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뿌리를 찾아서)/홍익인간 7만년 역사

[홍익인간 264] 단군조선 문화제도 31

양해천 2018. 1. 22. 11:41

[홍익인간 264] 단군조선 문화제도 31

2012년 03월 26일 (월) 08:42:35천산(天山)  sppopsj@yahoo.co.kr

5. 단군조선의 언어문자 

단군조선 시대의 말과 글은 당연히 배달나라의 말과 글이 된다. 가림토 38자와 명도전에 새겨진 글자로 미루어 보아 단군조선 시대의 말은 지금 우리가 쓰는 말과 비교할 때 변음된 측면을 재외하면 대동소이한 것으로 될 것이다. 

배달나라 시대에 이미 9족(族)이 있어 종주국(宗主國)이 쓰던 언어와 다른 구별되는 언어로서 8족의 8음(音)이 있었던 것이 되고 문자로는 배달나라 전체에 2문(文)이 있었던 것이 되는데, 배달나라 시대의 9족(族)의 말은 사물을 지칭하는 등의 단어나 단어에 붙는 조사 등이 다를 뿐 모두 소위 우랄알타이족에 속하는 언어로서 지금의 교착어(膠着語) 계통이 되는 것이며, 문자로는 상형문자(象形文字)와, 상형문자에 비하여 표음문자에 해당하는 상음문자(象音文字)의 2종류가 사용되었던 것이 된다. 이후 단군조선 초기인 서기전2181년에 이르러 소위 상음문자(象音文字) 중에서 대표적인 자음(子音)과 모음(母音)을 정선(精選)하여 가림토(加臨土) 38자로 정립된 것으로 된다. 

한편, 서기전2698년에 시작된 황제헌원(黃帝軒轅)의 나라인 유웅국(有熊國)의 백성들은 황제헌원이 도입한 배달나라의 상형문자(象形文字)를 일상의 의사소통의 도구로 삼으면서 소위 고립어(孤立語)가 되는 문장언어(文章言語)를 일상언어로써 사용하게 되어, 이후 약 1,000년을 지나면서 일종의 언어로 정착화되는 과정을 겪었던 것이 된다. 이리하여 서기전2698년으로부터 약 1,000년이 지나는 시점인 서기전1700년경이 되는 하(夏)나라 말기나 은(殷)나라 초기에 지금의 중국어와 같은 고립어로서 이미 하나의 언어로 고착화(固着化)된 것이 될 것이다. 

아래에서는 단군조선 문자의 연원(淵源), 발전(發展) 등의 역사와 함께 단군조선 문자와 관련된 전반적인 내용을 살펴보기로 한다. 

<단군조선 문자의 역사적 고찰>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한글은 세종대왕(世宗大王)이 만들었다는 훈민정음(訓民正音)에서 나온 글자이다. 훈민정음이 소리글자라는 것은 한국 사람이라면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 우리말의 거의 70%를 차지한다는 한자어(漢字語)는 소위 한자(漢字)라는 글자로 이루어진 우리말이다. 일반상식적으로 중국의 문자로 알고 있는 소위 한자(漢字)는 우리 역사상 수입하였다 하는 사실적 기록이 없을뿐더러 실제 수입하였던 사실이 없다. 그러면, 과연 이 한자(漢字)라는 글자는 도대체 누가 언제 만들어 사용하게 된 것이며, 또 한자를 읽는 소리는 언제부터 생겼을까? 

결론부터 말한다면, 후대에 소위 한자(漢字)라고 불리는 상형문자(象形文字)이자 표의문자(表意文字)는 우리 한국(韓國)의 선조(先祖)가 되는 사람들이 처음으로 만든 글자이며, 그 읽는 소리인 음독(音讀)과 훈독(訓讀)이 모두 원래 우리말임을 단언한다. 

역사가 흐르면서 한국(韓國)과 중국(中國)이 구별되게 되었고, 한국의 선대에 소리글자인 가림토(加臨土)가 만들어지면서, 한국역사 속에서는 소위 상형문자와 상형문자를 읽는 표준음을 나타내는 소리글자인 가림토(加臨土)가 함께 사용되어 왔던 것이며, 중국의 역사 속에서는 상형문자만 사용되어 왔던 것이 되는데, 역사사건을 기록하거나 의사소통 등의 문제로 상형문자를 주된 글자로 사용함으로써, 특히 한국과 중국의 상호관련 하에서 글자자체로서 뜻을 나타내며 의사전달에 편리한 상형문자가 공용화된 것이 된다. 

그러나, 한국의 역사 속에서는 여전히 표음문자이던 가림토 글자를 단군조선 이후에도 서기전209년부터 시작되는 후삼한(後三韓) 시대는 물론 서기6세기의 가야시대까지 사용하여 온 것이 되고, 비공식적으로는 비전(秘傳)으로 또는 민간에 암암리에 전승되어 왔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글이라는 말 자체가 그리다에서 나온 말이며 그림이라는 말과 같은 어원을 가지는 것이다. 契(글)이라는 글자는 처음에는 아래 글자인 大가 없었던 것이 되고, 칼로 그리듯 “긁”어서 표시한 결과를 가리키는 것이 되어, 글자임을 나타내는 문자인 것이며, 지금은 음독(音讀) 및 훈독(訓讀)으로 모두 “글”이라고 소리내는 글자가 된 것이다. 

또, 文이라는 글자는 지금은 “글월 문”이라 읽는데, 원래 방문(房門)의 무늬모양을 나타내는 상형문자인 것이며, 가림토식 독법(讀法)으로 “문”으로도 읽히고 “글”이라고도 읽히는 글자가 된다. 契과 文이라는 글자에서 보듯이 소위 한자를 읽는 소리인 음독(音讀)과 훈독(訓讀)은 모두 우리말이며, 특히 지금의 음독(音讀)은 곧 소위 한자(漢字)의 표준음(標準音)임을 단적으로 나타내는 것이 된다. 契과 文은 모두 “글”을 뜻하는 글자인데 契은 “글”로 文은 “문”으로 음독(音讀)을 가진 글자로 정립된 것으로 된다. 

아래에서는 우리 한국의 역사상 문자 즉 상형문자와 표음문자와 관련된 역사, 상형문자를 읽는 소리 즉 표준음(標準音)의 문제, 상형문자를 사용한 우리말 표기인 이두(吏讀)와 상형문자를 간소화한 문자인 부예(符隸)와 함께 우리 문자와 관련된 전반적인 문제를 고찰해 보기로 한다. 

1. 그림과 문자의 관계 

그림 즉 도형(圖形)을 문자라고 단정하기는 곤란하다. 그러나, 때에 따라서는 그림 자체가 기호(記號)나 부호(符號)로서 의사전달의 도구로 볼 수 있을 것이며, 더 나아가 일종의 문자(文字)로서 기능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림은 소위 문자를 사용하게 되는 역사(歷史)시대 이전에 인류가 이미 그려서 사용하였다. 우리 한국의 역사상에도 구석기 시대나 신석기 시대로 볼 수 있는 시기에 그림을 남기고 있는 것이다. 물론 역사시대 이후에는 그림이 예술적으로 활용되었던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림은 문자발전 단계에서 보면 문자의 원천이라고 할 수 있다. 즉 그림이 변화하여 문자가 되는 것이다. 상형문자는 다른 말로 그림문자인 것이며, 사물 등을 나타내는 그림이 점점 간략화 되거나 축소화 또는 상징화 되면서 부호(符號)에서 글자로 변하여 소위 상형문자가 되는 것이다. 

상형문자가 처음에는 그림에서 출발하였듯이, 현재 인류가 사용하고 있는 소리글자는 처음에는 상형문자에서 출발한 것이 된다. 그리하여 우리가 소리글자로 알고 있는 세종대왕의 훈민정음 즉 한글의 낱 글자는 원래 상형문자에서 나온 것이 된다. 

훈민정음 28자의 글자 모양은 단순히 발음기관의 모양만을 딴 것이 아니다. 사람은 우주의 일부분으로서 우주를 담고 있는 존재이므로, 발음기관의 변하는 모습 또한 자연에 존재하는 것이므로 한글의 글자 모습은 곧 자연의 모습으로서 결론적으로 상형문자인 것이다. 

○, □, △은 그림일까, 부호일까, 문자일까? 모두 다 맞다고 할 것이다. 왜냐하면 서기전2181년에 출현하는 단군조선의 표음문자인 가림토38자에 모두 들어 있는 글자이며, 축소화 상징화 하면 소위 삼재(三才)라 불리는 . ㅡ l 가 되어 기본 모음으로 사용되기 때문이다. 이 세가지 ○, □, △과 . ㅡ l 은 세종대왕의 훈민정음 28자에도 모두 들어있는 글자로서 기본글자인 것이다. 

그런데, ○, □, △의 도형은 우리 역사상 아무리 늦어도 일반적으로 역사시대로 분류되는 청동기 시대가 되는 서기전3897년경에 이미 출현하고 있다. 

2. 우리 역사상 부호(符號)의 출현 

○, □, △은 도형(圖形)으로서 천부삼인(天符三印)이다. 즉 ○, □, △은 하늘, 땅, 사람을 상징하는 증표(證標)인 그림이며 부호(符號)가 된다. 그런데, 이 ○, □, △은 부호에서 나아가 상형문자가 된다. 그림 즉 도형이 부호가 되고 곧 문자가 되는 경우에 해당한다. 

천부삼인은 우리 역사상 한국(桓國)의 한인(桓因) 천제(天帝)가 한웅(桓雄)에게 전수한 것으로 기록되고 있다. 여기서 ○, □, △이 도형(圖形)으로서의 천부삼인(天符三印)이며, 서기전3897년 10월 3일에 배달나라를 세운 한웅(桓雄) 천왕(天王)이 하늘나라에서 전수받아 가져온 것이 된다. 

  
 
 <천부삼인(天符三印)의 증거물 : 청동거울, 청동방울, 청동칼> 
 


한국시대는 서기전7197년부터 서기전3897년까지에 해당한다. 서기전3897년에 한웅 천왕이 천부삼인(天符三印)을 증표로써 홍익인간(弘益人間) 세상을 여니 개천(開天)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한웅천왕이 천부삼인을 한국(桓國)에서 전수(傳授)받아 왔으니, ○, □, △의 문양은 이미 한국시대에 존재하였던 것이 된다. 즉, ○, □, △을 그냥 그림이나 부호가 아니라 문자로 보게 된다면 이미 한국시대에 문자가 있었다는 결론이 된다. 

홍익인간 세상은 널리 인간세상을 이롭게 한다는 뜻이며, 천부(天符) 즉 하늘의 뜻에 따라 다스린다는 의미이다. 천부삼인은 천지인의 세가지 증표이다. 그리하여 도형으로서의 천부삼인인 ○, □, △은 각각 하늘, 땅, 사람을 상징한다. 

하늘은 둥글어 ○의 모양이며, 땅은 전후좌우 또는 동서남북의 네 방향(方向)이 있어 □의 모양이고, 사람은 서있는 존재이므로 △의 모양이 된다. 모양 자체에서 상형문자라 할 수 있다. 

한편, 우리 역사상 역법(曆法) 즉 달력은 서기전25858년 계해년(癸亥年) 또는 서기전24418년 계해년부터 사용한 것으로 역산(逆算)되는데, 우리가 설날과 추석 명절에 놀이도구로 사용하는 윷놀이판의 그림이 곧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7일과 28수(宿)를 달력의 기본으로 한 양력(陽曆)을 나타내는 것이다. 

즉, 윷놀이판의 기본 그림은 7개의 점이 북두칠성을 나타내는 것이 되는데, 이미 북두칠성이 북극을 중심으로 회전하는 모습이 서기전25000년경에 정립되어 있었다는 결론이 되며, 윷놀이판의 그림에서 북두칠성을 나타내는 7개의 점을 단순한 그림으로 볼 것인지 아니면 북두칠성을 나타내는 상형문자로 볼 것인지에 따라 그림이냐, 부호냐 또는 문자냐 하는 문제가 대두된다. 

또, 부도지(符都誌)와 한단고기(桓檀古記) 삼성기(三聖紀)의 기록을 종합하면, 서기전7197년경에 해당하는 시기에 천부(天符)를 신표(信標)로 사용하였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는데, 이 천부(天符)는 부호(符號)로서의 도형(圖形)이거나 부호가 그려진 물건이 되며, 만약 도형이라면 단순한 그림이냐 아니면 부호냐 또는 더 나아가 상형문자이냐 하는 문제가 나올 수 있게 된다. 

그런데, 늦어도 서기전6200년경에 해당하는 시기에 이미 천부삼인(天符三印)이라는 용어가 역사기록상에 등장하는 바, 이때는 한국(桓國) 시대의 중기에 해당하고, 천부삼인은 곧 천지인의 세 가지 증표로서 도형으로는 ○, □, △이 되며, 물건으로는 거울, 방울 또는 북, 칼 또는 창이 되는 바, 서기전3897년에 한웅이 한인으로부터 전수받았다는 천부삼인이 도형인 ○, □, △이 되므로, 서기전6200년경에 이미 ○, □, △이 사용되고 있었다는 것이 된다. 

이로써, 천부삼인의 원천이 되는 천부(天符)는 하늘과 땅을 상징하는 부호로서 ○, □가 되는데, 우리의 역사기록상 서기전7197년 이전이 되는 시기에 오금(烏金)이라는 방울이 귀걸이로 사용되었던 것을 볼 때, 방울의 구멍이 뚫린 모양을 고려하면 ꁋ의 모양이 될 것이고, 이는 태극(太極) 모양으로서 二(이)를 나타내는 도형이 된다. ○을 한번 잘라 펴면 一이 되고, ꁋ은 점이 2개이므로 나누면 ㄷ이 아래와 위로 겹쳐진 모양으로서 □으로 나타낼 수 있으며 간략히 처리하면 二가 되는 것이다. 

여기서 ○, ꁋ을 단순한 그림이나 부호가 아니라 사물을 가리키는 상형문자로 본다면, 실질적으로 우리 역사상 문자 사용시기는 서기전7197년 이전으로 소급하게 되는 것이며, 윷놀이판에 새겨진 7개의 점이 북두칠성을 나타내는 문자로 보게 된다면 역법이 정립된 시기가 되는 서기전25858년경까지 소급하게 될 것이다. 

3. 우리 역사상 문자(文字)의 출현 

우리 역사기록인 신시본기(神市本紀)에는 서기전3897년경 배달나라 초기에 신지(神誌) 혁덕(赫德)이 문자를 만들었다라고 적고 있다. 신지는 관직(官職)이며 혁덕은 인명(人名)이다. 이때 신지 혁덕이 만든 문자를 녹도문(鹿圖文)이라고 부른다. 녹도문은 사슴을 나타내는 문자로써 문자의 역사가 시작되었다는 의미에서 불리는 것이 된다. 

또, 이때 이미 소리글자의 원류가 되는 ㄱ 모양의 글자가 사용되었다라고 기록되고도 있는데, 이 ㄱ은 곧 상형문자이기도 하므로, 우리 역사상 상형문자가 시작된 서기전3897년에 ㄱ이라는 글자가 등장한다는 것은 당연한 논리가 된다. 

녹도문은 사슴을 특징적으로 나타내는 글자로서 당연히 상형문자가 된다. 즉 서기전3897년부터 이미 상형문자가 만들어지면서 사용된 것이다. 물론 이때부터 후대에 소리글자가 되는 상형문자도 함께 만들어지고 사용된 것으로 될 것이다. 

그리고, 약 1,000년이 흐른 뒤인 서기전2700년경 배달나라 제14대 치우천왕(蚩尤天王) 시대에 놀이도구인 투전목(鬪佃目)이라는 것이 사용되었으며, 숫자를 나타내는 산목(算木)이 사용되었는 바, 투전목의 도형은 그림이나 부호가 될 것인데 경우에 따라서는 문자로도 분류될 수 있을 것이며, 산목의 숫자를 나타내는 것은 지금도 사용되는 소위 한자(漢字)의 숫자와 동일하거나 유사한 모양으로 논리적인 글자인데, 분명히 글자인 것이다. 특히 사물의 모습이 아닌 숫자 등을 나타내는 글자를 지사문자(指事文字)라 한다. 

논리적으로 서기전25858년에 이미 역법(曆法)이 정립되어 사용되었다면, 셈하는 숫자를 나타내는 그림이나 부호 또는 지사문자가 사용되었을 것이며, 또 하늘, 땅, 사람, 해, 달, 별, 나무, 물 등 사람이 쉽게 접하고 인식하는 기초적인 사물도 이미 그림이나 부호나 상형문자 형태로 사용되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문자사용의 시작시기를 꼭 집어 말할 수는 없을 것이나, 본격적으로 문자가 공식적으로 체계적으로 사용된 것은 우리 역사에서 기록상으로도 배달나라 초기부터가 될 것이며, 그 이전에는 그림, 부호(符號) 등으로서 의사를 전달하는 원시적인 형태의 상형문자가 사용되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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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프로필] 조홍근(曺洪根, 52세). 한문화재단(桓文化財團) 총재. 트위트-페이스북 역사당 부총재. 현 법무사. 

  
 
  
 

30여년 동안 족보(族譜)와 한중일(韓中日) 역사를 연구해 오면서, 부도지(符都誌), 한단고기(桓檀古記), 규원사화(揆園史話), 단기고사(檀奇古史) 등 귀중한 역사자료를 통하여, 우리역사 1만년을 넘어 마고(麻姑) 시대를 포함한 7만2천390년 역사를 밝히고 있음. 

1. 홍익인간(弘益人間) 천부(天符)의 역사는 마고성(麻姑城:파미르고원)의 마고(麻姑)시대인 서기전70378년 계해년(癸亥年)부터 시작되었음을 최초로 밝혔음. 
2. 역법(曆法)이 시작된 해는 마고성(麻姑城)의 황궁씨(黃穹氏) 시대인 서기전25858년 계해년(癸亥年)임을 밝혔으며, 서기전70378년 계해년이 마고(麻姑) 기원(紀元:천부 天符)임을 밝혔음. 
3. 황궁씨를 이은 나반(那般:那般尊者:獨聖者)이 한국(桓國)시대 한인씨(桓因氏) 이전의 임금이던 유인씨(有因氏)이며, 한인씨 7대(代)가 약1,000년을 다스렸다는 것임을 밝혔음. 
4. 윷놀이판의 모습이 천부경(天符經)의 무한조화순환역(無限造化循環易), 음양오행(陰陽五行), 태양태음성력(太陽太陰星曆), 단군조선의 정치행정 구조를 나타낸 것임을 밝혔으며, 하도(河圖)와 낙서(洛書)가 배달나라 시대의 음양오행수리역(陰陽五行數理易)이며, 태호복희 8괘역과 윷놀이판의 역이 지구의 자전(自轉)과 공전(公轉)을 기반으로 한 역(易)임을 밝혔음. 
5. 천제(天帝), 천황(天皇:天王), 천군(天君), 천공(天公), 천후(天侯), 천백(天伯), 천자(天子), 천남(天男)의 위계질서를 최초로 밝히고, 천제자(天帝子)와 천자(天子)의 차이점을 최초로 밝혔으며, 태호복희씨(太皞伏羲氏)가 일반 천자(天子)가 아니라 천지인(天地人) 삼신(三神)에게 제(祭)를 올리는 권한을 가진 제사장인 천군(天君)임을 밝혔음. 
6. 아리랑(阿里嶺) 민요의 원천이 되는 최초의 역사적 사실이 서기전2333년 10월 3일 조선을 건국하기 이전에 있었던 당요(唐堯)의 전란(戰亂)으로 인한 단군왕검(檀君王儉)의 동북 아사달로의 이동과정임을 밝혔음. 
7. 고대중국의 천자로 불리는 요순우(堯舜禹)와 고대일본의 신무왕(神武王)이 단군조선의 반역자(反逆者)이면서 제후인 천자(天子)임을 밝혔음. 
8. 우비(禹碑:우 치수기념 부루공덕 비)의 비문을 국내 최초로 역사적 해석을 하여, 서기전2267년 이후 우(禹)가 치수에 성공한 후 치수법(治水法)을 전수해 준 단군조선 태자부루의 공덕을 새겨 남악(南嶽) 형산(衡山)에 세운 것임을 밝혔음. 
9. 일본 국조신(國祖神)인 천조대신(天照大神)의 사당인 이세신궁(伊勢神宮)에 소장된 원시한글 축문을 국내 최초로 완벽 해독하고, 요하유로 기록된 천조대신이 단군조선 두지주(豆只州) 예읍(濊邑)의 추장(酋長)의 후손임을 밝혔음. 
10. 명도전(明刀錢) 최초 해독학자 허대동선생<저서 고조선문자>의 가림토(加臨土) 해독의 검증에 참여하여 첨수도(尖首刀), 명도전이 단군조선의 화폐이며 새겨진 문자가 단군조선의 상형 및 표음 문자임을 밝혔음. 그 외 다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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