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뿌리를 찾아서)/홍익인간 7만년 역사

[홍익인간 305] 고구려(高句麗) 연대기 14

양해천 2018. 1. 23. 11:47

[홍익인간 305] 고구려(高句麗) 연대기 14

2012년 05월 05일 (토) 07:41:15천산(天山)  sppopsj@yahoo.co.kr

[광개토경평안호태황비문] 

14. 영락 14년 갑진년(서기404년)에 왜가 법도를 어기고 대방의 경계를 침입하여 변민을 불사르고 약탈하고, 석성(石城)의 도련(島連)으로부터 배들이 바다를 덮어 크게 이르니, 왕께서 이를 듣고 노하시어, 평양의 군사를 보내어 곧 바로 싸우게 하고 왕당의 군사와 서로 만나게 하여 끊고 쓸어버리고 무찌르게 하시니, 왜구는 무너져 패하고 무수히 참살 되었다. 

(十四年甲辰而 倭不軌侵入帶方界 焚掠邊民 自石城島連 船蔽海大至 王聞之怒 遣平穰軍直欲戰 相遇王幢 要截蕩刺 倭寇潰敗 斬煞無數<55자>). (해독불능자가 표시된 비문 : 十四年甲辰而倭不軌侵入帶方界□□□□□石城□連船□□□□□□□□□平穰□□□□相遇王幢要截蕩刺倭寇潰敗斬煞無數) 

영락 14년인 서기404년 갑진년에 고구려는 백제와 왜의 연합군을 격퇴하였다. 

즉, 서기404년에 왜가 대방(帶方)의 경계를 침입하여 불사르고 그곳 백성들을 약탈하였던 것이며, 석성(石城)인 도련(島連)에서부터 배로 바다를 덮으니, 광개토호태황께서 이 사실을 듣고서, 평양(平壤)의 군사를 보내어 왕당(王幢)의 군사와 서로 만나게 하여 왜구를 치게 하니, 이에 왜구는 궤멸되고 무수히 참살(斬煞)되었던 것이다. 

여기서 왕당(王幢)은 왕의 군사로 편성된 것을 가리키는 것이 되는데, 각 장수들에 편성된 군사가 아닌 왕이 직접 인솔하는 직속 군사가 되는 셈이다. 

15. 영락 17년 정미년(서기407년)에 교서(敎書)로 보기 5만을 보내시어 숙군성(宿軍城)으로 가서 토벌케 하니, 태뢰(太牢)로써 군사를 내어 제(祭)를 지낸 후 합하여 싸워 참살하여 쓸어버리어, 갑옷을 노획한 것이 1만여이고, 군수물자와 기계등을 손에 넣은 것이 셀 수 없이 많았으며, 돌아와 사구성(沙溝城)과 누성(婁城)을 격파하고 군현(郡縣)을 삼았으며 독발(禿髮)을 항복시키고 이에 양주성(凉州城)을 기습하여 취하였다. 

(十七年丁未 敎遣步騎五萬 往討宿軍城 以太牢薦師 祭遂合戰 斬煞湯盡 所獲鎧鉀一萬餘 領軍資器械 不可稱數 還破沙溝城 婁城爲郡縣 降禿髮因襲取凉州城<64자>). (*해독불능자가 표시된 비문 : 十七年丁未敎遣出騎五萬□□□□□□□□□師□□合戰 斬煞湯盡所獲鎧鉀一萬餘領軍資器械不可稱數還破沙□城婁城城□□□□□□□□□□□□□□) 

서기407년에 광개토호태황이 교서(敎書)를 내려 보병과 기병 5만을 숙군성(宿軍城)으로 보내어 토벌케 하였는데, 이때 태뢰(太牢)로써 군사를 선발하게 하여 제(祭)를 지내고 합공하였던 것이다. 

여기서 태뢰(太牢)는 큰 소 우리(牢) 또는 큰 감옥을 뜻하는 것이 되는데, 큰 소들을 차출하여 군대로 편성한 것인지, 죄인들 중에서 차출하여 군사로 삼은 것인지 불명한데 아마도 전자가 아닌가 한다. 

이에, 갑옷 1만여벌과 군수물자, 기계 등을 무수히 획득하였던 것이며, 돌아오면서 사구성(沙溝城)과 누성(婁城)을 격파하여 군현(郡縣)으로 삼았고, 독발(禿髮:대머리)이라는 이름을 가진 자의 항복을 받아 양주성(凉州城)을 기습하여 취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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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프로필] 조홍근(曺洪根, 52세). 한문화재단(桓文化財團) 사무총장. 트위트-페이스북 역사당 부총재. 현 법무사. 

30여년 동안 족보(族譜)와 한중일(韓中日) 역사를 연구해 오면서, 부도지(符都誌), 한단고기(桓檀古記), 규원사화(揆園史話), 단기고사(檀奇古史) 등 귀중한 역사자료를 통하여, 우리역사 1만년을 넘어 마고(麻姑) 시대를 포함한 7만2천390년 역사를 밝히고 있음. 

1. 홍익인간(弘益人間) 천부(天符)의 역사는 마고성(麻姑城:파미르고원)의 마고(麻姑)시대인 서기전70378년 계해년(癸亥年)부터 시작되었음을 최초로 밝혔음. 
2. 역법(曆法)이 시작된 해는 마고성(麻姑城)의 황궁씨(黃穹氏) 시대인 서기전25858년 계해년(癸亥年)임을 밝혔으며, 서기전70378년 계해년이 마고(麻姑) 기원(紀元:천부 天符)임을 밝혔음. 
3. 황궁씨를 이은 나반(那般:那般尊者:獨聖者)이 한국(桓國)시대 한인씨(桓因氏) 이전의 임금이던 유인씨(有因氏)이며, 한인씨 7대(代)가 약1,000년을 다스렸다는 것임을 밝혔음. 
4. 윷놀이판의 모습이 천부경(天符經)의 무한조화순환역(無限造化循環易), 음양오행(陰陽五行), 태양태음성력(太陽太陰星曆), 단군조선의 정치행정 구조를 나타낸 것임을 밝혔으며, 하도(河圖)와 낙서(洛書)가 배달나라 시대의 음양오행수리역(陰陽五行數理易)이며, 태호복희 8괘역과 윷놀이판의 역이 지구의 자전(自轉)과 공전(公轉)을 기반으로 한 역(易)임을 밝혔음. 
5. 천제(天帝), 천황(天皇:天王), 천군(天君), 천공(天公), 천후(天侯), 천백(天伯), 천자(天子), 천남(天男)의 위계질서를 최초로 밝히고, 천제자(天帝子)와 천자(天子)의 차이점을 최초로 밝혔으며, 태호복희씨(太皞伏羲氏)가 일반 천자(天子)가 아니라 천지인(天地人) 삼신(三神)에게 제(祭)를 올리는 권한을 가진 제사장인 천군(天君)임을 밝혔음. 
6. 아리랑(阿里嶺) 민요의 원천이 되는 최초의 역사적 사실이 서기전2333년 10월 3일 조선을 건국하기 이전에 있었던 당요(唐堯)의 전란(戰亂)으로 인한 단군왕검(檀君王儉)의 동북 아사달로의 이동과정임을 밝혔음. 
7. 고대중국의 천자로 불리는 요순우(堯舜禹)와 고대일본의 신무왕(神武王)이 단군조선의 반역자(反逆者)이면서 제후인 천자(天子)임을 밝혔음. 
8. 우비(禹碑:우 치수기념 부루공덕 비)의 비문을 국내 최초로 역사적 해석을 하여, 서기전2267년 이후 우(禹)가 치수에 성공한 후 치수법(治水法)을 전수해 준 단군조선 태자부루의 공덕을 새겨 남악(南嶽) 형산(衡山)에 세운 것임을 밝혔음. 
9. 일본 국조신(國祖神)인 천조대신(天照大神)의 사당인 이세신궁(伊勢神宮)에 소장된 원시한글 축문을 국내 최초로 완벽 해독하고, 요하유로 기록된 천조대신이 단군조선 두지주(豆只州) 예읍(濊邑)의 추장(酋長)의 후손임을 밝혔음. 
10. 명도전(明刀錢) 최초 해독학자 허대동선생<저서 고조선문자>의 가림토(加臨土) 해독의 검증에 참여하여 첨수도(尖首刀), 명도전이 단군조선의 화폐이며 새겨진 문자가 단군조선의 상형 및 표음 문자임을 밝혔음. 그 외 다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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