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뿌리를 찾아서)/홍익인간 7만년 역사

[홍익인간 363] 조선-대청 남북국시대 조선(朝鮮) 연대기 8

양해천 2018. 1. 23. 13:30

[홍익인간 363] 조선-대청 남북국시대 조선(朝鮮) 연대기 8

2012년 06월 27일 (수) 08:17:02천산(天山)  sppopsj@yahoo.co.kr

22. 제22대 정조(正祖:서기1776년~서기1800년) 

사도세자(장헌세자)의 아들인 세손이 즉위하였다. 세손의 즉위를 방해하고 사도세자를 죽이는 데 앞장선 홍인한, 숙의문씨, 정후겸 등이 처형당하고 홍술해와 김귀주는 흑산도로 귀양갔다. 

서기1776년에 규장각을 설치하였다. 

서기1777년 8월에 홍씨 일파가 정조를 시해하기 위하여 50명의 자객을 궁궐안으로 들여 보냈는데, 모두 수비병에게 붙잡혔다. 이에 홍상범 일당과 은전군이 사약을 받았다. 이에 영조는 홍국영을 도승지 겸 숙위대장으로 삼아 나라일을 맡겼다. 홍국영은 누이를 정조의 후궁으로 들여보냈으나 얼마되지 않아 죽었다. 정조의 동생인 은언군의 아들 상계군이 홍국영의 죽은 누이인 원빈홍씨의 제사를 받들게 되자 홍국영이 상계군을 정조에게 양자로 삼을 것을 간하기도 하고 상계군을 가까이 두었는데, 사헌부에서 홍국영을 견제하기 위해 들고 일어나니, 정조는 홍국영을 물러나게 하였고, 이후 홍국영은 권력을 자기 위하여 왕후를 독살하려 하다가 사전에 들통나 가산을 몰수당하고 강릉으로 쫓겨났다. 

서기1766년에 규장각을 설치하였다. 

서기1783년에 박지원이 열하일기를 저술하였다. 

서기1784년에 이승훈이 천주교를 전도하였다. 

서기1786년에 천주교 금지령을 발표하였다. 

서기1789년에 정조는 아버지 장헌세자의 능을 양주에서 수원으로 옮긴 후 철따라 참배하였다. 정조는 정약용에게 수원성을 신축하도록 하였다. 

서기1791년에 전라도 진산에서 윤지충, 권상연 등이 어머니 상을 당하여 상복과 위패를 불태우고 천주교식으로 장례를 치르는 일이 벌어졌다. 이에 윤지충과 권상연이 처형당하고 이승훈이 삭탈관직당하는 천주교 박해사건이 발생하였다. 

서기1792년에 정약용이 거중기를 발명하였다. 

서기1794년에 청나라 신부 주문모가 들어와 활동하여 신도 수가 만여명이 되었다. 

서기1796년에 정약용은 거중기를 발명하여 수원성을 완공하였다, 

서기1800년 정조가 몸에 종기가 나 49세로 붕하고 11세의 어린 세자가 즉위하였다. 

23. 제23대 순조(純祖:서기1801년~서기1834년) 

정조의 세자가 11세로 즉위하였다. 이에 대왕대비인 정순왕후가 수렴청정하였다. 정순왕후는 친정 6촌오빠인 김관주를 이조참판에 앉히고 노론벽파를 대거 등용하였다. 

<신유박해:신유사옥> 
서기1801년 1월에 정순왕후가 천주교를 국법으로 금하라 하였고, 2월에 수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체포되는 신유박해가 일어났다. 이가환과 권철신은 옥사하였고, 이승훈과 정약종 등 수많은 사람들이 처형을 당하였으며, 정약용은 천주교를 배교할 것을 약속하여 귀양을 갔다. 이때 숨어서 전도하던 주문모가 감옥에 갇힌 신자들을 구하려고 의금부에 자수하였다가 결국 처형당하였다. 또 은언군의 부인 송씨와 며느리 신씨가 천주교 신자라는 밝혀져 송씨와 신씨가 사약을 받았고, 강화도에 귀양갔던 은언군도 사약을 받았다. 은언군의 아들 전계군과 철종은 강화도로 쫓겨났다. 

서기1802년에 순조는 시파인 안동김씨 김조선의 딸을 왕비로 맞이하였다. 

서기1803년에 김만중이 구운몽을 저술하였다. 

서기1805년에 정순왕후가 죽자 순조의 장인인 김조순이 세도정치를 시작하였다. 김조순은 벽파를 몰아내고 남인과 시파 및 안동김씨를 대거 등용하였다. 

평안도 출신인 홍경래가 과거시험에 번번히 실패하자 서자 출신의 우군칙을 만나 세상을 바로 잡기로 하고, 가산의 부자 이희저와 곽산의 진사 김창시 등을 동지로 삼았고, 이제초, 김사용, 홍총각 등의 동지를 모아 가산군 다복동을 근거지로 삼아 군사훈련을 하였다. 

<홍경래 난> 
서기1811년 12월에 홍경래의 난이 일어났다. 일주일만에 가산, 곽산, 정주, 선천 등을 점령하여 청천강 이북을 모두 손에 넣으니, 김삿갓 김병연의 할아버지인 선천부사 김익순과 철산부사는 싸우지도 않고 항복하였다. 12월 25일에 박천의 송림에서 반란군이 승리하였으나, 29일에는 관군에게 밀려 정주성으로 후퇴하였다. 서기1812년 4월까지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4월 19일에 관군이 성밑으로 땅굴을 파고 화약 1,800근을 묻은 다음 정주성을 폭파시켰다. 홍경래는 관군에 맞서 싸우다 총에 맞아 죽고 반란은 4개월만에 진압되었다. 관군은 여자와 어린애는 풀어주고 정주성 주민 2,000명을 모두 죽였다. 홍경래군에게 항복하였던 선천부사 김익순은 참형을 당하였다. 김익순의 손자 김병연이 그 사실을 모른 채 향시에서 조부를 욕하는 시로 장원을 하였는데 후에 이 사실을 알고는 충격을 받아 집을 떠나 전국을 떠도는 방랑시인이 되었다. 

서기1818년에 정약용이 목민심서를 완성하였다. 

서기1831년에 천주교가 조선 교구를 설정하였다. 

서기1834년에 순조가 45세로 붕하자, 일찍 죽은 효명세자의 아들인 세손이 8세로 즉위하였다. 

24. 제24대 헌종(憲宗:서기1834년~서기1849년) 

효명세자의 아들인 세손이 8세로 즉위하였다. 이에 대왕대비 순원왕후가 수렴청정하였다. 한때 헌종의 외가인 풍양조씨가 권세를 쥐었으나 다시 안동김씨의 세도정치가 이어졌다. 

<기해박해> 
서기1839년에 기해박해가 일어나고 이양선이 출몰하였다. 

서기1846년에 김대건 신부가 순교하였다. 

서기1849년에 헌종이 23세에 갑자기 붕하자 안동김씨들은 헌종의 7촌 숙부가 되는 이원범을 즉위시켰다. 이원범은 정조의 아우인 은언군의 손자이다. 

25. 제25대 철종(哲宗:서기1849년~서기1863년) 

정조의 아우인 은언군의 손자가 19세로 즉위하였다. 철종은 헌종의 재종숙(再從叔)인데 종묘에서는 조카에게 제사를 지내며 절을 하는 일이 생기게 되었다. 

서기1851년에 철종은 안동김씨 철인왕후를 왕비로 맞이하였다. 이에 철종의 장인인 김문근이 권력을 잡았다. 

서기1860년에 최제우가 동학을 창시하였다. 

서기1861년에 김정호가 대동여지도를 제작하였다. 

<임술민란> 
서기1862년에 임술민란이 일어났다. 

서기1863년에 철종이 붕하자 딸 영혜옹주를 제외하고는 다섯 아들과 다섯 딸들이 모두 일찍 죽었으므로, 헌종의 어머니인 대왕대비 조씨가 흥선군과 미리 짠 계획대로 흥선군의 둘째 아들을 양자로 삼아 왕위를 잇게 하였다. 흥선군은 장헌세자의 셋째 아들 은신군의 손자이자 남연군의 아들이다. 은신군의 형이 은언군이며 장남이 정조이다. 순조는 정조의 아들이며 헌종은 순조의 손자이고, 철종은 은언군의 손자이다. 

26. 제26대 고종(高宗:서기1863년~서기1906년) 

흥선군의 둘째 아들 명복이 12세로 즉위하였다. 

서기1863년에 흥선대원군이 집권하였다. 흥선대원군은 안동김씨들을 조정에서 내쫓고 개혁정치를 시작하였다. 

흥선대원군은 당파에 관계없이 인재를 고루 등용하였고 탐관오리를 가려 내어 처벌하였다. 군정과 환곡을 개혁하였다. 

서기1864년에 동학 창시자 최제우가 처형당했다. 

서기1864년 7월에 고종의 생일을 맞아 죄수들을 조사하여 억울한 자는 모두 풀어 주었다. 

대원군은 문제가 많던 서원의 철폐령을 내렸고, 이에 항의하는 유생들을 감옥에 가두었다. 

서기1865년 4월부터 대원군의 명령으로 경복궁 중건이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원납전이라 하여 기부금을 걷었으나 건설자금이 모자라 강제로 돈을 거두고 세금을 올렸고, 당백전을 사용하여 건축비로 사용하니 백성들의 원망이 높아지게 되었다. 

서기1866년에 대원군은 아버지가 일찍 죽고 형제가 없어 외척이 득세할 가능성이 없는 민씨를 왕비로 결정하였다. 

<병인박해> 
서기1866년 1월에 천주교 신자 체포령이 내려지자, 9명의 프랑수 신부와 남종삼, 홍봉주 등 주요인물들이 모두 잡혀 처형되는 병인박해가 일어났다. 이때 살아남은 프랑스인 리델 신부가 중국의 천진으로 탈출하여 프랑스 공사 벨로네와 극동 함대 사령관 로즈에게 알렸다. 

서기1866년 8월경에 미국 상선 제너럴 셔먼 호가 대동강에 나타나 평양 가까이서 조선 사람을 납치하고 통상을 요구하였는데, 평양 주민들과 군사들이 힘을 합쳐 제너럴 셔면 호를 불태우고 24명을 죽였다. 

<병인양요> 
서기1866년 10월에 프랑스의 로즈 제독이 군함 7척과 천여명의 군사를 이끌고 강화도 앞바다에 나타나 초지진을 공격하여 함락하였고, 프랑스군은 강화읍으로 몰려들어 민가를 약탈하으나, 양헌수가 이끈 문수산성과 정족산성의 싸움에서 패하여 물러났다. 프랑스군은 돌아가면서 민가와 관청에 불을 지르고 무고한 백성들을 죽였다. 특히 강화도에 있던 외규장각을 불태우고 보관돼 있던 귀중한 문화재와 보물들을 강탈하였다. 

서기1867년에 경복국 근정전과 경회루가 완공되었다. 

서기1868년에 독일 상인 오페르트가 조선에 몇 차례 통상을 요구하다 거절당하자 대원군의 아버지인 남연군의 묘를 도굴하였다. 

<신미양요> 
서기1871년에 미국 군함이 제너럴 셔먼 호 사건에 대한 진상규명과 통상을 요구하며 강화도를 점령하는 신미양요가 일어났다. 

서기1871년에 전국에 척화비를 세웠다. 

서기1873년에 고종이 22세로 직접 나라를 다스리려 하였는데, 10월에 왕비 민씨가 최익현을 시켜 대원군을 탄핵하는 상소를 올리게 하였다. 11월에 고종은 친정을 선포하였다. 이에 대원군은 궁궐출입이 금지되었고 대원군은 경기도 양주 곧은골로 가서 머물렀다. 

<운요호 사건> 
서기1775년 9월에 일본 배 운요호가 강화도에 침입하자 조선군이 포격을 하였고, 이에 운요호도 대포를 쏘아 초지진을 파괴하고 인천 앞바다의 영종도를 점령하여 방화와 약탈을 하고 돌아갔다가, 12월에 군함을 이끌고 부산에 와서 운요호에 먼저 발포한 것을 문제삼고 협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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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프로필] 조홍근(曺洪根, 52세). 한문화재단(桓文化財團) 사무총장. 트위트-페이스북 역사당 부총재. 현 법무사. 

30여년 동안 족보(族譜)와 한중일(韓中日) 역사를 연구해 오면서, 부도지(符都誌), 한단고기(桓檀古記), 규원사화(揆園史話), 단기고사(檀奇古史) 등 귀중한 역사자료를 통하여, 우리역사 1만년을 넘어 마고(麻姑) 시대를 포함한 7만2천390년 역사를 밝히고 있음. 

1. 홍익인간(弘益人間) 천부(天符)의 역사는 마고성(麻姑城:파미르고원)의 마고(麻姑)시대인 서기전70378년 계해년(癸亥年)부터 시작되었음을 최초로 밝혔음. 

2. 역법(曆法)이 시작된 해는 마고성(麻姑城)의 황궁씨(黃穹氏) 시대인 서기전25858년 계해년(癸亥年)임을 밝혔으며, 서기전70378년 계해년이 마고(麻姑) 기원(紀元:천부 天符)임을 밝혔음. 

3. 황궁씨를 이은 나반(那般:那般尊者:獨聖者)이 한국(桓國)시대 한인씨(桓因氏) 이전의 임금이던 유인씨(有因氏)이며, 한인씨 7대(代)가 약1,000년을 다스렸다는 것임을 밝혔음. 

4. 윷놀이판의 모습이 천부경(天符經)의 무한조화순환역(無限造化循環易), 음양오행(陰陽五行), 태양태음성력(太陽太陰星曆), 단군조선의 정치행정 구조를 나타낸 것임을 밝혔으며, 하도(河圖)와 낙서(洛書)가 배달나라 시대의 음양오행수리역(陰陽五行數理易)이며, 태호복희 8괘역과 윷놀이판의 역이 지구의 자전(自轉)과 공전(公轉)을 기반으로 한 역(易)임을 밝혔음. 

5. 천제(天帝), 천황(天皇:天王), 천군(天君), 천공(天公), 천후(天侯), 천백(天伯), 천자(天子), 천남(天男)의 위계질서를 최초로 밝히고, 천제자(天帝子)와 천자(天子)의 차이점을 최초로 밝혔으며, 태호복희씨(太皞伏羲氏)가 일반 천자(天子)가 아니라 천지인(天地人) 삼신(三神)에게 제(祭)를 올리는 권한을 가진 제사장인 천군(天君)임을 밝혔음. 

6. 아리랑(阿里嶺) 민요의 원천이 되는 최초의 역사적 사실이 서기전2333년 10월 3일 조선을 건국하기 이전에 있었던 당요(唐堯)의 전란(戰亂)으로 인하여 단군왕검(檀君王儉)께서 동북의 아사달로 이동한 과정임을 밝혔음. 

7. 고대중국의 천자로 불리는 요순우(堯舜禹)와 고대일본의 신무왕(神武王)이 단군조선으로부터 독립을 시도한 반역자(反逆者)이면서 제후인 천자(天子)임을 밝혔음. 

8. 우비(禹碑:우 치수기념 부루공덕 비)의 비문을 국내 최초로 역사적 해석을 하였으며, 우비는 서기전2267년 이후 우(禹)가 치수에 성공한 후 치수법(治水法)을 전수해 준 단군조선 태자부루의 공덕을 새겨 남악(南嶽) 형산(衡山)에 세운 것임을 밝혔음. 

9. 일본 국조신(國祖神)인 천조대신(天照大神)의 사당인 이세신궁(伊勢神宮)에 소장된 원시한글 축문을 국내 최초로 완벽 해독하고, 요하유로 기록된 천조대신이 단군조선 두지주(豆只州) 예읍(濊邑)의 추장(酋長)의 후손임을 밝혔음. 

10. 명도전(明刀錢) 등에 새겨진 문자를 단군조선 문자로서 최초로 해독한 학자 허대동 선생<저서 고조선문자>의 가림토(加臨土)의 연구에 검증차 참여하여 첨수도(尖首刀), 명도전이 단군조선의 화폐이며 그 위헤 새겨진 문자가 단군조선의 상형 및 표음 문자임을 밝혔음. 그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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