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뿌리를 찾아서)/홍익인간 7만년 역사

[홍익인간 346] 고려(高麗) 연대기 8

양해천 2018. 1. 23. 13:18

[홍익인간 346] 고려(高麗) 연대기 8

2012년 06월 10일 (일) 07:32:36천산(天山)  sppopsj@yahoo.co.kr

<금나라가 고려 조위총의 내부를 거부하다> 
서기1179년, 금(金)나라 세종(世宗)의 대정(大定) 15년 9월에, 고려의 서경유수(西京留守) 조위총(趙位寵)이 서언(徐彦) 등을 파견하여 표문을 올려 자비령(慈悲嶺) 이서(以西)와 압록강 이동을 가지고 내부코자 하였으나,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金史> 

서기1179년 9월에 허승이 정균을 죽이고 신호를 보내자 경대승이 군사를 이끌고 궁으로 들어가 궁중 수비를 모두 죽이고 명종을 안심시키고는, 달아나던 정중부를 붙잡아 죽였다. 이후 불량배들을 몰고 다니며 행패를 부리던 허승과 김광립을 처단하였다. 이에 왕과 문신들이 경대승을 지지하였는데, 무신들은 불만이 많았다. 

<도방정치> 
서기1179년에 경대승이 도방정치를 실시하였다. 

<전주민란> 
서기1182년에 전주 관노의 난이 일어났다. 

서기1183년에 경대승은 날랜 군사 100여명을 뽑아 신변을 지키게 하였으나 30세의 젊은 나이로 사망하였다. 

이때 명종은 이의민이 경주에서 난을 일으킬까 두려워 이의민을 불러 올렸다. 그러나, 이의민은 한동안 겁먹고 응하지 않다가 명종이 이의민에게 병부상서의 벼슬을 주며 여러 차례 부르자 이에 응하여 정권이 이의민에게 넘어갔다. 

<김사미의 난> 
서기1193년에 김사미의 난이 일어났다. 

<동명왕편> 
서기1193년에 이규보가 23세에 동명왕편(東明王篇)을 지었다. 

<금판 팔만대장경 제작> 
서기1193년부터 국태민안을 위하여 국왕의 명으로 개경(開京)의 안화사(安和寺)에서 금판 팔만대장경을 만들기 시작하였다(~서기1239년). 

이의민은 정권을 잡자마자 온갖 부정부패를 저질렀다. 이의민의 아들 이지영의 하인이 최충헌의 동생 최충수의 집비둘기를 훔치자 최충수가 이지영을 찾아가 따지다가 볼기를 맞고 이틀간 갇히는 모욕을 당하였다. 

이에 최충수는 형 최충헌을 찾아가 하소연하고 모의하였다. 

<최충헌 집권> 
서기1196년에 최충헌 형제가 거사를 단행하여 부하를 데리고 마타산으로 가서 이의민과 그 부하들을 모두 죽이고 장군 백존유를 찾아가 군사를 요청하였으며, 이때 이의민의 아들 이지순과 이지광이 부하들을 이끌고 최충헌의 집으로 쳐들어갔으나, 대비하고 있던 최충헌 형제와 백존유의 군사들에게 전멸하였다. 이에 최충헌은 궁궐로 들어가 명종에게 보고하고, 숨어있던 이지영을 장군 한휴가 찾아내어 죽이는 등 남은 이의민의 심복들을 모두 처치하고 무신(武臣) 최충헌이 집권하였다. 

서기1197년에 최충헌에 의하여 명종이 폐위되고 아우 평량공이 54세의 나이로 즉위하였다. 

20. 제20대 신종(神宗:서기1197년~서기1204년) 

명종의 아우 평량공이 최충헌에 의하여 즉위하였다. 

최충수는 신종에게 태자비를 쫓아내고 자신의 딸과 혼인시키게 하였다. 이를 들은 최충헌이 말렸으나 듣지 않았고, 어머니도 말렸으나 듣지 않고서 어머니를 밀어버리는 등 불효를 저질렀다. 이에 최충헌이 최충수를 공격하였는데 최충수는 달아나다 파주에서 붙잡혀 살해되었다. 

<만적의 난> 
서기1198년 5월에 최충헌의 종 만적이 미조이, 연복, 성복, 소삼, 효삼 등과 함께 개경의 북산에서 나무를 하다가 모의하였다. 거사일에 흥국사 앞에 나타난 노비가 몇 백명 밖에 되지 않아 거사일을 연기하였는데, 율학박사 한충유의 종 순정이 비밀을 털어놓았고, 한충유는 이를 최충헌에게 알려 만란을 모의한 노비들은 모두 잡혀와 강에서 죽음을 당하였다. 이때 순정은 양민이 되었고 한충유는 승진하였다. 

서기1199년에 명주(강릉), 동경(경주), 진주 등지에서 민란이 계속 일어났으며, 이에 최충헌은 즉시 군사를 보내어 진압하였다. 이후 최충헌은 수백명의 호위병을 데리고 다녔다. 

서기1200년에 최충헌이 도방을 설치하였다. 

서기1204년에 신종이 폐위되어 죽고 태자 영이 24세의 나이로 즉위하였다. 

21. 제21대 희종(熙宗:서기1204년~서기1212년) 

신종의 태자 영이 24세로 즉위하였다. 

서기1204년에 장군 이광실이 최충헌 부자를 죽이려고 하였으나 사전에 발각되어 실패하였다. 

서기1206년에 테무친이 몽고족을 통일하여 징기스칸으로 추대되어 즉위하였다. 이때 여진족의 금나라는 징기스칸의 공격을 받아 급속히 세력이 약해졌고, 거란은 이틈을 타서 대요수국이라는 나라를 세웠는데, 몽고족의 공격으로 요동에서 쫓기어 압록강 쪽으로 몰려 들어왔다. 

<교정도감> 
서기1209년에 청교역리 3명이 최충헌 부자를 죽이기 위해 모의하였다가 사전에 발각되어 실패하였다. 이때 최충헌은 범인을 잡는다며 교정도감을 설치하여 나중에는 인사, 감찰, 징세 등 모든 나라 일을 이곳에서 처리하였다. 이후 교정도감은 최씨정권의 최고기관이 되었다. 

서기1211년에 내시 왕준명이 우승경, 홍적, 왕익 등과 함께 희종의 허락을 받아 최충헌을 제거하겠다 하였다. 

서기1211년 12월에 최충헌이 궁에 들어오자 희종은 피하고, 내시들이 최충헌의 부하들을 궁궐로 깊이 유인하여 대기하던 무사와 승려들은 이들을 죽였다. 이때 최충헌이 눈치를 채고 지주사(정3품)의 방다락에 숨었다가 화를 면하였다. 잠시후 김약진 등이 들어와 최충헌을 구하였고, 이어 교정도감의 군사들이 들어와 무사들과 승려들은 체포되었고 희종은 강제 폐위 되어 강화도로 귀양갔다. 

60세가 된 명종의 태자 한남공을 강화도에서 모셔와 즉위시켰다. 

22. 제22대 강종(康宗:서기1212년~서기1213년) 

명종의 태자 한남공이 강화도에서 돌아와 60세로 즉위하였다. 

강종은 재위 1년 8개월만에 병들어 붕하였고 태자 철이 22세 나이로 즉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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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프로필] 조홍근(曺洪根, 52세). 한문화재단(桓文化財團) 사무총장. 트위트-페이스북 역사당 부총재. 현 법무사. 

30여년 동안 족보(族譜)와 한중일(韓中日) 역사를 연구해 오면서, 부도지(符都誌), 한단고기(桓檀古記), 규원사화(揆園史話), 단기고사(檀奇古史) 등 귀중한 역사자료를 통하여, 우리역사 1만년을 넘어 마고(麻姑) 시대를 포함한 7만2천390년 역사를 밝히고 있음. 

1. 홍익인간(弘益人間) 천부(天符)의 역사는 마고성(麻姑城:파미르고원)의 마고(麻姑)시대인 서기전70378년 계해년(癸亥年)부터 시작되었음을 최초로 밝혔음. 

2. 역법(曆法)이 시작된 해는 마고성(麻姑城)의 황궁씨(黃穹氏) 시대인 서기전25858년 계해년(癸亥年)임을 밝혔으며, 서기전70378년 계해년이 마고(麻姑) 기원(紀元:천부 天符)임을 밝혔음. 

3. 황궁씨를 이은 나반(那般:那般尊者:獨聖者)이 한국(桓國)시대 한인씨(桓因氏) 이전의 임금이던 유인씨(有因氏)이며, 한인씨 7대(代)가 약1,000년을 다스렸다는 것임을 밝혔음. 

4. 윷놀이판의 모습이 천부경(天符經)의 무한조화순환역(無限造化循環易), 음양오행(陰陽五行), 태양태음성력(太陽太陰星曆), 단군조선의 정치행정 구조를 나타낸 것임을 밝혔으며, 하도(河圖)와 낙서(洛書)가 배달나라 시대의 음양오행수리역(陰陽五行數理易)이며, 태호복희 8괘역과 윷놀이판의 역이 지구의 자전(自轉)과 공전(公轉)을 기반으로 한 역(易)임을 밝혔음. 

5. 천제(天帝), 천황(天皇:天王), 천군(天君), 천공(天公), 천후(天侯), 천백(天伯), 천자(天子), 천남(天男)의 위계질서를 최초로 밝히고, 천제자(天帝子)와 천자(天子)의 차이점을 최초로 밝혔으며, 태호복희씨(太皞伏羲氏)가 일반 천자(天子)가 아니라 천지인(天地人) 삼신(三神)에게 제(祭)를 올리는 권한을 가진 제사장인 천군(天君)임을 밝혔음. 

6. 아리랑(阿里嶺) 민요의 원천이 되는 최초의 역사적 사실이 서기전2333년 10월 3일 조선을 건국하기 이전에 있었던 당요(唐堯)의 전란(戰亂)으로 인하여 단군왕검(檀君王儉)께서 동북의 아사달로 이동한 과정임을 밝혔음. 

7. 고대중국의 천자로 불리는 요순우(堯舜禹)와 고대일본의 신무왕(神武王)이 단군조선으로부터 독립을 시도한 반역자(反逆者)이면서 제후인 천자(天子)임을 밝혔음. 

8. 우비(禹碑:우 치수기념 부루공덕 비)의 비문을 국내 최초로 역사적 해석을 하였으며, 우비는 서기전2267년 이후 우(禹)가 치수에 성공한 후 치수법(治水法)을 전수해 준 단군조선 태자부루의 공덕을 새겨 남악(南嶽) 형산(衡山)에 세운 것임을 밝혔음. 

9. 일본 국조신(國祖神)인 천조대신(天照大神)의 사당인 이세신궁(伊勢神宮)에 소장된 원시한글 축문을 국내 최초로 완벽 해독하고, 요하유로 기록된 천조대신이 단군조선 두지주(豆只州) 예읍(濊邑)의 추장(酋長)의 후손임을 밝혔음. 

10. 명도전(明刀錢) 등에 새겨진 문자를 단군조선 문자로서 최초로 해독한 학자 허대동 선생<저서 고조선문자>의 가림토(加臨土)의 연구에 검증차 참여하여 첨수도(尖首刀), 명도전이 단군조선의 화폐이며 그 위헤 새겨진 문자가 단군조선의 상형 및 표음 문자임을 밝혔음. 그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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