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익인간 296] 고구려(高句麗) 연대기 5
2012년 04월 27일 (금) 07:16:57 | 천산(天山) sppopsj@yahoo.co.kr |
7. 제7대 차대제(次大帝:서기146년~서기165년)
태조무열제의 아우 수성이 태조무열제를 위협하여 즉위하였다.
서기147년에 차대제는 자신의 음모를 태조무열제에게 밀고하였던 우보 고복장을 처형하였다. 이때 좌보 목도루는 사직하였다.
서기148년에 태조무열제의 태자 막근을 죽였고 아우 막덕은 자결하였는데, 이 소식을 들은 태조무열제가 슬퍼하였다.
*서기155년에 한(漢)나라에서는 조조(曹操)가 출생하였다.
*서기161년에 유비(劉備)가 한(漢)나라의 탁주(涿州)에서 출생하였다.
*서기162년에 한나라 운성(運城)에서 관우(關羽)가 출생하였다.
서기165년에 태조무열제가 120세로 붕하였다. *이해에 한나라에서는 탁주(涿州)에서 장비(張飛)가 출생하였다.
서기165년 겨울에 연나부 조의 명림답부가 폭정을 하던 차대제를 시해하였다. 이에 차대왕의 아우 백고는 도피하였다가 77세의 나이로 즉위하였다.
8. 제8대 신대제(新大帝:서기165년~서기179년)
차대제의 아우 백고가 77세로 즉위하였다.
좌우보 제도를 폐지하고 명림답부를 국상으로 임명하였다.
서기전168년에 제8대 신대제(新大帝)가 요동을 정벌하였다.
<한나라의 고구려 침공>
서기169년에 한(漢)나라의 현도태수 경림(耿臨)이 고구려를 쳤다.
서기172년 겨울에 한나라가 대군으로 고구려를 침공하였다가, 명림답부의 계책으로 한나라를 추격하여 좌원에서 대승하였다.
서기179년에 국상 명림답부가 113세로 졸하였다.
9. 제9대 고국천제(故國川帝:서기179년~서기197년)
신대제의 둘째 아들 남무 태자가 즉위하였다. 이에 맏이 발기가 소나부의 3만여 가구를 거느리고 한나라 요동태수 공손찬에게 투항했는데, 공손찬이 믿지 못하고 거절하자 발기는 비류수 상류로 돌아와 머무니, 고국원제가 이를 용서하였다.
*서기181년에 한(漢)나라에서 제갈량(諸葛亮)이 출생하였다.
*서기182년에 한나라 오(吳) 땅에서 손권이 출생하였다.
<한나라 요동태수의 침입 격퇴>
서기184년에 한나라 요동태수가 침공하였으나, 고국천제가 몸소 적들을 섬멸하였다.
이때 요동태수는 공손찬(公孫瓚) 또는 공손탁이 된다. 서기197년에 고구려의 산상제의 아우 계수가 토벌한 요동태수는 공손탁(公孫度)이다.
*이해에 한(漢)나라에는 황건적의 난이 일어났다. 이때 조조(曹操)는 30세, 유비는 23세, 관우는 22세, 장비는 19세, 제갈량은 4세, 손권은 3세였다.
*서기189년에 한(漢)나라에서는 동탁을 타도하는 반동탁 연합군이 결성되었다.
<외척의 반란>
서기190년에 중외대부 패자 어비류와 평자 좌가려가 연나부의 무리를 이끌고 반란을 일으켜 서기191년에 왕성을 공격하였으나, 고국천제가 이를 진압하였다.
<을파소의 등용>
국상으로 천거받은 안류가 을파소를 천거하니 고국천제가 을파소를 국상에 임명하였다.
<진대법 실시>
서기194년 가을에 고국천제가 을파소의 의견에 따라 진대법을 실시하였다.
*서기196년에 원술이 한(漢)나라 옥새를 차지하였다.
서기197년에 고국천제가 아들이 없이 갑자기 붕하시니, 왕후가 아우(세째 왕자) 발기를 찾아갔으나 거절하여, 연우(고국천제의 둘째 아우:네째 왕자)를 찾아가서 의논하여 유언을 받았다라며 즉위하였다.
*서기197년에 유비가 여포에게 서주와 소패를 잃고 조조에게 의탁하였다.
10. 제10대 산상제(山上帝:서기197년~서기227년)
서기197년에 고국천제의 아우 연우가 즉위하였다.
<발기의 반란>
이에 셋째 발기가 군사를 일으켜 왕성을 포위하였으며 산상제의 처자를 죽였다. 발기는 한나라 요동태수 공손탁(公孫度)을 찾아가 투항한 후 한나라 군사 3만을 이끌고 고구려를 침공하였다. 그러나, 막내 계수에게 대패하여 달아나다가 발기는 결국 자결하였다. 가을에 발기의 시신을 찾아와 왕족의 예로 장례를 치렀다.
<계수의 요동 평정>
서기197년 산상제의 아우 계수(罽須)를 파견하여 후한의 장수 공손탁(公孫度)을 공격하여 격파하고 현도와 낙랑을 정벌하여 이를 멸망시켜 요동을 평정했다.
<환도성 축조>
서기198년에 환도성을 축조하였다.
*서기199년에 원소가 유주(幽州)의 공손찬(公孫瓚)을 멸하였다. 이해에 오(吳)나라에서는 노숙이 18세의 손권을 만났다.
*서기200년에 한나라에서는 조조와 원소 사이에 관도대전이 있었다. 유비가 유표에게 의탁하였다.
<을파소 국상(?~서기203년)>
을파소 선생은 일찍이 무리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신시이화의 세상엔 백성들의 지혜가 열림으로 말미암아 날로 지극한 다스림에 이르렀는 즉, 만세에 걸쳐 바뀌지 않는 표준인 까닭이 있다. 참전에 계가 있어 신의 계시를 들어 무리를 교화하고, 한맹에 율이 있어 하늘을 대신하여 공을 행한다. 모두 스스로 마음을 세우고 힘을 써서 뒤의 공을 마련한다.”라고 하였다.(乙巴素 嘗言於衆 曰 神市理化之世 由民開智 日赴至治 則有所以 亘萬世 不可易之 標準也 參佺有戒 聽神以化衆 寒盟有律 代天行功也 皆 自立心作力以 備後功也)
서기200년경 산상제 때 을파소가 국상이 되더니 나이 어린 준걸을 뽑아서 선인도랑이라 하였다. 교화(敎化)를 관장하는 자를 참전(參佺)이라 하는데 무리들이 뽑아 계율을 지키고 신(神)을 위하는 일을 맡으며, 무예(武藝)를 관장하는 자를 조의(皁衣)라 하는데, 몸을 단련하고 규율을 만들며 공적인 일을 위하여 몸을 바친다라고 하였다. 을파소는 제2대 유리명제 때의 대신이던 을소(乙素)의 손자가 된다.
<을파소 선생이 전수한 참전계경>
을파소 선생이 일찍이 백운산(白雲山)에 들어가 하늘에 기도하고 천서(天書)를 얻으니 참전계경(參佺戒經)이라 했다. 참전계경은 모두 366조목으로 되어 있으며, 성(誠), 신(信), 애(愛), 제(濟), 화(禍), 복(福), 보(報), 응(應)의 8개 항목의 계율로 되어 있어 팔리훈(八理訓)이라고도 한다. 참전계경의 366조는 기회가 되면 부록에 붙이기로 한다.
<산상제가 산천에 제를 올리다>
서기203년에 산상제가 산천에 제를 올렸다.
*서기203년 봄에 조조가 원소의 기주(冀州)의 업성(鄴城)을 공략하였다.
<공손강이 대방군을 설치하다>
서기204년에 공손강(公孫康)이 대방군(帶方郡)을 설치하였다. 공손연(公孫淵)은 공손강의 아들이며, 공손강은 공손탁(公孫度)의 아들이고, 공손탁은 공손찬(公孫瓚)의 아들이다. 즉 공손찬, 공손탁, 공손강, 공손연의 순이 된다.
대방군은 낙랑군(樂浪郡)의 남부 지역을 나누어 설치하였다. 낙랑군은 난하 중류지역에서 동서로 걸친 것이 되는데, 대방은 대수(帶水)가 있는 지역으로서 난하(灤河)의 서쪽으로 고하(沽河) 하류 동쪽에 위치하는 것이 된다.
*서기207년에 27세의 제갈량이 유비에게 등용되어 유비에게 천하경영의 계책을 말하였다. 이해에 조조가 하북을 평정하였다.
<산상제가 주통촌에서 소후를 얻다>
서기208년에 산상제가 주통촌 후녀를 임신시켜 소후로 봉하였다.
*서기208년에 한(漢)나라에서는 조조가 화타를 죽였으며, 10월에는 적벽대전이 있었다. 유비는 유표가 죽고 유표의 차남 유종이 조조에게 항복하니 번성에서 백성을 이끌고 남하하였다. 이해에 오나라의 노숙이 46세로 죽었다.
<제2환도성을 수도로 삼다>
서기209년에 제2환도성(丸都城)을 수도로 삼았다. 환도성은 국내성(國內城) 산위에 있다.
*서기209년에 한(漢)나라에서는 조조와 손권의 합비전투가 있었다. 이해에 49세의 유비가 20세가 안된 오나라의 손부인과 정략결혼하였다.
*서기211년에 유비가 익주를 공략하였다.
*서기214년에 유비가 방통을 잃고 낙성을 함락하였다. 이해 여름에 유장이 유비에게 익주를 바쳤다.
*서기215년에 유비가 촉을 차지하자 오나라의 손권이 형주를 반환할 것을 요청하였다.
*서기216년 5월에 조조가 한(漢)의 헌제(獻帝)로부터 위왕(魏王)에 봉해졌다.
*서기217년에 위왕 조조가 황제처럼 행세하였다.
*서기219년 5월에 조조가 한중을 포기하고 퇴각하였다. 이해에 58세의 관우가 오(吳)나라 손권에게 거짓으로 항복한 후 몰래 도망하다 붙잡혀 죽었다. 이해에 유비가 한중왕(漢中王)이 되었다.
*서기220년에 조조가 66세로 죽었다. 이해에 장비가 58세로 죽었다.
*서기222년에 촉나라 유비가 형주를 탈환함으로써 관우의 원수를 갚기 위하여 오나라를 공격하였다. 이해 10월 28일에 한(漢)나라 헌제가 조비에게 강압에 의하여 선양하였다.
*서기223년에 촉나라 유비가 오나라와의 전쟁에서 패하고 백제성(白帝城)으로 피하여 63세로 죽고, 아들 유선이 즉위하였다.
*서기227년에 제갈량이 제1차 출사표를 썼다.
-------------------------------
[필자 프로필] 조홍근(曺洪根, 52세). 한문화재단(桓文化財團) 사무총장. 트위트-페이스북 역사당 부총재. 현 법무사.
30여년 동안 족보(族譜)와 한중일(韓中日) 역사를 연구해 오면서, 부도지(符都誌), 한단고기(桓檀古記), 규원사화(揆園史話), 단기고사(檀奇古史) 등 귀중한 역사자료를 통하여, 우리역사 1만년을 넘어 마고(麻姑) 시대를 포함한 7만2천390년 역사를 밝히고 있음.
1. 홍익인간(弘益人間) 천부(天符)의 역사는 마고성(麻姑城:파미르고원)의 마고(麻姑)시대인 서기전70378년 계해년(癸亥年)부터 시작되었음을 최초로 밝혔음.
2. 역법(曆法)이 시작된 해는 마고성(麻姑城)의 황궁씨(黃穹氏) 시대인 서기전25858년 계해년(癸亥年)임을 밝혔으며, 서기전70378년 계해년이 마고(麻姑) 기원(紀元:천부 天符)임을 밝혔음.
3. 황궁씨를 이은 나반(那般:那般尊者:獨聖者)이 한국(桓國)시대 한인씨(桓因氏) 이전의 임금이던 유인씨(有因氏)이며, 한인씨 7대(代)가 약1,000년을 다스렸다는 것임을 밝혔음.
4. 윷놀이판의 모습이 천부경(天符經)의 무한조화순환역(無限造化循環易), 음양오행(陰陽五行), 태양태음성력(太陽太陰星曆), 단군조선의 정치행정 구조를 나타낸 것임을 밝혔으며, 하도(河圖)와 낙서(洛書)가 배달나라 시대의 음양오행수리역(陰陽五行數理易)이며, 태호복희 8괘역과 윷놀이판의 역이 지구의 자전(自轉)과 공전(公轉)을 기반으로 한 역(易)임을 밝혔음.
5. 천제(天帝), 천황(天皇:天王), 천군(天君), 천공(天公), 천후(天侯), 천백(天伯), 천자(天子), 천남(天男)의 위계질서를 최초로 밝히고, 천제자(天帝子)와 천자(天子)의 차이점을 최초로 밝혔으며, 태호복희씨(太皞伏羲氏)가 일반 천자(天子)가 아니라 천지인(天地人) 삼신(三神)에게 제(祭)를 올리는 권한을 가진 제사장인 천군(天君)임을 밝혔음.
6. 아리랑(阿里嶺) 민요의 원천이 되는 최초의 역사적 사실이 서기전2333년 10월 3일 조선을 건국하기 이전에 있었던 당요(唐堯)의 전란(戰亂)으로 인한 단군왕검(檀君王儉)의 동북 아사달로의 이동과정임을 밝혔음.
7. 고대중국의 천자로 불리는 요순우(堯舜禹)와 고대일본의 신무왕(神武王)이 단군조선의 반역자(反逆者)이면서 제후인 천자(天子)임을 밝혔음.
8. 우비(禹碑:우 치수기념 부루공덕 비)의 비문을 국내 최초로 역사적 해석을 하여, 서기전2267년 이후 우(禹)가 치수에 성공한 후 치수법(治水法)을 전수해 준 단군조선 태자부루의 공덕을 새겨 남악(南嶽) 형산(衡山)에 세운 것임을 밝혔음.
9. 일본 국조신(國祖神)인 천조대신(天照大神)의 사당인 이세신궁(伊勢神宮)에 소장된 원시한글 축문을 국내 최초로 완벽 해독하고, 요하유로 기록된 천조대신이 단군조선 두지주(豆只州) 예읍(濊邑)의 추장(酋長)의 후손임을 밝혔음.
10. 명도전(明刀錢) 최초 해독학자 허대동선생<저서 고조선문자>의 가림토(加臨土) 해독의 검증에 참여하여 첨수도(尖首刀), 명도전이 단군조선의 화폐이며 새겨진 문자가 단군조선의 상형 및 표음 문자임을 밝혔음. 그 외 다수 ----------
천산(天山)의 다른기사 보기 | |
ⓒ 데일리전북(http://www.dailyjeonbuk.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
'얼(뿌리를 찾아서) > 홍익인간 7만년 역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홍익인간 298] 고구려(高句麗) 연대기 7 (0) | 2018.01.22 |
---|---|
[홍익인간 297] 고구려(高句麗) 연대기 6 (0) | 2018.01.22 |
[홍익인간 295] 고구려(高句麗) 연대기 4 (0) | 2018.01.22 |
[홍익인간 294] 고구려(高句麗) 연대기 3 (0) | 2018.01.22 |
[홍익인간 293] 고구려(高句麗) 연대기 2 (0) | 2018.01.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