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뿌리를 찾아서)/홍익인간 7만년 역사

[홍익인간 349] 고려(高麗) 연대기 11

양해천 2018. 1. 23. 13:20

[홍익인간 349] 고려(高麗) 연대기 11

2012년 06월 13일 (수) 07:43:53천산(天山)  sppopsj@yahoo.co.kr

<삼국유사> 
서기1285년에 일연이 삼국유사를 편찬하였다. 

<제왕운기> 
서기1287년에 이승휴가 제왕운기를 저술하였다. 

서기1290년에 동녕부를 폐지하였다. 

<금판 금강반야바라밀경과 금판 묘법연화경 완성> 
서기1294년 갑오년(甲午年)에 금판 금강반야바라밀경과 금판 묘법연화경을 완성하였다. 

서기1295년에 원나라는 세조가 죽자 일본정벌을 포기하였다. 정동행성은 그대로 남아 고려의 내정을 간섭하였다. 

서기1297년에 제국공주가 갑자기 병이 들어 죽었다. 이에 원나라에서 세자 원이 돌아와 충렬왕의 총애를 받고 있던 궁녀 무비를 처형하고 무비의 측근 40여명을 죽이거나 귀양 보냈다. 세자 원이 원나라로 돌아가자 충렬왕은 스스로 왕위에서 물러나겠다고 원나라 황제에게 전했다. 

<충선왕 즉위> 
서기1298년에 24세의 세자 원(충선왕)이 즉위하였다. 

<충렬왕 복위> 
그러나, 충선왕은 즉위하자마자 대대적인 개혁을 하여 인사를 담당하던 정방을 폐지하고 관제개혁을 하였다. 충선왕은 이전의 세자비였던 조비를 사랑하고 있었다. 이에 왕비 계국공주는 이 사실들을 원나라 황태후에게 일러 바쳤다. 이리하여 조비의 아비 조인규와 그 아내, 조비 등이 원나라로 압송되었다. 이리하여 충선왕은 7개월만에 쫓겨나 원나라로 호송되고, 충령왕이 복위되었다. 충선왕은 조맹부, 염복, 요봉 등의 원나라 학자들과 사귀며 복위의 날을 기다렸다. 

서기1304년에 안향의 주장으로 국학에 대성전을 세웠다. 

서기1305년에 원나라에서는 성종 티무르가 병이 들어 황족들 간에 황위 다툼이 심했다. 

서기1307년에 충선왕은 황족 중에서 하야스를 도왔는데 그가 즉위하여 무종이 되었다. 

서기1308년에 충렬왕이 죽자 충선왕이 고려로 돌아와 복위하였다. 

26. 제26대 충선왕(忠宣王:서기1309년~서기1314년) 

원나라에 호송되었던 충선왕(세자 원)이 고려로 돌아와 복위하였다. 

충선왕은 개혁정치가 잘 먹히지 않자 결국 정치에 뜻을 잃고 숙부인 제안공에게 정치를 맡기고 원나라 연경으로 떠났다. 이에 고려 신하들은 연경과 개경을 오가며 충선왕의 재가를 받았다. 이때 충선왕은 원나라 무종의 신임을 얻어 남만주에 있는 고려의 유민을 다스리는 심양왕의 직위에 있었다. 

서기1310년에 고려의 조정대신들이 충선왕의 귀국을 간하다가 거부당하여 세자를 즉위시키려 하자 충선왕은 세자 감과 측근 신하들을 모두 죽여버렸다. 이후 고려조정은 끈질기게 충선왕의 귀국을 조르자, 충선왕은 서기1313년 3월에 둘째 아들 강릉대군에게 선양하였다. 

서기1314년에 충선왕은 연경에 만권당을 설치하였다. 

27. 제27대 충숙왕(忠肅王:서기1314년~서기1330년) 

충선왕의 둘째 아들 강릉대군이 즉위하였다. 서기1314부터 서기1330년까지 1차 재위하였다. 

충숙왕의 즉위 직후 충선왕이 귀국하자 실권은 충선왕 쪽으로 넘어갔다. 

충선왕은 원나라로 돌아갔고 심양왕의 자리를 이복형의 아들인 조카 왕고에게 물려주고 왕고를 고려의 세자로도 삼았다. 이에 세자가 된 왕고는 고려왕이 되겠다는 야심을 품고 충숙왕을 괴롭혔다. 

서기1316년에 충숙왕은 원나라 영왕의 딸인 복국장 공주와 혼인하였다. 충숙왕은 쫓겨난 덕비를 잊지 못해 자주 덕비를 찾아갔다. 

서기1319년에 복국장 공주가 갑자기 죽었다. 이에 원나라는 이상지에게 진상조사를 시켰고 복국장 공주의 궁녀와 요리사 한만복이 원나라로 압송되어 다시 조사를 받았다. 

서기1320년에 원나라 인종(仁宗)이 암살되었다. 

서기1321년에 심양왕 왕고가 원나라 영종(英宗)에게 충숙왕의 폐위를 간하였고, 충숙왕은 밤마다 연회를 즐겼다. 이은 심양왕 왕고의 고자질로 원나라 영종은 충숙왕을 입조하게 하였다. 이에 충숙왕은 연경으로 갔다. 

서기1324년에 심양왕 왕고를 신임하던 원나라 영종이 죽고 태정제가 즉위하였다. 2월에 충숙왕은 고려로 돌아왔다. 

충숙왕은 왕고의 모함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자진해서 원나라 위왕의 딸인 조국장 공주와 혼인하였다. 

서기1325년에 조국장 공주는 아들을 낳은 뒤 죽었다. 

심양왕 왕고의 사주를 받은 유청신과 오잠이 원 태정제에게 고하였고, 태정제는 신하 매려를 고려로 보내어 유청신과 오잠의 말이 사실인지 알아보게 하였는데, 결국 거짓으로 드러나 왕고는 황제의 신임을 잃고 세력이 급격히 약해졌다. 이 틈에 충숙왕이 왕고의 지지세력을 감옥에 가두거나 귀양보냈다. 

서기1330년에 충숙왕이 몸이 약해져 16세의 세자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상왕이 되어 원나라에 머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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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프로필] 조홍근(曺洪根, 52세). 한문화재단(桓文化財團) 사무총장. 트위트-페이스북 역사당 부총재. 현 법무사. 

30여년 동안 족보(族譜)와 한중일(韓中日) 역사를 연구해 오면서, 부도지(符都誌), 한단고기(桓檀古記), 규원사화(揆園史話), 단기고사(檀奇古史) 등 귀중한 역사자료를 통하여, 우리역사 1만년을 넘어 마고(麻姑) 시대를 포함한 7만2천390년 역사를 밝히고 있음. 

1. 홍익인간(弘益人間) 천부(天符)의 역사는 마고성(麻姑城:파미르고원)의 마고(麻姑)시대인 서기전70378년 계해년(癸亥年)부터 시작되었음을 최초로 밝혔음. 

2. 역법(曆法)이 시작된 해는 마고성(麻姑城)의 황궁씨(黃穹氏) 시대인 서기전25858년 계해년(癸亥年)임을 밝혔으며, 서기전70378년 계해년이 마고(麻姑) 기원(紀元:천부 天符)임을 밝혔음. 

3. 황궁씨를 이은 나반(那般:那般尊者:獨聖者)이 한국(桓國)시대 한인씨(桓因氏) 이전의 임금이던 유인씨(有因氏)이며, 한인씨 7대(代)가 약1,000년을 다스렸다는 것임을 밝혔음. 

4. 윷놀이판의 모습이 천부경(天符經)의 무한조화순환역(無限造化循環易), 음양오행(陰陽五行), 태양태음성력(太陽太陰星曆), 단군조선의 정치행정 구조를 나타낸 것임을 밝혔으며, 하도(河圖)와 낙서(洛書)가 배달나라 시대의 음양오행수리역(陰陽五行數理易)이며, 태호복희 8괘역과 윷놀이판의 역이 지구의 자전(自轉)과 공전(公轉)을 기반으로 한 역(易)임을 밝혔음. 

5. 천제(天帝), 천황(天皇:天王), 천군(天君), 천공(天公), 천후(天侯), 천백(天伯), 천자(天子), 천남(天男)의 위계질서를 최초로 밝히고, 천제자(天帝子)와 천자(天子)의 차이점을 최초로 밝혔으며, 태호복희씨(太皞伏羲氏)가 일반 천자(天子)가 아니라 천지인(天地人) 삼신(三神)에게 제(祭)를 올리는 권한을 가진 제사장인 천군(天君)임을 밝혔음. 

6. 아리랑(阿里嶺) 민요의 원천이 되는 최초의 역사적 사실이 서기전2333년 10월 3일 조선을 건국하기 이전에 있었던 당요(唐堯)의 전란(戰亂)으로 인하여 단군왕검(檀君王儉)께서 동북의 아사달로 이동한 과정임을 밝혔음. 

7. 고대중국의 천자로 불리는 요순우(堯舜禹)와 고대일본의 신무왕(神武王)이 단군조선으로부터 독립을 시도한 반역자(反逆者)이면서 제후인 천자(天子)임을 밝혔음. 

8. 우비(禹碑:우 치수기념 부루공덕 비)의 비문을 국내 최초로 역사적 해석을 하였으며, 우비는 서기전2267년 이후 우(禹)가 치수에 성공한 후 치수법(治水法)을 전수해 준 단군조선 태자부루의 공덕을 새겨 남악(南嶽) 형산(衡山)에 세운 것임을 밝혔음. 

9. 일본 국조신(國祖神)인 천조대신(天照大神)의 사당인 이세신궁(伊勢神宮)에 소장된 원시한글 축문을 국내 최초로 완벽 해독하고, 요하유로 기록된 천조대신이 단군조선 두지주(豆只州) 예읍(濊邑)의 추장(酋長)의 후손임을 밝혔음. 

10. 명도전(明刀錢) 등에 새겨진 문자를 단군조선 문자로서 최초로 해독한 학자 허대동 선생<저서 고조선문자>의 가림토(加臨土)의 연구에 검증차 참여하여 첨수도(尖首刀), 명도전이 단군조선의 화폐이며 그 위헤 새겨진 문자가 단군조선의 상형 및 표음 문자임을 밝혔음. 그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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