕 비)의 비문을 국내 최초로 역사적 해석을 하여, 서기전2267년 이후 우(禹)가 치수에 성공한 후 치수법(治水法)을 전수해 준 단군조선 태자부루의 공덕을 새겨 남악(南嶽) 형산(衡山)에 세운 것임을 밝혔음. 
9. 일본 국조신(國祖神)인 천조대신(天照大神)의 사당인 이세신궁(伊勢神宮)에 소장된 원시한글 축문을 국내 최초로 완벽 해독하고, 요하유로 기록된 천조대신이 단군조선 두지주(豆只州) 예읍(濊邑)의 추장(酋長)의 후손임을 밝혔음. 
10. 명도전(明刀錢) 최초 해독학자 허대동선생<저서 고조선문자>의 가림토(加臨土) 해독의 검증에 참여하여 첨수도(尖首刀), 명도전이 단군조선의 화폐이며 새겨진 문자가 단군조선의 상형 및 표음 문자임을 밝혔음. 그 외 다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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