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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인간 322] 사국(四國) 시대 백제(百濟) 연대기 4

양해천 2018. 1. 23. 12:58

[홍익인간 322] 사국(四國) 시대 백제(百濟) 연대기 4

2012년 05월 20일 (일) 07:07:13천산(天山)  sppopsj@yahoo.co.kr

17. 제17대 아신왕(서기392년~서기405년) 

침류왕의 태자가 즉위하였다. 

서기393년에 동명묘를 배알하였다. 

서기393년에 아신왕은 진무를 좌장군으로 삼아 군사 1만으로 관미성을 공격하게 하였으나 수복하지 못하고 돌아왔다. 

서기394년에 고구려와 수곡성에서 싸워 패하였다. 

서기395년에 고구려를 침공하였으나, 패수에서 패하여 군사 8,000명을 잃었다. 

서기396년에 고구려에게 58개성을 함락당하고 왕제를 볼모로 보냈다. 

서기397년에 왜(倭)에 구원병을 요청하기 위하여 태자 전지(琠支)를 볼모로 보냈다. 

서기403년에 왜의 사신이 왔다. 

둘째 왕자 훈해가 임시로 정사를 보면서 사람을 보내어 태자를 데리고 오게 하였다. 이때 셋째 혈례가 둘째 훈해를 암살하고 스스로 왕이라 칭했다. 혈례의 계략을 알아챈 해충이 급히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 태자 일행에 알렸고, 해충은 다시 한성으로 가서 사람들을 모았다. 

혈례가 크게 잔치를 벌이자 해충이 군사를 모아 궁궐을 급습하여 혈례를 죽였다. 

18. 제18대왕 전지왕(直支,餘映:서기405년~서기429년) 

아신왕의 태자로서 즉위하였다. 

서기405년에 일본에 한학을 전하였다. 

서기406년에 동명묘를 배알하였다. 

19. 제19대 구이신왕(서기420년~서기427년) 

전지왕의 태자로서 즉위하였다. 

20. 제20대 비유왕(餘毗:서기427년~서기455년) 

구이신왕의 아들로서 즉위하였다. 또는 전지왕의 서자라고도 한다. 

<나제동맹> 
서기433년에 나제동맹을 체결하였다. 

송(宋)나라와 친교하였다. 

21. 제21대 개로왕(慶:서기455년~서기475년) 

비유왕의 태자 경사가 즉위하였다. 

서기469년에 고구려의 남부지역을 공격하였으며, 쌍현성을 수리하고 청목령에 목책을 쌓았다. 

서기472년에 북위(北魏)에 사신을 보내어 고구려의 남침에 대한 도움을 요청하였으나 거절하여 조공을 단절하였다. 

고구려 장수제와 승려 도림의 계략으로 백제로 온 도림의 권유에 개로왕이 강제로 성을 쌓고 새로운 궁궐을 지으며 세금을 거두어 백성들을 혹사하였는데, 재증걸루와 고이만년이 말렸으나 듣지 않아 고구려로 도망하였고, 개로왕이 향락에 빠졌는데, 도림이 도망쳐 고구려로 돌아갔다. 

<한성 함락, 개로왕 전사> 
서기475년에 고구려의 장수왕이 이끄는 3만의 군사가 한성을 침공하여 화공을 하였다. 이에 왕자 문주가 신라로 구원을 청하러 갔다. 고구려군이 성안으로 밀려들자 개로왕은 서쪽을 도망쳤는데, 이때 재증걸루와 고이만년이 기다렸다가 개로왕을 아차산성 밑으로 데려가 살해하였다. 뒤늦게 문주가 신라에서 원병 1만여명을 이끌고 왔으나 때는 이미 늦었다. 

22. 제22대 문주왕(牟都:서기475년~서기477년) 

개로왕의 아들 문주가 즉위하였다. 

<웅진 천도> 
서기475년 10월에 수도를 웅진(熊津:공주:곰나루)으로 옮겼다. 

서기476년에 탐라국(제주도)이 조공을 바쳤다. 

서기477년에 아우 곤지를 내신좌평으로 삼고, 장자 삼근을 태자로 봉했다. 곤지가 죽자 해구가 권력을 잡고 사냥나간 문주왕을 살해하였다. 

23. 제23대 삼근왕(서기477년~서기479년) 

문주왕의 태자 삼근이 13세로 즉위하였다. 

<해구의 반란> 
서기478년에 병관좌평 해구가 은솔 연신과 함께 대두성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이에 좌평 진남이 군사 2천으로 대두성을 공격하였으나 반란군에게 패하였다. 다시 덕솔 진로가 군사 5백으로 가서 해구를 죽였다. 삼근왕은 은솔 연신이 고구려로 도망하자 그 처자를 참수하였다. 

24. 제24대 동성왕(牟太:牟大:서기479년~서기501년) 

문주왕의 아우 곤지의 아들 모대가 즉위하였다. 

서기481년에 고구려 장수제가 말갈과 함께 신라를 침공하여 7개성을 빼앗자 신라의 소지왕이 백제에 사신을 보내왔으며, 백제의 구원병으로 고구려군을 물리쳤다. 

서기482년에 말갈이 침입하였다. 

서기486년에 궁궐을 수리하였다. 

서기488년에 북위의 군사를 격퇴하였다. 

서기490년에 사현성과 이산성을 쌓았다. 

서기493년 봄에 동성왕이 사신을 신라에 보내어 혼인동맹을 맺고, 신라 소지왕이 보낸 이찬 비지의 딸과 혼인하였다. 

서기498년에 웅진교를 가설하고 사정성을 축조하였다. 탐라가 조공하지 않아 동성왕이 몸소 군사를 이끌고 무진주(광주)에 이르자, 탐라왕이 사신을 보내와 항복하였다. 송(宋)나라와 통교하였다. 

서기499년에 기근이 발생하여 고구려에 도망한 자가 2,000명이나 되었다. 

서기500년 봄에 궁궐 동쪽에 임류각을 세우고 연못을 만들어 기이한 새들을 길렀다. 여름에 다시 가뭄이 들었으나 동성왕은 임류각에서 향락하였다. 

<백가의 반란> 
서기501년 1월부터 나라 곳곳에서 괴변이 일어났다. 11월에 위사 좌평 백가가 자객을 보내어 동성왕을 시해하였다. 이어 백가가 가림성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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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프로필] 조홍근(曺洪根, 52세). 한문화재단(桓文化財團) 사무총장. 트위트-페이스북 역사당 부총재. 현 법무사. 

30여년 동안 족보(族譜)와 한중일(韓中日) 역사를 연구해 오면서, 부도지(符都誌), 한단고기(桓檀古記), 규원사화(揆園史話), 단기고사(檀奇古史) 등 귀중한 역사자료를 통하여, 우리역사 1만년을 넘어 마고(麻姑) 시대를 포함한 7만2천390년 역사를 밝히고 있음. 

1. 홍익인간(弘益人間) 천부(天符)의 역사는 마고성(麻姑城:파미르고원)의 마고(麻姑)시대인 서기전70378년 계해년(癸亥年)부터 시작되었음을 최초로 밝혔음. 
2. 역법(曆法)이 시작된 해는 마고성(麻姑城)의 황궁씨(黃穹氏) 시대인 서기전25858년 계해년(癸亥年)임을 밝혔으며, 서기전70378년 계해년이 마고(麻姑) 기원(紀元:천부 天符)임을 밝혔음. 
3. 황궁씨를 이은 나반(那般:那般尊者:獨聖者)이 한국(桓國)시대 한인씨(桓因氏) 이전의 임금이던 유인씨(有因氏)이며, 한인씨 7대(代)가 약1,000년을 다스렸다는 것임을 밝혔음. 
4. 윷놀이판의 모습이 천부경(天符經)의 무한조화순환역(無限造化循環易), 음양오행(陰陽五行), 태양태음성력(太陽太陰星曆), 단군조선의 정치행정 구조를 나타낸 것임을 밝혔으며, 하도(河圖)와 낙서(洛書)가 배달나라 시대의 음양오행수리역(陰陽五行數理易)이며, 태호복희 8괘역과 윷놀이판의 역이 지구의 자전(自轉)과 공전(公轉)을 기반으로 한 역(易)임을 밝혔음. 
5. 천제(天帝), 천황(天皇:天王), 천군(天君), 천공(天公), 천후(天侯), 천백(天伯), 천자(天子), 천남(天男)의 위계질서를 최초로 밝히고, 천제자(天帝子)와 천자(天子)의 차이점을 최초로 밝혔으며, 태호복희씨(太皞伏羲氏)가 일반 천자(天子)가 아니라 천지인(天地人) 삼신(三神)에게 제(祭)를 올리는 권한을 가진 제사장인 천군(天君)임을 밝혔음. 
6. 아리랑(阿里嶺) 민요의 원천이 되는 최초의 역사적 사실이 서기전2333년 10월 3일 조선을 건국하기 이전에 있었던 당요(唐堯)의 전란(戰亂)으로 인한 단군왕검(檀君王儉)의 동북 아사달로의 이동과정임을 밝혔음. 
7. 고대중국의 천자로 불리는 요순우(堯舜禹)와 고대일본의 신무왕(神武王)이 단군조선의 반역자(反逆者)이면서 제후인 천자(天子)임을 밝혔음. 
8. 우비(禹碑:우 치수기념 부루공덕 비)의 비문을 국내 최초로 역사적 해석을 하여, 서기전2267년 이후 우(禹)가 치수에 성공한 후 치수법(治水法)을 전수해 준 단군조선 태자부루의 공덕을 새겨 남악(南嶽) 형산(衡山)에 세운 것임을 밝혔음. 
9. 일본 국조신(國祖神)인 천조대신(天照大神)의 사당인 이세신궁(伊勢神宮)에 소장된 원시한글 축문을 국내 최초로 완벽 해독하고, 요하유로 기록된 천조대신이 단군조선 두지주(豆只州) 예읍(濊邑)의 추장(酋長)의 후손임을 밝혔음. 
10. 명도전(明刀錢) 최초 해독학자 허대동선생<저서 고조선문자>의 가림토(加臨土) 해독의 검증에 참여하여 첨수도(尖首刀), 명도전이 단군조선의 화폐이며 새겨진 문자가 단군조선의 상형 및 표음 문자임을 밝혔음. 그 외 다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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