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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인간 317] 사국(四國) 시대 신라(新羅) 연대기 5

양해천 2018. 1. 23. 12:55

[홍익인간 317] 사국(四國) 시대 신라(新羅) 연대기 5

2012년 05월 16일 (수) 07:15:09천산(天山)  sppopsj@yahoo.co.kr

25. 제25대 진지왕(576~579) 

서기577년에 나을궁에 제사하였다. 나을궁은 박혁거세 거서간과 알영 왕비를 모신 신궁이다. 

서기579년에 진지왕이 축출되었다. 

26. 제26대 진평왕(579~632) 

고구려의 온달 장군을 아차산성에서 전사시켰다. 아차산성(阿且山城)은 지금의 구리시와 서울시 사이에 있는 아차산에 있었던 것이며, 원래 백제의 성이던 아단성(阿旦城)의 오기나 다른 표기가 될 것이다. 아단성은 서기396년 고구려 광개토호태황이 백제를 공격하여 탈취한 58개성 중의 하나이다. 

원광법사가 세속오계(世俗五戒)를 내 놓았다. 세속오계는 세상일의 다섯가지 계율이라는 말이며, 화랑도(花郞徒)의 계율을 가리킨다. 

서기580년경 덕만공주(580?~647)가 탄생하였다. 

서기584년에 연호를 건복(建福)이라 하였다. 

서기586년에 원광법사가 수(隋)나라에 걸사표(乞師表)를 올렸다. 

서기586년경 김인평이 외조부 이광옥의 천거로 진평왕에 의하여 궁에 벼슬을 시작하였다. 

서기595년경 김인평이 덕만(德曼) 공주와 혼인하였다. 김유신(595~673)이 탄생하였다. 

서기597년경 김용춘이 천명(天明) 공주와 혼인하였다. 

서기599년경 백제 왕족 서동(薯童:백제 제30대 武王)이 선화(善化) 공주와 혼인하였다. 

서기600년에 백제 무왕(武王:璋)이 즉위하였다. 

서기602년에 백제군이 아막산성으로 침공하였다. 이에 귀산과 추항이 출전하여 승전하였으나 부상을 입고 회군 중에 둘 다 사망하였다. 

서기603년에 김춘추(603~661)가 출생하였다. 

서기609년에 김유신이 15세로 화랑이 되었다. 

서기611년에 백제가 가잠성을 침공하여 차지하여 현주 천덕을 전사시키고 차지였다. 

서기618년에 가잠성 현주 천덕의 아들 해론이 출전하여 가잠성을 수복하였다. 이에 백제 무왕이 다시 가잠성을 공격하여 해론을 전사시켰다. 수나라가 고구려와의 전쟁에 패한 뒤 멸망하였다. 

서기620년경에 덕만공주가 김춘추를 대동하여 정치를 시작하였다. 이때 덕만공주는 약40세가 되고 김춘추는 약18세가 되며, 김유신은 약26세가 된다. 김유신과 김춘추는 덕만공주의 남편인 비사벌가야 출신의 부마도위 겸 태사(太師) 김인평(金仁平:약50세)의 지도를 받은 것으로 전한다. 이로써 가야세력이 신라의 중추세력으로 성장하게 된다. 

서기621년에 김유신의 아버지 김서현을 파견하여 친당외교를 시행하였다. 이때 당나라 고종은 신라에 그림 병풍, 비단을 선물하였다. 이 그림을 그린 병풍이 모란꽃 그림의 병풍으로서 벌과 나비가 없어 덕만공주가 반드시 그 꽃에 향기가 없을 것이라 하여 실제 그 꽃씨를 심었더니 그러하였다라고 삼국유사<知機三事>에 전하는 이야기의 근원이 된다. 이때 덕만(580?~647)은 여왕(631~647)이 아니라 공주 시절인 것이다. 

서기629년에 고구려의 낭비성을 빼앗았다. 

서기630년경 안함로(安含老:579~640)가 한인(桓因), 한웅(桓雄), 단군(檀君)의 역사를 요약한 삼성기(三聖記)<상편(上篇)>을 지었다. 안함로는 신라의 도승(道僧)으로서 속성은 김(金)씨이며 시부이찬(詩賦伊湌)의 자손이고, 물위를 걸으며 공중을 나는 등 많은 이적을 해하였고 선덕여왕 9년인 서기640년에 62세로 세상을 떠났다. 

서기631년 건복(建福) 48년 2월에 김인평을 조계룡(曺繼龍)이라 사성명(賜姓名)하였다. 이로써 서기551년경에 진흥왕에게 복속하였던 비사벌(창녕) 가야 왕족인 조씨(曺氏)가 진골로 편입되어 김씨를 하사받은 후 다시 조씨로 복원된 것으로 된다. 

서기631년 5월에 칠숙의 난을 발본색원하였다. 이로써 덕만공주가 왕위에 오르는 데 장애가 없어진 것이 된다. 

서기632년 1월에 진평왕이 붕하였다. 

27. 제27대 선덕여왕(632~647) 

서기632년 대신 을제(乙祭)에게 국정을 총람케 하였다. 

서기634년에 연호를 인평(仁平)이라 하였다. 분황사를 축조하였다. 

서기636년 여름에 백제군 500명이 궁궐 서쪽에 옥문지(玉門池)가 있는 옥문곡(玉門谷)으로 몰래 침입하였으나, 선덕여왕이 알천과 필탄 장군을 보내어 전멸시켰다. 여기서 알천은 진한 6부의 장이었던 소벌도리의 후손으로서 진주 소씨(蘇氏) 시조가 된다. 

서기638년에 고구려에게 칠중성을 공격당하였다. 

서기642년에 백제 의자왕이 대군을 일으켜 신라를 침공하여 40여개성을 빼앗고 윤충을 보내어 대야성(합천)까지 함락하였다. 이때 대야성 성주 김품석과 그 아내가 사망하였다. 여기 김품석은 김춘추의 사위이다. 대야성은 합천에 설치되기 이전에는 비사벌가야 지역인 창녕이 된다. 

이후 김춘추가 백제를 치려고 구원을 요청하러 고구려로 갔으나, 백제 성충의 편지를 받은 연개소문의 청을 거절하는 바람에 감금되었다가 도망쳐 나왔다. 

서기645년에 황룡사를 완성하였다. 김유신인 백제의 7성을 빼앗았다. 

<첨성대> 
서기647년에 첨성대를 완성하였다. 

<비담의 반란> 
서기647년 1월 초에 상대등 비담과 염종이 반란을 일으켰다가 명활성으로 물러갔으며, 선덕여왕의 군사는 월성에 머물렀는데, 밤에 유성이 떨어지자 김유신이 연에 불을 붙여 떠올려 위기를 모면했다. 

서기647년 1월 8일에 선덕여왕이 병으로 돌아가셨다. 

28. 제28대 진덕여왕(647~654) 

서기647년에 연호를 태화(泰和)라 하였다. 김유신이 명활성을 함락시키고 비담과 염종을 처형하여 반란을 진압하였다. 

서기648년에 관복을 제정하였다. 김춘추와 아들 김법민이 당나라에 갔다. 나당연합을 맺었다가, 김법민을 당나라에 남기고 돌아오는 길에 고구려 수군을 만나, 종자 온군해의 기지로 김춘추는 작은 배로 갈아타고 탈출하여 살았다. 

서기649년에 당나라식의 관복을 착용하여 따라 하였다. 

서기650년에 당나라 고종을 찬양하는 오언시를 비단에 써서 바치고, 당(唐)나라 연호인 영휘(永徽:650~660)를 사용하였다. 

서기651년에 조계룡(김인평)이 81세로 돌아가셨다. 조계룡(曺繼龍)은 서기571년부터 서기631년까지 60년간은 김인평(金仁平)이라는 이름으로 살았고, 서기631년 2월부터 서기651년까지 20년간은 조계룡이라는 이름으로 살았다. 경주김씨측에서는 선덕여왕이 연호를 인평(仁平)이라 사용한 것은 남편인 김인평이 일찍 사망하여 이를 기리기 위하여 사용한 것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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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프로필] 조홍근(曺洪根, 52세). 한문화재단(桓文化財團) 사무총장. 트위트-페이스북 역사당 부총재. 현 법무사. 

30여년 동안 족보(族譜)와 한중일(韓中日) 역사를 연구해 오면서, 부도지(符都誌), 한단고기(桓檀古記), 규원사화(揆園史話), 단기고사(檀奇古史) 등 귀중한 역사자료를 통하여, 우리역사 1만년을 넘어 마고(麻姑) 시대를 포함한 7만2천390년 역사를 밝히고 있음. 

1. 홍익인간(弘益人間) 천부(天符)의 역사는 마고성(麻姑城:파미르고원)의 마고(麻姑)시대인 서기전70378년 계해년(癸亥年)부터 시작되었음을 최초로 밝혔음. 
2. 역법(曆法)이 시작된 해는 마고성(麻姑城)의 황궁씨(黃穹氏) 시대인 서기전25858년 계해년(癸亥年)임을 밝혔으며, 서기전70378년 계해년이 마고(麻姑) 기원(紀元:천부 天符)임을 밝혔음. 
3. 황궁씨를 이은 나반(那般:那般尊者:獨聖者)이 한국(桓國)시대 한인씨(桓因氏) 이전의 임금이던 유인씨(有因氏)이며, 한인씨 7대(代)가 약1,000년을 다스렸다는 것임을 밝혔음. 
4. 윷놀이판의 모습이 천부경(天符經)의 무한조화순환역(無限造化循環易), 음양오행(陰陽五行), 태양태음성력(太陽太陰星曆), 단군조선의 정치행정 구조를 나타낸 것임을 밝혔으며, 하도(河圖)와 낙서(洛書)가 배달나라 시대의 음양오행수리역(陰陽五行數理易)이며, 태호복희 8괘역과 윷놀이판의 역이 지구의 자전(自轉)과 공전(公轉)을 기반으로 한 역(易)임을 밝혔음. 
5. 천제(天帝), 천황(天皇:天王), 천군(天君), 천공(天公), 천후(天侯), 천백(天伯), 천자(天子), 천남(天男)의 위계질서를 최초로 밝히고, 천제자(天帝子)와 천자(天子)의 차이점을 최초로 밝혔으며, 태호복희씨(太皞伏羲氏)가 일반 천자(天子)가 아니라 천지인(天地人) 삼신(三神)에게 제(祭)를 올리는 권한을 가진 제사장인 천군(天君)임을 밝혔음. 
6. 아리랑(阿里嶺) 민요의 원천이 되는 최초의 역사적 사실이 서기전2333년 10월 3일 조선을 건국하기 이전에 있었던 당요(唐堯)의 전란(戰亂)으로 인한 단군왕검(檀君王儉)의 동북 아사달로의 이동과정임을 밝혔음. 
7. 고대중국의 천자로 불리는 요순우(堯舜禹)와 고대일본의 신무왕(神武王)이 단군조선의 반역자(反逆者)이면서 제후인 천자(天子)임을 밝혔음. 
8. 우비(禹碑:우 치수기념 부루공덕 비)의 비문을 국내 최초로 역사적 해석을 하여, 서기전2267년 이후 우(禹)가 치수에 성공한 후 치수법(治水法)을 전수해 준 단군조선 태자부루의 공덕을 새겨 남악(南嶽) 형산(衡山)에 세운 것임을 밝혔음. 
9. 일본 국조신(國祖神)인 천조대신(天照大神)의 사당인 이세신궁(伊勢神宮)에 소장된 원시한글 축문을 국내 최초로 완벽 해독하고, 요하유로 기록된 천조대신이 단군조선 두지주(豆只州) 예읍(濊邑)의 추장(酋長)의 후손임을 밝혔음. 
10. 명도전(明刀錢) 최초 해독학자 허대동선생<저서 고조선문자>의 가림토(加臨土) 해독의 검증에 참여하여 첨수도(尖首刀), 명도전이 단군조선의 화폐이며 새겨진 문자가 단군조선의 상형 및 표음 문자임을 밝혔음. 그 외 다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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