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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인간 242] 단군조선 문화제도 9

양해천 2018. 1. 22. 11:22

[홍익인간 242] 단군조선 문화제도 9

2012년 03월 03일 (토) 10:21:04천산(天山)  sppopsj@yahoo.co.kr

(11) 구려분정(九黎分政) 

단군조선은 소위 지방자치를 시행하였던 것이 된다. 즉, 각 군후국(君侯國)이 원칙적으로 자치(自治)를 행하고 진한(眞韓) 또는 진조선(眞朝鮮)의 중앙조정에 일정한 세금이나 특산물을 바치는 조공을 한 것이다. 

그리하여 단군조선의 백성인 구족(九族:구이)은 자치를 행한 것이 되고, 군후국으로 봉해진 나라 또한 자치를 행한 것이 되며, 군후국 속에 있는 소국의 제후국들도 자치를 행한 것이 된다. 

단군조선의 삼한관경(三韓管境)은 36주(州)가 되는 땅이며, 1주(州)는 평균 방(方) 1,000리의 넓이가 되어 방(方) 100리의 소국(小國)이 100개가 존재할 수 있는 땅이 되는 바, 36주(州)에는 최소한 3,600개의 방(方) 100리의 소국이 존재하는 것이 된다. 이들 수많은 소국들도 원칙적으로 모두 자치를 행하였으며, 중앙조정의 삼사오가 제도를 본 따 시행한 것이 된다. 

특히 단군조선 초기인 단군왕검 천제(天帝) 시절에 회대(淮岱)지역에서 구려분정(九黎分政)을 실시하였다. 

회대지역은 지금의 산동지역에서 회수(淮水)지역에 걸치는 땅이다. 이 회대지역은 배달나라 시대에는 동부(東部)에 속하는 땅이며, 배달나라 말기인 치우천왕 시절부터는 배달나라의 중심인 수도가 있던 곳으로서 청구(靑邱)라고 불리는 곳이 된다. 

서기전3528년경에는 배달나라 한웅 천왕의 아들인 태호복희(太皞伏羲)가 우사(雨師)를 지낸 후 산동지역의 서부(西部)인 진(陳)이라는 땅에 진(震)이라는 나라를 만들어 다스린 곳이기도 하다. 또, 서기전3218년경에는 염제신농(炎帝神農)이 배달나라 우가(牛加)를 진낸 후 태호복희가 세운 진(震)을 접수하여 다스렸으며 이후 수도를 곡부(曲阜)로 옮겼던 것이다. 

여기서 구려(九黎)는 회대지역의 구려를 가리키는데, 소위 중국내륙 동쪽 땅에 있었던 내륙 8이(夷) 또는 9이(夷)를 가리키는 것이 된다. 후대의 주(周)나라 시대에 기록되고 있는 내륙8이에는, 엄이(淹夷), 남이(藍夷), 서이(徐夷), 회이(淮夷), 래이(萊夷), 개이(介夷), 양이(陽夷), 우이(隅夷) 등이 있으며, 여기에 도이(島夷), 사이(泗夷), 사이(沙夷) 등을 더하기도 한다. 

이리하여 소위 회대(淮岱)지역에서 실시된 구려분정(九黎分政)은 단군조선의 직속 군후국(君侯國)들이 지방자치를 하도록 한 제도이다. 여기 군후국은 내륙 8이 또는 9이라 불리는 제후국들을 가리키는 것이 된다. 이중에서 남이(藍夷)는 단군조선의 군국(君國)이 되는 남국(藍國)을 가리키는데, 단군왕검 천제가 치우천왕의 후손을 군(君)으로 봉한 나라이며, 나머지는 일반 제후가 봉해진 나라가 된다. 

이후 도산회의(塗山會議)가 열린 서기전2267년부터 우순(虞舜)이 반역한 서기전2247년경까지 우순(虞舜)이 구려분정을 감독(監督)하였다. 즉, 서기전2267년에 도산회의에서 단군조선의 사자 태자부루는 우순의 신하 사공(司空) 우(禹)에게 오행치수법(五行治水法)을 전수해주면서 치산치수(治山治水)를 위하여 인력과 물자를 동원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였던 것인데, 이에따라 우순(虞舜)으로 하여금 회대지역의 단군조선 직속 제후국들을 감독하도록 하였던 것이 된다. 

(12) 국방 치안 제도 

단군조선의 삼사오가(三師五加) 제도는 배달나라의 제도를 그대로 계승한 것이 된다. 오가 중의 구가(狗加)와 마가(馬加)가 국방(國防)과 치안(治安)을 담당한 것이 된다. 

일반적으로 구가(狗加)는 주형(主刑)이라 하여 형벌을 담당하였고 마가(馬加)는 주명(主命)이라 하여 명령을 담당하였다. 그런데, 주병(主兵)이라는 직책도 있었으니 배달나라와 단구조선 시대에 우(尤)라는 직책이 그것이다. 

배달나라 시대에 군사담당이던 우(尤)를 치우(治尤)라 한 것이 되며, 서기전2706년에 제14대 한웅으로 즉위한 소위 치우(蚩尤) 천왕은 곧 군사담당이던 치우(治尤)의 벼슬에 있었던 인물이기 때문에 치우(治尤)라 한 것이 된다. 치우(蚩尤)라는 글자는 치우(治尤)의 가차(假借)이거나 비칭(卑稱)이 된다. 앞으로는 고대중국의 기록을 따르지 말고 치우(治尤)라고 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 

구가(狗加)는 형벌을 맡았는데, 자연히 국내 치안을 담당한 것이 되며, 치안을 유지하기 위하여는 군사력이 필요한 것이 당연하다. 지금은 치안을 경찰이라는 특수기관이 담당하지만 배달나라나 단군조선 시대에는 구가(狗加)가 담당한 것이 되는 것이다. 

마가(馬加)는 명령을 담당하였는데, 멀리까지 명령을 전달하는 방법으로 말(馬)이 필수적이다. 그래서 마가도 군사를 담당한 것이 된다. 즉, 마가는 대내적으로 명령을 담당하면서 대외적인 국방을 담당한 것이 된다. 전쟁을 수행하는 데는 말이 또한 기병(騎兵)의 수단으로서 필수적이다. 

군사와 무기를 담당한 우(尤)라는 직책이 구가에 속하였는지 마가에 속하였는지는 불명이나, 일단 구가는 군사력으로 내치를 담당하고 마가는 외치를 담당한 것이 된다. 

구가(狗加)가 군사를 담당하였다는 증거로는 오행(五行)의 배치로 구가(狗加)는 금(金)의 자리인 서방(西方)에 해당하여 병기(兵器)를 관장하는 것이 되며, 병신(兵神)이라 상징되는 백호(白虎)의 자리가 되어 군사를 담당한 것임이 확인되는 것이다. 

마가(馬加)가 군사를 담당하였다는 논거로는 명령(命令)은 곧 목숨(命)과도 직결되는 바, 전쟁은 곧 목숨을 담보로 수행하는 것이므로, 군사력을 상징하는 말(馬)의 특성을 본 딴 직책인 마가가 군사를 담당하였다는 것은 당연한 논리가 되는 것이다. 

단군조선 시대는 마냥 태평낙원 시대는 아니며, 이미 인간본성이 타락하여 본심을 회복하지 못하는 족속들이 종종 있었는 바, 때에 따라 반란을 진압한 역사가 수차례 있었다. 

(가) 반란진압의 역사 

1) 단군조선 삼한관경 외 천자국(天子國) 우하은주(虞夏殷周)의 반역 

가) 우(虞) 천자 순(舜)의 반역 

순은 서기전2343년 출생이며, 20세이던 서기전2324년에 아버지 유호씨(有戶氏)를 따라 환부(鰥夫)의 직을 수행하면서 당요(唐堯)를 토벌(討伐)하러 갔던 단군조선에서 파견된 인물이다. 이에 서기전2324년에 요임금은 단군조선의 토벌대에 굴복함으로써 정식 천자(天子)로 사후승인되었던 것이다. 

서기전2314년 순(舜)이 30세에 요임금에게 등용되어, 서기전2294년에 섭정이 되었고, 서기전2288년에 요순(堯舜)시대의 9년대홍수가 발발하여 섭정이던 순(舜)이 곤(鯤)을 치수담당으로 봉하였으나 치수에 성공하지 못하였다. 서기전2284년에 순(舜)은 요임금을 유폐시키고 위협하여 선양받아 천자자리를 찬탈하였고, 요임금이 설치하였던 9주(州)에 유주, 영주, 병주 등 3주를 함부로 추가 설치하였다. 

우순(虞舜)은 서기전2280년에 치수담당 곤(鯤)을 우산(羽山)에서 처형하고 곤의 아들 우(禹)를 사공(司空)에 봉하고 치수를 맡겼다. 

이후 우가 서기전2267년경까지 22년간 치수를 하였으나 마무리를 못하였고, 이에 우(禹)는 최후의 방법으로 순(舜)임금에게 간하여 단군왕검께 도움을 요청하도록 하였던 것이며, 이에 순임금도 백성을 위하여 상국(上國)인 단군조선에 도움을 요청함으로써 정식 천자(天子)임을 인정받게 되었다. 

서기전2267년 단군왕검 천제(天帝)의 명을 받들어 태자부루(太子扶婁)가 도산회의(塗山會議)를 주관(主管)하고 사공 우(禹)에게 치수법(治水法)을 전수하였다. 이때 유주와 영주는 폐지하여 단군조선 삼한의 직할영역에 편입시키고, 병주는 그냥 두었다. 이후 중국 천자 순임금은 서기전2247년경까지 20년간 5년에 한번씩 순회하던 태자부루에게 치수경과 등 국정을 보고하였다. 우순이 단군조선의 태자부루에게 조공(朝貢)한 것을 우공(虞貢)이라 한다. 

우순(虞舜)은 나라가 홍수를 극복하고 태평시대가 되자 반역(反逆)하기 시작하였다. 서기전2247년 이후 순(舜)은 단군조선을 반역하여 유주와 영주를 다시 설치하였고, 이에 서기전2240년에 즉위한 제2대 부루 천왕은 유주와 영주를 정벌하여 폐지하였던 것이고, 이때부터 단군조선의 사자 유호씨(有戶氏)는 순(舜)을 제거하기 위하여 둘째 아들 유상(有象)과 치수에 공이 많은 우(禹)에게 명하여 협공(協攻)하도록 하였다. 

서기전2224년에 우(禹)의 군사가 창오(蒼梧)의 들로 도망하던 순(舜)을 죽였는데, 이를 고대중국의 기록에서는 우가 아버지 곤의 원수를 갚았다라고 적는다. 

나) 하우(夏禹)의 반역 

서기전2224년에 창오의 들로 도망하던 순(舜)을 죽여 아버지 곤의 원수를 갚은 우(禹)는 유호씨(有戶氏)의 명을 받지 않고 곧 군사를 몰래 모으고 무기를 보수하여 자칭 하왕(夏王)이라 하면서 독단(獨壇)을 차려 반역하였다. 이리하여 단군조선의 정치제도를 모방하여 제후를 마음대로 봉하고 조공하도록 강요하니 수많은 백성들이 우의 폭정을 피하여 나오므로, 이에 우(禹)가 국경을 봉쇄하여 버렸다. 

이후 유호씨는 하우(夏禹)를 토벌하였으나 우는 유호씨의 가르침을 오히려 모욕이라 하며 항거하다가, 서기전2198년 우(禹)는 모산(茅山:회계산)의 진중(陣中)에서 죽고, 그 아들 계(啓)가 왕이 되어 유호씨와 전쟁을 계속하였으나, 수만의 군사로도 수천의 군사밖에 안되는 유호씨에게 번번히 패하니 그 무리가 격앙(激昻)되었다. 이에 유호씨가 하나라 왕과 백성들이 우매하여 가르치기 어렵다하고 군사를 물려 월식주(파미르고원 서쪽. 수메르, 유럽지역)와 성생주(파미르고원 남쪽. 인도지역)로 가르침을 펴러 떠났고, 되돌아와서는 그 후손들이 단군조선의 교부(敎部. 문교부에 해당)의 직을 세습하였던 것이다. 

다) 천자국 하, 은, 주의 반역 

순, 우의 반역 유전자를 이은 하은주의 여러 왕들은 주변의 나라를 침략하는 등 전쟁을 일삼아 홍익인간의 정치이념을 실현하지 못하였다. 전쟁광(戰爭狂)이나 다름없는 하은주(夏殷周)의 여러 왕들이 전쟁을 일으키면 단군조선의 제후국에 해당하는 주변의 이족(夷族)들이 이를 정벌하였고, 정치에 간섭하고 견제하였다. 그러나 결국 하은주의 나라가 모두 그들의 법에 의하여 스스로 망한 꼴이 되었다. 

하걸왕(夏桀王)은 처음에는 단군조선이 후원군을 보내와 은탕(殷湯)의 침입을 중지시켰으나, 단군조선 군사와 조약을 위반하므로 결국 구이(九夷:단군조선)의 군사와 은탕의 군사의 협공으로 걸왕은 남소(南巢)로 쫓겨나고 은(殷)나라가 건국되었다. 즉 은나라는 단군조선의 직접적인 군사적 지원으로 건국된 나라이다. 은탕의 재상 이윤은 단군조선의 선인 유위자(有爲子)의 제자이다. 

은주왕(殷紂王)은 폭정을 일삼아, 동이출신인 강태공(姜太公)이 보좌한 주무왕(周武王)에게 망하고 서기전1122년에 주(周)나라가 건국되었다. 주나라도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를 지나면서 왕도정치가 아닌 군사력을 통한 패권(覇權)이 난무하게 되어 결국 제후국들에 의한 자체내의 내분으로 결국 망하고, 서기전221년 진시황이 통일하여 스스로 천자(天子)보다 위가 되는 황제(皇帝)라 칭하였다. 

주나라 춘추전국시대에 특히 연(燕)나라와 제(齊)나라는 인접하고 있던 단군조선의 서쪽변경이 되는 번조선(番朝鮮) 관할소속의 기후국(箕侯國)과 고죽국(孤竹國)을 서기전650년경에 멸망시켰고, 연나라는 서기전365년경 이후 서서히 동침(東侵)하여 서기전281년경에 패수(浿水)인 난하(灤河) 서쪽에 위치한 만번한(滿番汗)까지 이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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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프로필] 조홍근(曺洪根, 52세). 한문화재단(桓文化財團) 총재. 트위트-페이스북 역사당 부총재. 현 법무사. 

30여년 족보(族譜)와 한중일(韓中日) 역사를 연구해 오면서, 부도지(符都誌), 한단고기(桓檀古記), 규원사화(揆園史話), 단기고사(檀奇古史) 등 귀중한 역사자료를 통하여, 우리역사 1만년을 넘어 마고(麻姑) 시대를 포함한 7만2천390년 역사를 밝히고 있음. 

1. 역법(曆法)의 시초는 마고성(麻姑城)의 황궁씨(黃穹氏) 시대인 서기전24418년 계해년(癸亥年)임을 밝혔으며, 서기전70378년 계해년이 마고(麻姑) 기원(紀元:천부 天符)임을 밝혔음. 
2. 나반(那般:那般尊者:獨聖者)이 한국(桓國)시대 한인씨(桓因氏) 이전의 임금이던 유인씨(有因氏)이며, 한인씨 7대(代)가 약1,000년을 다스렸던 것임을 밝혔음. 
3. 윷놀이판의 모습이 천부경(天符經)의 역(易), 역법(曆法), 음양오행(陰陽五行), 단군조선의 정치행정구조를 나타낸 것임을 밝혔으며, 태호복희 8괘역과 윷놀이판의 역이 지구의 자전과 공전을 기반으로 한 역(易)임을 밝혔음. 
4. 천제(天帝), 천황(天皇:天王), 천군(天君), 천공(天公), 천후(天侯), 천백(天伯), 천자(天子), 천남(天男)의 위계질서를 최초로 밝혔으며, 천제자(天帝子)와 천자(天子)의 차이점을 최초로 밝혔음. 
5. 태호복희씨(太皞伏羲氏)가 일반 천자(天子)가 아니라 천지인(天地人) 제사장인 천군(天君)임을 밝혔음. 6. 아리랑(阿里嶺) 민요의 원천이 되는 최초의 역사적 사실을 밝혔음. 
7. 고대중국의 요순우(堯舜禹)와 고대일본의 신무왕(神武王)이 단군조선의 반역자(反逆者)이면서 제후격의 천자임을 밝혔음. 
8. 우비(禹碑, 우 치수기념 부루공덕비)의 비문을 국내 최초로 역사적 해석을 하여, 서기전2267년 이후 우가 치수에 성공한 후 치수법을 전수해 준 단군조선 태자부루의 공덕을 새긴 것임을 밝혔음. 
9. 일본 국조신(國祖神)인 천조대신(天照大神)의 사당인 이세신궁(伊勢神宮)에 소장된 원시한글 축문을 국내 최초로 완벽 해독하고, 요하유로 기록된 천조대신이 단군조선 두지주 예읍의 추장의 후손임을 역사적으로 밝혔음. 
10. 명도전(明刀錢) 최초 해독학자 허대동선생<저서 고조선문자>의 가림토(加臨土) 해독의 검증에 참여하여 첨수도, 명도전이 단군조선의 화폐이며, 거기에 새겨진 문자가 단군조선의 문자임을 밝혔음. 그 외 다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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