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뿌리를 찾아서)/홍익인간 7만년 역사

[홍익인간 312] 고구려(高句麗) 연대기 21

양해천 2018. 1. 23. 12:50

[홍익인간 312] 고구려(高句麗) 연대기 21

2012년 05월 11일 (금) 06:16:56천산(天山)  sppopsj@yahoo.co.kr

[제28대 보장제(寶藏帝:서기642년~서기668년)]

<안시성 전투 - 양만춘이 이세민의 눈에 화살을 맞추다> 

이세민이 안시성에 이르자, 안시성 성주 양만춘은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서 당나라 태종을 놀리며 격파하였다. 

당나라군은 안시성의 동남쪽에 토성을 쌓고 공격하니 고구려도 토성을 쌓아 대비하였다. 당나라가 50만여명을 동원하여 60여일 동안 밤낮으로 토성을 쌓아 고구려군의 동태를 살피다가 어느날 토성의 한 모퉁이가 무너지면서 안시성의 성벽을 덮치자, 이틈에 고구려군이 재빨리 성벽을 타고 나와 토성을 공격하여 당나라 토성을 점령해 버렸다. 

이에 이세민이 분함을 참지 못하고 감히 나서서 싸우려 하니, 양만춘이 화살을 하늘로 향해 당겼다. 이때 이세민이 진에서 나섰다가 왼쪽 눈에 화살을 맞아 말에서 떨어졌다. 이에 이세민이 군사들 틈에 끼어 도망쳤다. 

<당나라 군사가 진흙탕에 빠지다> 

이에 고구려군이 추적하였는데, 요택의 진흙길이 당나라 군대의 행군을 매우 어렵게 했다. 당군은 풀을 베어 길에 깔아 메우고 물이 깊은 곳은 수레로 다리를 만들게 하였으며 이세민도 몸소 나무를 말고삐에 연결하여 매고 일을 도왔다. 

<당나라 군사가 눈바람에 얼어 죽다> 

서기645년 겨울 10월에 당군이 포오거(浦吾渠)에 이르러 말을 쉬게 하고 길이 메워지기를 기다렸다가 발착수(渤錯水)를 건너는데 심한 바람과 눈이 몰아치니 군사들이 죽는 자가 많았다. 

<연개소문의 추격> 

이때 막리지 연개소문은 이들을 심히 급하게 추격하였다. 추정국(鄒定國)은 적봉(赤峰)에서 하간현(河間縣)으로 이르고, 양만춘은 곧바로 신성(新城)으로 나아가니, 당군은 갑옷과 병기를 마구 버리면서 도망갔으며, 드디어 역수(易水)를 건넜다. 

<통도성과 요동성과 상곡을 지키다> 

이때 연개소문은 고연수에게 명하여 지금의 북경에 있는 정안문 밖 60리에 통도성(고려진)을 개축하게 하고, 군사를 나누어 요동성(창려)을 지키게 하고, 또 다른 군사는 이세민의 뒤를 바짝 쫓게 하고, 또 일부는 상곡(대동부)을 지키게 하였다. 

<이세민이 굴복하다> 

이에 이세민은 궁지에 몰려 어찌할 바를 모르고, 아및내 사람을 보내어 항복을 구걸하니, 연개소문이 추정국, 양만춘 등의 수만기를 이끌고 성대하게 의용을 갖추어 진열한 뒤 선도하게 하여 장안성(長安城)에 입성하여, 이세민과 산서, 하북, 산동, 강좌를 고구려에 귀속하기로 이세민과 약정하였던 것이다. 

<당나라의 2차 침입> 

서기648년에 당나라가 제2차 침입을 하였으나 실패하였다. 

<당나라의 3차 침입> 

서기649년에 당나라가 제3차 침입을 하였으나 실패하고 당나라 태종이 죽었다. 

<연개소문의 사망> 

서기657년 10월 7일에 연개소문이 55세로 사망하니 55세였으며, 묘는 운산(雲山)의 구봉산(九峰山)에 있다. 연개소문이 임종에 남생과 남건을 돌아보며, “너희들 형제는 서로 사랑하기를 물처럼 하라. 화살은 합치면 강하고 이를 나누면 곧 부러진다. 반드시 내말을 잊지 말고 천하 이웃나라 사람의 웃음거리가 되지 않도록 하라”고 하였다. *서기666년에 연개소문이 사망하였다라고도 하는데, 이는 연개소문이 당나라의 침공을 예방하기 위하여 전략전술상으로 자신이 사망한 사실을 공개하지 않도록 한 것이라 보아야 할 것이다. 

<신라가 당고종에게 원병을 청하다> 

서기659년에 신라는 백제가 자주 국경을 침범하자 당고종에게 사신을 보내어 백제와 고구려를 치자며 원병을 청하였다. 

<백제가 망하다> 

서기660년에 당고종이 소정방에게 13만 군사를 주어 백제를 치게 하였다. 이때 신라의 김유신이 5만의 군사로 당군과 협공하여 백제를 멸망시켰다. 

<당나라와 신라의 총공세로 평양성을 잃다> 

서기667년에 당나라는 투항한 남생을 앞세워 고구려를 침공하였는데, 고구려는 이세적과 설인귀 등이 이끄는 50만 대군과 신라의 김인문이 이끄는 27만의 나당연합군을 막았다. 9월에 신성, 부여성 등을 잃었다. 

서기668년에 9월 21일에 1년을 항전한 끝에 평양성을 함락당하였다. 이에 보장제는 당나라에 항복하였다. 

이에 당나라는 안동도호부를 설치하고 설인귀를 도독으로 삼았다. 

이리하여 고구려의 역사는 서기전37년부터 서기668년까지 28대 705년이며, 해모수의 북부여로부터는 서기전239년부터 합35대 907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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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상이 후고구려를 칭하다] 

서기668년 고구려의 장군 대중상(大仲象)이 후고구려(後高句麗)라 칭하고 연호를 중광(重光)이라 하며, 수도를 동모산(東牟山)에 정하였다. 

[고구려 부흥운동] 

서기670년 고연무, 검모잠이 안승(安勝)을 옹립하여 고구려 부흥운동을 하였으나 안승이 검모잠을 살해함으로써 실패하였다. 

서기677년에 보장제가 고구려 재건을 노리다 실패하고 유배된 후 서기682년에 붕하였다. 

[고구려 계승국, 대진국(大震國)] 

서기699년 후고구려 대중상이 붕어하자 아들 대조영(大祚榮)이 대를 이어, 연호를 천통(天統)이라 하고, 국호를 대진(大震)이라 하며, 홀한성(상경 용천부)을 수도로 삼았다. 대진(大震)이란 고구려(高句麗)가 고씨(高氏)의 구려(句麗)라는 것과 같이 대씨(大氏)의 진(震)나라라는 의미가 담겨져 있는 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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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프로필] 조홍근(曺洪根, 52세). 한문화재단(桓文化財團) 사무총장. 트위트-페이스북 역사당 부총재. 현 법무사. 

30여년 동안 족보(族譜)와 한중일(韓中日) 역사를 연구해 오면서, 부도지(符都誌), 한단고기(桓檀古記), 규원사화(揆園史話), 단기고사(檀奇古史) 등 귀중한 역사자료를 통하여, 우리역사 1만년을 넘어 마고(麻姑) 시대를 포함한 7만2천390년 역사를 밝히고 있음. 

1. 홍익인간(弘益人間) 천부(天符)의 역사는 마고성(麻姑城:파미르고원)의 마고(麻姑)시대인 서기전70378년 계해년(癸亥年)부터 시작되었음을 최초로 밝혔음. 
2. 역법(曆法)이 시작된 해는 마고성(麻姑城)의 황궁씨(黃穹氏) 시대인 서기전25858년 계해년(癸亥年)임을 밝혔으며, 서기전70378년 계해년이 마고(麻姑) 기원(紀元:천부 天符)임을 밝혔음. 
3. 황궁씨를 이은 나반(那般:那般尊者:獨聖者)이 한국(桓國)시대 한인씨(桓因氏) 이전의 임금이던 유인씨(有因氏)이며, 한인씨 7대(代)가 약1,000년을 다스렸다는 것임을 밝혔음. 
4. 윷놀이판의 모습이 천부경(天符經)의 무한조화순환역(無限造化循環易), 음양오행(陰陽五行), 태양태음성력(太陽太陰星曆), 단군조선의 정치행정 구조를 나타낸 것임을 밝혔으며, 하도(河圖)와 낙서(洛書)가 배달나라 시대의 음양오행수리역(陰陽五行數理易)이며, 태호복희 8괘역과 윷놀이판의 역이 지구의 자전(自轉)과 공전(公轉)을 기반으로 한 역(易)임을 밝혔음. 
5. 천제(天帝), 천황(天皇:天王), 천군(天君), 천공(天公), 천후(天侯), 천백(天伯), 천자(天子), 천남(天男)의 위계질서를 최초로 밝히고, 천제자(天帝子)와 천자(天子)의 차이점을 최초로 밝혔으며, 태호복희씨(太皞伏羲氏)가 일반 천자(天子)가 아니라 천지인(天地人) 삼신(三神)에게 제(祭)를 올리는 권한을 가진 제사장인 천군(天君)임을 밝혔음. 
6. 아리랑(阿里嶺) 민요의 원천이 되는 최초의 역사적 사실이 서기전2333년 10월 3일 조선을 건국하기 이전에 있었던 당요(唐堯)의 전란(戰亂)으로 인한 단군왕검(檀君王儉)의 동북 아사달로의 이동과정임을 밝혔음. 
7. 고대중국의 천자로 불리는 요순우(堯舜禹)와 고대일본의 신무왕(神武王)이 단군조선의 반역자(反逆者)이면서 제후인 천자(天子)임을 밝혔음. 
8. 우비(禹碑:우 치수기념 부루공덕 비)의 비문을 국내 최초로 역사적 해석을 하여, 서기전2267년 이후 우(禹)가 치수에 성공한 후 치수법(治水法)을 전수해 준 단군조선 태자부루의 공덕을 새겨 남악(南嶽) 형산(衡山)에 세운 것임을 밝혔음. 
9. 일본 국조신(國祖神)인 천조대신(天照大神)의 사당인 이세신궁(伊勢神宮)에 소장된 원시한글 축문을 국내 최초로 완벽 해독하고, 요하유로 기록된 천조대신이 단군조선 두지주(豆只州) 예읍(濊邑)의 추장(酋長)의 후손임을 밝혔음. 
10. 명도전(明刀錢) 최초 해독학자 허대동선생<저서 고조선문자>의 가림토(加臨土) 해독의 검증에 참여하여 첨수도(尖首刀), 명도전이 단군조선의 화폐이며 새겨진 문자가 단군조선의 상형 및 표음 문자임을 밝혔음. 그 외 다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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