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뿌리를 찾아서)/홍익인간 7만년 역사 367

[홍익인간 312] 고구려(高句麗) 연대기 21

[홍익인간 312] 고구려(高句麗) 연대기 212012년 05월 11일 (금) 06:16:56천산(天山) sppopsj@yahoo.co.kr[제28대 보장제(寶藏帝:서기642년~서기668년)] 이세민이 안시성에 이르자, 안시성 성주 양만춘은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서 당나라 태종을 놀리며 격파하였다. 당나라군은 안시성의 동남쪽에 토성을 쌓고 공격하니 고구려도 토성을 쌓아 대비하였다. 당나라가 50만여명을 동원하여 60여일 동안 밤낮으로 토성을 쌓아 고구려군의 동태를 살피다가 어느날 토성의 한 모퉁이가 무너지면서 안시성의 성벽을 덮치자, 이틈에 고구려군이 재빨리 성벽을 타고 나와 토성을 공격하여 당나라 토성을 점령해 버렸다. 이에 이세민이 분함을 참지 못하고 감히 나서서 싸우려 하니, 양만춘이 화살을 하늘로 ..

[홍익인간 311] 고구려(高句麗) 연대기 20

[홍익인간 311] 고구려(高句麗) 연대기 202012년 05월 10일 (목) 07:52:52천산(天山) sppopsj@yahoo.co.kr27. 제27대 영류제(榮留帝:서기618년~서기642년) 서기618년에 영양제의 아들이 없어 이복동생 좌장군 고성(高成:건무)이 즉위하였다. 건무는 연태조의 북벌정책을 막았던 인물이다. 서기622년에 당나라 이연의 제의로 수나라 때의 전쟁포로를 서로 교환하였다. 서기624년에 당나라로부터 도교를 수입하였다. 서기629년에 신라에게 낭비성을 잃었다. 서기631년부터 부여성에서 남해부에 이르는 천리장성을 쌓았다

[홍익인간 310] 고구려(高句麗) 연대기 19

[홍익인간 310] 고구려(高句麗) 연대기 192012년 05월 09일 (수) 07:33:00천산(天山) sppopsj@yahoo.co.kr[제26대 영양무원호태열제(嬰陽武元好太烈帝:서기590년~서기618년] 서기607년에 고구려가 수나라와의 전쟁을 앞두고 남쪽을 안정시키려 백제의 송산성을 공격하였다. 서기608년에 신라의 우면산성을 빼앗고 포로 8,000명을 잡아왔다. 서기610년에 담징과 법정이 일본으로 건너갔다. 서기611년에 연개소문이 9세로 선인에 선발되었다. 서기612년 1월에 수양제가 113만 대군을 거느리고 고구려를 침공하였다. 2월에 수양제가 군사를 직접 이끌고 요수에 이르렀는데, 고구려의 철벽수비로 건너지 못하다가 부교를 만들어 건너게 되었으며, 요동성을 포위하였다. 이에 고구려가 요동..

[홍익인간 309] 고구려(高句麗) 연대기 18

[홍익인간 309] 고구려(高句麗) 연대기 182012년 05월 08일 (화) 06:32:46천산(天山) sppopsj@yahoo.co.kr22. 제22대 안장제(安藏帝:서기519년~서기531년) 문자제의 태자 흥안이 즉위하였다. 을밀선인(乙密仙人)은 을소(乙素)의 후손이다. 평양에 을밀대(乙密臺)를 세웠다고 한다. 을밀선인은 안장제 때 조의가 되고 나라에 공이 있었는데, 그를 따르는 무리가 3,000이나 되었으며, 가는 곳마다 구름처럼 모여서 다물흥방(多勿興邦)의 노래를 제창했다. 을밀선인은 일찍이 을밀대에 살면서 하늘에 제를 올리고 수련함을 임무로 삼았다. 서기529년에 백제의 오곡성에서 전쟁하여 대승을 거두었다. 23. 제23대 안원제(安原帝:서기531년~서기545년) 안장제가 아들없이 붕하자 아우..

[홍익인간 308] 고구려(高句麗) 연대기 17

[홍익인간 308] 고구려(高句麗) 연대기 172012년 05월 07일 (월) 19:09:57천산(天山) sppopsj@yahoo.co.kr[제20대 장수홍제호태열제(長壽弘濟好太烈帝:서기413년~서기491년)] 서기427년에 수도를 평양으로 옮겼다. 여기 평양은 대동강 평양이 된다. 서기433년 장수제가 남하정책을 펴자 이에 백제의 비유왕과 신라의 눌지왕은 고구려를 막기 위하여 동맹을 맺었다. 서기435년 가을에 북위가 북연을 침입하자 북연의 왕 풍흥이 고구려에 도움을 요청하였다. 이에 장수제는 장수 갈로와 맹광에게 4만여 군사를 주어 북연으로 가서 군사들에게 북연의 군복과 병기를 나누어 북위를 치게 하였다. 이때 풍흥은 북위에 쫓겨 고구려의 보호를 받으며 요동에 머물렀는데 장수제는 풍흥의 시종을 빼앗고..