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뿌리를 찾아서)/홍익인간 7만년 역사

[홍익인간 259] 단군조선 문화제도 26

양해천 2018. 1. 22. 11:37

[홍익인간 259] 단군조선 문화제도 26

2012년 03월 21일 (수) 18:49:24천산(天山)  sppopsj@yahoo.co.kr

4. 과학 경제 사회 

단군조선 시대는 홍익인세(弘益人世)였던 배달나라를 계승한 홍익인간 시대로서, 한편으로는 자연의 이치나 법칙을 터득하여 자원을 활용하고, 한편으로는 자원을 제공하는 자연에 감사하며, 인간으로서의 삶의 행복을 구현하였던 시대라 할 수 있다. 

외부의 침략이나 반란 등의 전란을 대비하여 각종의 무기를 제작하여 강력한 군사력을 구비하고, 백성들의 윤택하고도 행복한 삶을 보장하고 진흥시키기 위하여, 자연의 이치나 자원을 활용함으로써 이에 따라 천문역법(天文曆法)의 재정리, 광물자원의 활용, 치산치수 사업 등에 필요한 과학이 발전하였던 것이며, 풍족한 물자의 교류로 교역이 활발하게 되었고, 백성을 위한 조세제도 등이 시행되어 실질적인 홍익인간 세상을 실현하였던 것이 된다. 

가. 역법(曆法) 

역법은 마고성(麻姑城) 시대인 서기전25858년경부터 이미 시작되었는데, 이때 이미 천문(天文)이 발달하여 하루, 한달, 사계절, 1년 등을 구분하는 이치를 알고 있었던 것이 된다. 윷놀이판의 그림이 곧 역법(曆法)을 나타낸 것으로서 마고시대부터 내려온 것이 되는 것이다. 

마고성 시대에 이미 기화수토(氣火水土)라는 사상(四象)의 역(易)이 있었으며, 이 사상의 역이 1일(日) 4시(時), 1기(期) 4주(週), 1년(年) 4계(季)로 연역되어 윷놀이판의 사방에 역법(曆法)으로 나타낸 것이 된다. 윷놀이판의 역법이 지구의 자전과 공전을 반영한 것이므로 태호복희 8괘역의 배치와도 일맥상통한다. 즉 태호복희 8괘역은 하도(河圖)와 윷놀이판의 4상역(象易)에서 8방역(方易)으로 나타낸 것이 된다. 

배달나라 개천시에 이미 1년 365.24219907일이라는 정밀한 역법이 정립되어 있었던 것이 되는데, 1주(週) 7일(日), 1기(期) 4주(週), 1년(年) 13기(期) 52주(週) 365일(日)이라는 역법이 윷놀이판에서 바로 나타난다. 

1주 7일로 하는 역법이 칠회력(七回曆)이다. 곧 일월수화목금토(日月水火木金土)의 칠성신(七星神)에 제(祭)를 지내는 날로써 7일(日)을 삼은 것이 된다. 이는 지금의 달력에 나타나는 7요일과 완전히 동일한 것이 되는데, 다만, 수요일과 화요일의 순서가 바뀐 것이 다를 뿐이다. 

1기(期)는 4주(週) 28일(日)이 되는데 이는 28수(宿)로 계산된다. 28수는 동방의 항(亢), 각(角), 저(氐), 방(房), 심(心), 미(尾), 기(箕)와, 남방의 정(井), 귀(鬼), 유(柳), 성(星), 장(張), 익(翼), 진(軫)과, 서방의 규(奎), 루(婁), 위(胃), 묘(昴), 필(畢), 자(觜), 삼(參)과, 북방의 두(斗), 우(牛), 여(女), 허(虛), 위(危), 실(室), 벽(壁)이다. 

소력(小曆)은 1사(祀) 즉 1년(年)으로 13기(期)이며, 52요복(曜服) 즉 52주(週)이고 364일이 되어 1, 4, 7의 성수(性數)로 이루어지고, 소력의 2회는 중력(中曆)이 되고, 소력의 4회가 대력(大曆)이 된다. 즉 1사 =>1, 13기=> 1+3=4, 52요복=> 5+2=7, 364일=> 3+6+4=13=> 1+3=4 또는 364의 끝자리 4가 되어, 1, 4, 7의 수가 된다. 

각 1사(祀)마다 시작에 단(旦)이 있어 1과 같아 합하면 365일이 되고, 3사(祀)의 반에 대삭(大朔)의 판(昄)이 있으며, 판은 사(祀)의 2분절이므로, 이는 2, 5, 8의 법수(法數)로 이루어진다. 즉, 365일=> 3+6+5=14=> 1+4=5 또는 365일의 끝자리 5, 사의 분절은 4사 8분절=> 8, 사의 2분절=>2가 되어, 2, 5, 8의 수가 된다. 

판(昄)이 긴 것과 1일은 같아 제 4의 사(祀) 즉 4번째 1년은 366일이 되고, 10사(祀)의 반에 대회(大晦)의 구(咎)가 있으며 구는 시(時)의 근원이고, 300구가 1묘(眇)가 되며, 9633묘를 지나 각(刻), 분(分), 시(時)로서 1일이 되니, 3, 6, 9,의 체수(體數)로 이루어진다. 즉, 366일=> 3+6+6=15=> 1+5=6, 300구=> 3+0+0=3, 9633묘=> 9+6+3+3=21=>2+1=3 또는 9633의 끝자리 3이 되어, 3, 6, 9의 수가된다. 

배달나라 시대 이전에 이미 10간(干) 12지(支)의 천간지지(天干地支)가 정립되어 있었던 것이 되며, 10일 12달의 체계가 잡혀 있어, 1년은 1주(週) 7일(日)과 4주(週) 28일(日)로는 13기 52주 365일로서 음력으로는 윤달을 넣어 13월이 되며, 10일(日)을 기준으로 1년을 12달(月)로 나누면 1달 30일 또는 31일이 되는 것이다. 

60갑자는 원래 60계해(癸亥)로 사용되어 오다가 서기전3500년경 태호복희가 갑자(甲子)를 시작으로 삼았으며, 단군조선 시대인 서기전2096년에는 갑자년인 서기전2097년을 시작으로 하여 갑자년(甲子년)을 처음으로 삼아 책력(冊曆)을 만들었던 것이다. 계(癸)라는 글자가 상형문자로서 지구가 태양의 주위를 자전과 공전을 하면서 나타나는 모습을 나타낸 글자가 된다. 

서기전2229년에 칠회력(七回曆)이 지어졌으며, 서기전1916년에 이미 감성(監星)이라는 천문관측기관을 두었고, 서기전1382년에는 주천력(周天曆)과 팔괘상중론(八卦相重論)이 지어졌는 바, 역(易) 및 역법(曆法)과 관련된 우주원리(宇宙原理)에 관한 연구결과가 이미 정립되어 있었던 것이 된다. 

윷놀이판이 평면(平面)에 나타낸 역법이라면, 선기옥형(璇璣玉衡) 또는 혼천의(渾天儀)는 입체(立體)로 나타낸 것이 된다. 

고대중국의 기록에서는 선기옥형을 서기전2284년부터 서기전2224년 사이에 천자(天子)로 있었던 순임금 때 제작한 것으로 되는데, 서기전2267년에 도산회의(塗山會議)를 주관하러 가던 태자부루가 번한(番韓)의 수도이던 험독(險瀆)에서 반달간 민정(民情)을 청문(聽聞)을 할 때, 천자(天子) 순(舜)이 진한(眞韓) 태자부루를 알현하고 홍수와 치수에 관한 보고를 하면서 이때 단군조선과 시월(時月) 및 율도량형(律度量衡)을 맞춘 것이 되는 바, 역법(曆法)은 협의하여 사용 즉 협용(協用)하는 것으로서 당연히 단군조선의 역법과 통일한 것이 된다. 

천자(天子) 순(舜)이 단군조선의 역법과 통일하기 이전에는 서기전2357년에 당요(唐堯)가 배달나라의 질서를 배반하여, 이복형 제지(帝摯)를 쳐서 멸하고 스스로 제왕(帝王)이라 참칭하며 당(唐)을 세우고, 오행망설(五行妄說)을 주장하면서, 배달나라 역법인 태양태음성력(太陽太陰星曆)을 폐기하고 명협(蓂莢)이라는 풀에 의지한 순수한 음력을 사용하여 왔던 것이 된다. 

윷놀이판의 역법의 원리는 북극성을 중심으로 북두칠성이 1일(日)을 운행하는 기본적인 모습을 평면에 나타내고 이를 지구가 북극을 중심으로 자전(自轉)하는 모습과 지구가 태양을 중심으로 공전(公轉)하는 모습으로 연역하여 사방(四方)으로 주기를 나누어 1기(期), 1년(年)을 나타낸 것이 되며, 선기옥형의 역법의 원리 또한 북극성과 북두칠성을 기준으로 하여 지구, 28수, 태양과의 관계를 입체적으로 나타낸 것이 되는데, 모두 천부경(天符經)의 원리가 적용되어 만들어진 것으로 된다. 

나. 농공상(農工商) 문화 

단군조선 시대는 이미 벼농사를 지었으며 농사와 관련된 제도가 정비되어 있었고, 곡식을 담는 그릇을 제작하였으며, 시장을 열어 교역하여 물자를 필요에 따라 나눠쓰게 하였다. 

(1) 정전법(井田法) 

단군조선 시대에 농사 짓는 땅을 나누어 백성들과 군후들에게 일정한 법에 따라 배분해 주었는데 기본적으로 정전법이 된다. 중앙과 팔방으로 정(井)자 형태로 땅을 나누고 팔방의 땅은 팔방에 사는 백성들이 각자 농사를 짓고 중앙의 땅은 공동생산하여 세금을 납부하도록 하는 제도이다. 

정전법에 의하면 세율(稅率)은 1/9로서 약11%가 되는데 지금의 부가가치세 10%와 거의 같다. 

이후 서기전1993년에는 1/20의 세율로 변경하였으며, 서기전1661년에는 1/80의 세율로 변경하였는데, 이로써 중앙조정(中央朝廷)은 스스로 검소함을 실천하였던 것이며, 진정 백성을 위한 세법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2) 구정도(丘井圖) 

구정도는 정전법(井田법)의 시행을 위하여 땅을 그린 도면(圖面)으로서 지적도(地籍圖)에 해당하는 것이 된다. 

(3) 벼농사 

단군조선 초기부터 이미 벼농사를 지은 것으로 기록되고 있는데, 이로써 배달나라 시대에 이미 벼농사를 지었던 것으로 된다. 

서울대 박물관이 경기도 김포군 가현리 일대 김포평야에서 1987년 채집한 쌀을 방사성 탄소측정한 결과 4000년전인 서기전2100년 전의 것으로 판명됐다는 발표를 한 바 있고, 한국선사문화연구소, 단국대 박물관, 경기도 토지개발공사가 1989년에 경기도 고양군 일산읍 일산리 신도시개발지역에서 3200-4400년 전(서기전2500-서기전1200)의 토탄층에서 볍씨를 발굴한 바 있는데, 서기전 2500에서 서기전 1200까지는 배달나라 말기에서 단군조선 전기 시대가 된다. 

서기전2333년경 단군왕검 천제께서 천범 8조의 가르침을 내릴 때, 그 가르침 중에는 벼에 비유하여 가르친 내용이 있는 바, 단군조선 초기는 물론 배달나라 시대에 벼농사를 지었던 것이 틀림없는 것이 된다. 

천범 8조의 제8조는, 너희들이 만약 벼밭에 불을 놓아 벼가 모두 사라진다면 신인(神人)이 진노할 것이고, 너희들이 비록 두껍게 감싼다 하여도 그 냄새가 반드시 샐 것이니, 너희들은 본성을 공경스럽게 지녀서 사악함을 품지 말고 악함을 숨기지 말고 재앙을 감추지 말 것이며, 마음으로 지극히 하늘을 공경하고 백성들을 가까이 하면, 이에 복록이 무궁할 것이니, 너희 오가들은 따를 지어다라고 가르치고 있다. 

서기전2183년에 제2대 부루 천왕께서 붕어하시니, 백성들은 집안에 땅을 골라 제단(祭壇)을 설치하고 흙그릇에 벼와 곡식을 가득 담아 단위에 올려 놓았으며, 이를 부루단지라(扶婁壇地)고 부르고 업신(業神)으로 삼았다 하고, 서기전1992년 제8대 우서한 천왕 시절에 풍년이 들어 벼 한포기에 여덟 개의 이삭이 맺혔다라고 기록되고 있으며, 특히 황충(메뚜기)이 휩쓸었다는 등 벼농사와 관련된 많은 기록을 남기고 있다. 

앞에서 발굴된 볍씨는 단군조선시대에 이미 벼농사를 짓고 있었다는 증거가 됨에 충분한 것이 된다. 한편, 위 볍씨는 한반도에서 발굴된 것이고, 단군조선의 영토는 만주, 시베리아, 한반도, 산동반도, 회대지방, 황하부근, 또는 티벳에 이르기까지 걸쳐 있었으므로 벼농사를 지은 것은 명백한 역사적 사실이 된다. 

(4) 누에치기 - 치잠(治蠶) 

서기전2333년경 단군왕검 천제의 비(妃)이신 비서갑(斐西岬) 하백녀(河伯女) 신후(神后)께서 누에치기를 맡아 백성들에게 가르치셨다. 이로써, 단군조선 시대에 이미 명주(明紬) 옷을 지어 입었던 것이 된다. 

(5) 칡(葛)을 식량으로 이용하다 

포도 등 나무열매를 채집하여 식량으로 이용한 것은 물론, 벼농사를 지어 곡식을 수확하였으며, 영양분인 칡뿌리를 캐서 식량으로 삼았다. 

포도가 식량으로 된 계기는 서기전10000년경 마고성(麻姑城) 시대에 지유(地乳)의 부족으로 일어난 오미(五味)의 난으로 인한 것이라 기록되고 있는데, 아마도 그 이전까지는 양(羊)이나 소(牛) 등의 젖을 식량으로 삼았으나 인구증가로 인하여 한계에 달하여 마고성의 성벽에 심겨진 포도열매를 따먹기 시작하면서 마고성이 황폐화 되었던 것이고, 이에 마고성을 나가 사방으로 이동하여 분거를 하였던 것이 된다. 

이 사방분거시에 마고의 장손이던 황궁씨(黃穹氏)가 칡을 식량으로 삼는 방법을 가르쳤다. 포도는 피를 탁하게 하지만 칡은 피를 맑게 하는 작용을 하는데, 황궁씨가 육체는 물론 정신 건강을 위하여 칡을 권장한 것이 된다. 

단군왕검 천제(天帝)는 칡뿌리를 많이 복용하고 이슬을 많이 마시어 몸에 털이 길게 났으며 100년 사이에 각 지역을 방문하여 가지 아니한 곳이 없었다라고 기록되고 있다. 

(6) 그릇 

그릇 굽는 법은 이미 배달나라 시대에도 있었으며, 단군조선 초기에 그릇 굽는 법을 백성들에게 가르쳤던 것이다. 

서기전2183년에 제2대 부루 천왕께서 돌아가시자 백성들이 집집마다 제단을 만들어 그릇에 곡식을 담아 단에 올려 놓으니 이를 부루단지(扶婁壇地)라 하였는 바, 이러한 부루단지 풍습은 지금까지도 전해지고 있다. 

다. 시장과 교역 

단군조선 시대에 시장과 교역 제도로서 조시(朝市)와 해시(海市)와 신시(神市)가 있었다. 조시는 육지에, 해시는 진(津)과 포(浦) 즉 바다물가에 둔 시장(市場)이며, 신시는 매 10년마다 연 국제적인 교역행사지(交易行事地)가 된다. 

예(澧)와 양(陽)이 교차하는 중심지에 조시(朝市)를 설치하고 팔택(八澤)에 해시(海市)를 열어 매년 10월에 조제(朝祭)를 행하니 사해의 제족이 모두 지방 특산물을 바쳤다. 산악의 제족은 사슴과 양을 바치고, 해양 제족은 물고기와 조개를 바쳤는데이를 조선제(朝鮮祭)라 하였다. 언제나 세제(歲祭) 때에는 물화(物貨)가 폭주하였으며, 교역의 법을 시행하였다. 

한웅(桓雄)이 배달나라를 세우고 신시(神市)를 열어 사해제족(四海諸族)과 더불어 홍익인간의 이념을 실현하였던 것이며, 단군조선 또한 매 10년마다 신시(神市)를 열어 사해제족을 초청하여 정치적 종교적 가르침을 펴고 물물을 교역하였던 것이며, 나라 안에는 조시(朝市)와 해시(海市)를 열고 매년 10월에는 소도제천(蘇塗祭天) 행사와 더불어 조제(朝祭)를 열어 육지생산물과 해산물을 서로 교역하게 함으로써 물자가 풍족하게 하여 경제적으로 홍익인간의 이념을 실현하였던 것이 된다. 

------------------------------- 
[필자 프로필] 조홍근(曺洪根, 52세). 한문화재단(桓文化財團) 총재. 트위트-페이스북 역사당 부총재. 현 법무사. 

  
 
  
 

30여년 족보(族譜)와 한중일(韓中日) 역사를 연구해 오면서, 부도지(符都誌), 한단고기(桓檀古記), 규원사화(揆園史話), 단기고사(檀奇古史) 등 귀중한 역사자료를 통하여, 우리역사 1만년을 넘어 마고(麻姑) 시대를 포함한 7만2천390년 역사를 밝히고 있음. 

1. 역법(曆法)의 시초는 마고성(麻姑城)의 황궁씨(黃穹氏) 시대인 서기전24418년 계해년(癸亥年)임을 밝혔으며, 서기전70378년 계해년이 마고(麻姑) 기원(紀元:천부 天符)임을 밝혔음. 
2. 나반(那般:那般尊者:獨聖者)이 한국(桓國)시대 한인씨(桓因氏) 이전의 임금이던 유인씨(有因氏)이며, 한인씨 7대(代)가 약1,000년을 다스렸던 것임을 밝혔음. 
3. 윷놀이판의 모습이 천부경(天符經)의 역(易), 역법(曆法), 음양오행(陰陽五行), 단군조선의 정치행정구조를 나타낸 것임을 밝혔으며, 태호복희 8괘역과 윷놀이판의 역이 지구의 자전과 공전을 기반으로 한 역(易)임을 밝혔음. 
4. 천제(天帝), 천황(天皇:天王), 천군(天君), 천공(天公), 천후(天侯), 천백(天伯), 천자(天子), 천남(天男)의 위계질서를 최초로 밝혔으며, 천제자(天帝子)와 천자(天子)의 차이점을 최초로 밝혔음. 
5. 태호복희씨(太皞伏羲氏)가 일반 천자(天子)가 아니라 천지인(天地人) 제사장인 천군(天君)임을 밝혔음. 6. 아리랑(阿里嶺) 민요의 원천이 되는 최초의 역사적 사실을 밝혔음. 
7. 고대중국의 요순우(堯舜禹)와 고대일본의 신무왕(神武王)이 단군조선의 반역자(反逆者)이면서 제후격의 천자임을 밝혔음. 
8. 우비(禹碑, 우 치수기념 부루공덕비)의 비문을 국내 최초로 역사적 해석을 하여, 서기전2267년 이후 우가 치수에 성공한 후 치수법을 전수해 준 단군조선 태자부루의 공덕을 새긴 것임을 밝혔음. 
9. 일본 국조신(國祖神)인 천조대신(天照大神)의 사당인 이세신궁(伊勢神宮)에 소장된 원시한글 축문을 국내 최초로 완벽 해독하고, 요하유로 기록된 천조대신이 단군조선 두지주 예읍의 추장의 후손임을 역사적으로 밝혔음. 
10. 명도전(明刀錢) 최초 해독학자 허대동선생<저서 고조선문자>의 가림토(加臨土) 해독의 검증에 참여하여 첨수도, 명도전이 단군조선의 화폐이며, 거기에 새겨진 문자가 단군조선의 문자임을 밝혔음. 그 외 다수 ---------- 

천산(天山)의 다른기사 보기  
ⓒ 데일리전북(http://www.dailyjeonbuk.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