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익인간 238] 단군조선 문화제도 5
(7) 단군조선의 3경 5경 이궁(離宮) 제도
단군조선 진한(眞韓:진조선)의 수도는 차례로 아사달(阿斯達), 백악산아사달(白岳山阿斯達), 장당경(藏唐京:개사원:개원:심양)이다.
첫 수도인 아사달은 송화강(松花江)에 있는 아사달로서 지금의 합이빈(哈爾濱:하얼빈)인데, 하얼빈이라는 말은 하늘물가(天河)라는 말의 이두식 표기가 될 것이다. 송화강은 원래 속말(粟末:소므르)로서 지금의 우수리(牛首里)강의 서쪽에 있는 지류가 된다.
두 번째 수도인 백악산아사달은 지금의 장춘(長春)인데, 이전의 상춘(常春)이며 상춘은 늘봄의 이두식 표기로서 고구려의 수도이던 소위 눌현(訥見)이고, 녹산(鹿山)이 있는 곳으로, 단군조선 전기인 아사달 시대에는 신경(新京)으로서 이궁(離宮)이 었으며 구월산(九月山)이 있는 곳이 된다. 구월산이라는 글자가 곧 아사달산이라는 말의 이두식 표기가 된다.
마지막 수도인 장당경은 지금의 심양(瀋陽)이며, 단군조선 전기와 후기에는 이궁(離宮)이 있던 것이고, 서기전1285년에 제22대 색불루(索弗婁) 천왕(天王)이 조부인 고등왕(高登王)의 사당(廟)을 건립한 곳이기도 하다.
아사달시대의 이궁(離宮)은 장당경, 백악산아사달의 신궁, 영고탑(寧古塔)이 되고, 백악산아사달 시대의 이궁은 장당경, 영고탑(寧古塔)이 되며, 장당경시대의 이궁은 해성(海城)이 된다.
이리하여, 단군조선 진한의 수도는 아사달, 백악산아사달, 장당경, 영고탑, 해성으로 모두 다섯 곳이 된다. 번한의 수도는 오덕지(五德地)로서 다섯 곳이 되고, 마한의 수도는 백아강으로 한 곳이다.
단기고사(檀奇古史)에서는 서기전1112년 영고탑(寧古塔)으로 천도한 이후를 후단조선(後檀朝鮮)으로 분류하고 장당경(藏唐京)에 관한 기록이 없는데, 영고탑은 이궁(離宮)이었던 사실로 보아, 천도기록은 당시 있었던 이궁(離宮)인 영고탑으로 피난하거나 임시수도로 사용한 것을 기록한 것이 된다.
단기고사에서 기자(奇子)조선을 서기전1285년부터 서기전194년까지 기록하고 있어,서기전1122년경에 시작된 망명자인 은왕족(殷王族) 기자(箕子)의 소위 기자(箕子)조선이 아님을 명백히 밝히고 있다.
단군조선 시대에 이궁(離宮)으로 피난한 경우로는, 서기전1984년부터 서기전1982년까지 3년간 상춘으로 피난한 때와, 서기전1250년에 영고탑으로 피난한 때와, 서기전304년 해성(海城)으로 피난한 때로 기록되어 있다.
이궁의 건립의 역사를 보면, 단군조선 초기인 서기전2324년경에 장당경(藏唐京)을 세워 당요(唐堯)를 장치(藏置)하여 정기적으로 조공(朝貢)을 하도록 한 것이 되고, 서기전2049년에 신경(新京)이라고도 불리는 상춘(常春)의 백악산아사달에 건립해 두었던 것이며, 이후 서기전1984년에 구월산(九月山)의 남쪽 기슭에 신궁(新宮)을 창건하게 하였던 것이고, 서기전1345년에 이궁인 영고탑(寧古塔)을 건립하였으며, 서기전425년에 장당경의 남쪽 해성(海城)에 이궁을 건립하였던 것이 된다.
난이나 천재지변 때문에 수도를 잠깐 옮긴 것은 천도(遷都)가 아니라 이궁(離宮)에 피한 것이 된다. 그래서, 아사달시애에 상춘에 피난한 것과 서기전1250년에 영고탑으로 피난한 것과 서기전304년에 해성으로 피한 것은 모두 천도가 아니라 이궁에 피난한 것이 된다.
가. 진한(眞韓)의 서울
1) 아사달(阿斯達:송화강 아사달)
전기 단군조선의 수도가 되는 아사달은 지금의 하얼빈(哈爾濱)에 있었으며, 서기전2333년부터 서기전1286년까지 수도였던 것이 된다. 하얼빈의 하얼의 소리는 하늘을 가리키는 말이고, 빈(濱)은 물가를 뜻하는 글자가 되는 바, 곧 합이빈(哈爾濱)은 하늘물, 하늘물가를 표기한 글자가 된다. 단군조선 시대에는 지금의 송화강을 천하(天河:하늘물)가 된다.
장당경(藏唐京)은 서기전2084년에 제5대 구을(丘乙) 천왕이 행차하여 삼신단(三神壇)을 봉축하고 한화(桓花)를 심었다. 삼신단은 삼신(三神)에게 제(祭)를 올리는 제천단(祭天壇)을 가리킨다. 한화는 한국(桓國)시대부터 신성시(神聖視)하여 온 하늘꽃이며, 무궁화(無窮花)를 가리킨다.
장당경(藏唐京)이라는 말은 글자에서 보듯이 당(唐)을 장치(藏置)한 곳이라는 말로서, 곧 서기전2324년에 당(唐)나라 임금이던 요(堯)를 굴복시키고 안치(安置) 대신 장치(藏置)한 곳이 된다. 즉 당요(唐堯)를 장당경에 안치(安置)나 금치(禁置) 즉 줄곧 머물게 하여 신하로 삼은 것이 아니라, 장치(藏置) 즉 당요로 하여금 천자(天子)로서 천하(天下)의 나라인 당(唐)을 다스리도록 하면서, 정기적으로 단군왕검 천제(天帝)를 배알하고 조공(朝貢)하도록 한 곳이 된다.
상춘(常春) 신경(新京)은 서기전2049년 이전에 건립하였으며, 서기전1984년에 청해 욕살(褥薩) 우착(于捉)의 반란으로 상춘(常春)으로 피난하면서 구월산(九月山) 남쪽 기슭에 신궁(新宮)을 짓게 하였는데, 서기전1984년부터 서기전1282년까지 3년간 피난하였다가 환궁(還宮)하였다. 이 상춘 신궁은 이궁(離宮)이 된다. 서기전1285년부터 후기 단군조선 시대의 수도가 된다.
영고탑 이궁(離宮)은 서기전1345년에 건립되었으며, 후기 단군조선 시대인 서기전1250년에 신독(申督)의 반란으로 피난한 일이 있는데, 서기전1345년부터 서기전426년까지 이궁이 된다.
2) 백악산아사달(녹산(鹿山))
후기 단군조선의 수도가 되는 백악산아사달은 서기전1285년부터 서기전426년까지 수도이며, 상춘 신경(常春 新京=장춘(長春)) 또는 부여(扶餘) 신궁(新宮)이라고 한다. 한편, 북부여의 첫 수도인 난빈(蘭濱)은 웅심산(熊心山) 아래에 있는 것이 되는데, 서기전220년에 백악산아사달에 366간의 신궁(新宮)을 건립하여 천안궁(天安宮)이라 하였다.
전기 단군조선 시대에 이궁(離宮)이었던 상춘(常春) 신경(新京)이 제2차 수도가 된 것이다. 서기전1984년에 상춘의 구월산 남쪽 기슭에 신궁을 지었으며, 서기전1285년에 색불루 천왕이 즉위한 곳은 이 상춘 즉 백악산아사달 중의 녹산(鹿山)이다.
송화강 아사달의 서쪽이 되는 상춘의 아사달을 백악산아사달이라 함은 백악산의 백(白)이 오행(五行)으로 서쪽을 뜻하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전기 단군조선의 이궁이었던 영고탑은 계속하여 후기 단군조선의 이궁이 된다. 후기 단군조선 시대 초기인 서기전1250년에 신독(申督)의 반란으로 이곳에 피난하였다가 환궁한 것이 된다. 서기전426년까지 이궁이 된다.
3) 장당경(藏唐京=蓋斯原)
말기 단군조선의 수도가 되는 장당경은 개사원(蓋斯原) 즉 개원(開原=심양)에 있었다. 서기전425년부터 서기전232년 북부여 시조 해모수 천왕에게 오가공화정(五加共和政)이 철폐되어 접수될 때까지 수도가 된다.
서기전1285년에 제22대 천왕으로 즉위한 색불루(索弗婁) 천왕이 장당경에 행차하여 조부(祖父)인 우현왕(右賢王) 고등(高登)의 묘(廟)를 건립하였는데, 우현왕 고등은 개사원 욕살로서 우현왕이 되었던 것이다. 장당경은 전기와 후기의 단군조선 시대에 이궁이었다가 말기 단군조선의 수도가 되어 제3차 수도가 되는 것이다.
해성(海城) 이궁은 서기전425년에 건립되어 평양이라 불리었다. 서기전304년에 장당경에 화재가 발생하여 해성의 이궁으로 피하였다. 해성의 남쪽에 있는 남해안이 진한(眞韓)의 남해로서 살수(薩水)가 남해로 흘러든다. 즉 살수는 서압록(지금의 요하 중하류)의 동쪽과 동압록(지금의 압록강)의 서쪽에 있는 강으로서 지금의 요동반도 안에 있었던 것이 된다.
나. 마한(馬韓)의 서울 : 백아강(白牙岡:평양)
단군조선의 남쪽을 관할하던 마한의 서울은 백아강(白牙岡)이다. 백아강은 지금의 대동강(大同江) 평양(平壤)이 된다. 서기전2333년부터 단군조선이 사실상 망한 해가 되는 서기전238년경까지 줄곧 수도였던 것으로 된다. 단군조선 삼한(三韓)의 수도가 각각 왕검성(王儉城)이라 기록되는데, 왕검성이란 임검성, 임금성 즉 왕성(王城)이라는 말이다.
모란봉(牧丹峯) 이궁(離宮)은 서기전2109년에 모란봉 중턱에 건립되었는데, 진한의 천왕(天王)이 순시할 때 머무는 별궁(別宮)으로 삼은 곳이기도 하다.
다. 번한(番韓)의 서울
번한의 서울은 험독(險瀆), 낭야성(琅耶城), 탕지(湯池), 개평(蓋平), 한성(汗城) 등 모두 5곳으로 오덕지(五德地)라 불리운다. 모두 낭야성 외는 모두 번한 요중(遼中) 12성(城)에 해당한다. 번한의 수도는 모두 왕검성으로 불린다.
1) 험독(險瀆)
단군조선 초기인 서기전2333년부터 서기전2050년경 이전까지, 이후 대부분의 시기에 수도가 된다. 험독은 지금의 산해관(山海關) 자리인 것으로 추정된다.
험독은 번한 요중(遼中) 12성의 하나이다. 험독은 단군조선 초기부터 위씨조선(衛氏朝鮮)에 이르기까지 가장 중요한 수도로 삼았던 곳이 된다. 번한 5경 중에서 동경(東京)에 해당한다.
2) 가한성(可汗城=낭야성)
낭야성(琅耶城)을 가한성이라 한다. 서기전2311년에 개축하였고, 서기전2267년경에 우순을 감독하던 관청인 감우(監虞)를 설치한 곳이기도 하다. 산동반도 남쪽에 위치 하는데, 지금의 청도(靑島:칭다오)가 된다.
서기전2267년 이후 서기전2247년까지 20년 동안 태자부루가 5년마다 순행하면서 우순(虞舜)으로부터 치수와 관련하여 우공(虞貢)의 사례(事例)를 보고받았던 곳이며, 번한 5경 중에서 남경(南京)에 해당한다.
3) 탕지(보)[湯池(堡)]
탕지(湯池)는 번한 요중(遼中) 12성의 하나로서 옛 안덕향 즉 구안덕향(舊安德鄕)이라 불린다. 서기전2050년 이전 어느때부터 서기전2050년경까지 번한의 수도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탕지 즉 탕지보는 고구려의 안시성(安市城) 자리가 되는데, 갈석산(碣石山)의 북쪽으로 지금의 천안(遷安) 지역의 난하(灤河) 건너 서쪽에 위치한 것이 된다. 서기전339년경에 연(燕)나라가 동쪽으로 침범하였다는 안촌홀(安村忽)이 고구려의 안시성이 있는 곳으로서 탕지(湯池)를 포함하는 군 단위 크기의 땅이 될 것이다. 안촌(安村)과 안시(安市)는 안벌(안전한 벌판 또는 안(內)의 벌)이라는 말을 표기한 것이 될 것이다.
4) 안덕향(安德鄕)
안덕향은 번한 요중 12성의 하나인 개평(蓋平)으로서 서기전2049년에 번한의 수도였던 것이 된다. 그 이전의 수도였던 탕지를 구안덕향 즉 옛 안덕향이라 한 것이 되고, 개평은 그냥 안덕향이라 한 것이 된다.
개평(蓋平)은 지금의 개평(開平)이며 당산(唐山)의 북쪽에 위치하고 번한 5경 중에서 중경(中京)에 해당한다.
5) 한성(汗城:番汗城)
서기전323년에 번조선의 읍차(邑借) 기후(箕詡)가 번조선왕 자리가 비어 있는 틈에 선점(先占)하여 번조선왕이라 칭하였던 곳이다. 번조선왕 기후는 나중에 원래의 수도였던 동쪽의 험독(險瀆)으로 옮긴 것이 된다.
한성(汗城)은 번한 요중 12성의 하나이며, 고구려의 요서12성의 하나인 한성(韓城)이 된다. 서쪽에 위치하여 번한 5경 중에서 서경(西京)에 해당한다. 그리하여 읍차 기후(箕侯)가 살던 곳은 번조선의 서쪽 지역으로서 한성(汗城) 부근이 되는 것인데, 한성은 지금의 고하(沽河) 하류지역 또는 영정하(永定河)와 고하(沽河) 사이의 하류지역 땅에 있었던 것이 된다.
그리고 번조선에 살고 있는 기씨족(箕氏族)은 원래 서기전650년경 태항산 서쪽의 서화(西華)를 떠나 동쪽으로 이주한 족속으로서, 수유족(須臾族)이라 불리기도 한다. 수유(須臾)라는 말은 서기전1120년에 주무왕(周武王)을 피하여 단군조선의 영역이던 태항산 서쪽의 태원(太原) 이북의 땅에 정착한 은(殷) 기자(箕子)의 이름인 서여(胥餘)와 같은 소리를 딴 글자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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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프로필] 조홍근(曺洪根, 52세). 한문화재단(桓文化財團) 총재. 트위트-페이스북 역사당 부총재. 현 법무사.
30여년 족보(族譜)와 한중일(韓中日) 역사를 연구해 오면서, 부도지(符都誌), 한단고기(桓檀古記), 규원사화(揆園史話), 단기고사(檀奇古史) 등 귀중한 역사자료를 통하여, 우리역사 1만년을 넘어 마고(麻姑) 시대를 포함한 7만2천390년 역사를 밝히고 있음.
1. 역법(曆法)의 시초는 마고성(麻姑城)의 황궁씨(黃穹氏) 시대인 서기전24418년 계해년(癸亥年)임을 밝혔으며, 서기전70378년 계해년이 마고(麻姑) 기원(紀元:천부 天符)임을 밝혔음.
2. 나반(那般:那般尊者:獨聖者)이 한국(桓國)시대 한인씨(桓因氏) 이전의 임금이던 유인씨(有因氏)이며, 한인씨 7대(代)가 약1,000년을 다스렸던 것임을 밝혔음.
3. 윷놀이판의 모습이 천부경(天符經)의 역(易), 역법(曆法), 음양오행(陰陽五行), 단군조선의 정치행정구조를 나타낸 것임을 밝혔으며, 태호복희 8괘역과 윷놀이판의 역이 지구의 자전과 공전을 기반으로 한 역(易)임을 밝혔음.
4. 천제(天帝), 천황(天皇:天王), 천군(天君), 천공(天公), 천후(天侯), 천백(天伯), 천자(天子), 천남(天男)의 위계질서를 최초로 밝혔으며, 천제자(天帝子)와 천자(天子)의 차이점을 최초로 밝혔음.
5. 태호복희씨(太皞伏羲氏)가 일반 천자(天子)가 아니라 천지인(天地人) 제사장인 천군(天君)임을 밝혔음. 6. 아리랑(阿里嶺) 민요의 원천이 되는 최초의 역사적 사실을 밝혔음.
7. 고대중국의 요순우(堯舜禹)와 고대일본의 신무왕(神武王)이 단군조선의 반역자(反逆者)이면서 제후격의 천자임을 밝혔음.
8. 우비(禹碑, 우 치수기념 부루공덕비)의 비문을 국내 최초로 역사적 해석을 하여, 서기전2267년 이후 우가 치수에 성공한 후 치수법을 전수해 준 단군조선 태자부루의 공덕을 새긴 것임을 밝혔음.
9. 일본 국조신(國祖神)인 천조대신(天照大神)의 사당인 이세신궁(伊勢神宮)에 소장된 원시한글 축문을 국내 최초로 완벽 해독하고, 요하유로 기록된 천조대신이 단군조선 두지주 예읍의 추장의 후손임을 역사적으로 밝혔음.
10. 명도전(明刀錢) 최초 해독학자 허대동선생<저서 고조선문자>의 가림토(加臨土) 해독의 검증에 참여하여 첨수도, 명도전이 단군조선의 화폐이며, 거기에 새겨진 문자가 단군조선의 문자임을 밝혔음. 그 외 다수 ----------
![]() | 2012년 02월 28일 (화) 09:38:01 | 천산(天山) ![]() | ![]() |
단군조선 진한(眞韓:진조선)의 수도는 차례로 아사달(阿斯達), 백악산아사달(白岳山阿斯達), 장당경(藏唐京:개사원:개원:심양)이다.
첫 수도인 아사달은 송화강(松花江)에 있는 아사달로서 지금의 합이빈(哈爾濱:하얼빈)인데, 하얼빈이라는 말은 하늘물가(天河)라는 말의 이두식 표기가 될 것이다. 송화강은 원래 속말(粟末:소므르)로서 지금의 우수리(牛首里)강의 서쪽에 있는 지류가 된다.
두 번째 수도인 백악산아사달은 지금의 장춘(長春)인데, 이전의 상춘(常春)이며 상춘은 늘봄의 이두식 표기로서 고구려의 수도이던 소위 눌현(訥見)이고, 녹산(鹿山)이 있는 곳으로, 단군조선 전기인 아사달 시대에는 신경(新京)으로서 이궁(離宮)이 었으며 구월산(九月山)이 있는 곳이 된다. 구월산이라는 글자가 곧 아사달산이라는 말의 이두식 표기가 된다.
마지막 수도인 장당경은 지금의 심양(瀋陽)이며, 단군조선 전기와 후기에는 이궁(離宮)이 있던 것이고, 서기전1285년에 제22대 색불루(索弗婁) 천왕(天王)이 조부인 고등왕(高登王)의 사당(廟)을 건립한 곳이기도 하다.
아사달시대의 이궁(離宮)은 장당경, 백악산아사달의 신궁, 영고탑(寧古塔)이 되고, 백악산아사달 시대의 이궁은 장당경, 영고탑(寧古塔)이 되며, 장당경시대의 이궁은 해성(海城)이 된다.
이리하여, 단군조선 진한의 수도는 아사달, 백악산아사달, 장당경, 영고탑, 해성으로 모두 다섯 곳이 된다. 번한의 수도는 오덕지(五德地)로서 다섯 곳이 되고, 마한의 수도는 백아강으로 한 곳이다.
단기고사(檀奇古史)에서는 서기전1112년 영고탑(寧古塔)으로 천도한 이후를 후단조선(後檀朝鮮)으로 분류하고 장당경(藏唐京)에 관한 기록이 없는데, 영고탑은 이궁(離宮)이었던 사실로 보아, 천도기록은 당시 있었던 이궁(離宮)인 영고탑으로 피난하거나 임시수도로 사용한 것을 기록한 것이 된다.
단기고사에서 기자(奇子)조선을 서기전1285년부터 서기전194년까지 기록하고 있어,서기전1122년경에 시작된 망명자인 은왕족(殷王族) 기자(箕子)의 소위 기자(箕子)조선이 아님을 명백히 밝히고 있다.
단군조선 시대에 이궁(離宮)으로 피난한 경우로는, 서기전1984년부터 서기전1982년까지 3년간 상춘으로 피난한 때와, 서기전1250년에 영고탑으로 피난한 때와, 서기전304년 해성(海城)으로 피난한 때로 기록되어 있다.
이궁의 건립의 역사를 보면, 단군조선 초기인 서기전2324년경에 장당경(藏唐京)을 세워 당요(唐堯)를 장치(藏置)하여 정기적으로 조공(朝貢)을 하도록 한 것이 되고, 서기전2049년에 신경(新京)이라고도 불리는 상춘(常春)의 백악산아사달에 건립해 두었던 것이며, 이후 서기전1984년에 구월산(九月山)의 남쪽 기슭에 신궁(新宮)을 창건하게 하였던 것이고, 서기전1345년에 이궁인 영고탑(寧古塔)을 건립하였으며, 서기전425년에 장당경의 남쪽 해성(海城)에 이궁을 건립하였던 것이 된다.
난이나 천재지변 때문에 수도를 잠깐 옮긴 것은 천도(遷都)가 아니라 이궁(離宮)에 피한 것이 된다. 그래서, 아사달시애에 상춘에 피난한 것과 서기전1250년에 영고탑으로 피난한 것과 서기전304년에 해성으로 피한 것은 모두 천도가 아니라 이궁에 피난한 것이 된다.
가. 진한(眞韓)의 서울
1) 아사달(阿斯達:송화강 아사달)
전기 단군조선의 수도가 되는 아사달은 지금의 하얼빈(哈爾濱)에 있었으며, 서기전2333년부터 서기전1286년까지 수도였던 것이 된다. 하얼빈의 하얼의 소리는 하늘을 가리키는 말이고, 빈(濱)은 물가를 뜻하는 글자가 되는 바, 곧 합이빈(哈爾濱)은 하늘물, 하늘물가를 표기한 글자가 된다. 단군조선 시대에는 지금의 송화강을 천하(天河:하늘물)가 된다.
장당경(藏唐京)은 서기전2084년에 제5대 구을(丘乙) 천왕이 행차하여 삼신단(三神壇)을 봉축하고 한화(桓花)를 심었다. 삼신단은 삼신(三神)에게 제(祭)를 올리는 제천단(祭天壇)을 가리킨다. 한화는 한국(桓國)시대부터 신성시(神聖視)하여 온 하늘꽃이며, 무궁화(無窮花)를 가리킨다.
장당경(藏唐京)이라는 말은 글자에서 보듯이 당(唐)을 장치(藏置)한 곳이라는 말로서, 곧 서기전2324년에 당(唐)나라 임금이던 요(堯)를 굴복시키고 안치(安置) 대신 장치(藏置)한 곳이 된다. 즉 당요(唐堯)를 장당경에 안치(安置)나 금치(禁置) 즉 줄곧 머물게 하여 신하로 삼은 것이 아니라, 장치(藏置) 즉 당요로 하여금 천자(天子)로서 천하(天下)의 나라인 당(唐)을 다스리도록 하면서, 정기적으로 단군왕검 천제(天帝)를 배알하고 조공(朝貢)하도록 한 곳이 된다.
상춘(常春) 신경(新京)은 서기전2049년 이전에 건립하였으며, 서기전1984년에 청해 욕살(褥薩) 우착(于捉)의 반란으로 상춘(常春)으로 피난하면서 구월산(九月山) 남쪽 기슭에 신궁(新宮)을 짓게 하였는데, 서기전1984년부터 서기전1282년까지 3년간 피난하였다가 환궁(還宮)하였다. 이 상춘 신궁은 이궁(離宮)이 된다. 서기전1285년부터 후기 단군조선 시대의 수도가 된다.
영고탑 이궁(離宮)은 서기전1345년에 건립되었으며, 후기 단군조선 시대인 서기전1250년에 신독(申督)의 반란으로 피난한 일이 있는데, 서기전1345년부터 서기전426년까지 이궁이 된다.
2) 백악산아사달(녹산(鹿山))
후기 단군조선의 수도가 되는 백악산아사달은 서기전1285년부터 서기전426년까지 수도이며, 상춘 신경(常春 新京=장춘(長春)) 또는 부여(扶餘) 신궁(新宮)이라고 한다. 한편, 북부여의 첫 수도인 난빈(蘭濱)은 웅심산(熊心山) 아래에 있는 것이 되는데, 서기전220년에 백악산아사달에 366간의 신궁(新宮)을 건립하여 천안궁(天安宮)이라 하였다.
전기 단군조선 시대에 이궁(離宮)이었던 상춘(常春) 신경(新京)이 제2차 수도가 된 것이다. 서기전1984년에 상춘의 구월산 남쪽 기슭에 신궁을 지었으며, 서기전1285년에 색불루 천왕이 즉위한 곳은 이 상춘 즉 백악산아사달 중의 녹산(鹿山)이다.
송화강 아사달의 서쪽이 되는 상춘의 아사달을 백악산아사달이라 함은 백악산의 백(白)이 오행(五行)으로 서쪽을 뜻하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전기 단군조선의 이궁이었던 영고탑은 계속하여 후기 단군조선의 이궁이 된다. 후기 단군조선 시대 초기인 서기전1250년에 신독(申督)의 반란으로 이곳에 피난하였다가 환궁한 것이 된다. 서기전426년까지 이궁이 된다.
3) 장당경(藏唐京=蓋斯原)
말기 단군조선의 수도가 되는 장당경은 개사원(蓋斯原) 즉 개원(開原=심양)에 있었다. 서기전425년부터 서기전232년 북부여 시조 해모수 천왕에게 오가공화정(五加共和政)이 철폐되어 접수될 때까지 수도가 된다.
서기전1285년에 제22대 천왕으로 즉위한 색불루(索弗婁) 천왕이 장당경에 행차하여 조부(祖父)인 우현왕(右賢王) 고등(高登)의 묘(廟)를 건립하였는데, 우현왕 고등은 개사원 욕살로서 우현왕이 되었던 것이다. 장당경은 전기와 후기의 단군조선 시대에 이궁이었다가 말기 단군조선의 수도가 되어 제3차 수도가 되는 것이다.
해성(海城) 이궁은 서기전425년에 건립되어 평양이라 불리었다. 서기전304년에 장당경에 화재가 발생하여 해성의 이궁으로 피하였다. 해성의 남쪽에 있는 남해안이 진한(眞韓)의 남해로서 살수(薩水)가 남해로 흘러든다. 즉 살수는 서압록(지금의 요하 중하류)의 동쪽과 동압록(지금의 압록강)의 서쪽에 있는 강으로서 지금의 요동반도 안에 있었던 것이 된다.
나. 마한(馬韓)의 서울 : 백아강(白牙岡:평양)
단군조선의 남쪽을 관할하던 마한의 서울은 백아강(白牙岡)이다. 백아강은 지금의 대동강(大同江) 평양(平壤)이 된다. 서기전2333년부터 단군조선이 사실상 망한 해가 되는 서기전238년경까지 줄곧 수도였던 것으로 된다. 단군조선 삼한(三韓)의 수도가 각각 왕검성(王儉城)이라 기록되는데, 왕검성이란 임검성, 임금성 즉 왕성(王城)이라는 말이다.
모란봉(牧丹峯) 이궁(離宮)은 서기전2109년에 모란봉 중턱에 건립되었는데, 진한의 천왕(天王)이 순시할 때 머무는 별궁(別宮)으로 삼은 곳이기도 하다.
다. 번한(番韓)의 서울
번한의 서울은 험독(險瀆), 낭야성(琅耶城), 탕지(湯池), 개평(蓋平), 한성(汗城) 등 모두 5곳으로 오덕지(五德地)라 불리운다. 모두 낭야성 외는 모두 번한 요중(遼中) 12성(城)에 해당한다. 번한의 수도는 모두 왕검성으로 불린다.
1) 험독(險瀆)
단군조선 초기인 서기전2333년부터 서기전2050년경 이전까지, 이후 대부분의 시기에 수도가 된다. 험독은 지금의 산해관(山海關) 자리인 것으로 추정된다.
험독은 번한 요중(遼中) 12성의 하나이다. 험독은 단군조선 초기부터 위씨조선(衛氏朝鮮)에 이르기까지 가장 중요한 수도로 삼았던 곳이 된다. 번한 5경 중에서 동경(東京)에 해당한다.
2) 가한성(可汗城=낭야성)
낭야성(琅耶城)을 가한성이라 한다. 서기전2311년에 개축하였고, 서기전2267년경에 우순을 감독하던 관청인 감우(監虞)를 설치한 곳이기도 하다. 산동반도 남쪽에 위치 하는데, 지금의 청도(靑島:칭다오)가 된다.
서기전2267년 이후 서기전2247년까지 20년 동안 태자부루가 5년마다 순행하면서 우순(虞舜)으로부터 치수와 관련하여 우공(虞貢)의 사례(事例)를 보고받았던 곳이며, 번한 5경 중에서 남경(南京)에 해당한다.
3) 탕지(보)[湯池(堡)]
탕지(湯池)는 번한 요중(遼中) 12성의 하나로서 옛 안덕향 즉 구안덕향(舊安德鄕)이라 불린다. 서기전2050년 이전 어느때부터 서기전2050년경까지 번한의 수도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탕지 즉 탕지보는 고구려의 안시성(安市城) 자리가 되는데, 갈석산(碣石山)의 북쪽으로 지금의 천안(遷安) 지역의 난하(灤河) 건너 서쪽에 위치한 것이 된다. 서기전339년경에 연(燕)나라가 동쪽으로 침범하였다는 안촌홀(安村忽)이 고구려의 안시성이 있는 곳으로서 탕지(湯池)를 포함하는 군 단위 크기의 땅이 될 것이다. 안촌(安村)과 안시(安市)는 안벌(안전한 벌판 또는 안(內)의 벌)이라는 말을 표기한 것이 될 것이다.
4) 안덕향(安德鄕)
안덕향은 번한 요중 12성의 하나인 개평(蓋平)으로서 서기전2049년에 번한의 수도였던 것이 된다. 그 이전의 수도였던 탕지를 구안덕향 즉 옛 안덕향이라 한 것이 되고, 개평은 그냥 안덕향이라 한 것이 된다.
개평(蓋平)은 지금의 개평(開平)이며 당산(唐山)의 북쪽에 위치하고 번한 5경 중에서 중경(中京)에 해당한다.
5) 한성(汗城:番汗城)
서기전323년에 번조선의 읍차(邑借) 기후(箕詡)가 번조선왕 자리가 비어 있는 틈에 선점(先占)하여 번조선왕이라 칭하였던 곳이다. 번조선왕 기후는 나중에 원래의 수도였던 동쪽의 험독(險瀆)으로 옮긴 것이 된다.
한성(汗城)은 번한 요중 12성의 하나이며, 고구려의 요서12성의 하나인 한성(韓城)이 된다. 서쪽에 위치하여 번한 5경 중에서 서경(西京)에 해당한다. 그리하여 읍차 기후(箕侯)가 살던 곳은 번조선의 서쪽 지역으로서 한성(汗城) 부근이 되는 것인데, 한성은 지금의 고하(沽河) 하류지역 또는 영정하(永定河)와 고하(沽河) 사이의 하류지역 땅에 있었던 것이 된다.
그리고 번조선에 살고 있는 기씨족(箕氏族)은 원래 서기전650년경 태항산 서쪽의 서화(西華)를 떠나 동쪽으로 이주한 족속으로서, 수유족(須臾族)이라 불리기도 한다. 수유(須臾)라는 말은 서기전1120년에 주무왕(周武王)을 피하여 단군조선의 영역이던 태항산 서쪽의 태원(太原) 이북의 땅에 정착한 은(殷) 기자(箕子)의 이름인 서여(胥餘)와 같은 소리를 딴 글자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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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프로필] 조홍근(曺洪根, 52세). 한문화재단(桓文化財團) 총재. 트위트-페이스북 역사당 부총재. 현 법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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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역법(曆法)의 시초는 마고성(麻姑城)의 황궁씨(黃穹氏) 시대인 서기전24418년 계해년(癸亥年)임을 밝혔으며, 서기전70378년 계해년이 마고(麻姑) 기원(紀元:천부 天符)임을 밝혔음.
2. 나반(那般:那般尊者:獨聖者)이 한국(桓國)시대 한인씨(桓因氏) 이전의 임금이던 유인씨(有因氏)이며, 한인씨 7대(代)가 약1,000년을 다스렸던 것임을 밝혔음.
3. 윷놀이판의 모습이 천부경(天符經)의 역(易), 역법(曆法), 음양오행(陰陽五行), 단군조선의 정치행정구조를 나타낸 것임을 밝혔으며, 태호복희 8괘역과 윷놀이판의 역이 지구의 자전과 공전을 기반으로 한 역(易)임을 밝혔음.
4. 천제(天帝), 천황(天皇:天王), 천군(天君), 천공(天公), 천후(天侯), 천백(天伯), 천자(天子), 천남(天男)의 위계질서를 최초로 밝혔으며, 천제자(天帝子)와 천자(天子)의 차이점을 최초로 밝혔음.
5. 태호복희씨(太皞伏羲氏)가 일반 천자(天子)가 아니라 천지인(天地人) 제사장인 천군(天君)임을 밝혔음. 6. 아리랑(阿里嶺) 민요의 원천이 되는 최초의 역사적 사실을 밝혔음.
7. 고대중국의 요순우(堯舜禹)와 고대일본의 신무왕(神武王)이 단군조선의 반역자(反逆者)이면서 제후격의 천자임을 밝혔음.
8. 우비(禹碑, 우 치수기념 부루공덕비)의 비문을 국내 최초로 역사적 해석을 하여, 서기전2267년 이후 우가 치수에 성공한 후 치수법을 전수해 준 단군조선 태자부루의 공덕을 새긴 것임을 밝혔음.
9. 일본 국조신(國祖神)인 천조대신(天照大神)의 사당인 이세신궁(伊勢神宮)에 소장된 원시한글 축문을 국내 최초로 완벽 해독하고, 요하유로 기록된 천조대신이 단군조선 두지주 예읍의 추장의 후손임을 역사적으로 밝혔음.
10. 명도전(明刀錢) 최초 해독학자 허대동선생<저서 고조선문자>의 가림토(加臨土) 해독의 검증에 참여하여 첨수도, 명도전이 단군조선의 화폐이며, 거기에 새겨진 문자가 단군조선의 문자임을 밝혔음. 그 외 다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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