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익인간 240] 단군조선 문화제도 7
(8) 순행(巡行)제도
서기전7197년 이전에 파미르고원의 마고성(麻姑城)을 떠나 동서남북으로 사방분거한 이후로, 마고후예(麻姑後裔)의 장손인 황궁씨(黃穹氏)는 제족(諸族)의 장(長)으로서 장자(長子)에게 정사(政事)를 돌보게 하고, 차자(次子)와 삼자(三子)로 하여금 무리를 이끌고 사방(四方)의 제족(諸族)을 순행(巡行)하도록 하였다.
이러한 순행제도는 유인씨(有因氏)의 한국(桓國)시대와 한인씨(桓因氏)의 한국시대를 거쳐 배달나라에 계승되었는데, 이후 한동안 순행의 일이 뜸해졌다. 이는 아마도 서기전2698년경 황제헌원(黃帝軒轅)이 일으킨 전란으로 인하여 배달나라 조정(朝廷)이 돌볼 여유가 없었던 것이 되는데, 다만 제족들을 초청하여 회합(會合)하는 신시(神市)제도는 계속 이어진 것이 된다.
배달나라 시대에 이미 무여율법(無餘律法)이라는 법이 있었으며, 이 무여율법을 조절하는 환부(鰥夫)라는 직책이 있었고, 그 아래 권사(權士) 등의 직책을 두어 문제가 발생한 지역을 순행(巡行)하며 다스렸는데, 이러한 제도가 단군조선에도 그대로 이어진 것이 된다. 환부(鰥夫)는 종교의 역할을 하는 직책으로 견주면 신부(神父)에 해당하고 나라의 벼슬에 견주면 어사(御使)에 해당하는 것이 된다.
서기전2220년경 단군조선 초기에 환부(鰥夫)였던 순(舜)의 아버지 유호씨(有戶氏)는 하(夏)나라 우(禹)와 계(啓)에게 천도(天道)를 가르치는 것을 포기하고 서남쪽으로 전교(傳敎)한 사실이 기록되고 있다.
유호씨는 단군왕검보다 100여세가 많았다. 즉, 서기전2470년경 출생하였으며, 그 아들 순(舜)은 서기전2343년에 출생하였고, 서기전2324년경 유호씨는 단군왕검 천제(天帝)의 명(命)을 받아 환부였던 순과 함께 환부, 권사 100여명을 통솔하여 당요(唐堯)를 토벌하러 갔다.
이때 요임금은 정세를 알아차리고 곧바로 굴복(屈服)하고서 유호씨를 안심시켰던 것이며, 이후 약10년에 걸쳐 순(舜)을 꾀었고 두 딸까지 시집을 보내면서 자기 사람으로 만들었으며, 결국 순을 등용하여 제2인자 자리에 앉히게 되었던 것이다.
요임금은 순의 나이 30세이던 서기전2314년에 등용하고, 50세인 서기전2294년에 섭정(攝政)을 맡겼으며, 서기전2288년에 9년홍수를 당하였고, 서기전2284년에는 결국 순(舜)이 요임금을 유폐(幽閉)시키고 강압적으로 선양(禪讓)을 받아 천자(天子) 자리를 찬탈하였던 것이다. 이에 우순(虞舜)은 곤(鯤)이 치수를 담당한지 9년째인 서기전2280년에 곤을 우산(羽山)에서 처형하고 그 아들 우(禹)에게 사공(司空)의 벼슬을 주어 치수를 맡겼다.
우(禹)가 치수를 담당한지 13년인 서기전2267년에 도산회의(塗山會議)에서 단군조선의 사자(使者) 태자부루에게서 오행치수법(五行治水法)을 전수받고 치수에 성공하게 되었고, 서기전2240년에 태자부루가 천왕(天王)에 즉위하자 우순(虞舜)이 서기전2247년경 이후 단군조선을 반역하여 남국(藍國)의 이웃에 설치하였던 유주(幽州)와 영주(營州)를 정벌하여 각각 제후를 봉하였던 것이다.
서기전2224년경 유호씨의 작은 아들 유상(有象)과 단군조선의 후원을 얻고 있던 우(禹)가 협공(協攻)으로 순(舜)을 공격하였고, 드디어 우의 군사가 순을 죽였다. 그러나 우는 권력에 눈이 멀어 곧 단군조선을 반역하고 독단(獨壇)을 차렸다. 이에 유호씨(중국기록에서는 瞽叟;有扈氏)가 우(禹)를 도리(道理)로서 설득하였으나 우는 듣지 아니하였으며, 우의 아들 계도 가르침을 듣지 않고 그 백성들과 함께 항거하니, 서기전2195년경 이에 유호씨는 더 이상 하나라 백성들의 우매함을 깨우칠 수 없다 포기하고, 월식주(月息州:파미르고원 서쪽, 메소포타미아지역 등)와 성생주(星生州:파미르고원 남쪽, 인도지역)로 전교(傳敎)를 떠났다.
단군조선은 유호씨의 집안에게 교부(敎部) 즉 사도(司徒)의 벼슬을 주었다. 순의 아들 상균(商均)은 단군조선으로 돌아와 사도(司徒)를 지냈다.
서기전2200년경의 메소포타미아지역은 수메르족의 도시국가 시대의 말기에 해당하고, 이때 인도지역은 소위 드라비다족의 시대에 해당하는데, 두 지역은 고탑(高塔)과 층대(層臺)를 만드는 풍습을 가지고 있었는데, 인도지역에서 많이 만들던 고탑은 마고(麻姑)시대의 소(巢)를 이은 것이 되고, 수메르지역의 층대는 지구라트 또는 피라미드 모양의 제단(祭壇)으로서 궁(穹)에 해당한다. 그러나, 두 지역 모두 그 만드는 유래(由來)를 알지 못하였던 것이 된다.
역사적으로 수메르족과 드라비다족은 마고후예(麻姑後裔)인 백소씨(白巢氏)와 흑소씨(黑巢氏)의 후손이며, 백소씨와 흑소씨는 서기전8000년경 이전의 파미르고원 마고성(麻姑城) 시대에 소(巢)를 만들고 지키던 씨족(氏族)이다.
유호씨의 전교(傳敎)는 서기전7197년경 마고성(麻姑城) 분거이래로 계속적으로 사방을 순행하면서 교류를 하였다는 단적인 증거가 된다. 유호씨는 단군조선의 사자로서 천사(天使)로 비유된다. 유호씨는 서기전2470년경부터 서기전2200년경까지 약270년 이상을 산 것으로 되는데, 유호씨의 아들인 유상(有象)이 유호씨의 대를 이은 것이 되고, 유호씨가 씨족명으로 쓰인 것이라 할 때에 유상도 유호씨라고 불리울 수 있고, 이에 유호씨의 연수(年數)가 200세 이상 된다는 것이 합산한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으므로 이상할 것은 없다.
순(舜)임금과 이복동생인 유상(有象)의 관계에 관한 경기도 화악산 설화가 있다. 이 설화에서는 단군(檀君)의 친형이 중국의 천자(天子)이며, 우리나라를 넘보자 단군의 두 아내가 중국 땅에 홍수가 나게 하려다 우리나라에도 홍수가 나 돌로 된 배를 타고 화악산까지 왔다라고 한다.
여기서 단군(檀君)은 단군조선의 사자(使者)가 되는 유상(有象)을 가리키는 것이 되고, 단군의 친형(親兄)은 유상의 친형(親兄:실제 이복형)인 우(虞)나라 천자(天子) 순(舜)을 가리킨다. 유상은 단군조선의 사자로 활동하였으므로 단군이라 비유되어 상징화된 것이다. 또, 여기서 중국의 홍수는 서기전2288년에 시작된 9년홍수를 가리키며, 우리나라 홍수는 서기전2284년에 일어난 것을 가리키는데 이때 풍백(風伯) 팽우(彭虞)가 치수를 잘하여 우수주(牛首州)에 기념비(돌)를 세웠던 것이다.
이 경기도 화악산 설화는 단군조선 초기에 우리와 고대중국의 천자가 되었던 순(舜) 사이에 있었던, 서기전2288년 대홍수 이후의 역사가 상호연관된 이야기로서 압축되어 있는 것이 된다.
신라시대에 마랑(馬郞)이라는 제도가 있었다. 서기400년경에 신라의 박제상(朴堤上)이 지은 부도지(符都誌)에, 남아(男兒) 나이 20세가 된 아름답고 말을 잘하는 사람을 택하여 마랑이라는 직을 주고 명령을 받들어 원행(遠行)하게 하였는데, 혹 성생월식(星生月息)의 옛 땅에 나아가며, 혹 운해천산(雲海天山)의 여러 지역에 가니 이 원행은 부도(符都) 수신(修身)의 유제(遺制)였다(男兒年二十質美而善辯者 擇授馬郞職 奉命遠行 或出於星生月息之古地 或往於雲海天山之諸城 此行符都修信之遺制也)라고 기록되고 있다. 신라시대에 고승(高僧)들이 서역(西域)을 순행하고 돌아와 나라의 중책을 맡은 것도 이 마랑의 제도를 이은 것이 된다.
여기서 원행(遠行)은 배우거나 구하기 위하여 먼 지역으로 가는 것을 가리킨다. 성생월식의 옛 땅이라 할 때의 성생(星生)의 땅은 파미르고원 남쪽 지역으로서 지금의 인도지역이 되며, 월식(月息)의 땅은 파미르고원 서쪽 지역으로서 소위 메소포타미아 지역이 된다. 또, 운해천산 지역 중 운해(雲海)의 땅은 파미르고원 동쪽 지역으로서 티벳 지역의 동쪽으로 황하(黃河)와 양자강 하류에 이르는 지역이 되고, 천산(天山)의 지역은 파미르고원 동북 지역으로서 황하 이북으로 지금의 천산산맥이 뻗어나간 시베리아, 몽골, 만주 등의 대황원(大荒原) 지역이 된다.
단적으로 이 신라의 마랑이라는 제도는, 단군조선 시대의 심신수련 단체이던 천왕랑(天王郞)인 국자랑(國子郞) 즉 천지화랑(天指花郞)의 제도와 멀리 가는 순행(巡行)제도가 혼합된 형태가 된다.
(9) 신시(神市) 조시(朝市) 해시(海市) 제도
단군조선은 매 10년마다 신시(神市)를 열어 회강(會講)하고 교역(交易)하였다. 즉 신시는 사방의 제족들이 모여서 종교적, 정치적 행사를 벌이고, 문물을 교류하는 등의 역할을 하였던 것이 된다.
신시(神市)는 서기전3897년에 한웅(桓雄)이 한국(桓國)시대의 제도를 시행하여 사해(四海)의 제족이 회합하고 교류하는 장소로서 나라의 수도로 삼은 곳이기도 하다.
신라시대 박제상이 지은 부도지(符都誌)에서는, 임검씨(壬儉氏:시조 檀君王儉)가 나무를 베어 뗏목 8만을 만들어서 신부(神符)를 새겨 천지(天池)의 물에 흘려 보내 사해(四海)의 제족(諸族)을 초청하였으며, 이에 제족이 그 신부가 새겨진 뗏목을 얻어서 보고 차례로 모여 들어 박달나무 숲에 신시(神市)를 크게 열었으며, 마고(麻姑)의 계보(系譜)를 닦아 그 족속을 밝히고, 천부의 음에 준하여 그 어문을 정리 하였는데, 매 10년마다 반드시 신시를 여니 이에 어문(語文)이 같아지고 천하가 하나로 되었다라고 적고 있다.
신시(神市)는 순 우리말로 즉 이두식으로 풀면 검벌이 되고 신(神)들의 들판, 신(神)들의 도시가 되는데, 곧 배달나라와 단군조선 시대에 있었던 정치적, 종교적 행사의 중심지인 것을 알 수가 있다.
조시(朝市)는 육지에 설치한 교역장소이며, 해시(海市)는 바닷가에 설치한 교역장소가 된다. 부도지에서는, 예(澧)와 양(陽)이 교차하는 중심지에 조시(朝市)를 설치하고 팔택(八澤)에 해시(海市)를 열어 매년 10월에 조제(朝祭)를 행하니 사해의 제족이 모두 지방 특산물을 바쳤으며, 산악의 제족은 사슴과 양(羊)을 바치고, 해양 제족은 물고기(魚)와 조개를 바쳤는데 이를 조선제(朝鮮祭)라 하였다라고 적고 있다 또, 곧 희생제(犧牲祭)를 행하여 인간으로 하여금 반성하게 하고 공(功)에 보답하게 하였으며, 언제나 세제(歲祭) 때에는 물화(物貨)가 폭주하므로, 교역(交易)의 법(法)을 시행하였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여기서 조시와 해시는 종교적, 경제적 중심지 즉 제천행사의 중심지이자 물물교역 의 중심지임에 틀림없다. 조시는 산악 즉 육지 생산물을 교역하는 중심지이고, 해시는 해산물을 교역하는 중심지가 되는 것이다. 매년 10월에 조제(朝祭)를 열였다 하니 이는 10월 소도제천(蘇塗祭天) 행사와 관련된 것이라고 보인다.
매 10년마다 신시(神市)를 열고, 매년 10월에 조시(朝市)와 해시(海市)를 열었다 한 것을 보면, 조시와 해시는 매년 10월에 국내적인 소도제천 행사를 열던 곳이 되고 또 지방특산물을 서로 교역하던 장소가 되며, 신시는 국내외적으로 매 10년마다 연 정치적, 종교적, 경제적 행사의 중심지가 되는 것이다.
신시(神市)는 더 이상 신화적인 이야기로 그치는 것이 아니다. 한웅(桓雄)이 서기전3897년에 배달나라(檀國)나라를 세우고 신시(神市)를 열어 사해 제족과 더불어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이념을 실현하였던 것이며, 단군왕검 또한 조선(朝鮮)을 건국하고서 매 10년마다 신시(神市)를 열어 사해제족을 초청하여 정치적, 종교적 가르침을 펴고, 물물을 교역하였던 것이며, 매년 10월에 조시와 해시를 열어 소도제천행사와 더불어 육지생산물과 해산물을 서로 교역하게 함으로써 물자가 풍족하게 하여 홍익인간의 이념을 실현하였던 것이 된다.
신시(神市), 조시(朝市), 해시(海市)는 간단히 줄여 말하면, 정치적, 종교적, 경제적 행사를 벌이던 중심지로서 교역(交易)의 장소 즉 시장(市場)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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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프로필] 조홍근(曺洪根, 52세). 한문화재단(桓文化財團) 총재. 트위트-페이스북 역사당 부총재. 현 법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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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년 족보(族譜)와 한중일(韓中日) 역사를 연구해 오면서, 부도지(符都誌), 한단고기(桓檀古記), 규원사화(揆園史話), 단기고사(檀奇古史) 등 귀중한 역사자료를 통하여, 우리역사 1만년을 넘어 마고(麻姑) 시대를 포함한 7만2천390년 역사를 밝히고 있음.
1. 역법(曆法)의 시초는 마고성(麻姑城)의 황궁씨(黃穹氏) 시대인 서기전24418년 계해년(癸亥年)임을 밝혔으며, 서기전70378년 계해년이 마고(麻姑) 기원(紀元:천부 天符)임을 밝혔음.
2. 나반(那般:那般尊者:獨聖者)이 한국(桓國)시대 한인씨(桓因氏) 이전의 임금이던 유인씨(有因氏)이며, 한인씨 7대(代)가 약1,000년을 다스렸던 것임을 밝혔음.
3. 윷놀이판의 모습이 천부경(天符經)의 역(易), 역법(曆法), 음양오행(陰陽五行), 단군조선의 정치행정구조를 나타낸 것임을 밝혔으며, 태호복희 8괘역과 윷놀이판의 역이 지구의 자전과 공전을 기반으로 한 역(易)임을 밝혔음.
4. 천제(天帝), 천황(天皇:天王), 천군(天君), 천공(天公), 천후(天侯), 천백(天伯), 천자(天子), 천남(天男)의 위계질서를 최초로 밝혔으며, 천제자(天帝子)와 천자(天子)의 차이점을 최초로 밝혔음.
5. 태호복희씨(太皞伏羲氏)가 일반 천자(天子)가 아니라 천지인(天地人) 제사장인 천군(天君)임을 밝혔음. 6. 아리랑(阿里嶺) 민요의 원천이 되는 최초의 역사적 사실을 밝혔음.
7. 고대중국의 요순우(堯舜禹)와 고대일본의 신무왕(神武王)이 단군조선의 반역자(反逆者)이면서 제후격의 천자임을 밝혔음.
8. 우비(禹碑, 우 치수기념 부루공덕비)의 비문을 국내 최초로 역사적 해석을 하여, 서기전2267년 이후 우가 치수에 성공한 후 치수법을 전수해 준 단군조선 태자부루의 공덕을 새긴 것임을 밝혔음.
9. 일본 국조신(國祖神)인 천조대신(天照大神)의 사당인 이세신궁(伊勢神宮)에 소장된 원시한글 축문을 국내 최초로 완벽 해독하고, 요하유로 기록된 천조대신이 단군조선 두지주 예읍의 추장의 후손임을 역사적으로 밝혔음.
10. 명도전(明刀錢) 최초 해독학자 허대동선생<저서 고조선문자>의 가림토(加臨土) 해독의 검증에 참여하여 첨수도, 명도전이 단군조선의 화폐이며, 거기에 새겨진 문자가 단군조선의 문자임을 밝혔음. 그 외 다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