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뿌리를 찾아서)/홍익인간 7만년 역사

[홍익인간 302] 고구려(高句麗) 연대기 11

양해천 2018. 1. 23. 11:45

[홍익인간 302] 고구려(高句麗) 연대기 11

2012년 05월 02일 (수) 06:39:12천산(天山)  sppopsj@yahoo.co.kr

[광개토경평안호태황비문] 

8. 이에 수레를 돌려 가평도(𠡐平道?)를 지나는 길에 동쪽으로 오시는데, 액다력성(額多力城?)의 북쪽은 오곡[五穀?]이 풍년들었으니, 오히려 토지의 경계를 둘러보고 밭에서 사냥하고 돌아오셨다. 

(於是旋駕 因過𠡐平道 東來 額多力城 北豊五穀 猶遊觀土境田獵而還<28자>). (*해독불능자가 표시된 비문 : 於是旋駕 因過□平道東來□□力城北豊五□猶遊觀土境田獵而還). *이하 해복불능(□)으로 표시된 부분은 단단학회(檀檀學會) 발행의 비문으로 보완함. 

비려(碑麗)를 토벌하고 돌아오는 길에 가평도(𠡐平道?)를 지나 동쪽으로 오니 풍년이 들어 있어 경계를 둘러보고 사냥하고 환도하였다는 것이다. 여기서 도(道)는 행정구역 단위가 되는데 이 도(道)라는 명칭은 서기전192년에 해성(海城)을 평양도(平壤道)에 속하게 하였다고 하므로 이미 북부여 시대에 존재하였던 것이 된다. 

9. 백잔과 신라는 예로부터 속민으로 조공을 하여 왔으며, 왜는 신묘년(서기391년)이 오자 바다를 건너 쳐부수셨고, 백잔이 신라를 계속 침략하여 신민(臣民)으로 삼으므로, 6년 병신년(丙申年:서기396년)에 왕께서 몸소 수군을 이끌고 백잔국의 군대를 토벌하여 굴수(斬首)가 있었으며, 일팔성(壹八城:堂八城?:당팔성?), 구모로성(臼模盧城), 각모로성(各模盧城:岩모로성?), 간궁리성(幹弓利城?), 상리성(上利城?), 각미성[閣彌城:關彌城:관미성?], 모로성(牟盧城), 미사성(彌沙城), 고사조성(古舍蔦城?), 아단성(阿旦城:[아차성?]), 고리성(古利城), 곤리성(困利城?), 잡진성(雜珍城:雜彌城?), 오리성(奧利城?), 구모성(勾牟城), 고모야라성(古模耶羅城:고모龍라성?), 하산성(夏山城?), 미성(味城?), 가고이야라성(家古而耶羅城?:가고이龍라성?), 양성(楊城?), 취곡성(就谷城?), 두노성(豆奴城), 사노성(沙奴城), 비내성(沸乃城?), 이성(利城), 미추성(彌鄒城), 야리성(也利城), 태산한성(太山韓城), 소가성(掃加城), 돈발성(敦拔城), 보려성(輔呂城?), 구루매성(久婁賣城?), 산나성(散那城), 나단성(那旦城), 세성(細城), 모루성(牟婁城), 우루성(于婁城), 소회성(蘇灰城), 연루성(燕婁城), 석지리성(析支利城), 암문지성(巖門至城?), 임성(林城), 성루성(盛婁城?), 남소성(南蘇城?), 누리성(婁利城?), 취추성(就鄒城), 거발성(居拔城?), 고모루성(古牟婁城), 윤노성(閏奴城), 관노성(貫奴城), 삼양성(彡穰城?), 교성(交城?), 압본성(鴨本城?), 로성(盧城:羅城?:라성?), 구천성(仇天城), 우산성(禹山城?), 문성(文城?), 기국성(其國城) 등 58개성을 공격하여 취하셨다. 

(百殘新羅 舊是屬民 由來朝貢而 倭以辛卯年來 渡海破 百殘聯侵新羅 以爲臣民 以六年丙申 王躬率水軍 討伐殘國軍 有屈首 攻取 壹八城 臼模盧城 各模盧城 幹弓利城 上利城 閣彌城 牟盧城 彌沙城 古舍蔦城 阿旦城 古利城 困利城 雜珍城 奧利城 勾牟城 古模耶羅城 頁山城 味城 家古而耶羅城 楊城 就谷城 豆奴城 沙奴城 沸乃城 利城 彌鄒城 也利城 太山韓城 掃加城 敦拔城 輔呂城 久婁賣城 散那城 那旦城 細城 牟婁城 于婁城 蘇灰城 燕婁城 析支利城 巖門至城 林城 盛婁城 南蘇城 婁利城 就鄒城 居拔城 古牟婁城 閏奴城 貫奴城 彡穰城 交城 鴨本城 盧城 仇天城 禹山城 文城 其國城<232자>). (*해독불능자가 표시된 비문 : 百殘新羅舊是屬民由來朝貢而倭以辛卯年來渡海破百殘□□新羅以爲臣民以六年丙申王躬率水軍討伐殘國軍□□首攻取壹八城臼模盧城各模盧城幹弓利城□□城閣彌城牟盧城彌沙城□舍□城阿旦城古利城□利城雜珍城奧利城勾牟城古模耶羅城頁□□□城□□而耶羅城□城□□城豆奴城沙奴城沸□□利城彌鄒城也利城太山韓城掃加城敦拔城□□城□婁賣城散那城那旦城細城牟婁城于婁城蘇灰城燕婁城析支利城巖門□城林城□□□□□□□利城就鄒城□拔城古牟婁城閏奴城貫奴城□穰城□城□□□盧城仇天城□□□□□其國城). 

여기서 백잔은 백제(百濟)를 낮추어 부른 백제의 잔당(殘黨)이라는 뜻이 된다. 서기전42년에 소서노(召西弩)가 비류와 온조를 데리고 졸본을 떠나 패대(浿帶)지역으로 가서 땅을 개척하여 서기전31년에 고주몽 성제(聖帝)로부터 제후국인 어하라국(於瑕羅國)에 봉해졌으며, 서기전19년에 소서노(召西弩)가 훙(薨)하자 비류가 이었고 이때 온조는 다시 배를 타고 한반도의 인천(미추홀:밑골)을 거쳐 한강을 따라 올라가 하남(河南) 위지성(尉支城:윗골)에 도읍을 정하니 십제(十濟)가 되었으며, 후에 비류의 나라를 합치어 백제(百濟)가 되었던 것이 된다. 이로써 백제는 어하라국의 후신으로서 고구려의 제후국에 해당하는 것이 되며 백제의 왕을 어라하(於羅瑕:於陸:어른:長)라 하는 것이 된다. 

신라는 서기전209년에 세워진 진한(辰韓)을 계승한 나라로서 서기전57년에 박혁거세가 추대되어 거서간(居西干)이 되었는데, 처음부터 북부여를 천왕(天王)의 나라로 섬긴 것이 되어 북부여를 계승한 고구려를 상국(上國)으로 자연히 받든 것이 된다. 신라의 왕을 매금(寐錦)이라고 적는데, 이는 “뉨금”으로 읽히어 임금 즉 이사금을 다르게 적은 것이 된다. 

이로써 백제와 신라는 고구려의 오랜 조공국이 되는 것이다. 즉, 예로부터 고구려에 속한 백성으로서 조공을 한 것이 된다. 서기391년에 신라는 실성을 고구려에 인질로 잡혔다. 

왜(倭)는 백제와 한통속으로서 백제의 사주를 받아 자주 신라를 침범하였는데, 고구려가 영락(永樂) 원년(元年)인 서기391년 신묘년에 바다를 건너 왜(倭)를 쳐부수었던 것이다. 

서기392년에는 고구려 광개토호태황이 군사 4만으로 백제의 10개성을 함락시키고 한수(漢水) 이북을 점령하였던 것이 된다. 이해에 고구려는 백제의 관미성(關彌城)도 함락시켰다. 이해에 백제는 진사왕이 죽고 아신왕(阿莘王)이 즉위하였다. 

백잔이 신라를 (계속 침략하여) 신민(臣民)으로 삼으므로, 영락(永樂)6년 병신년(丙申年:서기396년)에 왕께서 몸소 수군(水軍)을 이끌고 백잔국의 군대를 토벌하여 머리를 (베고), 일팔성(당팔성?) 등 58개성을 공격하여 탈취하였던 것이다. 

해독불가로 표시된 성(城)의 명칭이 해독가능자로 표기된 단단학회 발행 비문의 글자가 정확한지 여부는 다른 역사서에 표기된 각 성(城)의 명칭과 대조해 보면 가능하리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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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프로필] 조홍근(曺洪根, 52세). 한문화재단(桓文化財團) 사무총장. 트위트-페이스북 역사당 부총재. 현 법무사. 

30여년 동안 족보(族譜)와 한중일(韓中日) 역사를 연구해 오면서, 부도지(符都誌), 한단고기(桓檀古記), 규원사화(揆園史話), 단기고사(檀奇古史) 등 귀중한 역사자료를 통하여, 우리역사 1만년을 넘어 마고(麻姑) 시대를 포함한 7만2천390년 역사를 밝히고 있음. 

1. 홍익인간(弘益人間) 천부(天符)의 역사는 마고성(麻姑城:파미르고원)의 마고(麻姑)시대인 서기전70378년 계해년(癸亥年)부터 시작되었음을 최초로 밝혔음. 
2. 역법(曆法)이 시작된 해는 마고성(麻姑城)의 황궁씨(黃穹氏) 시대인 서기전25858년 계해년(癸亥年)임을 밝혔으며, 서기전70378년 계해년이 마고(麻姑) 기원(紀元:천부 天符)임을 밝혔음. 
3. 황궁씨를 이은 나반(那般:那般尊者:獨聖者)이 한국(桓國)시대 한인씨(桓因氏) 이전의 임금이던 유인씨(有因氏)이며, 한인씨 7대(代)가 약1,000년을 다스렸다는 것임을 밝혔음. 
4. 윷놀이판의 모습이 천부경(天符經)의 무한조화순환역(無限造化循環易), 음양오행(陰陽五行), 태양태음성력(太陽太陰星曆), 단군조선의 정치행정 구조를 나타낸 것임을 밝혔으며, 하도(河圖)와 낙서(洛書)가 배달나라 시대의 음양오행수리역(陰陽五行數理易)이며, 태호복희 8괘역과 윷놀이판의 역이 지구의 자전(自轉)과 공전(公轉)을 기반으로 한 역(易)임을 밝혔음. 
5. 천제(天帝), 천황(天皇:天王), 천군(天君), 천공(天公), 천후(天侯), 천백(天伯), 천자(天子), 천남(天男)의 위계질서를 최초로 밝히고, 천제자(天帝子)와 천자(天子)의 차이점을 최초로 밝혔으며, 태호복희씨(太皞伏羲氏)가 일반 천자(天子)가 아니라 천지인(天地人) 삼신(三神)에게 제(祭)를 올리는 권한을 가진 제사장인 천군(天君)임을 밝혔음. 
6. 아리랑(阿里嶺) 민요의 원천이 되는 최초의 역사적 사실이 서기전2333년 10월 3일 조선을 건국하기 이전에 있었던 당요(唐堯)의 전란(戰亂)으로 인한 단군왕검(檀君王儉)의 동북 아사달로의 이동과정임을 밝혔음. 
7. 고대중국의 천자로 불리는 요순우(堯舜禹)와 고대일본의 신무왕(神武王)이 단군조선의 반역자(反逆者)이면서 제후인 천자(天子)임을 밝혔음. 
8. 우비(禹碑:우 치수기념 부루공덕 비)의 비문을 국내 최초로 역사적 해석을 하여, 서기전2267년 이후 우(禹)가 치수에 성공한 후 치수법(治水法)을 전수해 준 단군조선 태자부루의 공덕을 새겨 남악(南嶽) 형산(衡山)에 세운 것임을 밝혔음. 
9. 일본 국조신(國祖神)인 천조대신(天照大神)의 사당인 이세신궁(伊勢神宮)에 소장된 원시한글 축문을 국내 최초로 완벽 해독하고, 요하유로 기록된 천조대신이 단군조선 두지주(豆只州) 예읍(濊邑)의 추장(酋長)의 후손임을 밝혔음. 
10. 명도전(明刀錢) 최초 해독학자 허대동선생<저서 고조선문자>의 가림토(加臨土) 해독의 검증에 참여하여 첨수도(尖首刀), 명도전이 단군조선의 화폐이며 새겨진 문자가 단군조선의 상형 및 표음 문자임을 밝혔음. 그 외 다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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