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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인간 325] 사국(四國) 시대 가야(伽倻) 연대기

양해천 2018. 1. 23. 13:00

[홍익인간 325] 사국(四國) 시대 가야(伽倻) 연대기

2012년 05월 23일 (수) 06:33:12천산(天山)  sppopsj@yahoo.co.kr

1. 제1대 김수로왕(서기42년~서기199년) 

서기전200년경 변한 땅에 있었던 변진12국 중 변진구사국(구야국)이 있었다. 9간(干)이 다스렸는데, 아도, 여도, 피도, 오도, 유수, 유천, 신천, 오천, 신귀 등 9개 마을의 장(長)이었다. 

서기전121년에 흉노(匈奴) 휴도왕(休屠王)의 태자 김일제(金日磾)가 한무제(漢武帝)가 보낸 곽거병에게 항복하였다. 

서기전85년에 김일제가 한무제를 보필한 공이 있어 한무제가 남긴 유지로 산동지역에 투후(秺侯)로 봉해졌다. 

서기8년에 왕망이 김씨족(金氏族)의 힘을 업고 신(新)나라를 세웠다. 왕망은 이때 투후(秺侯)였던 김당(金當)과는 이종사촌간이었다. 

<김수로왕의 탄생> 
서기23년 3월 3일에 김수로가 탄생하였다. 이해에 왕망의 신(新)나라가 후한(後漢)에게 망하였다. 

김씨 일족이 후한(後漢)을 떠나 대거 한반도 남쪽으로 이동하였다. 

<허황옥의 탄생> 
서기33년 7월 7일에 허황옥이 탄생하였다. 

<가야의 건국> 
서기42년 3월 15일 단군왕검(檀君王儉) 어천(御天) 제일(祭日)에 구야국의 9개 마을의 간(干)들이 김수로 등 6 형제를 왕으로 추대하였다. 이에 김수로왕의 6형제들이 금관(金冠)국, 대가야(伊珍), 성산(星山)가야, 고령(古寧)가야, 아라(阿羅)가야, 소가야(固城) 등 6가야를 건국하여 다스렸다. 김수로왕은 금관국을 다스렸다. 

서기43년 10월에 궁궐을 짓게 하여 서기44년 2월에 완성하였다. 

서기46년 10월에 신라의 석탈해가 침입하였다. 이때 석탈해는 66세 정도로 김수로왕보다는 42세정도 많은 것이 된다. 

<허황옥과의 혼인> 
서기48년 7월에 구간들이 허황옥(許黃玉)을 맞이하여 김수로의 왕비로 삼았다. 

구간(九干)의 이름을 아도는 아궁, 여도는 여해, 피도는 피장, 오도는 오상, 유수는 유공, 유천은 유덕, 신천은 신도, 오천은 오능으로 각각 바꾸었다. 신라의 직제를 취하여 각간, 아질간, 급간의 품계를 두었다. 

서기65년 3월에 김알지가 신라의 경주에 진출하였다. 

김알지를 김수로왕의 둘째 아들이라고도 하는데 이때 약15세 정도 되며, 한편 김수로의 방계라고도 하는데 김수로왕의 먼 조카뻘이 된다. 즉 김수로왕계는 휴도왕 금류(金留)-차자 륜(倫)-안상(安上)-차자 창(敞)-섭(涉)-차자 융(融)-수로(首露)-거등(居登)의 대를 이은 것이 되고, 김알지계는 휴도왕 금류-태자 김일제-삼자 건(建)-0-당(當)-0-0-알지(閼知)-성한(星漢)의 순으로 대를 이어 투후(秺侯) 김당(金當)의 4세손이라고도 하는데 이때는 김수로왕의 조카뻘이 된다. 

서기78년 8월에 신라와의 황산(黃山) 전투에서 승리하였다. 

서기88년에 신라가 가야에 대비하여 가소(加召), 마두(馬頭)의 두 성을 축조하였다. 

서기94년에 신라를 공격하였다. 

서기96년 3월에 신라의 마두성을 공격하니, 신라의 아찬 길원(吉元)이 와서 싸웠다. 

서기96년 9월에 다시 신라를 공격하여 가소성의 성주 장세(長世)를 쳐서 죽였다. 이에 신라의 파사왕이 직접 군사를 이끌고 반격하니, 가야군이 철수하였다. 

서기97년 1월에 신라가 가야를 공격하니 가야가 사과하므로 전쟁을 그쳤다. 

서기102년에 김수로왕이 신라에 초청되어 음집벌국과 실직곡국의 분쟁을 중재하였다. 

서기106년 8월에 신라가 가야를 공격하다가 후퇴하였다. 

서기115년 2월에 가야가 신라를 공격하니, 7월에 신라의 지마왕이 직접 군사를 이끌고 공격해오다 포위당하였다가 간신히 도주하였다. 8월에 신라의 지마왕이 다시 가야를 공격하다 장마로 인하여 후퇴하였다. 

서기162년에 김수로왕 140세에 태자 거등이 섭정을 하였다. 

서기189년 3월에 허황옥 왕후가 157세로 붕하였다. 

서기199년에 김수로왕이 177세로 붕하였다. 

2. 제2대 거등왕(서기199년~서기253년) 

서기200년에 대마도(對馬島)와 구주(九州)를 다스렸다. 

서기201년에 신라의 나해왕과 화해하였다. 

서기209년에 포상(浦上)8국이 가야를 공격하니 신라의 나해왕에게 구원을 요청하였다. 

서기212년 3월에 왕자를 신라에 볼모로 보냈다. 

서기249년 4월에 왜인(倭人)이 신라 장수 우로(于老)를 살해하니, 거등왕이 구원병을 보내어 왜인 200명을 참수하였다. 

3. 제3대 마품왕(서기253년 9월~서기291년 3월 

4. 제4대 거질미왕(서기291년 3월~서기346년 7월) 

서기299년에 청도지방의 이서고국(伊西古국)이 신라의 서울을 공략하니 가야가 원병을 보냈다. 

5. 제5대 이시품왕(서기346년 7월~서기407년 4월) 

6. 제6대 좌지왕(서기407년 4월~서기421년) 

7. 제7대 취희왕(서기421년~서기451년 봄) 

8. 제8대 질지왕(서기451년~서기492년) 

서기479년에 남제에 사자를 보냈다. 

서기481년 봄에 고구려가 말갈과 함께 신라의 북변을 공략하니 가야와 백제가 고구려를 격파하였다. 

서기487년 2월에 가야왕이 신라 소지왕에게 꼬리 길이가 5척인 백치(白雉)를 선물로 보냈다. 

9. 제9대 겸지왕(서기492년~서기521년) 

서기506년에 신라의 지증왕이 고성(固城)의 소가야(小伽倻)를 토벌하였다. 

서기515년에 신라의 법흥왕이 아라가야를 토벌하였다. 아라가야는 경상남도 함안에 위치하였으며, 왜(일본) 땅의 구주에 진출하기도 하였으며, 구주의 아라가야는 서기400년에 고구려에 정복되었다. 

10. 제10대 구형왕(서기522년~서기532년) 

서기523년 3월에 고령가야의 이뇌왕(異惱王)이 신라에 구혼을 하였다. 이에 신라의 법흥왕이 이찬 비조부(比助夫)의 누이를 시집보냈다. 

서기524년에 양산(梁山) 지방에서 신라와 전쟁하여 이겼다. 

서기531년에 신라 법흥왕이 김해왕성을 함락시켰다. 

서기532년에 신라 법흥왕이 군사를 이끌고 쳐들어 오자, 구형왕이 왕비, 장자 노종(奴宗), 중자 무덕(武德), 막내 무력(武力)을 이끌고 신라에 투항하였다. 

금관가야는 서기42년부터 서기532년까지 10대 491년의 역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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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551년 3월에 신라의 진흥왕이 차랑성에서 우륵의 가야금을 들었다. 대가야의 우륵은 가야금을 만들었으며, 왕명으로 상가라도, 하가라도 등 12곡을 작곡하였고, 이후 대가야가 망한 후 진흥왕의 지시로 계고, 법지, 만덕 등에게 가야금과 가야 음악을 가르쳤다. 

서기562년 9월에 대가야가 신라를 배반하므로 신라가 토벌하였다. 이로써 가야역사는 521년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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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프로필] 조홍근(曺洪根, 52세). 한문화재단(桓文化財團) 사무총장. 트위트-페이스북 역사당 부총재. 현 법무사. 

30여년 동안 족보(族譜)와 한중일(韓中日) 역사를 연구해 오면서, 부도지(符都誌), 한단고기(桓檀古記), 규원사화(揆園史話), 단기고사(檀奇古史) 등 귀중한 역사자료를 통하여, 우리역사 1만년을 넘어 마고(麻姑) 시대를 포함한 7만2천390년 역사를 밝히고 있음. 

1. 홍익인간(弘益人間) 천부(天符)의 역사는 마고성(麻姑城:파미르고원)의 마고(麻姑)시대인 서기전70378년 계해년(癸亥年)부터 시작되었음을 최초로 밝혔음. 
2. 역법(曆法)이 시작된 해는 마고성(麻姑城)의 황궁씨(黃穹氏) 시대인 서기전25858년 계해년(癸亥年)임을 밝혔으며, 서기전70378년 계해년이 마고(麻姑) 기원(紀元:천부 天符)임을 밝혔음. 
3. 황궁씨를 이은 나반(那般:那般尊者:獨聖者)이 한국(桓國)시대 한인씨(桓因氏) 이전의 임금이던 유인씨(有因氏)이며, 한인씨 7대(代)가 약1,000년을 다스렸다는 것임을 밝혔음. 
4. 윷놀이판의 모습이 천부경(天符經)의 무한조화순환역(無限造化循環易), 음양오행(陰陽五行), 태양태음성력(太陽太陰星曆), 단군조선의 정치행정 구조를 나타낸 것임을 밝혔으며, 하도(河圖)와 낙서(洛書)가 배달나라 시대의 음양오행수리역(陰陽五行數理易)이며, 태호복희 8괘역과 윷놀이판의 역이 지구의 자전(自轉)과 공전(公轉)을 기반으로 한 역(易)임을 밝혔음. 
5. 천제(天帝), 천황(天皇:天王), 천군(天君), 천공(天公), 천후(天侯), 천백(天伯), 천자(天子), 천남(天男)의 위계질서를 최초로 밝히고, 천제자(天帝子)와 천자(天子)의 차이점을 최초로 밝혔으며, 태호복희씨(太皞伏羲氏)가 일반 천자(天子)가 아니라 천지인(天地人) 삼신(三神)에게 제(祭)를 올리는 권한을 가진 제사장인 천군(天君)임을 밝혔음. 
6. 아리랑(阿里嶺) 민요의 원천이 되는 최초의 역사적 사실이 서기전2333년 10월 3일 조선을 건국하기 이전에 있었던 당요(唐堯)의 전란(戰亂)으로 인한 단군왕검(檀君王儉)의 동북 아사달로의 이동과정임을 밝혔음. 
7. 고대중국의 천자로 불리는 요순우(堯舜禹)와 고대일본의 신무왕(神武王)이 단군조선의 반역자(反逆者)이면서 제후인 천자(天子)임을 밝혔음. 
8. 우비(禹碑:우 치수기념 부루공덕 비)의 비문을 국내 최초로 역사적 해석을 하여, 서기전2267년 이후 우(禹)가 치수에 성공한 후 치수법(治水法)을 전수해 준 단군조선 태자부루의 공덕을 새겨 남악(南嶽) 형산(衡山)에 세운 것임을 밝혔음. 
9. 일본 국조신(國祖神)인 천조대신(天照大神)의 사당인 이세신궁(伊勢神宮)에 소장된 원시한글 축문을 국내 최초로 완벽 해독하고, 요하유로 기록된 천조대신이 단군조선 두지주(豆只州) 예읍(濊邑)의 추장(酋長)의 후손임을 밝혔음. 
10. 명도전(明刀錢) 최초 해독학자 허대동선생<저서 고조선문자>의 가림토(加臨土) 해독의 검증에 참여하여 첨수도(尖首刀), 명도전이 단군조선의 화폐이며 새겨진 문자가 단군조선의 상형 및 표음 문자임을 밝혔음. 그 외 다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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