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뿌리를 찾아서)/홍익인간 7만년 역사

[홍익인간 318] 사국(四國) 시대 신라(新羅) 연대기 6

양해천 2018. 1. 23. 12:55

[홍익인간 318] 사국(四國) 시대 신라(新羅) 연대기 6

2012년 05월 17일 (목) 07:08:24천산(天山)  sppopsj@yahoo.co.kr

29. 제29대 무열왕(654~661) 

이후 진골 출신이 왕이 되었다. 

강수(?~서기692년)가 외교문서를 담당하였다. 

서기655년에 고구려가 백제, 말갈 등과 합공으로 북쪽 변경을 침략하여 33개성을 빼앗았다. 

원효대사가 요석공주와 혼인하여 설총을 낳았다. 원효대사가 금강삼매경론, 대승기신론소, 화엄경소를 지었다. 설총은 신문왕 때 화왕계를 지었으며, 이두를 집대성 하였다. 

서기660년에 당나라 고종이 소정방에게 13만의 군사를 내어주어 백제를 치게 하였다. 백제정벌의 나당연합군 최고사령관에 김유신과 소정방이 되었다. 이때 김유신의 군사는 5만이었다. 

김유신 군대는 황산벌에서 백제 계백장군의 결사대를 맞아 네 번이나 패하였다가 화랑 관창의 죽음으로 결사대를 무찌르고 사비성으로 향하였다. 

나당연합군이 사비성을 포의하자 의자왕은 웅진성으로 도피하였다가 결국 성문을 열고 항복하였다. 이로써 백제는 서기전18년부터 서기660년까지 678년의 역사가 된다. 

서기661년에 무열왕 김추추가 백제 땅에서 살해당하였다. 

30. 제30대 문무왕(661~681) 

서기661년에 원효대사와 의상대사가 당나라로 향하였다. 이때 원효대사는 당나라 유학을 포기하고 돌아와 불교의 대중화에 힘썼다. 

당나라 소정방과 계필하력이 수군과 육군으로 고구려를 침공하였다가 소정방은 평양성에서 연개소문에게 패하고 계필하력은 압록강에서 남생에게 패하여 돌아갔다. 

서기667년에 당나라와 신라가 고구려를 침공하였다. 

서기668년에 고구려의 보장왕이 당나라에 항복하였다. 이로써 고구려의 역사는 서기전37년부터 서기668년까지 705년의 역사가 된다. 북부여가 시작된 서기전239년부터 고구려의 역사로 보면 907년의 역사가 되고, 단군조선의 오가공화정이 철폐된 서기전232년부터 계산하면 900년의 역사가 된다. 

신라가 고구려와 백제 유민들과 함께 당나라군을 축출하였다. 

서기673년 봄에 큰별이 황룡사와 궁성 중간에 떨어지고 지진이 있었다. 김유신이 79세로 졸하였다. 이에 김유신의 부인이 되었던 무열왕 김춘추의 셋째 딸은 비구니가 되었다. 

서기676년 당나라 군을 완전히 축출하여 초기 국토가 북경(北京)에서 동쪽으로 이어졌다. 즉 고구려가 망할 당시의 영역이 북경 동쪽이라는 것이며, 신라가 백제 전체와 고구려 땅의 일부를 차지한 것이 된다. 이때 고구려의 장군이던 대중상이 서기668년부터 백두산의 북쪽에 있는 동모산을 근거지로 후고구려라 칭하며 고구려를 부흥시키고 있었던 것이며, 서기720년경에 신라는 대진국(발해)의 공격을 받아 임진강 이남으로 밀려났다. 

서기676년부터 서기702년까지 당나라와 국교를 단절하였다. 

서기681년에 문무왕이 붕하였다. 유언대로 동해의 큰 바위위에 장사지내니 대왕암이라 불린다. 

이후 북쪽의 대진국(大震國:발해)과 대동강과 원산만을 경계로 하였다. 

*6~7세기에 해시계가 만들어지고 8세기에는 물시계가 만들어졌다. 
*서기668년 이후 신라는 대진국(발해)과 우리 역사상 제1차 남북국 시대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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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프로필] 조홍근(曺洪根, 52세). 한문화재단(桓文化財團) 사무총장. 트위트-페이스북 역사당 부총재. 현 법무사. 

30여년 동안 족보(族譜)와 한중일(韓中日) 역사를 연구해 오면서, 부도지(符都誌), 한단고기(桓檀古記), 규원사화(揆園史話), 단기고사(檀奇古史) 등 귀중한 역사자료를 통하여, 우리역사 1만년을 넘어 마고(麻姑) 시대를 포함한 7만2천390년 역사를 밝히고 있음. 

1. 홍익인간(弘益人間) 천부(天符)의 역사는 마고성(麻姑城:파미르고원)의 마고(麻姑)시대인 서기전70378년 계해년(癸亥年)부터 시작되었음을 최초로 밝혔음. 
2. 역법(曆法)이 시작된 해는 마고성(麻姑城)의 황궁씨(黃穹氏) 시대인 서기전25858년 계해년(癸亥年)임을 밝혔으며, 서기전70378년 계해년이 마고(麻姑) 기원(紀元:천부 天符)임을 밝혔음. 
3. 황궁씨를 이은 나반(那般:那般尊者:獨聖者)이 한국(桓國)시대 한인씨(桓因氏) 이전의 임금이던 유인씨(有因氏)이며, 한인씨 7대(代)가 약1,000년을 다스렸다는 것임을 밝혔음. 
4. 윷놀이판의 모습이 천부경(天符經)의 무한조화순환역(無限造化循環易), 음양오행(陰陽五行), 태양태음성력(太陽太陰星曆), 단군조선의 정치행정 구조를 나타낸 것임을 밝혔으며, 하도(河圖)와 낙서(洛書)가 배달나라 시대의 음양오행수리역(陰陽五行數理易)이며, 태호복희 8괘역과 윷놀이판의 역이 지구의 자전(自轉)과 공전(公轉)을 기반으로 한 역(易)임을 밝혔음. 
5. 천제(天帝), 천황(天皇:天王), 천군(天君), 천공(天公), 천후(天侯), 천백(天伯), 천자(天子), 천남(天男)의 위계질서를 최초로 밝히고, 천제자(天帝子)와 천자(天子)의 차이점을 최초로 밝혔으며, 태호복희씨(太皞伏羲氏)가 일반 천자(天子)가 아니라 천지인(天地人) 삼신(三神)에게 제(祭)를 올리는 권한을 가진 제사장인 천군(天君)임을 밝혔음. 
6. 아리랑(阿里嶺) 민요의 원천이 되는 최초의 역사적 사실이 서기전2333년 10월 3일 조선을 건국하기 이전에 있었던 당요(唐堯)의 전란(戰亂)으로 인한 단군왕검(檀君王儉)의 동북 아사달로의 이동과정임을 밝혔음. 
7. 고대중국의 천자로 불리는 요순우(堯舜禹)와 고대일본의 신무왕(神武王)이 단군조선의 반역자(反逆者)이면서 제후인 천자(天子)임을 밝혔음. 
8. 우비(禹碑:우 치수기념 부루공덕 비)의 비문을 국내 최초로 역사적 해석을 하여, 서기전2267년 이후 우(禹)가 치수에 성공한 후 치수법(治水法)을 전수해 준 단군조선 태자부루의 공덕을 새겨 남악(南嶽) 형산(衡山)에 세운 것임을 밝혔음. 
9. 일본 국조신(國祖神)인 천조대신(天照大神)의 사당인 이세신궁(伊勢神宮)에 소장된 원시한글 축문을 국내 최초로 완벽 해독하고, 요하유로 기록된 천조대신이 단군조선 두지주(豆只州) 예읍(濊邑)의 추장(酋長)의 후손임을 밝혔음. 
10. 명도전(明刀錢) 최초 해독학자 허대동선생<저서 고조선문자>의 가림토(加臨土) 해독의 검증에 참여하여 첨수도(尖首刀), 명도전이 단군조선의 화폐이며 새겨진 문자가 단군조선의 상형 및 표음 문자임을 밝혔음. 그 외 다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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