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뿌리를 찾아서)/부도지(符都誌)

징심록추기(澄心錄追記) 제7장(第七章) 제6절 백결 선생이 자비왕에게 천도(天道)를 논하다

양해천 2018. 1. 26. 14:23

[원문] 

第六節 

百結先生 曾爲慈悲王 陳息災․治源․與人․知人․養人說等苦干 
백결선생 증위자비왕 진식재․치원․여인․지인․양인설등고간 
平生所懷 必宣於琴而嗚之於太虛 
평생소회 필선어금이오지어태허 
世人莫知其意 其中樂天樂 碓樂傳於世而已 
세인막지기의 기중락천락 대락전어세이이 
家貧衣弊 補綴無數 世人 通稱曰百結先生故 
가빈의폐 보철무수 세인 통칭왈백결선생고 
先生因之而自號曰百潔又改名曰婁琅 
선생인지이자호왈백결우개명왈루랑 
先生已退去鄕里 累徵不就 王除一切法禁於其鄕 卽忠孝谷而世稱勿禁里也 
선생이퇴거향리 누징불취 왕제일체법금어기향 즉충효곡이세칭물금리야 
麗末文貞公申雲月齋先生 文憲公崔冲先生等 收其稿而顯揚於世 
려말문정공신운월재선생 문헌공최충선생등 수기고이현양어세 
曰大哉 百結先生之道 當爲人君萬世之師法 其出處 正明無碍 可謂至人云 
왈대재 백결선생지도 당위인군만세지사법 기출처 정명무애 가위지인운 

[해설] 

제6절 

백결(百結) 선생(先生)이 일찍이 자비왕(慈悲王)을 위하여 
식재(息災), 치원(治源), 여인(與人), 지인(知人), 양인(養人) 등의 설(說)1) 약간을 진술하였다. 

평생의 품은 회포를 반드시 거문고를 펴서 태허(太虛)에 울리니, 
세상(世上)사람들이 그 뜻을 알지 못하였다. 
그 중 악천악(樂天樂)과 악(樂)이 전해졌다. 

집이 가난하므로 옷이 해어져 수없이 꿰매 입으니, 
세상사람들이 백결(百結) 선생(先生)이라고 불렀다. 
선생이 그로 인하여 스스로 호를 백결(百結)이라 하고, 
또 개명하여 '루랑(婁琅)'이라 하였다. 

선생이 이미 시골마을로 물러나 여러 번 불러도 나기지 아니하므로, 
왕이 그 마을에는 모든 법과 규제가 없애니, 
곧 충효곡(忠孝谷)2)이요, 세칭 물금리(勿禁里)다. 

고려말에 신운월재(申雲月齋)3) 선생과 문헌공 최충(崔冲)4) 선생 등이 
그 원고를 수집하여 세상에 드러내고, 

"크도다! 
백결(百結) 선생(先生)의 도(道)는 마땅히 해야 할 인군(人君) 만세의 사법(師法)이요, 
그 출처가 정명무애(正明無碍)하니 가히 지인(至人)이라 할 것이다." 라고 하였다. 


[세부해설] 

1) 영해박씨 세감 및 화해사전에 나오는 글 

죽송오(竹松烏) 서견(徐甄)이 말하기를 
“신라의 인물로서 속세를 피해 숨는 사람이 적지 않았지만 
그 중에서 곤궁한 처지에서도 참된 즐거움을 가졌던 사람은 누구일까?" 

운곡(耘谷) 원천석(元天錫)이 말하기를, 
“눌지왕때 왜국에 들어가 사절(使節)했던 삽량주 사람 박제상의 아들 문량이 
자비왕을 섬기면서 천재(天災)로 인하여 상소하였는데, 

그의 말에, 
'천도(天道)란 말이없는 가운데 사람을 깨우치는 것이, 
마치 스승이 착한 일을 열어주고, 허물을 막기 위하여 
회초리와 꾸짖음으로 엄하게 다스리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임금이 만일 하늘의 재앙에 경각심을 가져 정도를 찾는다면 
그것은 다행히 천재를 봄으로써 복된 길로 개혁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임금이 자기 도리를 자기가 잃어버리면 
천재마저도 나타나지 않게되는데, 

그것은 천재중에서도 제일 큰 천재로서 
재앙이 없는 것이 재앙이 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이 반드시 재앙을 보이는 것이지 
재앙을 주기 위해서 그런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하늘이 재앙을 내리는 것이 하늘 마음대로 내리는 것이 아니라, 
임금이 마음을 어떻게 쓰느냐에 달린 것입니다.'“ 
하였고, 

그 후로도 계속 진언하여 태평성대를 만드는 것을 자기 책임으로 알았다. 

그가 말하기를.... 

(중략) 너무 길어 여기서 줄인다. 

2) 충효곡 : 효충동은 경남 양산에 있다. 

3) 신운월재 : 1298~1377, 고려때의 학자 

4) 최충 : 948~1068, 고려의 문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