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뿌리를 찾아서)/부도지(符都誌)

제24장(第二十四章) - 우를 처단하다

양해천 2018. 1. 26. 13:57

* 제 24장 (第二十四章) 

有戶氏 如是叮嚀告戒 
유호씨 여시정녕고계 
勸廢諸法而復歸於符都 
권폐제법이복귀어부도 
禹 頑强不聽 反爲威侮 乃率衆攻有戶氏 
우 완강불청 반위위모 내솔중공유호씨 
數次未勝 竟死於茅山之陣 
수차미승 경사어모산지진 
於是 夏衆 悲憤 願死者數萬 
어시 하중 비분 원사자수만 
此盖輿禹治水之徒也 
차개여우치수지도야 
禹之子啓 率此大軍 進擊有戶氏之邑 
우지자계 솔차대군 진격유호씨지읍 
有戶氏之軍 不過數千 
유호씨지군 불과수천 
然 夏軍 戰則必敗 一無擧績 
연 하군 전칙필패 일무거적 
啓 遂懼而退陣 不復再擧 其衆 激昻 
계 수구이퇴진 불복재거 기중 격앙 
於是 有戶氏 見夏衆之爲瞽盲 以爲不可速移 
어시 유호씨 견하중지위고맹 이위불가속이 
將欲敎西南諸族 率其徒而去 基邑 自廢 
장욕교서남제족 솔기도이거 기읍 자폐 


* 녕(寧) : 앞에 口가 붙은 글자이다. 


유호(有戶)씨가 이와 같이 단단히 타일러서, 
제법(諸法)을 폐지하고 부도로 돌아 올 것을 권하였으나, 

우(禹)가 완강하게 듣지 아니하고, 
반대로 위협이자 모욕이라 하여 곧 무리를 이끌고 유호씨를 공격하였다. 

(그러나) 수차 이기지 못하고 
마침내 모산(茅山)1) 진지(陣地)에서 죽었다. 
이에 하중(夏衆)들이 비분하여 죽기를 원하는 자가 수 만이였다. 
이는 거의가 우와 함께 치수(治水)를 한 무리들이었다. 

우의 아들 계(啓)2)가 이 대군을 이끌고 
유호씨의 읍(邑)으로 진격하여 오니, 유호씨의 군은 불과 수 천이었다. 

그러나 하나라 군사가 싸우면 반드시 패하여 한번도 전적을 드높이지 못하였다. 
계(啓)가 마침내 두려워서 퇴진하고 다시 공격하지 못하자 그 무리가 격양되었다. 
이에 유호씨가 하나라 백성이 눈이 먼 것을 보고 고치기가 어렵다고 생각하여, 
장차 서남제족(西南諸族)2)을 가르치기 위하여 그 무리를 이끌고 가니 
그 읍(邑)이 자연히 없어졌다. 

* 해설 

1) 모산(茅山) : 
강소성 구용시 율양 지역에 있다. 
도교 상청파의 발원지라고 한다. 
구곡산(句曲山) 이라고도 한다. 
사기에는 우가 10년 동안 동으로 순행을 하다가 회계산에서 죽었다고 하는데 이는 후대 사가들의 곡필이다. 

2) 계(啓) : 하왕조 우왕의 아들로 하왕조의 2대 왕이다. 

서토의 기록은 
‘우는 익(益)에게 왕위를 넘겨주려 했으나 
계(啓)가 백성들의 신임을 얻고 있음을 알고 계에게 물려 주었다. 
왕위에 오르자 제일 먼저 ‘유호부락’이 반기를 들고 독립을 선언하였다. 
계가 군사를 이끌고 유호부락을 토벌함으로서 자신의 기반을 튼튼히 하였으며 
또한 왕위세습제를 확립하였다. 
9년간 재위하다 죽었다‘라고 왜곡된 기록을 하고 있다. 

어찌하였건 부도지에 나오는 유호씨의 역사가 
기록으로 남겨져 있다는 것은 다행한 일이라 하겠다. 

3) 서남제족(西南諸族) : 
서남제족이라 함은 서남이를 말하는 것으로 
오늘날 운남, 귀주, 광서, 광동지역을 의미하는 것 같다. 
구제불능의 서토는 포기하고 서남이를 교화하기 위해 순행을 떠나니 
그곳이 바로 현재 치우한웅을 시조로 모시는 묘족 집단 거주지역 아닌가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