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익인간 323] 사국(四國) 시대 백제(百濟) 연대기 5
2012년 05월 21일 (월) 07:23:53 | 천산(天山) sppopsj@yahoo.co.kr |
25. 제25대 무령왕(隆:501~523)
동성왕의 둘째 아들 사마가 즉위하였다. 또는 동성왕의 이복형이라고도 한다.
서기501년에 무령왕이 군사를 거느리고 우두성에 이르자 한솔 해명이 군사를 받아 가림성으로 진격하여 반군을 치니 백가가 성문을 열고 나와 항복하고 참수되었다.
서기502년에 무령왕이 군사를 이끌고 고구려의 남쪽 변경을 침공하였다.
서기507년에 고구려는 말갈과 손잡고 한성으로 침공하기 위하여 황악산 아래 진주했는데, 무령왕이 즉시 군사를 출동시켜 물리쳤다.
양(梁)나라와 통교하였다.
서기512년에 고구려군은 백제의 가불성과 원산성을 기습하여 빼앗고 재물을 약탈하고 백성들을 마구 죽이고 포로 8,000여명을 잡아갔다. 이에 무령왕은 기병 3천을 이끌고 위천 북쪽으로 달려가 무찔렀다.
서기523년에 백제가 한성으로 행차하여 쌍현성(雙峴城)을 축성하였다.
22담로를 설치하였다.
오경박사 단양이와 고안무를 왜(倭)에 파견하였다.
서기523년 5월에 무령왕이 붕하였다. 시호를 무령이라 하였다.
26. 제26대 성왕(明:523~554)
무령왕의 태자 명논이 즉위하였다.
서기525년에 무령왕릉을 축조하였다.
서기526년에 겸익을 인도에 파견하였다. 겸익은 돌아와 율부 72권을 번역하고 율종을 창시하였다.
서기538년에 사비(부여)로 천도하였다. 국호를 남부여(南夫餘)라 하였다. 왜에 불교를 전파하였다.
남부여는 남쪽의 부여라는 의미이다. 백제의 뿌리는 원래 고구려 이전의 졸본(卒本:忽本)에서의 (북)부여이다. 한편, 신라도 (북)부여에 연고를 둔 나라가 되는데 서라벌에서 출발한 나라로서 서라벌은 곧 설벌이며 설부여가 되고 동명왕 고두막한의 동명(東明:새밝:새벌:새부여)과 같은 새부여라는 말인데 이를 이두식으로 표기하면 동부여(東夫餘)로 적을 수도 있다. 고구려는 물론 북부여에서 출발한 나라이다.
양나라와 통교하였다. 한강을 회복하였다. 22부의 중앙관제를 설치하였다. 중앙 5부 지방5부로 행정조직을 정비하였다.
서기550년 1월에 백제군이 고구려의 도살성을 함락시켰다. 3월에 고구려군이 백제의 금현성을 빼앗았다. 이에 신라의 진흥왕이 이찬 이사부를 시켜 도살성과 금현성을 빼앗았다.
서기551년에 백제는 신라와 고구려를 합공하여 한강 하류의 6군을 빼앗았다. 그러나, 서기553년에 신라가 이를 차지하여 버렸다.
서기552년에 노리사치계가 왜에 불교를 전하였다.
서기553년에 신라에게 한강 유역의 6군을 빼앗겼다.
혜총이 왜의 성덕(쇼토쿠)태자의 스승이 되었다.
<성왕 전사>
서기554년 7월에 대가야와 손잡고 신라의 관산성(옥천)을 공격하였다가, 구천에 매복하였던 신라의 복병에 걸려 신라의 비장인 고간, 도도의 급습에 백제 성왕이 전사하였다. 이때 백제 좌평 4명과 군사29,600명이 죽고 말 한필도 살아 돌아오지 못하였다. 이에 나제동맹이 결렬되었다.
27. 제27대 위덕왕(昌:554~598)
성왕의 태자 창이 즉위하였다.
혜총이 일본에 계율종을 전파하였다.
아좌태자가 왜의 성덕(쇼토쿠)태자의 초상화를 그렸다.
서기556년에 일본에 가 있던 혜 왕자가 귀국하였다.
서기588년에 백제 기술자들이 일본의 나라 지방에 비조사를 창건하였다.
서기598년에 고구려가 수나라의 요서를 침공하자, 수나라 문제가 30만 대군으로 고구려를 침공하였으나 전멸 당하였다. 이후 백제는 수나라로 하여금 고구려를 치도록 부추겼다. 뒤에 이 사실을 안 고구려가 백제 변경을 자주 침범하였다.
28. 제28대 혜왕(598~599)
성왕의 둘째 아들이자 위덕왕의 아우인 계가 즉위하였다.
29. 제29대 법왕(宣:599~600)
혜왕의 태자 선(효순)이 즉위하였다.
서기600년에 왕흥사를 창건하고 승려 30명을 두었다.
30. 제30대 무왕(璋:600~641)
위덕왕의 서자인 장(서동)이 즉위하였다.
지명법사가 익산의 산을 헐어 연못을 메우고 미륵사를 지었다. 이때 신라의 진평왕이 수많은 장인을 보내어 도왔다. 진평왕이 미륵사 창건을 도왔다는 사실은 무왕의 첫 왕비가 진평왕의 딸인 선화공주라는 방증이 될 수 있다.
관륵, 동장이 천문, 지리, 역법, 둔갑술 등을 왜에 전해 주었다.
미륵사탑을 완성하였다.
왕흥사를 건립하였다.
서기602년에 백제 무왕이 군사를 보내어 신라의 아막산성을 공격하니, 신라의 진평왕이 기병 수천을 보내므로 그냥 돌아왔다.
좌평 해수에게 군사 4만을 주어 신라의 4성을 치게 하였으나 패하여 돌아왔다.
서기607년에 백제가 한솔 연문진을 수나라에 보내어 조공하게 하고, 다시 좌평 왕효린을 보내어 고구려를 치면 남쪽에서 고구려를 치겠다고 부추겼다.
서기612년에 수나라 양제가 113만 대군으로 고구려를 공격하였으나, 백제는 고구려를 공격하지 않았으며, 이때 수나라는 대패하였다. 결과적은 수나라는 고구려의 전력과 백제의 부추김에 망한 것이 된다.
서기618년에 수나라 양제가 암살당하고 당나라가 세워졌다.
서기627년에 신라의 진평왕이 당나라에 조공하여 백제의 침공을 말려달라 하였는데, 백제무왕이 조카 복신이 당나라에 사신으로 가니 당나라가 신라를 침공하지 말라 하였다. 이후 백제는 신라를 쳐서 서곡성을 빼앗았다.
서기636년에 사비하 북쪽에서 큰 잔치를 베풀었다. 이를 대왕포라 한다.
서기636년에 우소를 신라의 옥문곡(玉門谷)에 몰래 침투시켰으나, 우소가 사로잡혔다.
서기640년에 왕자들을 당나라 국학에 입학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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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프로필] 조홍근(曺洪根, 52세). 한문화재단(桓文化財團) 사무총장. 트위트-페이스북 역사당 부총재. 현 법무사.
30여년 동안 족보(族譜)와 한중일(韓中日) 역사를 연구해 오면서, 부도지(符都誌), 한단고기(桓檀古記), 규원사화(揆園史話), 단기고사(檀奇古史) 등 귀중한 역사자료를 통하여, 우리역사 1만년을 넘어 마고(麻姑) 시대를 포함한 7만2천390년 역사를 밝히고 있음.
1. 홍익인간(弘益人間) 천부(天符)의 역사는 마고성(麻姑城:파미르고원)의 마고(麻姑)시대인 서기전70378년 계해년(癸亥年)부터 시작되었음을 최초로 밝혔음.
2. 역법(曆法)이 시작된 해는 마고성(麻姑城)의 황궁씨(黃穹氏) 시대인 서기전25858년 계해년(癸亥年)임을 밝혔으며, 서기전70378년 계해년이 마고(麻姑) 기원(紀元:천부 天符)임을 밝혔음.
3. 황궁씨를 이은 나반(那般:那般尊者:獨聖者)이 한국(桓國)시대 한인씨(桓因氏) 이전의 임금이던 유인씨(有因氏)이며, 한인씨 7대(代)가 약1,000년을 다스렸다는 것임을 밝혔음.
4. 윷놀이판의 모습이 천부경(天符經)의 무한조화순환역(無限造化循環易), 음양오행(陰陽五行), 태양태음성력(太陽太陰星曆), 단군조선의 정치행정 구조를 나타낸 것임을 밝혔으며, 하도(河圖)와 낙서(洛書)가 배달나라 시대의 음양오행수리역(陰陽五行數理易)이며, 태호복희 8괘역과 윷놀이판의 역이 지구의 자전(自轉)과 공전(公轉)을 기반으로 한 역(易)임을 밝혔음.
5. 천제(天帝), 천황(天皇:天王), 천군(天君), 천공(天公), 천후(天侯), 천백(天伯), 천자(天子), 천남(天男)의 위계질서를 최초로 밝히고, 천제자(天帝子)와 천자(天子)의 차이점을 최초로 밝혔으며, 태호복희씨(太皞伏羲氏)가 일반 천자(天子)가 아니라 천지인(天地人) 삼신(三神)에게 제(祭)를 올리는 권한을 가진 제사장인 천군(天君)임을 밝혔음.
6. 아리랑(阿里嶺) 민요의 원천이 되는 최초의 역사적 사실이 서기전2333년 10월 3일 조선을 건국하기 이전에 있었던 당요(唐堯)의 전란(戰亂)으로 인한 단군왕검(檀君王儉)의 동북 아사달로의 이동과정임을 밝혔음.
7. 고대중국의 천자로 불리는 요순우(堯舜禹)와 고대일본의 신무왕(神武王)이 단군조선의 반역자(反逆者)이면서 제후인 천자(天子)임을 밝혔음.
8. 우비(禹碑:우 치수기념 부루공덕 비)의 비문을 국내 최초로 역사적 해석을 하여, 서기전2267년 이후 우(禹)가 치수에 성공한 후 치수법(治水法)을 전수해 준 단군조선 태자부루의 공덕을 새겨 남악(南嶽) 형산(衡山)에 세운 것임을 밝혔음.
9. 일본 국조신(國祖神)인 천조대신(天照大神)의 사당인 이세신궁(伊勢神宮)에 소장된 원시한글 축문을 국내 최초로 완벽 해독하고, 요하유로 기록된 천조대신이 단군조선 두지주(豆只州) 예읍(濊邑)의 추장(酋長)의 후손임을 밝혔음.
10. 명도전(明刀錢) 최초 해독학자 허대동선생<저서 고조선문자>의 가림토(加臨土) 해독의 검증에 참여하여 첨수도(尖首刀), 명도전이 단군조선의 화폐이며 새겨진 문자가 단군조선의 상형 및 표음 문자임을 밝혔음. 그 외 다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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