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익인간 350] 고려(高麗) 연대기 12
2012년 06월 14일 (목) 07:33:45 | 천산(天山) sppopsj@yahoo.co.kr |
28. 제28대 충혜왕(忠惠王:헌효왕:서기1330년~서기1332년)
충숙왕의 장남인 세자 정이 16세로 즉위하였다. 서기1331년부터 서기1332년까지 1차 재위하였다.
충혜왕은 나라일을 배전, 주주 등에게 맡기로 사냥과 씨름을 즐겼다. 이에 원나라는 충혜왕을 연경으로 불러들여 근신시키고 충숙왕을 복위시켰다.
29. 제27대 충숙왕(忠肅王:서기1332년~서기1339년)
서기1333년부터 서기1339년까지 2차 재위하였다.
서기1335년에 조선 태조가 된 이성계가 출생하였다.
서기1339년에 충숙왕이 병으로 붕하였고 충혜왕이 복위되었다.
30. 제28대 충혜왕(忠惠王:헌효왕:서기1340년~서기1344년)
원나라에 있던 충혜왕이 고려로 돌아와 복위하였다.
그러나, 충혜왕은 다시 선왕의 후비와 신하의 아내까지 희롱하였다. 매일 잔치를 열고 사냥과 수박 경기를 즐겼으며 연회장을 만들기 위하여 재물을 빼앗고 강제 부역을 시켰다. 충혜왕의 잘못은 원나라에 낱낱이 보고되었다.
<역옹패설>
서기전1342년에 만권당 출신인 이제현은 익재난고, 역옹패설 등의 책을 지었다.
서기1344년, 헌효왕(獻孝王:忠惠王)의 후기(서기1340년~서기1344년) 5년 3월에 행촌 이암(李嵒:1297~1364:당시 48세)은 명을 받들어 참성단(塹城壇)에 제천(祭天)하였다. 이때 백문보(白文寶:?~서기1374년)에게 말씀하시기를, “덕(德)을 믿고 신(神)을 수호함은 오로지 신념(信念)에 있고, 영재를 기르고 나라를 지키는 공적은 발원(發願)함에 있다. 이에 신(神)은 사람에 의지하고 사람 역시 신(神)에 의지하여 백성과 나라가 영원히 편안함을 얻는다. 하늘에 제(祭)를 올리는 정성은 결국 근본에 보답함으로 돌아가니, 인간세상에서 구하는 것은 거품과 같은 것이다”라고 하였다.
즉, 사람이 정성으로 하늘에 제를 올리는 것은 근본에 보답하며 신(神)에 의지하는 것이고, 이렇게 신(神)에게 의지하려면 또한 나라가 평안해야 하므로 사람을 키우고 나라를 보존하는 것인 바, 무한원천이자 근본인 신(神)에게 정성을 드리지 않고서 생명이 유한한 인간세상에서만 구할 수는 없는 것이므로, 반드시 신(神)에게 제(祭)를 올리고 의지해야 백성과 나라가 완전하게 된다는 말이다.
이암선생은 호는 행촌(杏村)이며 17세에 과거에 급제하였고, 찬성사, 좌정승, 수문하시중을 지냈으며, 글씨와 그림에 뛰어났다. 공민왕 13년에 68세로 세상을 떠났다.
행촌 이암 선생이 일찍이 천보산(天寶山)에서 노닐 때 밤에는 태소암(太素庵)에 묵었는데, 한 거사(居士)가 있어 말하기를, “소전(素佺)은 기이한 옛 책을 많이 보관하고 있습니다.” 하였다. 이에 이명(李茗), 범장(范樟)처럼 신서(神書)를 얻으니 옛 한단(桓檀)의 전수(傳修)한 진결(眞訣)이었다. 이명 선생은 호는 청평(淸平)이며 고려시대 공민왕 때의 학자로서 <조대기(朝代記)>를 인용하여 <진역유기(震域留記)> 3권을 저술하였으며 이 책이 조선시대 지어진 <규원사화>의 저본이 되었다. 또, 범장 선생은 범세동(范世東)이라고도 하며, 호는 복애(伏崖)이고, 고려 공민왕 때 간의대부(諫義代夫) 등의 벼슬를 지냈으며, 고려가 망하자 강화읍 용정리 만수산 밑에 묻혀 살다가 세상을 떠났는데, 훗날 사람들이 이곳을 범옹동(范翁洞)이라 불렀고, 저서로는 <북부여기(北夫餘紀)>, <동방연원록(東方淵源錄)>를 남겼다.
행촌 시중(侍中) 이암선생은, 일찍이 권신의 무리가 국호를 폐하려 하자, 이를 말려 청하여 행성(行省)의 의(議)를 세웠으니, 그 소략(疏略)에 이르기를, “하늘 아래 사람들은 각각 자기의 나라를 가지고 나라를 삼고 또 각각 그 풍속을 가지고 풍속을 삼는다. 국계(國界)를 허물지 말라. 민속 역시 섞지 말라. 하물며 우리나라는 한단(桓檀) 이래로 모두 천제자(天帝子)를 칭하고, 제천(祭天)을 행하여 스스로 분봉의 제후와는 근본이 서로 같지 않다. 지금 일시적으로 다른 사람의 발 밑에 있기는 하나 이미 혼과 정신과 피와 살이 있어 한 근원의 조상을 갖게 되었으니, 이것이 곧 신시개천으로부터 이를 삼한관경이라 하고, 크고 이름난 나라를 하늘 아래 만세에 만들게 된 까닭이다. 우리 천수태조(天授太祖:왕건)께서 창업의 바탕으로 고구려가 다물국(多勿國)을 세우신 풍습을 계승하여 온세상을 평정하시고 나라의 명성을 크게 떨치었다. 때로 강한 이웃이 생겨 틈을 타 횡포를 일삼았으니 유영(幽營:유주와 영주:난하 서쪽의 요서지역)의 동쪽이 아직도 우리의 것이 되지 못하였다. 이것이 곧 군신이 낮밤으로 떨치고 나서서 도모하고 자주부강의 계책을 감히 세우고 있는 이유인데, 잠청(潛淸)과 같은 간사한 무리가 있어 기량을 자랑하며 남몰래 꾀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작다고 하지만 국호를 어찌 폐하려 하는가? 세력이 비록 약하다 한들 위호를 어찌 깎고 낮추려 하는가? 이제 이러한 행동들은 모두 간사한 소인배의 도망질에서 나오는 것이며, 나라 사람들의 공언(公言)이 아닌 것이다. 마땅히 청하여 그 죄를 엄히 다스려야 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암 선생은 시중(侍中) 벼슬을 하시다가 강도(江都:고려의 임시 수도였던 강화도)의 홍행촌(紅杏村)으로 퇴거하시고 스스로 홍행촌 늙은이라고 부르시며 마침내 행촌삼서(杏村三書)를 쓰시어 집에 간직하였다. 행촌삼서는 단군세기. 태백진훈, 도학심법이다. 특히 단군세기는 서기1363년, 경효대왕(敬孝大王) 12년 계묘년(癸卯年) 10월 3일에 강도(江都)의 해운당(海雲堂)에서 썼다.
행촌 이암 선생은 저서가 세 가지가 있어 이를 행촌삼서(杏村三書)라 하며, 단군세기는 원시국가의 체통을 밝힌 바 현저하고, 태백진훈(太白眞訓)은 도학심법(道學心法)을 소개한 것이며, 농상집요(農桑輯要)는 곧 경세실무(經世實務)의 학문이다. 문정공(文靖公) 목은(牧隱) 이색(李穡) 선생이 이에 서문을 붙여 가로되, “무릇 의식(衣食)이 풍족하게 되는 것, 재물이 풍부해 지는 것, 자식들이 두루 갖추어지는 것들을 분류하고 모으고 자르고 밝혀 비추지 않음이 없으니, 실로 이치가 살아나는 좋은 책이다”라고 하였다.
서기1344년에 충혜왕의 잘못을 문책하려 보내어진 원나라에서 오던 사신들을, 이러한 사정을 모르고 충혜왕이 정동성에 마중나갔다가 원나라로 바로 압송되었다. 이에 충혜왕은 게양현으로 귀양가던 중 30세의 나이에 독살되었다.
서기1344년에 충혜왕의 세자 흔이 8세로 즉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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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프로필] 조홍근(曺洪根, 52세). 한문화재단(桓文化財團) 사무총장. 트위트-페이스북 역사당 부총재. 현 법무사.
30여년 동안 족보(族譜)와 한중일(韓中日) 역사를 연구해 오면서, 부도지(符都誌), 한단고기(桓檀古記), 규원사화(揆園史話), 단기고사(檀奇古史) 등 귀중한 역사자료를 통하여, 우리역사 1만년을 넘어 마고(麻姑) 시대를 포함한 7만2천390년 역사를 밝히고 있음.
1. 홍익인간(弘益人間) 천부(天符)의 역사는 마고성(麻姑城:파미르고원)의 마고(麻姑)시대인 서기전70378년 계해년(癸亥年)부터 시작되었음을 최초로 밝혔음.
2. 역법(曆法)이 시작된 해는 마고성(麻姑城)의 황궁씨(黃穹氏) 시대인 서기전25858년 계해년(癸亥年)임을 밝혔으며, 서기전70378년 계해년이 마고(麻姑) 기원(紀元:천부 天符)임을 밝혔음.
3. 황궁씨를 이은 나반(那般:那般尊者:獨聖者)이 한국(桓國)시대 한인씨(桓因氏) 이전의 임금이던 유인씨(有因氏)이며, 한인씨 7대(代)가 약1,000년을 다스렸다는 것임을 밝혔음.
4. 윷놀이판의 모습이 천부경(天符經)의 무한조화순환역(無限造化循環易), 음양오행(陰陽五行), 태양태음성력(太陽太陰星曆), 단군조선의 정치행정 구조를 나타낸 것임을 밝혔으며, 하도(河圖)와 낙서(洛書)가 배달나라 시대의 음양오행수리역(陰陽五行數理易)이며, 태호복희 8괘역과 윷놀이판의 역이 지구의 자전(自轉)과 공전(公轉)을 기반으로 한 역(易)임을 밝혔음.
5. 천제(天帝), 천황(天皇:天王), 천군(天君), 천공(天公), 천후(天侯), 천백(天伯), 천자(天子), 천남(天男)의 위계질서를 최초로 밝히고, 천제자(天帝子)와 천자(天子)의 차이점을 최초로 밝혔으며, 태호복희씨(太皞伏羲氏)가 일반 천자(天子)가 아니라 천지인(天地人) 삼신(三神)에게 제(祭)를 올리는 권한을 가진 제사장인 천군(天君)임을 밝혔음.
6. 아리랑(阿里嶺) 민요의 원천이 되는 최초의 역사적 사실이 서기전2333년 10월 3일 조선을 건국하기 이전에 있었던 당요(唐堯)의 전란(戰亂)으로 인하여 단군왕검(檀君王儉)께서 동북의 아사달로 이동한 과정임을 밝혔음.
7. 고대중국의 천자로 불리는 요순우(堯舜禹)와 고대일본의 신무왕(神武王)이 단군조선으로부터 독립을 시도한 반역자(反逆者)이면서 제후인 천자(天子)임을 밝혔음.
8. 우비(禹碑:우 치수기념 부루공덕 비)의 비문을 국내 최초로 역사적 해석을 하였으며, 우비는 서기전2267년 이후 우(禹)가 치수에 성공한 후 치수법(治水法)을 전수해 준 단군조선 태자부루의 공덕을 새겨 남악(南嶽) 형산(衡山)에 세운 것임을 밝혔음.
9. 일본 국조신(國祖神)인 천조대신(天照大神)의 사당인 이세신궁(伊勢神宮)에 소장된 원시한글 축문을 국내 최초로 완벽 해독하고, 요하유로 기록된 천조대신이 단군조선 두지주(豆只州) 예읍(濊邑)의 추장(酋長)의 후손임을 밝혔음.
10. 명도전(明刀錢) 등에 새겨진 문자를 단군조선 문자로서 최초로 해독한 학자 허대동 선생<저서 고조선문자>의 가림토(加臨土)의 연구에 검증차 참여하여 첨수도(尖首刀), 명도전이 단군조선의 화폐이며 그 위헤 새겨진 문자가 단군조선의 상형 및 표음 문자임을 밝혔음. 그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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