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뿌리를 찾아서)/홍익인간 7만년 역사

[홍익인간 294] 고구려(高句麗) 연대기 3

양해천 2018. 1. 22. 13:08

[홍익인간 294] 고구려(高句麗) 연대기 3

2012년 04월 25일 (수) 07:52:15천산(天山)  sppopsj@yahoo.co.kr

<고주몽 성제의 조서(詔書)> 

서기전37년경 고주몽 성제께서 조서를 내리셨다. 

“천신(天神)이 만인(萬人)을 하나의 모습으로 만드시고, 골고루 삼진(三眞)을 나누어 주시니, 이에 사람이 하늘을 대신하여 능히 세상에 섰도다. 하물며 우리 나라의 선조는 북부여(北夫餘)로부터 나시어 천제(天帝)의 아들이 되었도다. 철인(哲人)은 비우고 고요한 계율(戒律)로 오래도록 사악한 기(氣)를 끊어 그 마음이 편안하고 태평하다. 스스로 뭇사람들과 함께하여 일마다 마땅함을 얻는다. 군사(軍事)를 쓰는 것은 침범을 늦추기 위함이며, 형(刑)을 집행하는 것은 죄악을 없애는 것을 기하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비움이 지극하면 고요함이 생기고, 고요함이 지극하면 앎(知)이 충만한다. 앎이 지극하면 덕(德)이 융성한다. 그러므로 비움으로써 가르침을 듣고, 고요함으로써 조용히 재며, 앎으로써 사물을 다스리고, 덕으로써 사람을 구제한다. 이것이 곧 신시(神市)의 개물교화(開物敎化)이며, 천신(天神)을 위하여 본성(本性)을 통하고, 중생(衆生)을 위해 법(法)을 세우고, 선왕(先王)을 위해 공(功)을 완수하고, 천하만세(天下萬世)를 위하여 지혜와 삶을 함께 닦음을 이루는 교화이다.(檀君高朱蒙 詔曰 一神造萬人一像 均賦三眞 是其代天 而能立於世也 況 吾國之先 出自北夫餘 爲天帝子之乎 哲人虛靜律身 其心神安泰 自與衆人 事事得宜 用兵所以緩侵伐也 行刑所以期無刑也 故 虛極靜生 靜極知滿 知極德隆也 故 虛以聽敎 靜以결矩 知以理物 德以濟人 此乃神市開物施化 爲天神通性 爲衆生立法 爲先王完功 爲天下萬世 成智生雙修之化也<參佺戒經總論, 乙巴素傳受>) 

<극재사의 삼일신고(三一神誥) 독법(讀法)> 

극재사가 삼일신고 독법을 지어 고주몽성제께 올렸다. 마의(麻衣) 극재사(克再思)는 고구려 시조 고주몽(서기전79년-서기전19년) 등 7인(주몽, 오이, 마리, 협보, 재사, 무골, 묵거)이 고구려(서기전37년-서기668년)를 건국할 때의 한 사람으로서 삼일신고를 읽는 방법을 아래와 같이 쓰고 있다. 

“나는 무리들에게 말한다. 신고(神誥)를 읽으려면 반드시, 먼저 깨끗한 방을 택하여, 진리도[원리도]를 벽에 걸고, 손을 씻고 양치질을 하고, 몸을 깨끗이 하여, 옷과 관(冠)을 가지런히 하고, 냄새나는 술[냄새나고 더러운 것]을 끊고, 향을 피우고, 무릎을 모아 꿇어 앉아, 조용히 일신(一神, 한얼, 하늘님)에게 기도해야 한다. 큰 믿음과 맹세를 세우고, 모든 사악한 생각을 끊고, 366알의 대단주(大檀珠)를 지니고서, 한마음으로 바른 글인 366자의 말씀의 진리[원리]를 읽어, 위 아래로 철저히 조합하여 일관되게 해야 한다. (읽기를) 3만회에 이르면 액(厄)이 점차 소멸하고, 7만회에 이르면 질병과 전염병이 침범하지 못하고, 10만회에 이르면 칼과 병기를 피할 수 있으며, 30만회에 이르면 날짐승과 길짐승이 길들여져 엎드리고, 70만회에 이르면 사람과 귀신이 공경하여 두려워 하며, 100만회에 이르면 영철(靈哲. 神將과 神官. 武와 文에 해담)이 지도하고, 366만회에 이르면 366개의 뼈를 바꾸어 366개의 혈(穴)을 모으게 하고 366도(度)를 회전시켜, 고통을 떠나 즐거움(쾌락)으로 나아가는데, 그 신묘함을 다 적을 수 없다. 만약 입으로만 외우고 마음으로는 거슬리면 사악한 견해가 생기게 된다. 외설되고 게으름이 있으면 비록 억만번을 읽더라도 바다로 들어가 호랑이를 잡는 것과 같이 끝내는 성공치 못하고 도리어 목숨과 복록이 감소하여 잘라져 나가고, 재앙과 피해가 다가와 이르러 고통과 어두움의 세계로 굴러 떨어져, 아득하게 벗어날 기회도 없게 된다. 가히 두려워 하지 않으랴. 힘쓰고 힘써야 한다.” *[ ]안의 내용은 타본(他本)의 글을 옮긴 것임. 

위 삼일신고 독법의 글에서, 신선(神仙)의 경지와 오늘날의 무속(巫俗)의 경지가 상호 관련성이 있음을 엿볼 수 있다. 삼일신고를 통하여 건강을 얻고, 무(武)에 통달하게 되고, 짐승을 임의대로 부리고, 사람과 귀신이 두려워 하며, 신령이 지도하는 단계를 거쳐 환골탈태(환골이신, 뼈를 바꾸어 신선으로 됨))하게 되는데, 환골탈태하면 철인(哲人) 즉 신선(神仙)이 되는 것이며, 신령이 지도하는 단계가 무(巫)의 단계가 된다. 신령이 지도하게 되면 다른 사람이나 만물의 과거 미래를 훤히 볼 수 있게 된다. 이러한 경지의 내용을 알려주는 글이 대진국(大震國) 문적원(文籍院)의 감(監)이던 임아상)의 삼일신고 주해이다. 

삼일신고주해(三一神誥注解)는 대진국(大震國:발해) 자완대부(紫緩大夫) 선조성(宣詔省) 좌평장사(左平章事) 겸 문적원(文籍院)의 감(監)이던 임아상(任雅相)이 천통(天統. 대조영, 태조 성무고황제의 연호) 16년(서기 714년) 10월에 대조영 고황이 본 삼일신고를 찬(贊)할 때 대조영 고황의 명(命)을 받들어 쓴 것이다. 서문(序文)은 천통 17년(서기 715년) 3월 3일에 반안군왕(盤安郡王) 대야발(大野勃)이 썼다고 전한다. 삼일신고주해의 풀이 글은 부록으로 붙이기로 한다. 

<북옥저 정벌> 

서기전27년 갑오년(甲午年) 10월에 북옥저를 정벌하여 멸망시켰다. 

<수도를 상춘으로 옮기다> 

서기전26년 을미년(乙未年)에 졸본으로부터 서울을 눌현으로 옮겼다. 눌현은 지금의 상춘(常春) 주가성자(朱家城子)이다. 눌현은 늘봄 즉 상춘(常春)의 이두식 표기이다. 

<유화부인을 졸본으로 모셔와 장사지내다> 

서기전24년 정유년(丁酉年)에 유화부인(柳花夫人)이 돌아가시자 고구려는 호위병 수만으로 졸본(卒本)으로 모셔와 장사지냈는데, 명을 내려 황태후(皇太后)의 예로써 산같이 만든 릉(陵)으로 옮기게 하고 그 옆에 사당을 짓게 하였다. 

<태자 유리(琉璃) 즉위> 

서기전19년 9월에 고주몽 성제께서 붕어하시니 태자 유리가 즉위하였다. 

<제후국 어하라국의 태자 비류의 즉위> 

서기전19년에 아하라국 왕 소서노(召西弩)가 훙(薨)하니 태자 비류가 즉위하였다. 

2. 제2대 유리명제(琉璃明帝:서기전18년~서기18년) 

서기전17년에 유리명제가 황조가(黃鳥歌)를 지었다. 

<선비족의 토벌> 

서기전9년에 선비족이 침입하였다. 4월에 부분노의 계책으로 선비족을 항복시켰다. 

<대소왕의 즉위> 

서기전7년 갑인년(甲寅年)에 동부여왕 금와가 훙하니 태자 대소가 즉위하였다. 

<동부여와의 국교> 

서기전6년 을묘년(乙卯年) 봄 정월에 동부여왕 대소가 사신을 고구려에 보내와 국교를 청하고 왕자를 인질로 삼자고 하였다. 이에 고구려 제2대 유리명제가 태자 도절을 인질로 삼으려 하였으나 도절이 가지 않으매 왕이 그를 꾸짖었다. 

<동부여 대소왕의 고구려 침공 실패> 

서기전6년 가을 10월에 대소왕이 병력 5만을 이끌고 가서 졸본성을 침략하였으나 큰 눈이 와서 많은 동사자만 내고는 퇴각하였다. 

<국내성으로 천도하다> 

서기1년~서기3년에 눌현으로부터 국내성으로 수도를 옮겼다. 이를 황성(皇城)이라고도 한다. 성안에 환도산(丸都山)이 있고 산위에는 성을 쌓고 일이 있으면 여기서 머물렀다. 

유리왕이 사냥을 즐기자 협보(陜父)가 간하였으나 유리왕은 협보의 관직을 낮추었다. 이에 협보는 남쪽으로 떠나 지금의 일본 땅에 있는 다파라국으로 갔다. 

서기3년에 위나암성을 축조하였다 

서기4년에 유리명제는 태자 도절이 갑자기 죽자 둘째 아들 해명을 태자로 삼고 졸본(卒本)을 다스리게 하였다. 해명태자가 황룡국을 자극한다고 유리명제가 자결을 명하였다. 이때 졸본은 고구려의 첫 수도로서 국내성(國內城:나라안:집안), 상춘(常春:눌현:늘봄)과 더불어 3경(京)의 하나가 된다, 

<개국공신 연타발의 사망> 

서기6년 병인년(다물34년) 3월에 졸본 출신으로서 남북의 갈사를 오가면서 재물을 모아 부(富)를 이루어 은밀하게 주몽을 도와 창업입도의 공을 세웠던 연타발(延他勃)이 80세로 죽었다. 즉 연타발은 서기전86년생으로서 고주몽 성제보다 7세 위가 된다. 

연타발은 고구려가 창건 된 후에 무리를 이끌고 구려하(九黎河:서압록 최상류, 서요하 상류)로 옮겨 고기장이와 소금장사를 하게 되더니 고주몽 성제가 서기전27년에 북옥저를 정벌할 때 양곡 5,000석을 바쳤다. 

또, 서기전26년에 서울을 눌현으로 옮길 때는 앞질러 자납(自納)을 원하여 유망민(流亡民)을 초무하고 왕사(王事)를 권하여 공을 세웠으니 좌원(坐原)에 봉작을 받았다. 

자납(自納)이란 스스로 재물을 헌납하는 등 공납을 바쳤다는 것을 의미한다. 유망민은 집을 떠나 떠도는 유랑민을 가리킨다. 

여기 좌원(坐原)은 서기전1286년에 단군조선의 종실로서 해성(海城)의 욕살(褥薩)이었다가 제21대 소태(蘇台) 천왕으로부터 살수(薩水)의 섭주(攝主)인 기수(奇首)로 봉해졌으나, 우현왕(右賢王) 색불루(索弗婁) 등의 상소로 서인(庶人)으로 폐해졌던 서우여(徐于餘)가 이에 불만을 품고 몰래 군사를 일으킨 곳이기도 하며, 또 위씨조선의 우거왕이 서기전118년에 차지하였던 해성(海城) 부근 지역을 서기전115년에 북부여 제4대 고우루 천왕이 수복한 후, 서기전114년에 목책(木柵)을 설치한 곳이기도 한데, 좌원(坐原)은 해성(海城)의 서쪽에 위치한 것이 되는 바, 번한(番韓) 또는 진번(眞番) 땅에 있는 것이 되어 아마도 험독(險瀆)이 되는 지금의 산해관(山海關)과 해성(海城)의 자리가 되는 지금의 요동반도 안산(鞍山)의 중간 지역에 있었던 것으로, 지금의 대릉하의 좌(左)측 즉 동쪽에 위치한 땅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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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프로필] 조홍근(曺洪根, 52세). 한문화재단(桓文化財團) 사무총장. 트위트-페이스북 역사당 부총재. 현 법무사. 

30여년 동안 족보(族譜)와 한중일(韓中日) 역사를 연구해 오면서, 부도지(符都誌), 한단고기(桓檀古記), 규원사화(揆園史話), 단기고사(檀奇古史) 등 귀중한 역사자료를 통하여, 우리역사 1만년을 넘어 마고(麻姑) 시대를 포함한 7만2천390년 역사를 밝히고 있음. 

1. 홍익인간(弘益人間) 천부(天符)의 역사는 마고성(麻姑城:파미르고원)의 마고(麻姑)시대인 서기전70378년 계해년(癸亥年)부터 시작되었음을 최초로 밝혔음. 
2. 역법(曆法)이 시작된 해는 마고성(麻姑城)의 황궁씨(黃穹氏) 시대인 서기전25858년 계해년(癸亥年)임을 밝혔으며, 서기전70378년 계해년이 마고(麻姑) 기원(紀元:천부 天符)임을 밝혔음. 
3. 황궁씨를 이은 나반(那般:那般尊者:獨聖者)이 한국(桓國)시대 한인씨(桓因氏) 이전의 임금이던 유인씨(有因氏)이며, 한인씨 7대(代)가 약1,000년을 다스렸다는 것임을 밝혔음. 
4. 윷놀이판의 모습이 천부경(天符經)의 무한조화순환역(無限造化循環易), 음양오행(陰陽五行), 태양태음성력(太陽太陰星曆), 단군조선의 정치행정 구조를 나타낸 것임을 밝혔으며, 하도(河圖)와 낙서(洛書)가 배달나라 시대의 음양오행수리역(陰陽五行數理易)이며, 태호복희 8괘역과 윷놀이판의 역이 지구의 자전(自轉)과 공전(公轉)을 기반으로 한 역(易)임을 밝혔음. 
5. 천제(天帝), 천황(天皇:天王), 천군(天君), 천공(天公), 천후(天侯), 천백(天伯), 천자(天子), 천남(天男)의 위계질서를 최초로 밝히고, 천제자(天帝子)와 천자(天子)의 차이점을 최초로 밝혔으며, 태호복희씨(太皞伏羲氏)가 일반 천자(天子)가 아니라 천지인(天地人) 삼신(三神)에게 제(祭)를 올리는 권한을 가진 제사장인 천군(天君)임을 밝혔음. 
6. 아리랑(阿里嶺) 민요의 원천이 되는 최초의 역사적 사실이 서기전2333년 10월 3일 조선을 건국하기 이전에 있었던 당요(唐堯)의 전란(戰亂)으로 인한 단군왕검(檀君王儉)의 동북 아사달로의 이동과정임을 밝혔음. 
7. 고대중국의 천자로 불리는 요순우(堯舜禹)와 고대일본의 신무왕(神武王)이 단군조선의 반역자(反逆者)이면서 제후인 천자(天子)임을 밝혔음. 
8. 우비(禹碑:우 치수기념 부루공덕 비)의 비문을 국내 최초로 역사적 해석을 하여, 서기전2267년 이후 우(禹)가 치수에 성공한 후 치수법(治水法)을 전수해 준 단군조선 태자부루의 공덕을 새겨 남악(南嶽) 형산(衡山)에 세운 것임을 밝혔음. 
9. 일본 국조신(國祖神)인 천조대신(天照大神)의 사당인 이세신궁(伊勢神宮)에 소장된 원시한글 축문을 국내 최초로 완벽 해독하고, 요하유로 기록된 천조대신이 단군조선 두지주(豆只州) 예읍(濊邑)의 추장(酋長)의 후손임을 밝혔음. 
10. 명도전(明刀錢) 최초 해독학자 허대동선생<저서 고조선문자>의 가림토(加臨土) 해독의 검증에 참여하여 첨수도(尖首刀), 명도전이 단군조선의 화폐이며 새겨진 문자가 단군조선의 상형 및 표음 문자임을 밝혔음. 그 외 다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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