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익인간 313] 사국(四國) 시대 신라(新羅) 연대기 1
1. 제1대 박혁거세(朴赫居世) 거서간(居西干:서기전57년~서기4년]
서기전209년에 소백손(蘇伯孫:蘇伯琳이라고도 함)이 단군조선 진한(眞韓)의 유민들을 이끌고 마한(한반도) 땅의 남동쪽으로 가 서라벌(徐羅伐:斯禮筏)에서 나라를 세워 진한(辰韓)이라 하였다.
서기전70년경에 북부여(北夫餘) 서보(西堡)의 방어장(防禦長) 즉 거서간(居西干)이던 박씨가 북부여 제실녀(帝室女)의 파소(婆蘇)와 혼인하였다.
서기전69년에 파소가 임신하고 있던 중 남편인 거서간 박씨는 한나라와의 전쟁에서 전사하였다. 이때 북부여는 한때 동명왕(東明王:서기전108년~서기전86년)이었던 고두막(高豆莫) 천왕 시절(서기전86년~서기전59년)이며, 태자는 고무서(高無胥)였는데, 고무서는 당시 딸이 셋이 있어 장녀는 파소(婆蘇), 둘째는 소서노(召西弩), 셋째는 불상이었는데, 파소는 남편을 잃자 북부여 제실에서 제자리를 찾지 못하게 되었다.
이에 파소는 북부여 제실(帝室)에서는 큰 뜻을 펼치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남하(南下)하기로 하여, 일행을 이끌고 동옥저(東沃沮)를 거쳐 배를 타고 진한(辰韓)의 나을촌(那乙村)에 도착하였다.
이해에 파소가 나을촌(那乙村)에서 박혁거세(朴赫居世)를 낳았다. 귀는 부채만큼 컸으며, 박(朴)을 성으로 삼았는데, 박(朴)은 곧 단(檀:박달)의 소리가 박달이기 때문에 박(밝)이라고 소리를 딴 것이다. 혁(赫)은 광명이니, 곧 광명으로써 세상을 구한다는 뜻이 된다. 진한의 6촌 사람들이 함께 양육하니 점차 자라면서 신기(神氣)가 빼어나게 밝고 대인(大人)의 법도가 있었다.
<신라 건국>
서기전57년에 박혁거세(朴赫居世)가 13세에 진한(辰韓) 6부(部)의 추대에 의하여 즉위하여 거서간(居西干)이 되었다. 국호를 사로국(斯盧國)이라 하고 수도를 서라벌(徐羅伐:경주)에 정하였다.
박혁거세는 천성은 신(神)과 같고 지혜는 성인(聖人)과도 같았다.
서기전53년 박혁거세 거서간이 17세에 현비(賢妃) 알영(閼英)을 맞이하니 사람들이 그들을 가리켜 이성(二聖)이라 하였다.
<남태백산 제천단(祭天壇:天祭壇)>
박혁거세 거서간이 남태백산(南太白山: 강원도 태백산)에 천부소도(天符小都)를 건설하였다. 중대(中臺)에 천부단(天符壇)을 축조하고 동서남북의 사대(四臺)에 보단(堡壇)을 설치하여 계불의식(禊祓儀式)을 행하고, 대인(大人)으로 하여금 금척(金尺)의 이치에 따라 천지시원의 근본을 증리(證理)하며, 옥관(玉管)의 음(音)을 내어 율려화생법(律呂化生法)을 수증(修證)하였다.
해마다 10월에 백의제(白衣祭)를 행하였는데, 이는 황궁씨(黃穹氏)의 속신백모(束身白茅)의 뜻을 따른 것이다.
달구(達丘)에 조시(朝市)를 베풀고 율포(栗浦)에 해시(海市)를 열어 육해 교역의 제도를 수립하였다.
서기전50년에 왜(倭)가 침입하였다.
서기전39년에 변한(弁韓)이 항복하였다.
서기전37년에 금성을 축조하였다. 고주몽이 고구려를 건국하였다.
서기전28년에 낙랑이 침범하였다.
서기전20년에 마한(馬韓)에 조공하였다.
서기전19년에 마한왕이 돌아가시니 조문하였다.
서기전18년에 온조가 백제를 건국하였다.
서기4년에 박혁거세거서간이 붕하였다.
2. 제2대 남해 차차웅(서기4년~서기24년)
서기4년에 낙랑(樂浪:최씨 낙랑)이 침입하였다.
서기8년에 석씨(昔氏) 탈해(脫解)를 사위로 삼았다. 석씨(昔氏)는 동보(東堡) 유배인의 후예로서 바닷가에 살던 사람이다.
서기9년에 마한이 백제에게 망하였다.
서기10년에 석탈해가 대보에 임명되었다.
서기14년에 왜(倭)가 침입하였다.
3. 제3대 유리 이사금(서기24년~서기57년)
서기28년에 쟁기와 보습을 사용하여 농사를 지었다.
서기32년에 6부에 최(崔), 정(鄭), 설(薛), 손(孫), 이(李), 배(裵)의 6씨(氏)를 내렸다. 즉, 고허촌 사량부에 최씨, 진지촌 본피부에 정씨, 명활촌 습비부에 설씨, 대수촌 점량부에 손씨, 양산촌 양부에 이씨, 가리촌 한지부에 배씨를 하사하였다.
이벌찬 등 17관등을 두었다. 가배놀이가 시작되었다.
서기36년에 낙랑이 침입하였다.
서기37년에 고구려가 낙랑을 멸망시켰다. 이에 낙랑 사람들 5,000명이 신라에 귀순하였다.
서기40년에 맥국(貊國)과 우호를 맺었다.
여기 맥국은 춘천(春川)이라고 추정하기도 하는데, 춘천은 우두산(牛頭山)이 있어 예국(濊國)과 관련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서기전2173년에 단군조선 두지주(豆只州) 예읍(濊邑)의 추장(酋長)이던 소시모리(素尸牟犁:소머리:牛首)가 반란을 일으키다 참수당하였는데 그 후손들의 나라를 우수국(牛首國)이라 하였는 바, 이 소시모리의 후손들이 백두산 동쪽의 예읍에서 서기전1000년경에 남하하여 춘천까지 진출하여 서기전900년경에 대일령(大日靈:天照大神)이 지금의 일본 본주(本州:혼슈)의 이세(伊勢) 땅으로 진출하였던 것이 되고, 서기전723년에 대일령의 후손인 언파불합(彦波弗哈)이 구주(九州:큐슈)의 난을 평정하여 협야후(陜野侯)에 봉해졌으며, 언파불합의 아들인 배반명(裵槃命)이 협야후로서 서기전667년에 마한(馬韓)의 명을 받아 전선 500척을 이끌고 가서 삼도(三島:九州,本州,北海島:일본 땅)의 난을 평정하였던 것이 된다.
서기42년에 김수로왕이 금관가야를 건국하였다.
서기46년에 석탈해가 가야를 공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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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프로필] 조홍근(曺洪根, 52세). 한문화재단(桓文化財團) 사무총장. 트위트-페이스북 역사당 부총재. 현 법무사.
30여년 동안 족보(族譜)와 한중일(韓中日) 역사를 연구해 오면서, 부도지(符都誌), 한단고기(桓檀古記), 규원사화(揆園史話), 단기고사(檀奇古史) 등 귀중한 역사자료를 통하여, 우리역사 1만년을 넘어 마고(麻姑) 시대를 포함한 7만2천390년 역사를 밝히고 있음.
1. 홍익인간(弘益人間) 천부(天符)의 역사는 마고성(麻姑城:파미르고원)의 마고(麻姑)시대인 서기전70378년 계해년(癸亥年)부터 시작되었음을 최초로 밝혔음.
2. 역법(曆法)이 시작된 해는 마고성(麻姑城)의 황궁씨(黃穹氏) 시대인 서기전25858년 계해년(癸亥年)임을 밝혔으며, 서기전70378년 계해년이 마고(麻姑) 기원(紀元:천부 天符)임을 밝혔음.
3. 황궁씨를 이은 나반(那般:那般尊者:獨聖者)이 한국(桓國)시대 한인씨(桓因氏) 이전의 임금이던 유인씨(有因氏)이며, 한인씨 7대(代)가 약1,000년을 다스렸다는 것임을 밝혔음.
4. 윷놀이판의 모습이 천부경(天符經)의 무한조화순환역(無限造化循環易), 음양오행(陰陽五行), 태양태음성력(太陽太陰星曆), 단군조선의 정치행정 구조를 나타낸 것임을 밝혔으며, 하도(河圖)와 낙서(洛書)가 배달나라 시대의 음양오행수리역(陰陽五行數理易)이며, 태호복희 8괘역과 윷놀이판의 역이 지구의 자전(自轉)과 공전(公轉)을 기반으로 한 역(易)임을 밝혔음.
5. 천제(天帝), 천황(天皇:天王), 천군(天君), 천공(天公), 천후(天侯), 천백(天伯), 천자(天子), 천남(天男)의 위계질서를 최초로 밝히고, 천제자(天帝子)와 천자(天子)의 차이점을 최초로 밝혔으며, 태호복희씨(太皞伏羲氏)가 일반 천자(天子)가 아니라 천지인(天地人) 삼신(三神)에게 제(祭)를 올리는 권한을 가진 제사장인 천군(天君)임을 밝혔음.
6. 아리랑(阿里嶺) 민요의 원천이 되는 최초의 역사적 사실이 서기전2333년 10월 3일 조선을 건국하기 이전에 있었던 당요(唐堯)의 전란(戰亂)으로 인한 단군왕검(檀君王儉)의 동북 아사달로의 이동과정임을 밝혔음.
7. 고대중국의 천자로 불리는 요순우(堯舜禹)와 고대일본의 신무왕(神武王)이 단군조선의 반역자(反逆者)이면서 제후인 천자(天子)임을 밝혔음.
8. 우비(禹碑:우 치수기념 부루공덕 비)의 비문을 국내 최초로 역사적 해석을 하여, 서기전2267년 이후 우(禹)가 치수에 성공한 후 치수법(治水法)을 전수해 준 단군조선 태자부루의 공덕을 새겨 남악(南嶽) 형산(衡山)에 세운 것임을 밝혔음.
9. 일본 국조신(國祖神)인 천조대신(天照大神)의 사당인 이세신궁(伊勢神宮)에 소장된 원시한글 축문을 국내 최초로 완벽 해독하고, 요하유로 기록된 천조대신이 단군조선 두지주(豆只州) 예읍(濊邑)의 추장(酋長)의 후손임을 밝혔음.
10. 명도전(明刀錢) 최초 해독학자 허대동선생<저서 고조선문자>의 가림토(加臨土) 해독의 검증에 참여하여 첨수도(尖首刀), 명도전이 단군조선의 화폐이며 새겨진 문자가 단군조선의 상형 및 표음 문자임을 밝혔음. 그 외 다수 ----------
2012년 05월 12일 (토) 06:55:40 | 천산(天山) sppopsj@yahoo.co.kr |
서기전209년에 소백손(蘇伯孫:蘇伯琳이라고도 함)이 단군조선 진한(眞韓)의 유민들을 이끌고 마한(한반도) 땅의 남동쪽으로 가 서라벌(徐羅伐:斯禮筏)에서 나라를 세워 진한(辰韓)이라 하였다.
서기전70년경에 북부여(北夫餘) 서보(西堡)의 방어장(防禦長) 즉 거서간(居西干)이던 박씨가 북부여 제실녀(帝室女)의 파소(婆蘇)와 혼인하였다.
서기전69년에 파소가 임신하고 있던 중 남편인 거서간 박씨는 한나라와의 전쟁에서 전사하였다. 이때 북부여는 한때 동명왕(東明王:서기전108년~서기전86년)이었던 고두막(高豆莫) 천왕 시절(서기전86년~서기전59년)이며, 태자는 고무서(高無胥)였는데, 고무서는 당시 딸이 셋이 있어 장녀는 파소(婆蘇), 둘째는 소서노(召西弩), 셋째는 불상이었는데, 파소는 남편을 잃자 북부여 제실에서 제자리를 찾지 못하게 되었다.
이에 파소는 북부여 제실(帝室)에서는 큰 뜻을 펼치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남하(南下)하기로 하여, 일행을 이끌고 동옥저(東沃沮)를 거쳐 배를 타고 진한(辰韓)의 나을촌(那乙村)에 도착하였다.
이해에 파소가 나을촌(那乙村)에서 박혁거세(朴赫居世)를 낳았다. 귀는 부채만큼 컸으며, 박(朴)을 성으로 삼았는데, 박(朴)은 곧 단(檀:박달)의 소리가 박달이기 때문에 박(밝)이라고 소리를 딴 것이다. 혁(赫)은 광명이니, 곧 광명으로써 세상을 구한다는 뜻이 된다. 진한의 6촌 사람들이 함께 양육하니 점차 자라면서 신기(神氣)가 빼어나게 밝고 대인(大人)의 법도가 있었다.
<신라 건국>
서기전57년에 박혁거세(朴赫居世)가 13세에 진한(辰韓) 6부(部)의 추대에 의하여 즉위하여 거서간(居西干)이 되었다. 국호를 사로국(斯盧國)이라 하고 수도를 서라벌(徐羅伐:경주)에 정하였다.
박혁거세는 천성은 신(神)과 같고 지혜는 성인(聖人)과도 같았다.
서기전53년 박혁거세 거서간이 17세에 현비(賢妃) 알영(閼英)을 맞이하니 사람들이 그들을 가리켜 이성(二聖)이라 하였다.
<남태백산 제천단(祭天壇:天祭壇)>
박혁거세 거서간이 남태백산(南太白山: 강원도 태백산)에 천부소도(天符小都)를 건설하였다. 중대(中臺)에 천부단(天符壇)을 축조하고 동서남북의 사대(四臺)에 보단(堡壇)을 설치하여 계불의식(禊祓儀式)을 행하고, 대인(大人)으로 하여금 금척(金尺)의 이치에 따라 천지시원의 근본을 증리(證理)하며, 옥관(玉管)의 음(音)을 내어 율려화생법(律呂化生法)을 수증(修證)하였다.
해마다 10월에 백의제(白衣祭)를 행하였는데, 이는 황궁씨(黃穹氏)의 속신백모(束身白茅)의 뜻을 따른 것이다.
달구(達丘)에 조시(朝市)를 베풀고 율포(栗浦)에 해시(海市)를 열어 육해 교역의 제도를 수립하였다.
서기전50년에 왜(倭)가 침입하였다.
서기전39년에 변한(弁韓)이 항복하였다.
서기전37년에 금성을 축조하였다. 고주몽이 고구려를 건국하였다.
서기전28년에 낙랑이 침범하였다.
서기전20년에 마한(馬韓)에 조공하였다.
서기전19년에 마한왕이 돌아가시니 조문하였다.
서기전18년에 온조가 백제를 건국하였다.
서기4년에 박혁거세거서간이 붕하였다.
2. 제2대 남해 차차웅(서기4년~서기24년)
서기4년에 낙랑(樂浪:최씨 낙랑)이 침입하였다.
서기8년에 석씨(昔氏) 탈해(脫解)를 사위로 삼았다. 석씨(昔氏)는 동보(東堡) 유배인의 후예로서 바닷가에 살던 사람이다.
서기9년에 마한이 백제에게 망하였다.
서기10년에 석탈해가 대보에 임명되었다.
서기14년에 왜(倭)가 침입하였다.
3. 제3대 유리 이사금(서기24년~서기57년)
서기28년에 쟁기와 보습을 사용하여 농사를 지었다.
서기32년에 6부에 최(崔), 정(鄭), 설(薛), 손(孫), 이(李), 배(裵)의 6씨(氏)를 내렸다. 즉, 고허촌 사량부에 최씨, 진지촌 본피부에 정씨, 명활촌 습비부에 설씨, 대수촌 점량부에 손씨, 양산촌 양부에 이씨, 가리촌 한지부에 배씨를 하사하였다.
이벌찬 등 17관등을 두었다. 가배놀이가 시작되었다.
서기36년에 낙랑이 침입하였다.
서기37년에 고구려가 낙랑을 멸망시켰다. 이에 낙랑 사람들 5,000명이 신라에 귀순하였다.
서기40년에 맥국(貊國)과 우호를 맺었다.
여기 맥국은 춘천(春川)이라고 추정하기도 하는데, 춘천은 우두산(牛頭山)이 있어 예국(濊國)과 관련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서기전2173년에 단군조선 두지주(豆只州) 예읍(濊邑)의 추장(酋長)이던 소시모리(素尸牟犁:소머리:牛首)가 반란을 일으키다 참수당하였는데 그 후손들의 나라를 우수국(牛首國)이라 하였는 바, 이 소시모리의 후손들이 백두산 동쪽의 예읍에서 서기전1000년경에 남하하여 춘천까지 진출하여 서기전900년경에 대일령(大日靈:天照大神)이 지금의 일본 본주(本州:혼슈)의 이세(伊勢) 땅으로 진출하였던 것이 되고, 서기전723년에 대일령의 후손인 언파불합(彦波弗哈)이 구주(九州:큐슈)의 난을 평정하여 협야후(陜野侯)에 봉해졌으며, 언파불합의 아들인 배반명(裵槃命)이 협야후로서 서기전667년에 마한(馬韓)의 명을 받아 전선 500척을 이끌고 가서 삼도(三島:九州,本州,北海島:일본 땅)의 난을 평정하였던 것이 된다.
서기42년에 김수로왕이 금관가야를 건국하였다.
서기46년에 석탈해가 가야를 공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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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프로필] 조홍근(曺洪根, 52세). 한문화재단(桓文化財團) 사무총장. 트위트-페이스북 역사당 부총재. 현 법무사.
1. 홍익인간(弘益人間) 천부(天符)의 역사는 마고성(麻姑城:파미르고원)의 마고(麻姑)시대인 서기전70378년 계해년(癸亥年)부터 시작되었음을 최초로 밝혔음.
2. 역법(曆法)이 시작된 해는 마고성(麻姑城)의 황궁씨(黃穹氏) 시대인 서기전25858년 계해년(癸亥年)임을 밝혔으며, 서기전70378년 계해년이 마고(麻姑) 기원(紀元:천부 天符)임을 밝혔음.
3. 황궁씨를 이은 나반(那般:那般尊者:獨聖者)이 한국(桓國)시대 한인씨(桓因氏) 이전의 임금이던 유인씨(有因氏)이며, 한인씨 7대(代)가 약1,000년을 다스렸다는 것임을 밝혔음.
4. 윷놀이판의 모습이 천부경(天符經)의 무한조화순환역(無限造化循環易), 음양오행(陰陽五行), 태양태음성력(太陽太陰星曆), 단군조선의 정치행정 구조를 나타낸 것임을 밝혔으며, 하도(河圖)와 낙서(洛書)가 배달나라 시대의 음양오행수리역(陰陽五行數理易)이며, 태호복희 8괘역과 윷놀이판의 역이 지구의 자전(自轉)과 공전(公轉)을 기반으로 한 역(易)임을 밝혔음.
5. 천제(天帝), 천황(天皇:天王), 천군(天君), 천공(天公), 천후(天侯), 천백(天伯), 천자(天子), 천남(天男)의 위계질서를 최초로 밝히고, 천제자(天帝子)와 천자(天子)의 차이점을 최초로 밝혔으며, 태호복희씨(太皞伏羲氏)가 일반 천자(天子)가 아니라 천지인(天地人) 삼신(三神)에게 제(祭)를 올리는 권한을 가진 제사장인 천군(天君)임을 밝혔음.
6. 아리랑(阿里嶺) 민요의 원천이 되는 최초의 역사적 사실이 서기전2333년 10월 3일 조선을 건국하기 이전에 있었던 당요(唐堯)의 전란(戰亂)으로 인한 단군왕검(檀君王儉)의 동북 아사달로의 이동과정임을 밝혔음.
7. 고대중국의 천자로 불리는 요순우(堯舜禹)와 고대일본의 신무왕(神武王)이 단군조선의 반역자(反逆者)이면서 제후인 천자(天子)임을 밝혔음.
8. 우비(禹碑:우 치수기념 부루공덕 비)의 비문을 국내 최초로 역사적 해석을 하여, 서기전2267년 이후 우(禹)가 치수에 성공한 후 치수법(治水法)을 전수해 준 단군조선 태자부루의 공덕을 새겨 남악(南嶽) 형산(衡山)에 세운 것임을 밝혔음.
9. 일본 국조신(國祖神)인 천조대신(天照大神)의 사당인 이세신궁(伊勢神宮)에 소장된 원시한글 축문을 국내 최초로 완벽 해독하고, 요하유로 기록된 천조대신이 단군조선 두지주(豆只州) 예읍(濊邑)의 추장(酋長)의 후손임을 밝혔음.
10. 명도전(明刀錢) 최초 해독학자 허대동선생<저서 고조선문자>의 가림토(加臨土) 해독의 검증에 참여하여 첨수도(尖首刀), 명도전이 단군조선의 화폐이며 새겨진 문자가 단군조선의 상형 및 표음 문자임을 밝혔음. 그 외 다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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