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익인간 244] 단군조선 문화제도 11
7) 웅습(熊襲)의 반란
서기전723년 제35대 사벌(斯伐) 천왕이 장군 언파불합(彦波弗哈)을 보내어 바다의 웅습(熊襲)을 평정하였다.
언파불합은 서기전660년 일본 땅 왜(倭) 왕조의 시조가 된 신무(神武)의 아버지로서, 언파렴무로자초즙불합존(彦波瀲武鸕鶿草葺不合尊)이라고 불린다. 언파불합은 일본의 국조신(國祖神)이라 불리는 천조대신(天照大神)의 5세손(世孫)이 된다.
바다의 웅습(熊襲)은 구주(九州:큐슈)에 있는 지명이며, 후대에 웅본(熊本:구마모또)이라 불리는 땅이다.
일본 땅은 북해도(北海道:홋가이도), 본주(本州:혼슈), 구주(九州:큐슈), 사국(四國:시코꾸)의 네 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북해도와 본주의 북동지역은 단군조선의 동보(東堡)의 역할을 하던 예국(濊國)의 관할에 속하였으며, 본주의 남서지역과 구주와 사국은 남보(南堡)를 맡은 마한(馬韓)의 관할에 속하였던 것이 된다.
단군조선 말기에 이르자 마한의 관할에 속하던 구주의 웅습에서 반란이 일어나 단군조선이 장군 언파불합을 보내어 평정한 것이 된다. 이에 공을 세운 언파불합이 구주의 협야에 봉해져 단군조선의 천하왕(天下王)으로서 소위 천자(天子)가 되는 협야후(陜野侯)라 불리는 것이 된다.
8) 삼도(三島)의 반란
서기전667년 단군조선 제36대 매륵(買勒) 천왕 때 협야후(陜野侯) 배반명(裵幋命)을 보내어 바다의 도적을 토벌케 하니, 12월에 삼도(三島)가 모두 평정되었다.
배반명은 언파불합의 차자(次子)이다. 서기전723년경에 협야후에 봉해진 언파불합이 죽으면서 협야후의 자리를 둘째 아들인 도반명(稻飯命)에게 승계시킨 것이 된다. 협야후 배반명(裵幋命)은 곧 도반명(稻飯命)의 다른 표기로서 같은 인물이며 천조대신(天照大神)의 6세손인 것이다.
삼도(三島)는 본주(혼슈), 구주(큐슈), 사국(시코꾸)의 세 섬을 가리키는데, 서기전723년에 구주의 웅습에서 일어난 난을 언파불합 장군이 평정하였고, 서기전667년에 일어난 삼도의 난은 언파불합의 대를 이은 협야후 배반명이 12월이 이르러 모두 평정한 것이 된다.
9) 신무(神武)의 반역
서기전660년 신해년(辛亥年)에 협야후 배반명의 아우이던 신무(神武)가 단군조선을 반역하여 천황(天皇)이라 참칭하였다.
즉, 서기전667년 12월에 협야후(陜野侯) 배반명(裵幋命)이 삼도(三島)를 모두 평정하였는데, 이때 협야후의 무리이던 신무(神武)라는 자가 반란을 꾀하여 서기전663년까지 사이에 협야후 배반명(裵幋命:稻飯命)을 포함한 언오뢰명(彦五瀨命), 삼모팔야명(三毛八野命)을 모두 살해하여 바다에 수장(水葬)시키는 방법으로 제거하고, 서기전660년에 천황이라 참칭하였던 것이다.
이로써 서기전660년부터 일본의 왕조시대가 시작되었는데, 단군조선의 삼한관경에서 멀리 떨어져 통제가 거의 미치지 못하는 제후국들의 제후들이 서서히 반역을 꾀하고 왕(王)을 참칭하기에 이르렀고, 서기전426년에는 우화충(于和沖)의 반란으로 수도를 장당경(藏唐京)으로 옮기는 등 국력의 쇠퇴를 겪게 된다.
신무왕(神武王)은 단군조선의 질서에서 이탈하여 서기전660년에 본주(혼슈)의 왜(倭)라는 땅에서 천황을 참칭하고 왕조시대를 열었던 것으로, 단군세기에서 협야노(陜野奴)라 하여 반역자로 적힌 것이며, 일본 국조신인 천조대신의 6세손(世孫)이 된다.
10) 융안(隆安) 엽호(獵戶) 우화충(于和沖)의 반란
서기전426년에 융안의 사냥꾼 우화충이 장군을 자칭하며 수만명의 무리를 모아 서북 36군을 함락시키고 겨울에 도성을 에워싸고 공격하니 제43대 물리(勿理) 천왕은 좌우 궁인(宮人)과 종묘사직의 신주(神主)들을 모시고 배를 타고 피난하여 바닷가로 가셨다가 붕어하셨다.
당시 백민성(白民城) 욕살 구물(丘勿)이 어명을 받들어 군대를 일으켜 장당경(藏唐京)을 선점하니 동서압록의 18성이 원조하였다.
서기전425년 3월에 큰물이 도성을 휩쓰니 적병들이 큰 혼란에 빠져 구물 천왕이 만명의 군대를 이끌고 가서 정벌하여 우화충을 죽였다. 이에 구물이 여러 장수의 추앙을 받아 3월 16일 하늘에 제사지내고 장당경에서 즉위하였다. 이에 나라이름을 대부여(大夫餘)라 하였다.
우화충은 장군이 아니었으면서 장군을 참칭하여 무리를 모아 반란을 일으킨 것이고, 구물은 백민성 욕살로서 물리 천왕의 명을 받아 군대를 일으켜 장당경을 선점하고 동서압록 18성의 원조를 받은 것이다.
물리 천왕은 상춘(常春)의 신궁(新宮)을 탈출하여 강을 따라 내려와 아마도 지금의 요하하류에 도착하였으나 붕어하고, 이때 욕살 구물이 상춘의 남서쪽에 있는 장당경을 선점하여 거점으로 삼으니 지금의 요하가 되는 서압록과 지금의 압록강이 되는 동압록 사이의 18개의 성주(욕살에 해당)들이 원조를 한 것이 된다.
서기전425년 3월에 진압군들은 상춘 신궁의 반란군을 토벌하기 위하여 수공(水攻)을 행한 것이 된다. 즉, 도성을 휩쓴 물은 그냥 홍수가 아니라 물을 가두어 터뜨려서 상춘의 도성을 물로 잠기게 하여 반란군을 혼란에 빠뜨린 후 공격하여 평정한 것이 된다.
음력으로 3월 16일은 대영절(大迎節)이라고도 하는데, 봄에 열던 삼신영고제(三神迎鼓祭) 즉 삼신맞이굿을 벌이던 날로서, 반란군을 모두 평정한 후 이 날에 욕살 구물이 천왕으로 즉위한 것이 된다. 하루전날인 3월 15일은 단군왕검(檀君王儉) 천제(天帝)께서 붕어한 날로서 어천절(御天節)이라고 한다. 초겨울이 되는 음력 10월에 열던 나라 전체의 축제는 국중대회(國中大會)라 불린다.
말기 단군조선의 수도인 장당경(藏唐京)은 중부여 지역에 해당하고, 후기 단군조선의 수도인 백악산아사달의 상춘(常春)은 북부여 지역에 해당한다. 전기 단군조선의 수도인 송화강 아사달 즉 하얼빈 지역은 숙신 땅에 해당한다. 그리하여 전기 단군조선을 숙신(肅愼)으로, 후기 단군조선을 부여(夫餘)로 기록하거나 대칭(代稱)으로 사용하기도 하였던 것이 된다.
(나) 방비체제(防備體制)
단군조선(檀君朝鮮)은 마고(麻姑)시대의 마고성(麻姑城) 제도를 본 따 1천부단(天符壇) 4보(堡) 제도를 정립하였다. 즉, 단군조선 삼한관경 내에서 중앙에 해당하는 지금의 백두산인 태백산을 삼신(三神)의 자리로 모시고 제천단(祭天壇)인 천부단을 쌓고, 사방에 방비체제인 각 보(堡)를 두었는데, 북에는 북보(北堡)로서 진한(眞韓)을 두고, 동에는 동보(東堡)로서 예(濊)로써 봉하고, 남에는 남보(南堡)로서 마한(馬韓)을 두고, 서에는 서보(西堡)로서 번한(番韓)을 두었던 것이다.
북보인 진한(眞韓)은 사방(四方)의 대표격으로서 중앙의 천부단 자리인 삼신(三神)을 대리하여 나라 전체를 통할하고, 동보인 예(濊:예국)는 다른 보(堡)와는 달리 그 비중이 약하여 한(韓)으로 봉하지 않고 일반 제후(諸侯)로 봉한 것이며, 남보인 마한은 태백산(백두산)의 남쪽의 한반도 지역과 삼도(三島) 등 바다지역을 관할하고, 서보인 번한은 서쪽에서 질서를 어지럽히던 반역(反逆)의 잠재세력인 당요(唐堯)를 경계하는 역할을 맡고 발해만 유역과 산동지역을 관할하였다.
단군조선 초기에 특히 서쪽의 방비에 역점을 두었으니, 단군조선 초기가 되는 서기전2301년 경자년에 요중(遼中) 12성을 쌓아 당요(唐堯)와 단군조선의 환부(鰥夫)의 직을 버리고 요(堯)에 협조하게 된 순(舜)의 소행을 경계하였는데, 이해는 단군왕검(서기전2333년~서기전2241년, 93년) 33년이 되는 해이며, 번한 제2대 낭야(琅耶:서기전2311년~서기전2238년)가 11년이 되는 해가 된다.
아래에서는 단군조선의 번한 요중12성에 관하여 살펴보기로 한다.
1) 요중(遼中) 12성(城)
서기전2301년 경자년에 쌓은 요중 12성은 험독(險瀆), 영지(令支), 탕지(湯池), 통도(桶道), 거용(渠용), 한성(汗城), 개평(蓋平), 대방(帶方), 백제(百濟), 장령(長嶺), 갈산(碣山), 여성(黎城)이다.
2) 요중 12성을 쌓은 목적
단군왕검은 서기전2333년경 치우천왕(治尤天王)의 후손이 되는 치두남(蚩頭男)을 번한(番韓)으로 봉하였고, 서기전2267년 도산회의(塗山會議) 이후에는 겸하여 우(虞)의 정치를 감독케 하였다.
여기서 치두남은 사람 이름이기도 하겠지만, 남작(男爵)일 가능성도 있으며, 치두(蚩頭)라 불리는 남작(男爵)을 승진시켜 군(君)보다 위가 되는 번한(番韓)으로 봉한 것으로 된다.
서기전2333년경 단군조선과 대립한 나라는 당(唐)나라인데, 당요(唐堯)는 배달나라의 천자 황제헌원(黃帝軒轅)의 나라인 웅국(熊國)의 왕(천자) 제곡고신씨(帝嚳高辛氏)의 아들로서 서기전2401년에 출생하고 서기전2282년에 도(陶)에 봉해졌으며, 서기전2357년에는 이복형 제지(帝摯)를 공격하여 멸하고 천자(天子) 자리를 찬탈하고서 스스로 제왕(帝王)이라 주창하였고, 마음대로 땅을 차지하여 9주(州)로 나누는 등 이웃 나라를 함부로 침략하였고 급기야는 단군왕검이 비왕(裨王)으로 섭정(攝政)하던 단웅국(檀熊國)을 기습점령하였던 인물이다.
단군왕검은 순방정치를 하다가 서기전2334년에 결국 당요에게 왕성을 기습점령당하였는데, 이에 단웅국 천자이던 홍제(洪帝)께서 붕하시므로 측근의 무리 800을 이끌고 동북으로 3,000리 이상 떨어진 아사달로 피하여 나라를 정비하였던 것이며, 서기전2333년 10월 3일에 구족의 추대에 응하여 임금이 되어 배달나라와 단웅국의 정통을 계승하여 조선을 개국하였던 것이다.
우(虞)는 순(舜)임금의 나라를 가리키는데, 순임금은 서기전2343년생이며, 서기전2324년에 아버지 유호씨(有戶氏)를 따라 환부(鰥夫)의 직을 수행하며 요임금을 토벌하러 갔던 인물로서, 서기전2314년 30세에 요임금에게 등용되었고, 서기전2294년 50세에 섭정을 맡았으며, 서기전2284년에 요임금으로부터 선양을 받아 천자가 되어 서기전2224년까지 나라를 다스렸다.
번한 치두남은 서기전2333년경에 봉해져 서기전2312년에 사망하고, 치두남의 뒤를 이어 제2대 번한 낭야(琅耶)가 서기전2311년에 즉위하여 사자(使者) 유호씨(有戶氏)와는 별도로 계속적으로 당요(唐堯)와 순(舜)을 경계한 것이 되며, 서기전2301년에 결국 요중(遼中) 12성을 완성한 것이 된다.
결국 요중 12성을 쌓은 이유는 요임금과 순을 경계하고 방비하기 위한 것이 된다. 즉, 단군왕검 천제(天帝)께서 나라를 정비한 후 서기전2324년에 중신(重臣)이던 유호씨(有戶氏)에게 환부(鰥夫), 권사(權士) 등 100여명과 군사를 내주어 요(堯)를 토벌토록 하였던 것이며, 이때 당요는 정세를 간파하고 무조건 굴복함으로써 나라를 보존하였고, 이후 순(舜)의 사람됨됨이를 살피다가 두 딸을 시집보내는 등 하여 서기전2314년에 순을 등용함으로써 순을 자기사람으로 만들었는데, 이에 유호씨는 요와 순의 소행을 감시만 하였던 것이고, 이리하여 서기전2301년에 쌓은 요중 12성은 언제 반역할지 모르는 당요(唐堯)와 당요의 협조자가 된 순(舜)을 감시하고 견제하기 위한 전략에서 쌓은 것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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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프로필] 조홍근(曺洪根, 52세). 한문화재단(桓文化財團) 총재. 트위트-페이스북 역사당 부총재. 현 법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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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년 족보(族譜)와 한중일(韓中日) 역사를 연구해 오면서, 부도지(符都誌), 한단고기(桓檀古記), 규원사화(揆園史話), 단기고사(檀奇古史) 등 귀중한 역사자료를 통하여, 우리역사 1만년을 넘어 마고(麻姑) 시대를 포함한 7만2천390년 역사를 밝히고 있음.
1. 역법(曆法)의 시초는 마고성(麻姑城)의 황궁씨(黃穹氏) 시대인 서기전24418년 계해년(癸亥年)임을 밝혔으며, 서기전70378년 계해년이 마고(麻姑) 기원(紀元:천부 天符)임을 밝혔음.
2. 나반(那般:那般尊者:獨聖者)이 한국(桓國)시대 한인씨(桓因氏) 이전의 임금이던 유인씨(有因氏)이며, 한인씨 7대(代)가 약1,000년을 다스렸던 것임을 밝혔음.
3. 윷놀이판의 모습이 천부경(天符經)의 역(易), 역법(曆法), 음양오행(陰陽五行), 단군조선의 정치행정구조를 나타낸 것임을 밝혔으며, 태호복희 8괘역과 윷놀이판의 역이 지구의 자전과 공전을 기반으로 한 역(易)임을 밝혔음.
4. 천제(天帝), 천황(天皇:天王), 천군(天君), 천공(天公), 천후(天侯), 천백(天伯), 천자(天子), 천남(天男)의 위계질서를 최초로 밝혔으며, 천제자(天帝子)와 천자(天子)의 차이점을 최초로 밝혔음.
5. 태호복희씨(太皞伏羲氏)가 일반 천자(天子)가 아니라 천지인(天地人) 제사장인 천군(天君)임을 밝혔음. 6. 아리랑(阿里嶺) 민요의 원천이 되는 최초의 역사적 사실을 밝혔음.
7. 고대중국의 요순우(堯舜禹)와 고대일본의 신무왕(神武王)이 단군조선의 반역자(反逆者)이면서 제후격의 천자임을 밝혔음.
8. 우비(禹碑, 우 치수기념 부루공덕비)의 비문을 국내 최초로 역사적 해석을 하여, 서기전2267년 이후 우가 치수에 성공한 후 치수법을 전수해 준 단군조선 태자부루의 공덕을 새긴 것임을 밝혔음.
9. 일본 국조신(國祖神)인 천조대신(天照大神)의 사당인 이세신궁(伊勢神宮)에 소장된 원시한글 축문을 국내 최초로 완벽 해독하고, 요하유로 기록된 천조대신이 단군조선 두지주 예읍의 추장의 후손임을 역사적으로 밝혔음.
10. 명도전(明刀錢) 최초 해독학자 허대동선생<저서 고조선문자>의 가림토(加臨土) 해독의 검증에 참여하여 첨수도, 명도전이 단군조선의 화폐이며, 거기에 새겨진 문자가 단군조선의 문자임을 밝혔음. 그 외 다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