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뿌리를 찾아서)/홍익인간 7만년 역사

[홍익인간 306] 고구려(高句麗) 연대기 15

양해천 2018. 1. 23. 11:47

[홍익인간 306] 고구려(高句麗) 연대기 15

2012년 05월 06일 (일) 07:14:54천산(天山)  sppopsj@yahoo.co.kr

[광개토경평안호태황비문] 

16. 영락 20년 무술년(서기410년)에, 동부여는 옛날에 추모왕의 속민이었다가 배반하여 조공하지 않으므로, 왕께서 몸소 군사를 이끌고 가서 토벌하셨는데, 군사가 여성(동부여성)에 이르니 동부여성의 국병이 준비가 안되어 곤란을 당하자 드디어 항복하고 조공을 바치니, 왕의 은혜가 널리 퍼졌다. 이에 머리를 돌려 돌아오는데 그 숭모교화되어 고구려의 관리를 따라 온 자가 미구루압로, 비사마압로 성입루압로, 숙사사압로, 송사루압로인데, 무릇 공격하여 격파한 것이 성이 64개이며 마을이 1,400개이다. 

(卄年 庚戌 東夫餘 舊是鄒牟王 屬民中叛不貢 王躬率往討 軍到餘城而 餘城國騈 無備遭難 遂降伏貢獻 王恩普處 於是旋還 又其慕化隨官來者 味仇婁鴨盧 卑斯麻鴨盧 城立婁鴨盧 肅斯舍鴨盧 竦斯婁鴨盧 凡所攻破 城六十四 村一千四百<95자>). (*해독불능자가 표시된 비문 : 卄年庚戌東夫餘舊是鄒牟王屬民中叛不貢王躬率往討軍到餘城而餘城國□□□□□□□□□□王恩普處於是旋還叉其慕化隋官來者味仇婁鴨盧卑斯麻鴨盧□立婁鴨盧肅斯舍鴨盧□斯婁鴨盧凡所攻破城六十四村一千四百) 

동부여는 서기전86년에 졸본(卒本) 출신의 동명왕(東明王) 고두막한(高豆莫汗)에 의하여 해부루(解夫婁) 천왕이 동부여후(東夫餘侯)로 강등되어 가섭원(분릉:지금의 길림)에 봉해져 시작되었는데, 서기전79년 탄생한 고주몽이 다섯살쯤에 어머니 유화부인을 따라 동부여로 갔다가 해부루왕의 왕실에서 지내게 되었고, 이후 고주몽의 능력으로 인한 시기, 질투, 암투로 서기전59년에 유화부인이 고주몽을 떠나게 하엿고, 이에 고주몽이 어머니의 명을 따라 동부여를 떠나 졸본으로 갔던 것이다. 

서기전58년에 북부여 고무서 천왕이 붕하고 유언에 따라 고주몽이 대통을 이었던 것이며, 서기47년에 동부여는 고구려(북부여:졸본부여)에 특산물을 바치는 등 조공을 하였다. 이후 서기22년 4월에 동부여가 고구려에 망하였고, 대소왕의 아우가 갈사국왕(曷思國王)이 되었다가 서기68년 8월에 고구려에 항복하여 지금의 두만강 북쪽에 위치한 혼춘(琿春:연길)에 동부여후(東夫餘侯)로 봉해졌던 것이다. 

한편, 대소왕의 종제(從弟)는 서기22년 7월에 고구려에 투항하여 고구려가 연나부(椽那部:西部) 낙씨(絡氏)에 봉하였는데, 처음 고구려에 속하였다가 점차 독립하였으며 서기494년에 문자제 때 고구려에 완전히 복속되었다. 여기서 대소왕의 종제는 곧 사촌동생으로서, 대소왕이 금와왕의 아들이고 금와왕은 해부루왕의 양자이므로, 대소왕의 종제는 결국 친아들이 없던 해부루왕의 딸의 아들이 된다. 

서기410년에 광개토호태황이 동부여를 공격하였는데, 동부여의 도성에 이르자 미처 방비를 못한 동부여가 항복을 하여 조공을 바쳤던 것이며, 이어 돌아 오는 길에 미구루압로, 비사마압로, 성입루압로, 숙사사압로, 송사루압로는 고구려에 미리 항복하여 관리를 따라 왔고, 그 외 64개의 성과 1,400개의 마을은 끝내 항복하지 않아 공격하여 격파하였던 것이다. 

여기서 광개토호태황이 공격한 동부여가 원래 있었던 가섭원(분릉:吉林)의 동부여인지, 압록강 유역에 있었던 갈사국 땅의 동부여후국(혼춘 동부여)인지, 연나부 낙씨의 동부여인지 불명인데, 아마도 미구루압로, 비사마압로, 성입루압로, 숙사사압로, 송사루압로 등의 명칭으로 볼 때 압록강 유역의 갈사국 땅이던 혼춘의 동부여가 될 것이다. 지금의 두만강(豆滿江)은 당시에 갈사수(曷思水)이라 불리었던 것이 된다. 한편, 백두산 서쪽의 압록강 유역은 옥저(沃沮) 땅이 되며, 예(濊)는 동해 바닷가 지역을 가리키는 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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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프로필] 조홍근(曺洪根, 52세). 한문화재단(桓文化財團) 사무총장. 트위트-페이스북 역사당 부총재. 현 법무사. 

30여년 동안 족보(族譜)와 한중일(韓中日) 역사를 연구해 오면서, 부도지(符都誌), 한단고기(桓檀古記), 규원사화(揆園史話), 단기고사(檀奇古史) 등 귀중한 역사자료를 통하여, 우리역사 1만년을 넘어 마고(麻姑) 시대를 포함한 7만2천390년 역사를 밝히고 있음. 

1. 홍익인간(弘益人間) 천부(天符)의 역사는 마고성(麻姑城:파미르고원)의 마고(麻姑)시대인 서기전70378년 계해년(癸亥年)부터 시작되었음을 최초로 밝혔음. 
2. 역법(曆法)이 시작된 해는 마고성(麻姑城)의 황궁씨(黃穹氏) 시대인 서기전25858년 계해년(癸亥年)임을 밝혔으며, 서기전70378년 계해년이 마고(麻姑) 기원(紀元:천부 天符)임을 밝혔음. 
3. 황궁씨를 이은 나반(那般:那般尊者:獨聖者)이 한국(桓國)시대 한인씨(桓因氏) 이전의 임금이던 유인씨(有因氏)이며, 한인씨 7대(代)가 약1,000년을 다스렸다는 것임을 밝혔음. 
4. 윷놀이판의 모습이 천부경(天符經)의 무한조화순환역(無限造化循環易), 음양오행(陰陽五行), 태양태음성력(太陽太陰星曆), 단군조선의 정치행정 구조를 나타낸 것임을 밝혔으며, 하도(河圖)와 낙서(洛書)가 배달나라 시대의 음양오행수리역(陰陽五行數理易)이며, 태호복희 8괘역과 윷놀이판의 역이 지구의 자전(自轉)과 공전(公轉)을 기반으로 한 역(易)임을 밝혔음. 
5. 천제(天帝), 천황(天皇:天王), 천군(天君), 천공(天公), 천후(天侯), 천백(天伯), 천자(天子), 천남(天男)의 위계질서를 최초로 밝히고, 천제자(天帝子)와 천자(天子)의 차이점을 최초로 밝혔으며, 태호복희씨(太皞伏羲氏)가 일반 천자(天子)가 아니라 천지인(天地人) 삼신(三神)에게 제(祭)를 올리는 권한을 가진 제사장인 천군(天君)임을 밝혔음. 
6. 아리랑(阿里嶺) 민요의 원천이 되는 최초의 역사적 사실이 서기전2333년 10월 3일 조선을 건국하기 이전에 있었던 당요(唐堯)의 전란(戰亂)으로 인한 단군왕검(檀君王儉)의 동북 아사달로의 이동과정임을 밝혔음. 
7. 고대중국의 천자로 불리는 요순우(堯舜禹)와 고대일본의 신무왕(神武王)이 단군조선의 반역자(反逆者)이면서 제후인 천자(天子)임을 밝혔음. 
8. 우비(禹碑:우 치수기념 부루공덕 비)의 비문을 국내 최초로 역사적 해석을 하여, 서기전2267년 이후 우(禹)가 치수에 성공한 후 치수법(治水法)을 전수해 준 단군조선 태자부루의 공덕을 새겨 남악(南嶽) 형산(衡山)에 세운 것임을 밝혔음. 
9. 일본 국조신(國祖神)인 천조대신(天照大神)의 사당인 이세신궁(伊勢神宮)에 소장된 원시한글 축문을 국내 최초로 완벽 해독하고, 요하유로 기록된 천조대신이 단군조선 두지주(豆只州) 예읍(濊邑)의 추장(酋長)의 후손임을 밝혔음. 
10. 명도전(明刀錢) 최초 해독학자 허대동선생<저서 고조선문자>의 가림토(加臨土) 해독의 검증에 참여하여 첨수도(尖首刀), 명도전이 단군조선의 화폐이며 새겨진 문자가 단군조선의 상형 및 표음 문자임을 밝혔음. 그 외 다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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